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우리는 별의 잔해에서 태어나, 다시 별의 무덤을 향해 흘러가는 먼지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광활한 침묵으로 가득 찬 우주라는 거대한 칠흑 속에서, 인간의 영혼이란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차갑게 식어가는 소형 발전기에 지나지 않는다. 소멸을 유예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일부분을 연료로 던져 넣어야 한다. 기억을 태우고, 감각을 그을리며, 마침내 뼈와 살마저 기계의 톱니바퀴 사이에 끼워 넣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우주적 고독에 지불해야 하는 유일한 통화(通貨)다.

***

"경고. 제4구역 격리실 내부 온도가 섭씨 420도를 돌파했습니다. 납 차폐벽의 급격한 열화로 인해 방출되는 감마선량은 시간당 850밀리시버트(mSv)에 달합니다."

레이첼의 목소리는 여전히 고요했다. 동료들의 죽음이나 함선의 파멸조차 그저 소수점 아래의 확률로 계산하는 무기질적인 음성.

지지직거리는 비상등 불빛 아래에서 괴수의 거대한 촉수 잔해가 찌그러진 바이패스 레버 위를 덮치고 있었다. 점액질이 금속 표면과 닿으며 치직거리는 불쾌한 소리를 냈다. 강산성 점액에 녹아내린 구동 축은 이미 붉은색 비상 레버와 한 덩어리로 엉겨 붙어, 마치 뼈가 부러진 짐승의 다리처럼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태오야! 들어가면 안 돼! 방사능 수치가 미쳤어. 방호복 필터도 3분을 못 버틴다고!"

설하가 태오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절박한 온기가, 이미 반쯤 마비되어 가는 태오의 왼쪽 어깨 피부를 간신히 자극했다.

태오는 일그러진 시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왼쪽 눈에 비친 설하의 얼굴은 붉은 경고등 빛에 가려져 피를 흘리는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른쪽 눈은 이미 암전된 상태였고, 귓가에는 거대한 파도가 방주의 외벽을 때리는 듯한 이명이 끊임없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놓아줘, 설하야."

태오가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밀쳐냈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입술 끝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까맣게 굳어 있었다.

"지금 우물쭈물할 시간 없어. 2차 플라즈마 서지가 터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6분 12초야. 엔진이 내폭하면 제2의 지구고 뭐고, 우린 이 쇳덩이 무덤 안에서 통구이가 돼."

"하지만 대안이 있을 거야! 다른 밸브를 잠그거나..."

"없어."

태오가 비틀거리며 도구함으로 걸어가 낡은 고장력 유압 스패너와 티타늄 지렛대를 꺼내 들었다. 금속 장비들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지만, 그의 귀에는 단지 먼 수중에서 울리는 먹먹한 메아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7화에서 내가 하부 구역을 점검했을 때 확인했어."

태오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 빌어먹을 아크 헤븐의 제4구역 격벽 수동 바이패스 흐름 밸브는 설계 단계부터 노후화된 기종이었어. 압력 과부하가 걸리면 내부 피스톤이 변칙적으로 팽창해서 수동 레버의 고정식 기어 나사가 완전히 맞물려 고사해 버려. 즉, 시스템이 스스로 압력을 제어하는 자가 치유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정교하게 계산된 압력 분산 경로를 따라 수동으로 변칙 릴리프 오조작 경로를 개방하지 않으면, 가스는 방출되지 않고 그대로 반응로를 역류한다."

[한태오 님의 분석은 타당합니다.]

레이첼의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태오의 찌그러진 시야 한구석에 차갑게 떠올랐다.

[수동 바이패스 밸브의 물리적 손상률은 94.2%. 현재 시스템의 원격 오버라이드로는 기계적 기어의 뒤틀림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100%의 확률로 엔진 내폭이 발생합니다. 생존 확률을 가중하기 위해, 즉시 제4구역을 영구 격리하고 인근 거주 구역의 공기를 차단해 냉각 가스로 전용하는 안을 제안합니다.]

"닥쳐, 레이첼."

태오는 인터페이스 단자를 다시 목 뒤의 신경 커넥터에 찔러 넣었다.

"으아아악!"

가시 돋친 구리선이 뇌수를 뚫고 들어오는 듯한 가혹한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온 전류가 뇌세포를 하얗게 태우기 시작했다. 신경 동기화, 에고 싱크(Ego-Sync).

태오의 시야에 아크 헤븐의 복잡한 배관망이 3차원 벡터 선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그 선들의 끝부분은 거무스름한 노이즈로 오염되어 있었다. 뇌세포의 괴사. 신경 동기화가 지속될 때마다 그의 뇌에 각인되어 있던 소중한 기억들이 하나씩 휘발되어 갔다.

지구의 소나무 향기,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 비가 내린 뒤의 흙내음... 그 모든 것들이 고열에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빠르게 사라져 갔다. 태오는 이빨을 악물었다. 기억의 소실보다 무서운 것은, 지금 눈앞에 있는 살아 숨 쉬는 인류의 마지막 불씨가 꺼지는 것이다.

"설하야, 비상 해치 열어."

태오가 방열 장갑을 낀 손으로 지렛대를 꽉 쥐었다.

"태오야, 제발..."

설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뺨을 타고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태오의 눈빛에서 단단한 유리를 보았다. 결코 깨뜨릴 수 없는, 극도로 굳건한 광집(狂執).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제어반의 수동 격리 밸브 해제 레버를 당겼다.

치이이이익-!

두꺼운 납 격벽 문이 열리자마자, 지옥의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백색의 고열 증기와 방사성 먼지가 통로를 덮쳤다. 열 감지 센서가 비명을 지르며 경고음을 울렸지만, 태오에게는 이미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이명만이 뇌리를 찢고 있을 뿐이었다.

태오는 가차 없이 방사능 가스가 가득 찬 메인 챔버 안으로 몸을 던졌다.

온몸의 피부가 방열 슈트 너머로 전해지는 열기에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공기는 필터를 거쳤음에도 금속성 비린내와 고열로 가득 차 있었다.

"레이첼... 신경 동기율을 180%까지 끌어올려."

[경고. 동기율이 안전 한계치를 초과합니다. 측두엽의 영구적인 기능 손상 및 청각 신경의 물리적 파열이 진행됩니다.]

"하라고!"

태오가 소리쳤다. 그의 목에서 핏줄이 붉게 솟구쳤다.

쿠웅!

시각 정보가 극대화되며, 뒤틀린 바이패스 레버의 내부 구조가 투시되듯 뇌리에 직접 박혀 들어왔다. 괴수의 촉수 잔해가 짓누르고 있는 기어 박스는 이미 고열로 인해 하우징이 찌그러져 구동 기어를 꽉 물고 있었다. 이대로 지렛대를 당기면 기어 이빨이 부러져 영원히 밸브를 열 수 없게 된다.

오조작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태오는 7화에서 확인했던 구형 도면의 허점을 떠올렸다. 이 4구역 밸브는 압축 가스를 우회시킬 수 있는 보조 압력 릴리프 배관이 측면에 숨겨져 있었다. 다만 설계 결함으로 인해 정방향이 아닌, 역방향으로 기어를 세 칸 강제로 회전시켜야만 보조 바이패스가 열리는 구조였다.

"뜨거워..."

태오의 방열 장갑 표면이 고열 가스에 녹아 끈적하게 변해갔다. 장갑 내부의 손바닥 피부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는 감각이 신경망을 타고 직접 전달되었다.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지렛대를 뒤틀린 기어 틈새에 쑤셔 넣었다.

"으으으읍!"

몸무게를 실어 지렛대를 체중으로 눌렀다. 찌그러진 하우징과 괴수의 탄화된 촉수 가죽이 짓겨지며 삐걱거리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스르륵, 콰직!

첫 번째 기어 이빨이 어긋나며 맞물렸다.

[2차 플라즈마 서지 노출까지 남은 시간 2분 15초. 반응로 압력 임계치 98% 돌파.]

뇌 속에서 레이첼의 경고가 붉은색 타이머로 깜빡였다.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태오의 머릿속에서 시계 태엽이 감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두 번째 기어를 돌려야 한다. 하지만 지렛대의 끝이 휘어지며 미끄러졌다. 철수(鐵手)와도 같은 고집으로, 태오는 방열 장갑이 녹아내려 맨손의 살점이 드러나는 것조차 무시한 채 밸브의 고정식 기어 나사를 직접 손으로 움켜쥐었다.

치이이익!

살점이 고열의 금속 표면에 달라붙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챔버 안에 진동했다. 지독한 고통이 뇌를 강타했으나, 태오는 오히려 에고 싱크의 동기율을 더 높여 그 고통을 기계적인 연산 신호로 치환해 버렸다. 고통을 물리적 토크(Torque)로 전환하는 기괴한 정신적 연금술이었다.

"돌아가... 돌아가라고!"

그의 손가락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세 번째 변칙 기어 나사가 극적으로 회전했다.

쿵!

구동 축이 역방향으로 완전히 회전하며, 찌그러진 바이패스 밸브의 보조 해치가 마침내 열렸다.

쿠우우우우웅-!

엄청난 압력으로 갇혀 있던 고온의 청색 플라즈마 가스가 바이패스 배관을 타고 외부 우주로 폭발하듯 방출되었다. 아크 헤븐의 거대한 선체가 가스 방출의 반동으로 가볍게 흔들렸다. 메인 엔진의 내폭 위기를 알리던 적색 경고등이 일제히 녹색의 안정 신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성공했다.

그는 해냈다. 기계공학적 법칙과 인간의 의지가 자아낸 처절한 승리였다.

그러나 그 순간, 태오의 귓가에서 우르릉거리던 모든 기계음과 가스의 굉음이 일시에 사라졌다.

아주 기묘한 현상이었다. 마치 누군가 우주선 전체의 볼륨 조절기를 끝까지 돌려 꺼버린 것처럼, 세상의 모든 소리가 단번에 말소되었다. 설하가 격리실 밖에서 미친 듯이 제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녀의 입술 모양만 보일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막이 파열되고, 청각 신경이 에고 싱크의 과부하로 인해 완전히 타버린 것이다.

세상은 완벽한, 그리고 영원한 무음(無音)의 심연 속으로 침잠했다. 태오는 그것이 자신이 치른 마지막 감각의 대가임을 깨달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희미한 왼쪽 눈의 시야뿐이었다.

비틀거리던 태오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방사능 피폭과 극심한 쇼크로 인해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맥박이 느려지고, 시야의 가장자리부터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졌다.

'여기까지인가...'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우주의 절대영도가 그의 몸을 잠식해 오는 듯했다.

그때, 거친 손길이 그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뿌연 시야 속에서 설하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녀의 오열은 더욱 처절하게 다가왔다. 설하는 다급하게 태오의 전면 방호 장갑 상단에 부착된 비상 구급 슬롯을 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아드레날린과 심폐 촉발제가 혼합된 고농축 구급 약품 앰플이었다. 설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앰플을 태오의 흉부 포트에 꽂아 넣고 플런저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콰아아아!

심장 한가운데로 차가운 얼음 송곳이 박히는 듯한 감각과 함께, 멈춰 가던 태오의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허파가 팽창하며 차가운 산소를 갈구했다. 태오는 격렬하게 기침을 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오직 가슴의 통증과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가혹한 감각만이 가득했다.

설하가 그를 꼭 껴안았다. 비록 그녀의 흐느낌은 들리지 않았지만, 태오의 가슴팍을 적시는 뜨거운 눈물과 등을 감싸 안은 손길의 떨림이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인류가 아직 멸망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태오는 설하의 어깨너머로 메인 컨트롤 룸의 전면 투사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고요한 무음 속에서, 레이첼이 투사한 실시간 외부 관측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아크 헤븐을 둘러싸고 있던 짙은 우주 먼지와 가스 행성의 잔해 너머로, 찬란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것은 태오가 잃어버린 기억 속의 그 어떤 푸른색보다도 선명하고 아름다운 빛이었다.

검은 우주의 심연 한가운데, 스스로 빛을 내뿜는 찬란한 푸른빛의 행성.

제2의 지구의 거대한 실루엣이 메인 레이더망의 정중앙에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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