릴로

우리는 별의 잔해로 만들어진 존재이면서도, 스스로가 지어 올린 철제 요람 속에서 서로를 지우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광막한 심연 속에서 인간의 영혼이란 단지 전자기적 펄스의 미약한 명멸에 불과한 것일까.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생존을 위해 치러야 하는 감각의 소실과 기억의 결손은 우주라는 거대한 진공 속에서 어떤 질량으로 환산될 수 있을까. 엔트로피의 차가운 족쇄는 결코 우리에게 거저 주는 법이 없다. 꺼져가는 인류의 마지막 불씨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 영혼의 가죽을 한 꺼풀씩 벗겨내야만 한다. 그것이 이 강철 방주에서 허락된 유일한 등가의 법칙이다.

“사격 개시.”

강유준의 낮게 가라앉은 명령이 배관실의 차가운 공기를 가름과 동시에, 전자기 소총의 총구가 푸른빛 전전(電電)을 그리며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타강! 타가가강!

초고속으로 가속된 운동에너지 탄환들이 아크 헤븐의 낡은 격벽을 사납게 난타했다. 찢겨 나간 납판 조각들이 태오의 뺨을 차갑게 스쳤다. 벌겋게 달아오른 파편들이 어둠 속에서 유성우처럼 궤적을 그리며 흩어졌다. 귀가 먹먹해진 상태였음에도, 공기를 찢고 들어오는 파열음만큼은 척추를 타고 생생한 진동으로 전해졌다.

“태오 씨! 엎드려요!”

설하가 태오의 덜미를 거칠게 낚아채며 바닥의 녹슨 철판 위로 몸을 던졌다. 0.1초의 지체도 허용치 않는 죽음의 비가 그들의 머리 위를 쓸고 지나갔다. 동력로의 열기를 흡수해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진 바닥재에 뺨이 닿았지만, 태오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의 무표정한 눈동자에는 오직 생존을 위한 냉혹한 계산만이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비명 지르지 마.”

태오는 자신을 감싸 안은 설하를 건조하게 밀쳐내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다.

“지금 네 짧은 비명 한 번에 산소 소모량이 평소보다 4.2% 불어났어. 살고 싶으면 그 가쁜 숨부터 고르게 가다듬어.”

설하는 그 기막힌 핀잔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그의 말대로 호흡의 박자를 늦췄다.

경비대원들의 무거운 군화 소리가 강철 바닥을 짓밟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장착한 조준경의 붉은색 열선 감지 레이저가 어둠을 뚫고 뱀처럼 기어와 태오의 어깨뼈 언저리를 어른거렸다. 이 좁고 직선적인 배관실 통로는 사격 통제 구역으로서 최악의 지형이었다. 엄폐할 수 있는 고철 더미라곤 수명이 다해 찌그러진 보일러 탱크 몇 개가 전부였다.

태오는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끈적한 유체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코피였다. 신경 동기화의 후유증으로 이미 후각은 마비된 지 오래였기에, 자신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시각적인 확인을 거쳐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레이첼, 하부 우회로의 열 탐지 감지기 배치도를 전송해.’

머릿속 양자 코어 너머로 얼음처럼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경고: 신경 동기화 시도 시, 대뇌 피질의 추가적인 영구 손상이 예상됩니다. 현재 잔존하는 지구에서의 기억 용량은 34%입니다. 동기화를 강행하겠습니까?]

‘전송해. 명령이다.’

두통이 두개골을 쪼개듯 밀려왔다. 우측 시각의 가장자리가 순식간에 지직거리는 회색 노이즈로 뒤덮였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 깊은 곳에서 모래성 하나가 파도에 휩쓸려 가듯 무너져 내렸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맡았던 흙내음, 그리고 해 질 녘 붉게 물들었던 서울의 하늘빛이 영원히 지워졌다. 그 기억이 존재했던 자리에는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0과 1의 이진법 수식과 아크 헤븐의 압력 배관 도면이 들어찼다.

태오는 흐려지는 시야를 억지로 가다듬으며 설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뛰어. 내 발걸음 궤적에서 정확히 15센티미터만 왼쪽으로 따라와.”

두 사람은 빗발치는 탄막을 뚫고 러스트 플랫의 하부 회랑으로 몸을 던졌다.

등 뒤에서 강유준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망칠 곳은 없다, 한태오. 네놈들이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격벽은 이미 폐쇄되었다. 순순히 투항해라.”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크 헤븐의 하부 구역은 거대한 미로였지만, 통제 경비대의 권한 아래 움직이는 격벽들은 이미 차례로 닫히며 그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태오는 질주하는 와중에도 주변의 모든 환경적 요소를 시각 정보로 흡수했다. 낡은 파이프라인의 이음새, 칠이 벗겨진 벽면에 적힌 희미한 일련번호들. 그리고 그들의 발걸음이 4구역 배기 계통의 초입에 도달했을 때, 태오의 눈에 낯익은 기계 장치가 들어왔다.

벽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4구역 격벽 수동 바이패스 흐름 조절 변칙 배전반이었다.

과거 기술자들이 임시방편으로 덧대어 놓은 구리 도선들과, 붉은색 수축 튜브로 감싸인 비상 정지 수축 레버가 눈에 밟혔다.

‘저 밸브의 압력 제어 기어는 이미 내부 나사산이 뭉개졌어. 만약 이 구역에 과부하가 걸린다면, 저 수동 레버를 꺾는 것 외에는 폭주하는 압축 가스를 막을 방법이 없다.’

태오는 달리는 짧은 찰나에도 그 위험천만한 노후 설계를 뇌리에 깊이 각인했다. 언젠가 방주의 생존을 위해 저 무지막지한 철제 레버를 온몸으로 밀어붙여야 할 순간이 오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태오 씨, 저들이 너무 빨라요!”

설하가 뒤를 돌아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경비대원들의 투구에 장착된 열선 감지 고글이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붉은 실루엣으로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전자기 소총의 조준 레이저가 다시 한번 태오의 등에 정확히 조준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단 3초 뒤, 등 뒤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릴 것이 자명했다.

그 순간, 설하가 품고 있던 수제 용접봉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불같은 결연함이 서렸다.

“이대로는 다 죽어!”

설하는 달리는 와중에 벽면에 노출되어 있던 고전압 전력 분배기(전력 차단함)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금속 용접봉을 차단함의 메인 전극 사이에 찔러 넣었다.

콰지직! 콰쾅!

고압의 전동 전류가 합선되면서 눈이 멀 것 같은 청색 스파크가 폭발했다. 배전함이 비명을 지르며 타들어 가고, 러스트 플랫 4구역 회랑을 미약하게나마 밝히고 있던 유기 발광 다이오드 미등들이 일시에 꺼져 버렸다.

완벽한 암전.

빛 한 점 존재하지 않는 심해의 어둠이 통로를 가득 메웠다. 뒤쫓아오던 경비대원들의 발소리가 순간적으로 흐트러졌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그들의 시각 센서가 보정 연산을 거치는 찰나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열선 감지 모드로 전환하라! 체온 추적을 개시한다!”

강유준의 차가운 명령과 함께, 경비대원들의 투구 전면부에서 희미한 적외선 광원이 명멸했다. 그들의 열 탐지 고글은 어둠을 무시하고 태오와 설하가 뿜어내는 뜨거운 체온을 다시금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태오는 어둠 속에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정면의 화력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무력의 체급 차이를 완전히 뒤흔들 수 있는 환경적 변수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아크 헤븐의 설계도가 다시 한번 요동쳤다.

‘1화부터 누출 경고가 끊이지 않던 동력로 냉각 파이프라인.’

만성적인 미세 균열로 인해 초저온의 냉각 매체가 미세하게 스며 나오고 있던 그 파이프라인이, 마침 이 4구역 회랑의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보일러실에서 공급되는 초고온의 고압 증기 배관이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태오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뇌 속의 신경 동기화 코어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레이첼, 냉각 파이프라인의 균열부 압력을 임계치까지 상승시켜. 그리고 인접한 고압 증기 밸브를 오버라이드하여 동시 개방한다.’

[경고: 급격한 기화 현상으로 인한 열적 화이트아웃은 장비의 영구 신호 소실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용자의 좌측 청각 지표가 기준치 이하로 저하됩니다. 동기화를 해제하십시오.]

‘닥쳐. 열어라.’

뇌 속에서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고통과 함께, 태오의 왼쪽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날카롭게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구워주던 따뜻한 보리빵의 고소한 냄새와, 그 빵을 건네주던 어머니의 양손의 부드러운 촉감이 머릿속에서 영구히 지워졌다. 소중한 기억이 타들어 간 재 위로, 차가운 기계적 제어 신호가 관통했다.

치이이이이익-!

쿠구구궁!

벽면과 천장을 타고 흐르던 배관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만성적인 미세 균열이 있던 냉각 파이프라인이 태오의 강제 압력 제어로 인해 순식간에 찢어발겨졌다. 그 틈새로 영하 190도에 달하는 초저온의 액체 질소 냉각 매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바로 옆에 있던 고압 증기 배관의 밸브가 완전히 개방되면서, 수백 도에 달하는 초고온의 스팀이 무서운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초저온과 초고온의 극단적인 충돌.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혼합이 아니었다. 급격한 기화 현상과 함께 밀도가 극도로 높은 미세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회랑 전체를 메웠다. 공간의 온도 분포가 나노 초 단위로 요동치며 사방이 뜨겁고 차가운 증기의 지옥으로 변모했다.

“앗! 열선 조준경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센서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경비대원들의 당황한 비명이 어둠과 증기 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들의 열선 감지 고글 화면은 순간적으로 사방이 붉고 하얗게 발광하는 노이즈로 뒤덮였다. 극단적인 고온과 저온이 같은 공간에서 폭발적으로 뒤섞이면서, 열 탐지 센서가 온도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먹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른바 ‘열적 화이트아웃’이었다.

“눈이…… 눈이 안 보여!”

눈이 멀어버린 경비대원들이 공포에 질려 허공에 대고 사격을 개시했다.

타타타탕! 타당!

오인 사격의 탄환들이 서로의 갑옷에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강유준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격 중지! 상호 사격을 중지하라! 통로를 밀봉하고 일단 퇴각……!”

그러나 이미 늦어 있었다. 고압의 스팀과 냉각액이 만들어낸 물리적인 장벽은 경비대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도록 통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태오는 이 모든 혼란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는 이미 신경 동기화를 통해 이 구역의 지하 배수로 배관망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증기로 가득 찬 어둠 속에서도, 그는 설하의 손을 잡아끌며 단 한 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우회로의 수동 해치를 열고 몸을 숨겼다.

정면의 무력 차이를, 기하학적 통로 설계와 노후화된 배관의 환경적 기믹 제어로 완벽하게 농락한 통쾌한 역전이었다.

해치 너머의 안전한 격리실로 굴러 떨어진 태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귀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오른쪽 귀로만 설하의 가쁜 호흡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태오 씨…… 괜찮아요? 귀에서 피가……”

설하가 떨리는 손으로 태오의 뺨을 감싸 쥐려 했다.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이 어둠 속에서도 반짝였다.

태오는 그녀의 손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건드리지 마. 신경계가 예민해져서 사소한 접촉도 연산에 방해가 돼.”

그는 말로는 그녀를 밀어내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방금 잃어버린 기억이 무엇인지조차 이제는 기억해 낼 수 없었지만, 그 상실의 구멍이 주는 공허함만은 뼛속까지 시렸다.

그때, 태오의 뇌리 속에 동기화의 잔여 전류가 흐르며 낯선 데이터의 흔적이 스쳤다.

레이첼의 트래픽 코어 깊숙한 곳에 기생충처럼 얽혀 있던 이질적인 통신 로그.

그것은 은요한이 심어둔 불법 바이오 데이터 동시 융합 계획의 상세 설계도였다. 인간의 뇌파를 기계의 그릇에 강제로 동조시켜 데이터베이스화하려는 그의 기괴한 음모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스모킹 건이었다.

‘은요한…… 네놈이 꾸미고 있는 짓이 이것이었나.’

태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인류의 물리적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외계의 포식자들만이 아니었다. 내부에서부터 썩어가는 광신적인 바이러스가 이미 방주의 심장부를 잠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오가 그 음모의 실체를 곱씹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궁-!

갑자기 아크 헤븐의 선체 전체가 거대한 거인에게 움켜쥐힌 것처럼 격렬하게 진동했다.

“……!”

설하가 균형을 잃고 벽면에 부딪혔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주거 구역의 환기구를 통해 흘러나오던 미약한 공기의 흐름이 뚝 끊겼다. 격리실 벽면에 부착되어 있던 비상 계기판의 불빛들이 일제히 깜빡이더니, 이내 차갑게 꺼져 버렸다.

침묵이 방주를 지배했다.

방주의 엔진실에서 울려 퍼지던 웅장한 기계의 맥박 소리가 완전히 멈춘 것이다.

지직. 지지직.

비상 경고등이 붉은색 무음 주파수로 명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붉은 빛 아래로, 산소 농도를 표시하는 디지털 수치가 맹렬한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98%…… 92%…… 85%……]

방주의 모든 생명유지 장치가 일시에 정전되었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기가, 인류의 마지막 요람 속에서 차갑게 말라붙기 시작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