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우리는 별들의 시체가 남긴 차가운 먼지 속에서 태어나, 다시 그 영원의 침묵 속으로 바스러질 운명을 지닌 유랑자들이다. 광활한 우주는 인간의 가냘픈 비명조차 삼키며, 영혼이라는 정교한 전기 신호는 오직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가혹한 명령어 앞에서만 가늘게 박동한다. 가치를 잃어버린 생명은 그저 궤도를 표류하는 질량 덩어리에 불과한가. 아니면 그 강철의 심장 속에 숨겨진 찰나의 온기야말로, 우리가 우주라는 거대한 공허에 대항해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반작임인가. 스스로의 기억을 연료로 태우며 기계의 회로를 기어가는 자에게, 우주는 결코 다정한 대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핏방울이 속눈썹에 걸려 붉은 필터처럼 시야를 가렸다. 용접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방열 장갑 너머로, 차갑고 예리한 금속의 질감이 태오의 이마를 압박했다.

붉은색 조준 레이저가 그의 가슴과 미간 사이에 핏빛 낙인처럼 선명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한태오 엔지니어, 그리고 서설하. 당신들을 선내 최고 규율 위반으로 체포하겠다.”

강유준의 목소리는 아크 헤븐의 외벽을 구성하는 티타늄 합금보다도 단단하고 차가웠다. 그의 뒤편 어둠 속에서 강화 전투복을 착용한 경비대원들의 반자동 소총이 일제히 태오를 겨냥했다. 총구에서 풍기는 미세한 윤활유 냄새가 진공 청소기로 빨아들인 듯 건조한 공기를 타고 태오의 콧날을 찔렀다.

태오는 흩어지는 초점을 억지로 모으며 강유준을 응시했다. 왼쪽 눈의 시야는 이미 절반 이상이 검은 노이즈로 뒤덮여 있었다. 조금 전, 농업 구역의 외벽을 수리하기 위해 무리하게 감행했던 초자아 인공지능 레이첼과의 신경 동기화가 남긴 잔인한 흔적이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불꽃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뇌세포를 태워 가고 있었다. 이번에 소멸한 것은 무엇일까. 지구의 하늘이 무슨 색이었는지, 혹은 어린 시절 밟았던 모래사장의 감각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규율 위반이라니요!”

설하가 태오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잘 연마된 유리파편처럼 날카롭게 흔들렸다.

“이 사람이 제3구역의 외벽을 막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하부 구역 전체가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겁니다! 생명을 구한 대가가 고작 체포란 말입니까?”

강유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설하를 지나쳐, 태오가 농업 구역인 ‘녹색 주머니’의 격벽에서 뜯어내 용접해 붙인 강철판의 절단면으로 향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농업 구역의 인프라는 아크 헤븐 전체의 산소와 식량을 책임지는 최상위 보존 자산이다. 이를 무단으로 훼손하고 사적으로 유용한 행위는 전체 생존율을 갉아먹는 해적 행위와 다름없다.”

강유준이 소총을 고쳐 쥐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군화가 바닥의 철판을 밟을 때마다 둔탁한 금속음이 제3구역의 좁은 통로에 메아리쳤다.

“끌고 가라. 저항할 시 즉각 사살을 허가한다.”

“기다려.”

태오의 입술 사이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뜨거웠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설하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그녀를 뒤로 물러서게 하려는 의도였다.

태오는 뇌 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는 양자 코어의 잔향을 붙잡았다.

‘레이첼.’

심상 속에서 차가운 기계의 목소리가 응답했다.

[현재 동기화 해제 상태입니다. 재접속 시 잔여 시각 신경의 12%가 추가 소실될 위험이 있습니다. 한태오 엔지니어, 당신의 생체 신호는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조용히 해. 아크 헤븐의 창설 조례와 분권 자치 법령 데이터베이스만 열어라. 오버라이드 없이, 단순 열람 트래픽만 우회한다.’

[비공식 접근 경로를 탐색합니다. 보안 프로토콜 우회 중…….]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바늘이 신경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지만, 태오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의 오른쪽 눈동자 위로 푸르스름한 데이터 그리드가 아주 미세하게 명멸했다.

경비대원 둘이 수갑을 치켜들고 다가오는 순간, 태오가 차갑게 웃었다.

“강유준 대장. 당신이 신봉하는 그 철저한 규율의 근간이 무엇인지 잊은 모양이군.”

강유준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했다.

“아크 헤븐 합동 헌장 제4조 제12항.”

태오의 입에서 흘러나온 조항에 강유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선내 비상사태 및 국소적 감압 재난 발생 시, 현장 수석 엔지니어는 선체의 완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접한 비활성 구역의 자재를 임의로 징발할 수 있는 '초법적 비상 권한'을 가진다. 이 권한은 사후 조율 위원회의 승인을 요하나,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집행은 완전한 합법이다.”

태오는 피 묻은 안면을 닦아내지도 않은 채 강유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제22조 자치 구역 특별법에 따르면, 하부 ‘러스트 플랫’은 독자적인 자원 관리권을 보유한 자치 구역으로 규정되어 있지. 우리가 농업 구역에서 가져온 철판의 질량은 정확히 4.2톤. 이것은 지난달 통제 경비대가 하부 구역에 지급하지 않은 산소 여과 필터의 미지급분 질량 및 가치와 정확히 등가를 이룬다. 자재 절도가 아니라, 미지급 자원에 대한 정당한 '현물 대위변제'다.”

“억지 논리군.”

강유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조례는 함선이 정상 가동될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비상 계엄 상태다.”

“계엄령의 선포 권한은 메인 컴퓨터와 선원 대표의 과반수 합의가 있어야 한다.”

태오가 말을 받아쳤다.

“레이첼, 현재 아크 헤븐의 공식적인 계엄령 선포 상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지?”

허공에서 차가운 홀로그램 광막이 퍼져 나갔다. 레이첼의 무감각한 목소리가 제3구역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알립니다. 현재 아크 헤븐의 법적 상태는 ‘준비상 운항 단계’이며, 공식적인 계엄령은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통제 경비대의 독자적 무력 진압은 헌장 제9조에 의거, 임시 치안 유지 활동으로만 제한됩니다.]

경비대원들의 얼굴에 미세한 동요가 일었다. 자신들이 행하는 체포가 법적 근거를 잃은 무단 무력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이 쓰레기 같은 고철 더미 속에서 법을 논하겠다는 건가?”

강유준이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금속성의 찰각 소리가 위협적으로 고요를 깼다.

“여긴 우주 한복판이다, 한태오. 내 총구가 곧 규칙이고, 선내의 안정을 유지하는 힘이다.”

그가 방사형 레이저 조준선을 태오의 이마 중앙에 고정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웅-!

통로 저편에서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인영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누구 맘대로 우리 엔지니어를 데려가겠다는 거야!”

“경비대 놈들이 또 우리 자원을 빼앗아 가려 한다!”

기름때와 그을음으로 범벅이 된 하부 구역의 난민들이었다. 낡은 파이프 렌치, 사제 용접 토치, 그리고 고철을 깎아 만든 날카로운 송곳을 손에 쥔 수십 명의 사람들이 통로를 가득 메웠다. 그들의 맨 앞에는 서설하가 서 있었다.

설하는 이미 통로 입구의 격벽 수동 레버를 움켜쥐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설하가 경비대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여기 있는 자들은 모두 러스트 플랫의 생존자들입니다. 만약 태오 씨와 나를 강제로 압송하려 하신다면, 우리는 이 구역의 모든 공기 밸브를 수동으로 차단하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세울 것입니다. 우리를 쏘고 지나가시겠습니까, 강 대장님? 하부 구역 노동자 절반을 죽이고 나면, 이 방주의 동력로를 돌릴 고철은 누가 깎을 것 같습니까?”

난민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며 촘촘한 인간 장벽을 형성했다. 그들은 총구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의 침묵은 비명보다 무거웠고, 그들의 굳건한 태도는 경비대의 최신식 무기보다 단단했다.

강유준의 눈빛이 극도로 차가워졌다.

“서설하, 폭동을 선동하는 건가?”

“이건 폭동이 아니라 정당방위입니다!”

설하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서며 태오의 곁을 지켰다.

태오는 머릿속이 쪼개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레이첼이 제시하는 실시간 트래픽 데이터 중에서 군부의 약점을 집요하게 찾아 헤맸다. 레이첼은 이 갈등의 상황에서도 철저히 확률적 중립만을 지키고 있었다.

[경고. 하부 구역 난민의 40% 이상이 작업 거부에 돌입할 경우, 향후 72시간 내에 아크 헤븐의 2차 동력로 가동률이 14% 저하됩니다. 이는 전체 생존 확률을 3.2% 감소시킵니다.]

레이첼의 차가운 분석이 허공을 채웠다.

강유준은 레이첼의 연산을 무기 삼아 태오를 압박하려 했다.

“보았나, 한태오? 너희의 사소한 반발이 결국 인류 전체의 생존 확률을 떨어뜨리고 있다. 레이첼의 분석은 절대적이다. 군부의 통제만이 이 방주를 살릴 유일한 길이다.”

“과연 그럴까, 레이첼?”

태오가 피가 묻은 입술을 들어 올려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통제 경비대의 지난 분기 연료 소비 기록을 화면에 띄워라.”

[데이터를 호출합니다.]

허공에 복잡한 수치와 가스 흐름 제어 그래프가 나열되었다. 태오는 그 조각난 빛의 배열 속에서 단 하나의 모순을 정확히 짚어냈다.

“통제 경비대의 순찰선 및 강화복 충전용 동력에 사용된 중수소 가스의 소비량이 지난달 대비 35% 급증했더군. 레이첼, 경비대의 공식적인 작전 반경과 순찰 빈도는 증가했나?”

[아닙니다. 경비대의 작전 빈도는 이전 달과 동일하며, 이동 경로는 1.2% 감소했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35%의 중수소 가스는 어디로 갔지?”

태오의 목소리가 통로 전체를 찌르듯 울려 퍼졌다.

“강유준 대장. 당신들은 하부 구역의 공급을 줄여 연명하겠다고 주장하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비상 탈출용 셔틀 ‘아크 라이트’ 호의 연료 탱크를 규정치 이상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더군. 전체 생존율을 위해서라고? 웃기지 마라. 너희는 그저 배가 가라앉을 때 가장 먼저 탈출할 구명보트를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그 순간, 난민들 사이에서 거친 웅성거림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

“뭐라고? 우리 산소를 깎아서 지들 탈출할 기름을 채우고 있었다고?”

“이 사기꾼 놈들! 법과 규율을 입에 담던 놈들이 우리 목숨을 담보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어!”

분노의 파도가 통로를 휩쓸었다. 경비대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대장이 뒤에서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지 몰랐던 기색이 역력했다.

강유준의 완벽하던 가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턱관절이 단단하게 뭉쳤다.

“그것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군사 기밀 지휘 자산 보존 조치다.”

“기밀 조치든 횡령이든 상관없어.”

태오가 한 걸음 다가가 강유준의 총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어냈다.

“레이첼에게 이 데이터의 모순을 정식으로 보고했다. 레이첼의 cold-logic 연산에 따르면, 미승인 중수소 가스의 사적 비축은 '선체 자원의 효율적 배분 원칙'에 위배되는 심각한 오류다. 지금 당장 하부 구역의 산소 공급률을 원래대로 복구하고, 농업 구역 철판 징발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합의서에 서명해라. 그렇지 않으면, 레이첼은 즉각 경비대 전용 동력 그리드를 차단하고 비축된 연료를 메인 원자로로 강제 환수할 거다. 그렇게 되면 당신들의 그 잘난 강화복은 그냥 무거운 고철 덩어리가 되겠지.”

강유준은 태오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의 이성적인 뇌는 이미 자신이 완벽하게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법적 명분도, 명확한 수치적 정당성도, 심지어 부하들의 신뢰마저도 이 순간 한태오라는 일개 엔지니어의 정밀한 한 방에 무너져 내렸다.

침묵이 길어졌다.

결국, 강유준은 천천히 소총을 아래로 내렸다.

“……철수한다.”

그의 목소리는 패배의 굴욕감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한태오, 이번 한 번은 네 얄팍한 계산이 통했을지 몰라도, 다음은 없을 것이다.”

경비대원들이 서둘러 총구를 거두고 어둠 속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뒷모습은 더 이상 위협적인 지배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와아아아!”

하부 구역 난민들이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그들은 태오와 설하를 둘러싸고 어깨를 두드리며 기쁨을 나눴다.

“태오 씨, 정말 대단해요! 군부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다니!”

설하가 흥분한 얼굴로 태오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태오는 그 온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의 손끝은 이미 감각이 마비되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경고. 신경 동기화의 여파로 우측 시각 신경의 추가 손상이 진행 중입니다. 현재 시야 확보율 68%.]

레이첼의 푸른 경고창이 머릿속에서 쓸쓸하게 깜빡였다. 태오는 억지로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참아내며 설하의 손을 살며시 놓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야. 기뻐할 시간은 없어. 당장 이 철판들을 더 견고하게 용접해야…….”

그때였다.

- 끼이이이이이이익!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아크 헤븐의 거대한 선체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 뒤흔들렸다.

단순한 기계의 진동이 아니었다. 쇠와 쇠가 맞부딪쳐 긁히는 듯한, 극도로 불쾌하고 기분 나쁜 고주파 진동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통로 천장의 비상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며 붉은색 경보등으로 전환되었다.

지잉- 툭.

벽면에 붙어 있던 환경 감시 센서들의 배선이 차례로 단선되며 불꽃을 튀겼다.

[비상 상황 발생.]

레이첼의 목소리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급하고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외벽 센서 어레이 14번부터 28번까지 물리적 단선 감지. 선체 외부 표면에서 미확인 유기체 열반응 급증. 군체 형성 규모…… 측정 불가.]

경보음이 제3구역을 넘어 방주 전체를 잠식해 들어갔다. 태오의 흐릿한 시야 너머로, 방금 용접해 붙인 강철판 너머에서 무언가 둔탁하고 거대한 것이 선체를 쿵, 쿵, 하고 두드리는 고동 소리가 뼈마디를 타고 전해져 왔다.

우주의 식인귀들이, 마침내 방주의 냄새를 맡고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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