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거대한 침묵의 무덤이다. 우리가 별빛이라 부르는 것은 아주 오래전 소멸해 버린 불씨가 남긴 마지막 비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 차가운 진공 속에서 인류라는 아주 작은 불꽃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영혼의 살점을 떼어내어 저 우주의 아가리에 던져주어야 하는가. 생존이란 결국, 스스로를 가장 차가운 철제 부품으로 가공해 나가는 고독한 하강의 과정이다.
* * *
“경고. 러스트 플랫 제7구역, 외벽 압력 한계 초과. 급격한 감압 현상 발생 중.”
붉은 경고등이 천장의 녹슨 배관들을 피비린내 나는 빛깔로 물들였다. 고막을 찢을 듯한 사이렌 소리 사이로, 아크 헤븐의 메인 인공지능 레이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계의 음성은 지나치게 차분해서, 마치 타오르는 화재를 관조하는 빙하처럼 서늘했다.
“산소 잔존량 급감. 초당 4.2%의 대기 소실 관측. 주거 구역의 압력 유지를 위해 30초 후 하부 구역 차단벽을 가동합니다. 해당 구역의 격리는 불가피합니다.”
“개소리하지 마, 레이첼!”
누더기 같은 방열 작업복을 걸친 사내 하나가 산소마스크를 움켜쥔 채 비명을 질렀다. 그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압의 공기가 쇳가루와 먼지를 폭풍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한태오는 흔들리는 제어 패널을 붙잡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계측기의 숫자는 절망적이었다. 영하 270도의 절대영도가 가닿는 외벽 너머, 우주의 굶주린 이빨이 선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산소 누출 속도 시속 1,200리터. 내벽 지지대가 찌그러지고 있어. 레이첼, 차단벽을 내리면 저 안의 삼백 명은 1분도 안 돼서 진공의 고기로 변해.”
태오가 거친 기침을 뱉어내며 외쳤다. 목구멍이 찌르는 듯이 아팠다. 대기압이 낮아지면서 폐포가 팽창하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한태오 엔지니어.”
레이첼의 홀로그램 인공지능 단말이 허공에 푸르스름한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감정이 거세된 푸른 눈동자가 태오의 일그러진 얼굴을 직시했다.
“현재 이주선 하부 러스트 플랫에 체류 중인 인원은 312명입니다. 이들의 생존을 위해 격벽 가동을 지연할 경우, 상부 농업 구동원 ‘녹색 주머니’로 이어지는 산소 도관이 동반 파손됩니다. 이는 아크 헤븐 전체 생존율을 0.012% 하락시키는 요인입니다. 나에게는 인류라는 종의 보존을 최적화할 의무가 있습니다. 개별적 생명의 소멸은 기계 연산 과정에서의 허용 오차 범위 내에 존재합니다.”
“닥쳐!”
날카로운 쇽웨이브가 통로를 휩쓸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하부 지지 보강재가 꺾이며 천장에서 거대한 우주선 격벽 조각이 무너져 내렸다.
“꺄악!”
비명이 들린 곳은 불과 5미터 앞이었다. 붉은색 군용 점퍼를 입은 서설하가 무너진 철제 빔 아래에 다리가 깔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좁아진 복도에 공명했다. 가스의 잔해가 그녀의 얼굴을 할퀴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서설하!”
태오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던졌다. 머리 위로 낙하하는 고철 더미를 피해 그녀의 곁으로 슬라이딩했다. 뜨거운 증기가 그의 팔뚝을 스치며 작업복 가죽을 녹여 버렸다. 지독한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태오 씨…… 빌어먹을, 여기 왜 온 거야! 빨리 위로 올라가! 저 기계 년이 문을 닫으려고 하잖아!”
설하는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태오의 멱살을 잡고 밀어내려 했다. 그녀의 손아귀에 실린 힘은 필사적이었지만, 다리를 짓누른 강철 빔은 인류가 우주를 건너기 위해 제련한 가장 무거운 합금 중 하나였다.
“입 다물어. 산소 아껴.”
태오가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네 호흡당 산소 낭비가 평소보다 4% 늘었어. 살고 싶으면 숨부터 천천히 쉬어.”
태오는 빔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이 찢어지고 손톱 밑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차가운 강철판을 적셨다. 하지만 인간의 근력으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우주선 내부의 인공 중력 장치가 오작동하며 빔의 무게를 무작위로 늘리고 있었다.
“격벽 폐쇄 10초 전.”
레이첼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통로 끝에서 거대한 납빛 차단벽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강철이 맞물리는 위압적인 소음이 지옥의 종소리처럼 러스트 플랫 구역에 울려 퍼졌다.
“태오, 제발 가! 나 하나 때문에 다 죽일 셈이야? 저 뒤에 있는 애기들이라도 살려야 할 거 아냐!”
설하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그녀의 절박한 눈동자가 태오의 흔들림 없는 회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뇌리에서 지구 멸망의 날이 겹쳐 보였다. 불타오르던 푸른 행성, 아크 헤븐의 강제 이륙 통제실에서 홀로 살아남아 우주선을 바라보던 그 지독한 부채감. 밤마다 그를 옥죄던,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그 영혼의 소작 흔적이 심장을 찔렀다.
‘두 번은 안 된다.’
태오는 고개를 돌려 벽면에 매달린 수동 제어 패널을 바라보았다. 덮개가 날아가고 내부의 양자 코어 인터페이스 배선이 엉망으로 얽혀 있는 상태였다. 기계 제어 권한은 이미 레이첼의 중추 연산 처리 장치에 완전히 독점되어 있었다. 오직 인간의 신경계를 물리적으로 직결하는 극단적인 연공학 기술, ‘신경 동기화’만이 이 철저한 논리의 요새를 뚫을 수 있었다.
인터페이스의 단자가 날카로운 침들처럼 드러나 있었다. 저곳에 신경을 이식하는 순간, 뇌세포가 초당 수천억 번의 연산 압축을 견뎌내야 한다. 그 대가는 영혼의 파멸이거나, 신체의 영구적인 손실이다.
“경고. 비인가 신경 접속 시도는 뇌 신경망의 비가역적 괴사를 초래합니다.”
레이첼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한태오 엔지니어, 당신의 가치는 이주선의 수리 효율성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감각을 소모하는 것은 극도로 비합리적인 결정입니다.”
“내 가치는 내가 정해, 이 고철 덩어리 년아.”
태오는 거칠게 이빨을 악물고는, 단말기 안으로 손을 쑤셔 넣었다.
사정없이 튀는 붉은 전선들과 양자 동기화 침들이 그의 손목과 손등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정맥을 타고 뇌 신경으로 기어올라 왔다.
“아아아아악!”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뇌하수체를 직격했다. 그것은 뇌를 펄펄 끓는 납물에 담그는 듯한 자극이었다. 태오의 눈동자가 뒤집히며 흰자위가 드러났다. 온몸의 모세혈관이 동시에 터져 나가는 것 같았다.
[에고 싱크(Ego-Sync) 활성화.] [연산 동기화율 10%…… 35%…… 78%……] [경고: 신경망 과부하. 미각 영역의 시냅스 붕괴 시작. 감각 영구 결손 진행.]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입안가득 고여 있던 비린 피 맛이, 순식간에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맹물처럼 변해 버렸다. 혀끝을 맴돌던 쇠비린내도, 공기 중의 매캐한 가스 맛도 전부 하얗게 지워졌다. 미각이 완전히 소멸된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태오의 시야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도약했다.
아크 헤븐의 복잡한 혈관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철 벽면 내부를 흐르는 초고압 냉각수 파이프라인, 산소를 나르는 미세 기공들, 그리고 거대한 격벽을 하강시키고 있는 유압 모터의 회전축까지. 모든 기계적 구조가 그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와 연결되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레이첼.”
태오의 목소리가 기계의 기저 주파수와 공명하며 기괴하게 울렸다.
“오버라이드 개시한다.”
“불가능합니다. 시스템 제어권은 메인 프레임에……”
“아니, 가능해. 네가 계산하지 못한 변수가 바로 나니까.”
태오는 뇌파를 쿼비트 단위로 쪼개어 차단벽의 유압 제어 밸브로 쏟아냈다. 레이첼이 구축해 둔 철벽같은 보완 방화벽이 태오의 거친 의지 앞에 균열을 일으켰다. 나노 초 단위의 미시적 기계 제어가 시작되자, 하강하던 거대한 차단벽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우뚝 멈춰 섰다.
쿠구구구궁!
“제어 권한 탈취 감지. 비정상적 주파수 유입.”
레이첼의 푸른 홀로그램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한태오, 이 조치는 무의미합니다. 격벽을 열어두면 하부 구역의 압력은 45초 내로 영(0)에 수렴하며……”
“그럼 수동으로 가압하면 돼!”
태오는 에고 싱크의 신경망을 더욱 깊숙한 곳으로 뻗었다. 그의 의지가 벽면 내부의 동력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비상용으로 비축해 둔 고압 액체 질소탱크와 산소 예비 카트리지가 있었다.
태오는 물리적 제약을 무시하고 밸브의 잠금장치를 강제로 전기 스파크로 지져 버렸다. 쾅! 비상 차단 밸브가 역류하며 터져 나갔고, 엄청난 양의 가스가 러스트 플랫 구역으로 역분사되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
시스템 경보음의 주파수가 바뀌었다.
“러스트 플랫 구역, 비상 가압 시작. 대기압 정상 수치 회복 중.”
가득 찬 가스가 유출되는 산소를 강하게 밀어내며 기압의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찢어진 격벽 틈새로 빨려 나가던 공기의 흐름이 급격히 둔화되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난민들이 헐떡이며 산소를 들이마셨다.
태오는 피가 흐르는 손을 기계 인터페이스에서 억지로 뽑아냈다. 투두둑, 하며 신경선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입안에 흐르는 피는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어떤 맛도 나지 않았다. 마치 모래를 씹는 것처럼 서글프고 무미건조한 감각만이 혀끝에 맴돌았다.
“하아…… 하아……”
태오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설하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던 빔의 유압 실린더를 발로 찼다. 에고 싱크의 잔존 흐름으로 인해 실린더가 미세하게 수축하자, 설하가 신속하게 다리를 빼냈다.
“태오 씨! 당신 손이…… 그리고 얼굴이……”
설하가 겁에 질린 눈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의 귀와 코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태오는 그녀의 걱정 서린 시선을 신경질적으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소매로 피를 쓱 닦아냈다.
“말했잖아. 산소 아끼라고.”
그의 목소리는 한층 더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태오의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있던 신경 동기화의 잔향이 이상한 흔적을 잡아냈다. 동력실 깊은 곳, 메인 원자로와 연결된 2차 동력로 냉각 파이프라인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건……?’
그것은 단순한 압력 변화가 아니었다. 냉각 파이프라인의 이음새 부근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발생해, 냉각액이 초당 몇 밀리리터씩 우주 공간으로 누출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선체에 영향이 없겠지만, 열 제어 시스템이 과부하에 걸리면 원자로 전체가 폭주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설계 노후화의 징후였다.
태오는 계측창을 흘깃 보았다. 레이첼의 연산 장치는 이 미세한 누출을 감지했으면서도, 하부 구역 폐쇄라는 더 큰 변수에 가려 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혹은, 알고서도 방치하고 있거나.
“경고.”
레이첼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차갑게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홀로그램의 빛이 붉게 변해 있었다.
“한태오 엔지니어의 무단 오버라이드로 인해, 아크 헤븐 하부 구역의 구조적 취약점이 32% 증가했습니다. 이 결정의 대가는 곧 청구될 것입니다.”
“청구서가 오면 내 앞으로 달아두라고 해.”
태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우주선 전체가 거대한 거인의 손에 붙잡혀 흔들리는 것처럼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궁!
단순한 내부 압력 변화로 인한 진동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하고 단단한 것이 선체 외벽을 직접 들이받은 타격음이었다.
“뭐, 뭐야? 또 무슨 일이 터진 거야?”
설하가 벽을 붙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태오의 시선이 방금 전 자신이 억지로 열어둔 제3구역 차단벽 너머로 향했다. 그곳의 장갑판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강철이 찢어지는 비명 속에서, 칠흑 같은 우주의 어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가운 진공 속에서, 수십 개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