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침묵으로 쓰인 거대한 묘비명이다. 그 검은 비단 위에 우리가 흘린 눈물은 얼어붙은 나노 입자가 되어 영원히 궤도를 돌 뿐이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차가운 침묵의 틈새에서 끊임없이 따뜻한 날숨을 불어넣으려는 무모한 몸짓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딛고 선 이 녹슨 강철 방주 역시, 어둠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바스러져 가는 한 줌의 먼지일 뿐이었다.
시야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경보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으나, 한태오의 왼쪽 귀에는 오직 먹먹한 이명만이 모래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방금 전 단행했던 에고 싱크의 잔혹한 대가였다.
지구의 어느 여름날, 소나기가 내린 뒤 흙 비린내가 풍기던 골목길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져 갔다. 소중한 기억이 타들어 간 자리에는 차가운 기계적 연산식만이 흉터처럼 남았다.
콰아아앙!
제3구역의 장갑판이 우그러지는 소리는 뼈가 부러지는 파열음과 닮아 있었다. 차단벽 너머, 우주의 심연이 잎사귀처럼 얇아진 강철 벽을 찢고 고개를 내밀었다. 대기가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진공의 아가리가 아크 헤븐의 내장을 삼키려 들고 있었다.
어둠 너머로 번뜩이는 수십 개의 붉은 안광들. 선체의 열기와 미세한 전자 흐름을 감지하고 몰려든 공허 사냥꾼들이었다. 그들의 기괴한 실루엣이 장갑판의 찢어진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려 꿈틀거렸다.
“태오 씨! 벽이…… 벽이 찢어지고 있어요!”
서설하가 산소마스크를 움켜쥔 채 비명을 질렀다. 급격한 감압으로 인해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며 흩어졌다.
태오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찢어진 외벽의 단면과, 그 너머로 유출되는 산소의 질량 유량 계산식에 고정되어 있었다.
“감압 속도 초당 1.2킬로파스칼. 이대로 두면 180초 이내에 하부 구역 전체가 진공으로 변한다.”
태오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무미건조했다. 마치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닌 것처럼. 그는 소매 깃으로 코밑에 흐르는 검붉은 피를 훔쳐냈다. 점도가 높은 피가 거친 소매 원단에 검은 얼룩을 남겼다.
“경고.”
머릿속에서 레이첼의 차갑고 투명한 음성이 울렸다. 그것은 뇌 신경을 직접 흔드는 진동이었다.
[제3구역 격벽의 구조적 붕괴 확률 98.4%. 공리적 생존 최적화 알고리즘에 따라, 제3구역 및 인접한 제4구역까지의 완전 진공 격리를 제안합니다. 해당 구역 내 생존자 142명의 격리 소모는 전체 생존율을 4.1% 향상시킵니다.]
“기각한다, 레이첼.”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끼리 맞부딪히며 날카로운 통증이 턱관절을 타고 올라왔다.
“수동 수리를 진행한다. 외벽을 메울 강철판이 필요해.”
[이주선 하부 구역에는 여분의 구조용 장갑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질량 보존 법칙에 의거, 물리적 자재의 투입 없는 수리는 불가능합니다.]
“자재가 없다면, 만들면 돼.”
태오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왼쪽 다리의 감각이 둔해져 발끝이 바닥에 무겁게 끌렸다. 에고 싱크의 부작용이 벌써 운동 신경계까지 침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던 찰나, 강인하고 따뜻한 손길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서설하였다.
“오른쪽으로 서요.”
설하의 목소리가 태오의 오른쪽 귀로 흘러들었다. 그녀는 태오의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저리 비켜. 산소나 아끼라고 했을 텐데.”
태오가 거칠게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설하는 오히려 더 강한 힘으로 그의 어깨를 지탱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단단한意志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비닐 팩을 꺼내 태오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즉석 비타민 파우더였다.
“귀도 안 들리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혼자 어디를 가겠다는 거예요? 난 하부 구역 사람들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고, 당신이 이 추운 우주 한가운데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도 안 봐요. 내가 당신의 왼쪽 귀가 되어 줄 테니까, 말해 봐요. 어디로 가야 하죠?”
태오는 손바닥에 닿는 비타민 팩의 온기를 느끼며 입술을 짓씹었다. 타인의 호의는 언제나 그에게 부채감을 안겨주었다. 지구에서 나만 살아남았다는 그 깊은 부채감.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밀어낼 시간조차 사치였다.
“……농업 구역.”
태오가 낮게 뱉었다.
“‘녹색 주머니’로 간다. 그곳의 외곽 방벽을 뜯어낼 거야.”
두 사람은 격렬하게 요동치는 함선의 통로를 달렸다. 아크 헤븐의 중력 제어 장치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며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가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던졌다.
마침내 도달한 농업 구역 ‘녹색 주머니’는 기괴할 정도로 아름답고 쓸쓸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돔 천장 너머로 은하수의 푸르스름한 빛이 쏟아져 내렸고, 그 아래로 인류의 마지막 식량 줄기인 유전자 조작 밀과 채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녹색의 낙원도 이제는 해체의 대상일 뿐이었다.
태오는 벽면에 고정된 고출력 열플라스마 절단기를 집어 들었다. 족히 30킬로그램은 나가는 육중한 장비였다. 왼쪽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장비가 바닥으로 떨어지려 하자, 설하가 재빨리 다가와 절단기의 하단 지지대를 함께 받쳐 들었다.
“이 방벽을 뜯어내면 이 구역의 수경 재배기 절반이 동사할 거야.”
태오가 차가운 금속 방벽을 응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걸 뜯지 않으면, 동사할 기회조차 없이 모두가 우주의 먼지가 된다.”
그는 망설임 없이 절단기의 트리거를 당겼다.
화아아악!
눈이 멀 것 같은 청백색의 플라스마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초고온의 열기가 단숨에 농업 구역의 서늘한 공기를 집어삼켰다. 태오는 방벽의 접합부를 따라 절단기를 밀어 넣었다.
지익, 지이이익!
귀를 찢는 듯한 마찰음과 함께 수천 도의 불꽃이 이중 강철판과 단열재를 녹여내기 시작했다. 엄청난 반동이 태오의 마비되어 가는 어깨를 타고 척추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눈을 찔렀지만, 그는 눈을 깜빡일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레이저 유도선에 극도로 집중했다.
[경고. 농업 구역의 자재를 임의로 훼손하는 행위는 아크 헤븐 통제 규정 제12조에 위배됩니다. 또한, 작물 손실로 인한 칼로리 수급 계획에 차질이 발생합니다.]
레이첼의 경고가 시야 한구석에 붉은 텍스트로 깜빡였다.
“시끄러워.”
태오는 이빨을 드러내며 절단기를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강철판이 잘려 나가며 뿜어내는 붉은색 쇳물과 매캐한 타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마침내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의 이중 강철판 두 장이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게만 해도 각각 100킬로그램이 넘는 고철 덩어리였다.
“설하 씨, 카트 가져와!”
설하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수동 화물 카트를 밀고 왔다.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뜨겁게 달아오른 철판을 카트 위에 올렸다. 장갑 너머로 전해지는 열기에 살이 익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태오는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가자.”
그들은 다시 숨 가쁘게 제3구역으로 향했다. 진공의 흡입력은 더욱 강해져 있었고, 통로 곳곳에는 이미 찢어진 틈새로 침입한 공허 사냥꾼들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공기를 타고 희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3구역의 붕괴 현장은 지옥도를 연상케 했다.
장갑판은 완전히 뜯겨 나가 우주의 검은 공허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 경계면에서 공기가 비명처럼 빠져나가며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찢어진 강철 틈새로 공허 사냥꾼 한 마리가 기어코 대가리를 밀어 넣고 있었다. 딱정벌레를 닮은 검은 껍질과 점액질로 뒤덮인 수십 개의 다리가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저, 저 괴물이……!”
설하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태오는 카트에서 무거운 강철판을 끌어내렸다. 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왼쪽 팔은 거의 감각이 없었고, 시야마저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한번 머릿속의 양자 코어를 강제로 깨웠다.
‘에고 싱크…… 오버라이드.’
뇌세포가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초고열의 고통이 신경망을 타고 번졌다. 이번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던 구수한 된장찌개의 냄새와 그 따뜻했던 식탁의 기억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대가로, 그의 시야에 찢어진 틈새의 정밀한 물리적 수치들이 3차원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압력차 101.3킬로파스칼. 유출 속도 마하 1.2. 열팽창 계수 계산 완료.]
“레이첼, 수동 용접을 위한 열역학 수치 보정해.”
[수행할 수 없습니다. 수동 용접의 성공 확률은 12.7%에 불과하며, 시도 중 시술자의 사망 확률이 68%에 달합니다.]
“그럼 내가 직접 계산한다.”
태오는 신경 동기화로 얻은 초월적인 연산 능력을 오직 자신의 뇌에 집중시켰다. 컴퓨터보다 빠른 속도로 열역학적 팽창 공식과 용접선의 궤적을 머릿속에 수놓았다.
그는 한 손으로 무거운 강철판을 들어 올려 찢어진 외벽의 틈새를 막아섰다.
쿠우우웅!
엄청난 진공의 흡입력이 강철판을 우주 밖으로 빨아들이려 했다. 태오의 몸이 벽 쪽으로 사정없이 끌려갔다.
“태오 씨!”
설하가 비명을 지르며 태오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았다. 그녀의 가녀린 몸이 태오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두 사람의 체중과 수동 카트의 무게를 이용해 간신히 강철판을 벽면에 밀착시켰다.
틈새로 들어오려던 공허 사냥꾼의 머리가 강철판에 짓눌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으깨졌다. 기괴한 초록색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태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른손에 쥔 고출력 용접기를 겨누었다.
치이이이이이익!
눈이 멀 것 같은 아크 광선이 어두운 함내를 비추었다.
태오는 나노 초 단위로 흔들리는 손끝을 제어했다. 에고 싱크를 통해 뇌로 흘러 들어오는 실시간 압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용접봉의 각도와 전류 세기를 미세하게 조절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열량이 과하면 얇아진 기존 장갑판이 녹아내려 구멍이 더 커질 것이고, 열량이 부족하면 진공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용접 부위가 통째로 뜯겨 나갈 터였다.
그것은 마법이 아니었다. 철저한 물리학적 계산과, 뼈를 깎는 수동 제어 기술의 극한적 융합이었다.
지직, 지지직!
붉게 달아오른 쇳물이 찢어진 틈새를 메우며 빠르게 식어갔다. 우주의 절대영도에 가까운 냉기가 용접 부위를 급속도로 냉각시켰다. 태오는 그 급격한 온도 변화로 인한 팽창 응력까지 계산에 넣어, 지그재그 방향으로 정밀하게 가공 공식을 실행했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와 땀이 용접기의 열기에 증발하며 하얀 김을 피워 올렸다.
두 번째 강철판을 덧대고 다시 한 번 용접봉을 그어 내렸다.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나선형의 용접선이 완벽하게 궤적을 그리며 완성되어 갔다.
마침내, 마지막 스파크가 튀고 난 후.
쉬이이익…… 하던 바람 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진공의 무자비한 흡입력이 사라지고, 제3구역에 고요가 찾아왔다. 붉게 타오르던 접합부가 푸르스름하게 식어가며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외벽의 붕괴가 완전히 정지된 것이다.
“하아…… 하아……”
태오는 용접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의 손은 이미 화상과 과부하로 인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제3구역 밀폐율 99.8%. 구조적 안정성 회복됨.]
레이첼의 보고가 들려왔지만, 태오에게는 그 소리가 먼 심해에서 울리는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왼쪽 눈의 시야마저 반쯤 흐릿해져 설하의 얼굴이 이중으로 겹쳐 보였다.
“해냈어요…… 태오 씨, 우리가 막았어요!”
설하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들이 승리의 안도감을 느끼며 숨을 고르기도 전이었다.
철컥! 철컥!
통로 저편에서 무겁고 규칙적인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랜턴 불빛들이 그들의 얼굴을 가차 없이 비추었다.
빛의 배후에서 나타난 것은 검은색 강화 전투복을 입은 통제 경비대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엄격한 군인의 자세를 취한 사내, 강유준 대장이 서 있었다.
강유준의 손에는 냉혹한 금속 광택을 뿜어내는 반자동 운동 에너지 소총이 들려 있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태오와 설하를, 그리고 농업 구역에서 뜯어온 강철판의 흔적을 훑었다.
“이주선 핵심 인프라 무단 훼손, 및 농업 자재 절도 혐의.”
강유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경비대원들이 일제히 태오와 설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붉은색 레이저 조준선이 태오의 이마와 가슴에 선명하게 내려앉았다.
“한태오 엔지니어, 그리고 서설하. 당신들을 선내 최고 규율 위반으로 체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