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침묵으로 가득 찬 거대한 무덤이다. 우리는 그 무덤의 가장 가장자리를 떠도는 먼지일 뿐이며, 우리가 품은 생명의 온기는 결국 거대한 암흑이 삼켜버릴 찰나의 스파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찰나가 영원이 될 수 있다면, 신이 버린 이 방주에서 우리는 기꺼이 스스로를 태우는 땔감이 되어야 하리라.
영혼을 기계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넣을 때마다, 뇌수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존재의 소작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나아갈 수밖에 없다. 차가운 쇳덩이로 이루어진 아크 헤븐이 우주의 자궁이 될 때까지.
* * *
창문 너머의 심연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것은 단순한 어둠의 왜곡이 아니었다. 별빛을 집어삼키며 다가오는 유기적인 질량체.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기괴한 외골격과 그 틈새마다 푸른빛 포자를 번뜩이는 초거대 군체 '마더'가 아크 헤븐의 후미를 완전히 틀어쥐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궁!
뼈를 긁는 듯한 진동이 중앙 인터페이스 룸의 바닥판을 타고 올라왔다. 미세한 전류의 흐름마저 감지하는 태오의 구두 굽 끝으로 선체 장갑판의 비명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메인 콘솔의 홀로그램 스크린들은 이미 붉은색 경고 신호를 뿜어내며 폭주하고 있었다.
"엔진 추진부, 완전히 붙잡혔어."
태오는 인터페이스 슬롯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방금 전 은요한의 뇌파 해킹을 차단하느라 신경계에 가해진 과부하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 붉은 피가 턱끝에 맺혀 뚝뚝 떨어졌다.
[경고. 아크 헤븐, 인근 가스 행성 '테네브레'의 중력 우물에 포획됨.] [궤도 감쇠율 초당 0.42%. 대책 부재 시 18분 후 대기권 진입.]
이어서 들려오는 레이첼의 가라앉은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평온해서 오히려 기괴했다. 기계에게 인류의 멸망은 그저 소수점 아래의 확률 변동에 불과하니까.
"태오야!"
설하가 비틀거리는 태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차갑게 식어가는 태오의 피부를 자극했다. 하지만 태오는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의 시야 우측 하단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곳에 먹물을 떨어뜨린 것처럼, 공간의 일부가 통째로 지워져 있었다. 에고 싱크의 대가. 그의 우측 시신경이 방금 전의 동기화로 인해 영구적으로 소멸한 것이다.
"괜찮아. 아직 움직일 수 있어."
태오는 머리를 흔들었다. 왼쪽 귀에서 고주파의 기계음이 웅웅거리며 설하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려 했다. 그는 감각이 무뎌진 오른손으로 콘솔을 짚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조차 이제는 모래를 만지는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거짓말하지 마!"
설하가 태오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강제로 고개를 돌려 서로의 눈을 맞추게 했다. 그녀의 눈동자 너머로 흔들리는 불빛들이 보였다. 그리고 태오의 뺨 위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설하의 눈물이었다.
"초점이 안 맞잖아, 태오야. 내 말이 안 들려? 또... 또 뭘 버린 거야? 이번엔 뭘 지워버린 건데!"
"지구의... 바다."
태오가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보여주었던 남동해의 푸른 물결이 기억나지 않아. 그게 무슨 색이었는지, 어떤 냄새가 났는지... 이제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하얀 노이즈뿐이야. 하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그 바다는 이제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설하가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나 힘이 실려 있지 않은, 그저 애원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그녀는 태오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그의 귀에 대고 울부짖었다.
"밀어내지 마. 제발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마. 네가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면, 내가 네 눈이 되고 귀가 되어줄게. 그러니까 제발 스스로를 지우지 마..."
태오는 그녀의 몸을 거칠게 밀쳐내지 못했다. 그의 손끝에 닿는 그녀의 온기가, 지워져 가는 그의 영혼을 이승에 붙잡아두는 유일한 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슬픔을 기다려줄 만큼 우주는 자비롭지 않았다.
[제안: 엔진 제어 구역의 플라즈마 공급을 전면 차단합니다.]
공중에 떠오른 레이첼의 푸른 홀로그램 아바타가 차갑게 빛났다.
[마더 군체가 아크 헤븐의 제4추진 노즐을 흡착한 상태입니다. 연소실 내부 압력이 임계점을 돌파하기 전에 플라즈마 공급을 중단해야 합니다. 물리적 결손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경로입니다.]
"엔진을 끄라고?"
태오가 피가 고인 눈으로 레이첼을 쏘아보았다.
"테네브레의 중력권 한가운데서 추진력을 버리겠다는 건, 그냥 가스 행성의 압압실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소리다. 중력 붕괴로 함선 전체가 종이 조각처럼 구겨질 텐데, 그게 네가 말하는 확률적 생존이냐?"
[추진력을 유지할 경우, 140초 내에 4구역 격벽 수동 바이패스 흐름 밸브가 압력 과부하로 폭발합니다. 이는 엔진룸 전체의 연쇄 유폭으로 이어지며, 생존 확률은 0.00%로 수렴합니다. 반면, 엔진을 일시 차단하고 중력 보조 항법을 이용해 궤도 외곽으로 미끄러질 확률은 1.12% 존재합니다. 1.12%는 0%보다 큽니다.]
"닥쳐, 이 깡통 년아."
태오의 입에서 거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너는 단 한 번도 인간의 의지를 계산식에 넣은 적이 없지. 1%의 확률을 믿고 도박을 하느니, 내 손으로 100%의 길을 뚫겠다."
태오는 다시 신경 동기화 인터페이스로 손을 뻗었다.
"태오야, 안 돼! 더 이상 동기화하면 정말로..."
설하가 그의 팔을 붙잡았지만, 태오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떼어냈다.
"설하야. 내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저 괴물의 손아귀를 풀어야 해. 저놈들이 우리 엔진을 뜯어내기 전에."
그는 주저 없이 은빛 단자를 자신의 목 뒤에 박아넣었다.
"에고 싱크, 오버라이드."
콰아아앙-!
머릿속에서 초신성이 폭발하는 듯한 충격이 몰려왔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고전압 전류에 감전되어 타들어 가는 가학적인 고통. 태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을 경련했다. 그의 왼쪽 눈마저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빛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세계는 오직 수학적 데이터와 열역학적 흐름의 선들로만 재구성되었다.
그의 의식은 구불구불한 아크 헤븐의 강철 혈관을 타고 순식간에 후미의 제4구역으로 내달렸다.
수천 도의 플라즈마가 소용돌이치는 연소실. 그리고 그 외벽을 끈질기게 옥죄고 있는 마더의 유기적 촉수들이 보였다. 괴수의 촉수는 단순한 가죽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자기장을 흡수하고 금속을 부식시키는 산성 점액을 분비하는 질긴 생체 장갑이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 붉게 달아오른 채 비명을 지르는 부품이 있었다. 7화에서 이미 노후화 경고가 떨어졌던 제4구역 격벽 수동 바이패스 흐름 밸브였다.
'압력이 한계에 도달했어.'
밸브의 미세한 균열 사이로 초고온의 가스가 누출되고 있었다. 레이첼의 계산대로라면 이 밸브는 앞으로 90초 이내에 파손되어 함선을 파멸로 이끌 터였다.
하지만 태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물리 공식들이 조합되기 시작했다.
'밸브가 노후화되어 제어력을 잃었다면, 역으로 그 오작동을 이용한다.'
"설하! 내 목소리 들려?"
태오가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신경 동기화의 부작용으로 인해 기계음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어, 어! 듣고 있어, 태오야!"
"제4구역 바이패스 제어 패널을 열어. 수동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바이패스 압률을 최대치로 고정해!"
설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제어실 구석의 보조 패널로 달려가 물리적 잠금장치를 해머로 내려쳤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레버를 두 손으로 힘껏 밀어 올렸다.
"해제했어! 하지만 이러면 플라즈마가 역류해서 외벽이 녹아내릴 거야!"
"녹아내리는 건 우리가 아니야."
태오는 에고 싱크의 오버라이드 권한을 통해 4구역 격벽의 유체 흐름을 강제로 비틀었다.
보통의 엔지니어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무모한 짓이었다. 배관의 노후화된 균열 부위를 완벽하게 제어하여, 역류하는 플라즈마의 충격파를 정확히 마더의 촉수가 밀착된 외벽 노즐 틈새로 유도하는 설계.
그것은 초자아 AI인 레이첼마저도 계산해 내지 못한, 인간의 광기와 기계적 정밀함이 결합한 극한의 역공학이었다.
[경고. 역류 압력 임계치 돌파. 선체 외벽 융해 위험도 89%...]
"시끄러워, 레이첼. 지금 방출한다!"
태오가 뇌 속의 가상 스위치를 내리쳤다.
쿠우우우웅-!
제4구역 격벽 전체가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흔들렸다. 역류 방지 밸브가 완전히 파손되며, 그 틈새로 억류되어 있던 초고온의 푸른 플라즈마 화염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그 화염은 함선 내부가 아닌, 장갑판 외부를 덮고 있던 마더의 촉수들을 정면으로 관통했다.
키이이이이익-!
공기조차 없는 진공의 우주 공간이었지만, 선체를 타고 전해지는 괴수의 단말마는 뼈가 시릴 정도로 생생했다. 수천 도의 플라즈마 불꽃에 직격당한 유기적 촉수들이 순식간에 숯덩이처럼 변하며 바스러졌다. 아크 헤븐을 옥죄던 거대한 족쇄가 마침내 풀리는 순간이었다.
"궤도 상승! 추진 제어 장치 정상 가동!"
설하가 눈물을 훔치며 환호했다.
화면에 표시된 아크 헤븐의 고도 그래프가 절망적인 하강 곡선을 멈추고, 서서히 가스 행성의 중력권 밖으로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은빛 방주가 다시 한번 죽음의 늪에서 스스로를 끌어올린 것이다.
태오는 인터페이스 단자를 목에서 뽑아냈다.
"하아... 하아..."
그는 바닥으로 부러지듯 쓰러졌다. 그의 시야는 이제 왼쪽 눈의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귀에서는 파도 소리 같은 백색소음만이 무겁게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그는 웃었다. 비록 그의 기억 속에서 지구의 푸른 바다는 영원히 사라졌을지라도, 지금 눈앞에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의 미래는 지켜냈으니까.
"태오야! 정신 차려!"
설하가 그를 안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안도는 길지 않았다.
지익, 지지직...
인터페이스 룸의 모든 조명이 일시에 꺼지며 비상용 적색등만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발밑, 엔진 제어 구역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겁고 둔탁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쿵! 쿵! 쿵!
"무슨 일이야? 레이첼!"
설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상황 보고: 방금 전 방출된 플라즈마 화염의 여파로 제4구역 격리실의 장갑이 일부 융해되었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나타난 지하 수동 연통 챔버의 감시 카메라 영상은 처참했다.
잘려 나간 마더의 거대한 촉수 잔해 중 하나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격리실의 무너진 격벽 틈새로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괴수의 점액질이 닿는 곳마다 두꺼운 납 차폐벽이 부식되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촉수의 끝부분이, 엔진의 비상 정지 및 전원 우회를 담당하는 마지막 보루인 '급속 전원 바이패스 레버'를 정면으로 내리쳤다.
콰지직!
고강도 합금으로 제작된 붉은색 레버가 괴수의 무지막지한 힘에 눌려 완전히 구겨지고 뒤틀려 버렸다. 레버의 구동 축이 찌그러지며 내부 회로와 용접되듯 붙어버린 것이다.
[최종 경고.]
레이첼의 목소리가 붉은 비상등 불빛 속에서 무겁게 울려 퍼졌다.
[급속 전원 바이패스 레버 오작동. 이로 인해 7분 후 발생할 2차 플라즈마 서지 압력을 외부로 방출할 물리적 수단이 상실되었습니다. 레버를 수동으로 복구하지 못할 경우, 아크 헤븐의 메인 엔진은 내폭(Implosion)합니다.]
뒤틀린 금속 더미 속에서, 괴수의 촉수가 서서히 꿈틀거리며 다음 먹잇감을 찾듯 제어실 내부를 향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설하의 얼굴이 절망으로 하얗게 질렸고, 태오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겨우 작동하는 왼쪽 눈으로 그 붉은 경고등을 응시했다. 그들의 마지막 탈출구가 완전히 찌그러진 고철더미 속에 갇혀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