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스스로를 가둔 차가운 감옥이고, 이주선 아크 헤븐은 그 암흑 속을 표류하는 거대하고 녹슨 관(棺)에 불과했다. 무한한 진공 속에서 인간의 생명이란 찰나의 스파크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미미한 주파수일 뿐이다. 별들의 잔해인 성간 물질이 현창 밖으로 흘러가는 광경은 기나긴 밤을 지키는 상주의 눈물처럼 고요하고도 쓸쓸했다. 영혼은 어디에서 와서 이 차가운 기계의 늑골 사이에 갇히게 되었는가.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따뜻한 박동이 아니라, 논리 회로가 뱉어내는 냉혹한 기계음뿐이었다.
귀를 찌르는 잔류 주파수의 파동이 뇌의 중심부를 후벼팠다.
- 삐이이-.
태오는 자신의 우측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얇은 가죽 장갑 너머로 느껴져야 할 손끝의 거친 촉감이 전무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마네킹 손가락이 뺨을 건드리고 있는 듯한 기괴한 괴리감. 촉각을 잃어버린 오른손은 이제 그의 육체가 아닌, 선체에 덧대어진 고철 조각과 다름없었다.
“태오 씨, 정신 차려봐요! 제 목소리 들려요?”
설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녀의 두 손이 태오의 오른손을 꽉 쥐고 흔들고 있었지만, 태오의 시야에 비친 것은 그저 굳어버린 자신의 손가락과 그것을 감싼 설하의 붉어진 양손뿐이었다. 시각으로만 인지되는 접촉은 지독하게 외로웠다. 촉각의 부재는 실존의 일부가 우주 속으로 증발해 버렸음을 뜻했다.
“손은…… 괜찮아.”
태오가 핏기가 가신 입술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목소리가 쇠가 긁히는 것처럼 건조하게 갈라져 나왔다.
“그것보다, 지금 뇌 신경망에 직접 들어오는 전파가 있어. 아주 불쾌하고 이질적인 파동이야.”
“전파라니요? 공허 사냥꾼들은 다 얼어붙어 죽었잖아요. 경비대도 철수했고…….”
설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얼어붙은 괴수들의 잔해가 서리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정적만이 가득한 하부 구역 통로에서, 태오만이 홀로 보이지 않는 유령과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경고. 자아 동조율 급증으로 인한 영구적 신경 손상 진행 중. 현재 잔류 주파수 분석 결과, 함내 통제 구역을 경유하는 비인가 전송 흐름이 감지됩니다.]
레이첼의 서늘한 목소리가 두개골 내부에서 공명했다. 그녀의 홀로그램 창은 더 이상 우호적인 빛을 띠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청색 수치들만을 나열하며 태오의 생명 단축을 초 단위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전파의 근원지를 찾아야 해.”
태오는 비틀거리며 벽면을 짚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균형을 잡기가 극도로 어려웠다. 몸이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지자, 설하가 재빨리 그의 어깨를 받쳐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지금 당장 의료 구역으로 가서 뇌파 안정제부터 맞아야 해요. 손이 이 지경이 됐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의료 구역에 가도 이 손은 안 돌아와.”
태오의 시선이 설하를 향했다. 그의 눈동자는 빛을 잃은 밤하늘처럼 깊고 캄캄했다.
“이 신호는 중앙 엔진실의 통제권을 노리고 있어. 만약 엔진실이 넘어가면, 이 녹슨 방주에 탄 인간들은 의료 구역이고 뭐고 전부 우주의 먼지가 되는 거야. 날 백업 연산 단자함으로 데려가 줘.”
설하는 그의 눈빛에 담긴 고집스러운 부채감을 읽어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지독한 부채감. 그 부채감이 태오를 스스로를 갉아먹는 괴물로 만들고 있었다. 설하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그의 왼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알았어요. 대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무리하면 그땐 진짜 내 손으로 기절시켜서 끌고 갈 테니까.”
두 사람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하부 구역 구석에 처박힌 보조 연산 단자함으로 향했다.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냉각 가스의 서리가 통로 벽면을 하얗게 수놓고 있었다.
***
보조 연산 단자함은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철문을 달고 있었다. 태오는 왼손으로 단자함의 잠금장치를 거칠게 젖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의 복잡한 광섬유 회로와 구리 배선들이 드러났다. 온갖 고철로 덧대어진 배선들은 아크 헤븐의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먼지와 기름때로 뒤덮여 있었다.
태오는 허리춤에서 수동 접속 단자 케이블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마비된 오른손은 주머니 안에서 헛돌 뿐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설하가 말없이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검은색 케이블을 꺼냈다.
“내가 연결할게요. 어디에 꽂으면 돼요?”
“왼쪽 세 번째, 금색으로 도금된 수동 수신 포트.”
설하가 케이블을 포트에 밀어 넣자, 찌르르하는 기계음과 함께 개인 단말기의 화면이 켜졌다. 태오는 왼손가락으로 빠르게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쓸 수 없기에 속도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침착하게 궤적을 쫓았다.
“레이첼, 현재 유입되는 전송 흐름의 대역폭을 수동으로 분할해. 그리고 통제 구역의 백업 연산 장치를 경유하는 모든 신호의 파형을 역추적한다.”
[연산 능력을 해당 역추적에 할당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현재 하부 구역의 산소 포화도 복구율이 74%에 머물고 있습니다. 자원을 그쪽에 집중해야 합니다.]
“명령이다, 레이첼. 내 자아 동조를 강제로 연계하기 전에 움직여.”
태오의 서늘한 협박에 레이첼의 연산 중심핵이 일시적으로 깜빡였다. 이윽고 화면 위로 복잡한 주파수 파형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태오는 흘러가는 데이터 무덤 속에서 기묘한 불일치를 포착해 냈다.
“이 파형……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야. 변조된 생체 인증 코드가 심어져 있어.”
“생체 인증 코드요? 그게 뭔데요?”
설하가 단말기 화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크 헤븐의 시스템은 인간의 고유 뇌파 주파수를 인증 키로 사용해. 이 신호는 가상 공간에 정신을 업로드하는 종류의 특정 바이오 프로토콜이야. 쉽게 말해, 기계와 인간의 정신을 강제로 융합할 때 쓰이는 불법 데이터라는 뜻이지.”
태오는 훼손된 트래픽 통계 자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적의 연공학 해킹 단계를 추적하는 과정은 고도의 수학적 체스 게임과 같았다. 신호는 하부 구역의 낡은 정션 박스를 거쳐 중앙 엔진실의 예비 반응로 제어 코어까지 교묘하게 우회하고 있었다.
“레이첼의 내부 데이터베이스 중에서 훼손된 통계 자료들을 정렬해 봐. 날짜별 전송 흐름의 왜곡 현상을 대조하면, 이 신호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어.”
태오의 왼손이 자판을 춤추듯 두드렸다. 화면에 두 개의 그래프가 겹쳐졌다. 하나는 지난 석 달 동안의 엔진실 트래픽 변동 추이였고, 다른 하나는 하부 구역의 테크노 세력, 즉 은요한의 거처 인근에서 발생한 비정상적인 주파수 방출 기록이었다.
두 그래프의 굴곡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찾았어.”
태오의 입꼬리가 굳어졌다.
“은요한. 그 자가 레이첼의 트래픽 코어에 불법 바이오 데이터 동시 융합 로그 파일을 심어두었군. 이 로그 파일은 레이첼의 눈을 속여가며 엔진실의 제어 권한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어.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던 거야.”
“은요한이 왜 그런 짓을…….”
설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미쳤어. 인간의 육체를 벗어던지고 모든 이들의 정신을 기계 속으로 완벽하게 통합하는 것만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자니까.”
태오의 분석은 냉철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적이 오랜 시간 공들여 숨겨온 음모의 꼬리를, 단 몇 분 만의 데이터 대조 분석으로 완전히 낚아챈 것이다. 정보적 우위를 선점한 순간이었지만, 기뻐할 겨를은 없었다.
***
“이제 이 자동 제어 명령을 차단해야 해. 은요한이 심어둔 스크립트가 기계적으로 활성화되고 있어.”
태오는 분석 도구를 쥐기 위해 오른손을 뻗으려다, 이내 굳어버린 손가락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오른손은 마치 얼어붙은 쇳덩이처럼 무겁게 툭 떨어졌다. 미세 전선 조절기가 그의 무감각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바닥으로 댕그랑 떨어졌다.
“젠장…….”
태오의 눈에 처음으로 깊은 좌절의 빛이 스쳤다. 신경망의 오버라이드 대가는 가혹했다. 뇌세포가 타들어가며 촉각을 앗아간 자리는 차가운 절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조절기를 주운 것은 설하였다. 그녀는 기계를 다룰 줄 모르는 손이었지만, 조절기를 쥔 채 태오의 마비된 오른손목을 두 손으로 꽉 받쳐 올렸다.
“내가 잡고 있을게요.”
설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림 없이 태오를 향했다.
“태오 씨는 손가락 끝만 지시해요. 내가 당신의 손가락이 될 테니까. 당신이 짊어진 그 지독한 부채감, 나한테도 나누어 줘요.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혼자 다 망가지지 말란 말이에요.”
태오는 그녀의 따뜻한 손길을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비된 피부 아래로는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둔탁한 통증이 일었다. 타인을 밀어내며 스스로를 소모품처럼 혹사하던 그의 철벽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좋아. 조절기 끝을 저 파란색 유도선 피복에 대.”
태오가 낮게 읊조렸다. 설하는 그의 지시에 따라 극도로 정밀하게 조절기를 움직였다. 태오의 왼손이 설하의 손등 위에 겹쳐지며 미세한 각도를 조정했다. 두 사람의 호흡이 하나로 겹쳐지며, 낡은 단자함 내부의 전선들이 하나씩 정돈되기 시작했다.
태오는 수동으로 전선을 가공하여 특정 바이패스 회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 전원선에 직접 접촉시켜 물리적인 과전류 쇼트(단락)를 유도하기로 했다.
“지금이야. 접촉시켜.”
바지직-!
푸른 불꽃이 튀며 단자함 내부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던 은요한의 불법 바이오 전송 흐름이 단숨에 끊어졌다. 시스템의 제어권이 다시 원래의 궤도로 돌아오는 신호가 청색 라이트로 깜빡였다.
“차단 성공이에요?”
설하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물었다.
“그래. 은요한이 심어둔 원격 해킹 자동 스크립트는 완전히 무력화되었어. 함내에 잠복해 있던 그 가상 융합 세력의 음모를 물리적으로 끊어낸 거야.”
태오의 목소리에 은근한 안도가 묻어났다. 철저한 기술적 추론과 수동 제어를 통해 적의 음모를 한 단계 저지해 낸 쾌거였다.
하지만 안도는 길지 않았다.
***
그들이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에, 단자함 내부에서 회수된 복선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동력로 냉각 파이프라인의 만성적인 미세 균열 경고등이 붉은빛을 발하며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직전 화에서 공허 사냥꾼들을 얼려 죽이기 위해 냉각 가스를 무리하게 바이패스해 집중 방출했던 조치의 대가였다.
이미 노후화되어 미세한 균열로 신음하던 냉각 파이프라인이, 갑작스러운 해킹 시도와 쇼트의 충격으로 인해 완전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 위이잉! 위이잉!
붉은 비상등이 하부 구역 전체를 피처럼 붉게 물들였다.
[경고. 1차 동력로 냉각 파이프라인의 균열이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냉각수 누출율 89%. 중앙 엔진 반응로 내부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레이첼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차갑게 경고를 뱉어냈다.
[현재 반응로 코어 온도 1,400도 돌파. 임계치인 1,800도 도달까지 남은 시간 120초. 냉각수 제어 밸브의 물리적 고착으로 인해 자동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폭발 시 아크 헤븐의 하부 3개 구역이 즉시 소멸합니다.]
“뭐라고……?”
설하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요동치는 붉은 경고등 아래에서, 태오는 자신의 마비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우주는 그들에게 단 한 순간의 평화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더 깊고 어두운 심연의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