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이 닫힌 지하실의 폐쇄된 공기 속으로 시안화수소 가스가 희뿌옇게 번져 나갔다. 호흡기를 자극하는 매캐한 아몬드 냄새가 바닥에서부터 빠르게 차올랐다. 은영채 경감은 허리춤에서 권총 대신 두꺼운 강철 수갑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눈빛만큼은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용의자 하강인, 살인 혐의 및 공무 방해로 긴급 체포합니다."
금속 마찰음과 함께 차가운 쇠고리가 강인의 오른손목을 파고들었다. 다른 한쪽 고리는 은영채 자신의 왼손목에 단단히 채워졌다. 수갑의 이빨이 맞물리는 기계음이 지하실의 습한 벽면에 부딪쳐 둔탁하게 울렸다.
강인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가스가 피어오르는 하수구 그릴의 틈새에 고정되어 있었다. 황산 방울이 떨어지는 간격이 미세하게 느려지고 있었다. 압력 밸브가 차단된 징후였다.
"풀어라."
강인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감정이 거세된 기계의 구동음과 같았다.
"서도현의 함정이다. 여기서 나를 묶어두는 것이 놈의 첫 번째 공식이다."
"공식 같은 소리는 법정에 가서 하십시오."
은영채는 수갑을 잡아당기며 대원들에게 손짓했다. 특수 방독면을 착용한 정예 대원들이 철문의 비상 개폐 장치를 유압 장비로 부수기 시작했다. 쇠가 짓겨 나가는 날카로운 비명이 지하실을 가득 채웠다.
강인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상 징후를 감지했다. 관자놀이 부근에서 시작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후두부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뇌세포가 괴사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신호였다. 기말 장부를 가동한 대가로 그의 뇌는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부서진 철문 틈새로 차가운 외부 공기가 밀려들었다. 은영채는 강인을 거칠게 이끌며 지상 주차장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는 강인의 발걸음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지하 주차장의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이 백색광을 깜빡이며 바닥의 기름 얼룩을 비추었다. 호송차로 지정된 검은색 카니발의 짙은 틴팅 유리에 강인의 얼굴이 투영되었다.
유리에 비친 초상은 기형적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좌우 대칭이 맞지 않는 이목구비, 초점이 풀린 눈동자,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이는 턱관절이 괴물처럼 일그러져 보였다. 강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것은 유리의 굴곡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시각 피질이 손상되어 인지 체계에 균열이 발생한 결과였다.
머릿속에서 세차게 흔들리는 기억의 파편들이 보였다. 15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복기했던 청량리 '붉은 기와집'의 서재 풍경이었다.
그 방은 세희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이었다. 서재 문을 열면 왼쪽에 짙은 갈색의 오크나무 책상이 있어야 했고, 오른쪽 벽면에는 세로로 긴 격자무늬 창문이 위치해야 했다. 그것이 강인이 기억하는 완벽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뇌리에서 재생되는 서재의 배치는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책상은 오른쪽에 놓여 있었고, 격자무늬 창문은 왼쪽 벽면에서 기괴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거울을 비춘 것처럼 좌우 구도가 완벽하게 반대로 뒤집혀 있었다.
강인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턱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기억의 왜곡이었다. 뇌세포 괴사가 그의 가장 신성한 성역마저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뒤틀린 방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강제로 고정했다. 구조가 반대라면 반대인 대로, 그 왜곡된 기하학적 수치를 통째로 암기하기로 했다. 그것이 뇌세포를 잃어가는 천재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발악이었다.
"비켜! 이 썩을 놈들아, 비키라고!"
주차장 입구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익숙하고 거친 목소리였다.
마광두가 가죽 재킷을 펄럭이며 대원들의 저지선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입에는 불이 붙지 않은 장방형의 담배가 비스듬히 물려 있었다. 수사관 두 명이 그의 양팔을 붙잡았으나, 마광두는 멧돼지처럼 몸을 흔들며 은영채를 향해 침을 뱉듯 말을 뱉었다.
"이봐, 은 경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년이 어디서 전직 자문위원을 쇠고랑 채워 끌고 가냐? 내 퇴직금 쪼개서 산 주식 다 날려 먹을 일 있어? 이 인간 대가리 터지기 전에 혐의점부터 확실히 밝혀야 할 거 아냐!"
"경찰 수사 방해로 같이 구금되기 전에 물러서십시오, 마 형사님."
은영채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마광두는 씩씩거리며 강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찌든 담배 냄새와 싸구려 스킨 향이 훅 끼쳤다. 대원들이 마광두의 어깨를 밀쳐내며 강인과의 거리를 벌리려던 찰나였다.
"야, 강인아.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이 짭새 년한테 꼬투리 잡히면 뼈도 못 추려."
마광두가 강인의 어깨를 강하게 부딪치며 지나쳤다. 그 짧은 접촉의 순간, 강인의 코트 오른쪽 주머니로 묵직하고 거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손목이 묶인 상태였기에 강인은 손가락 끝만 움직여 주머니 내부를 탐색했다. 거친 종이 질감의 쪽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마광두가 이전에 건넸던 한세희의 유품, 녹슨 태엽식 회중시계가 만져졌다.
시계의 예리한 금속 가장자리를 만지던 강인의 손끝에 미세한 이물질이 걸렸다. 단순한 태엽의 마모로 인한 걸림이 아니었다. 무브먼트 틈새에 완벽하게 고정된, 아주 얇고 딱딱한 사각형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마이크로 SD 카드의 물리적 규격과 정확히 일치하는 감각이었다.
강인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손가락을 거두었다.
마광두는 대원들의 손에 이끌려 주차장 밖으로 쫓겨나면서도 악을 썼다.
"은 경감!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라! 내 주식 폭락하면 네 년 집 안방까지 쫓아갈 거니까!"
호송차의 슬라이딩 도어가 무겁게 닫혔다. 내부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차량은 지하 주차장의 경사로를 따라 지상으로 빠져나갔다.
강인은 차창 밖을 보지 않았다. 대신 감은 눈 밑에서 신경망을 바쁘게 움직였다.
차체가 흔들리는 각도와 타이어가 지면을 긁는 소리가 귀를 통해 뇌의 시뮬레이터로 입력되었다.
쿵.
첫 번째 충격음. 노면의 요철 간격 1.2미터. 차체의 상하 진동 폭 15밀리미터. 타이어와 아스팔트의 마찰음 주파수 14.2헤르츠.
"방금 통과한 구간은 마포대교 진입로가 아니다."
강인이 한쪽 눈만 살짝 뜬 채 맞은편의 은영채를 응시했다. 은영채는 서류 봉투를 뒤적이던 손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시속 60킬로미터로 주행할 때 발생하는 타이어 진동이다. 마포대교 북단 아스팔트는 지난달 배수성 포장 공사를 마쳤기에 이 정도의 저주파 진동이 발생할 수 없다. 여기는 서강대교 남단 진입로다."
은영채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그리고 뒤를 따르는 차량은 세 대."
강인의 목소리는 기하학적 공식을 읊는 것처럼 막힘이 없었다.
"좌회전 시 발생하는 원심력의 변화율로 볼 때, 후방 20미터 간격을 유지하는 검은색 카니발 두 대와 은색 소나타 한 대가 우리를 호위하고 있다. 광역수사대 3팀의 지원 차량이군. 은 경감, 나를 본서 취조실로 바로 데려갈 생각이 없었던 거군."
은영채는 서류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예리하군, 하 교수."
"나를 미끼로 던져 서도현을 유인하려는 함정 수사 계획이겠지. 하지만 틀렸다. 놈은 이런 조잡한 배치에 걸려들 만큼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놈이 설계한 궤도 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강인의 냉소적인 폭로에 은영채의 입술이 일자로 다물어졌다. 그녀는 강인의 가공할 만한 인지력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으나, 겉으로는 단호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서도현이 궤도를 설계했다면, 우리는 그 궤도 자체를 부수면 됩니다. 하 교수는 닥치고 우리가 제공하는 안전가옥이자 취조실에서 대기나 하십시오."
차량은 강인의 예측대로 서강대교를 건너 마포의 한 한적한 보조 빌딩 지하로 진입했다. 광역수사대가 임시로 사용하는 보안 취조실이 있는 곳이었다.
차량이 멈추고 문이 열렸다. 강인은 은영채의 손에 이끌려 차에서 내렸다.
그는 연행되는 짧은 순간, 코트 주머니 속에서 꺼낸 마광두의 쪽지를 손바닥 안에서 은밀하게 펼쳤다. 손바닥의 땀에 젖은 종이에는 날카로운 필체로 위도와 경도 좌표가 적혀 있었다.
강인은 수치들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환산했다.
그 좌표가 가리키는 위치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로 지금 자신들이 들어서고 있는 광역수사대 임시 취조실 건물 바로 건너편, 버려진 상가 건물의 3층 내부였다.
서도현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취조실 내부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사방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일방향 투명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다. 거울 너머의 관찰실은 어두컴컴했다.
은영채는 강인의 수갑을 풀고 철제 의자에 앉혔다.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십시오. 조사가 시작될 때까지."
그녀는 차가운 경고를 남긴 채 취조실 문을 닫고 나갔다. 철문이 맞물리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정적이 방 안을 지배했다.
강인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압수 절차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전원이 켜진 상태로 방치된 기기였다.
징.
짧은 진동음이 적막을 깨뜨렸다. 액정 화면 위로 발신자 제한 번호의 문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인은 손가락을 뻗어 화면을 밀었다.
[스승님, 바로 옆방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 알리바이를 깨보시겠습니까?]
강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취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의 차가운 표면에 닿았다. 거울 너머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정돈된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강인은 철제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금속 의자 다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그는 한 걸음씩 움직여 일방향 투명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오른손을 뻗어 차가운 유리 표면에 손바닥을 밀착시켰다.
유리의 감촉은 차가웠다. 하지만 지상에서 정확히 174센티미터 높이의 지점에 미세한 타원형의 유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인간의 이마가 닿았다가 떨어진 자국이었다.
강인은 고개를 숙여 거울 표면에 코를 가져다댔다. 유분 흔적에서 미세한 라벤더 향과 금속성 아연 냄새가 풍겼다. 그것은 서도현이 보냈던 모방 살인 예고장에 묻어 있던 화학적 잔류물과 일치했다.
철문이 열렸다. 은영채가 푸른색 서류철을 손에 쥔 채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가죽 구두 굽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건조한 소리를 냈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 교수."
"이 유리를 봐라."
강인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검지손가락으로 거울 위의 얼룩을 가리켰다.
"지방산의 산화 점도로 볼 때, 부착된 지 3분이 경과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이 유리에 얼굴을 대고 이쪽을 관찰했다."
은영채의 미간에 얇은 주름이 잡혔다. 그녀는 강인의 옆으로 다가와 유리 표면의 얼룩을 응시했다.
"거울 뒤는 폐쇄된 관찰실입니다. 열쇠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확인해라."
강인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은영채는 허리춤의 무전기를 꺼내 송신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엄지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통제실, C동 지하 관찰실 내부 인원 확인 바람."
무전기 너머로 지직거리는 정전기 음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이윽고 경비 대원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C동 관찰실은 현재 잠금 상태입니다. 경보 장치도 정상 작동 중입니다."
은영채는 무전기를 내려놓고 강인을 쏘아보았다.
"보안 구역입니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없습니다."
강인은 대답 대신 테이블 위의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액정 화면에는 방금 수신된 서도현의 문자 메시지가 그대로 떠 있었다. 은영채의 시선이 화면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고양이처럼 가늘게 수축했다.
"이건..."
"서도현의 발신 번호다."
강인은 다시 철제 의자에 앉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스마트폰과 볼펜, 그리고 자신의 지갑을 자를 댄 듯 정확히 평행하게 늘어놓았다. 간격을 맞추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놈은 이 건물의 내부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다."
그때 취조실의 두꺼운 철문이 다시 한번 거칠게 열렸다.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중년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광역수사대장 박강식이었다. 그의 붉게 상기된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은 경감, 수사 중단해."
박강식은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철제 테이블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화면 속에서는 화려한 조명 아래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대기업 자선 행사의 모습이 송출되고 있었다.
"서도현은 지금 신라호텔 영빈관에 있다. 대기업 임원들과 서울시장, 그리고 우리 청장님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야. 지상파 뉴스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는 화면이다."
화면 속의 서도현은 맞춤 제작된 턱시도를 입고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청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화면 우측 하단의 디지털시계는 현재 시각을 초 단위까지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이게 네가 말한 그 살인마의 알리바이다, 하강인."
박강식은 태블릿 화면을 굵은 손가락으로 거칠게 두드렸다.
"수백 명의 눈과 카메라가 그놈을 보고 있어. 그런데 어떻게 이 지하실 옆방에 있다는 건가? 네 망상이거나, 경찰을 조롱하기 위한 자작극이 분명해."
은영채의 시선이 태블릿 화면과 강인의 스마트폰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그녀의 호흡이 불규칙하게 가빠졌다.
강인은 화면 속 서도현의 얼굴을 응시했다.
순간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가혹한 통증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고등학교 시절 자주 가던 골목길의 풍경이 안개처럼 스러지며 영구히 소멸했다. 기말 장부의 대가는 자비가 없었다.
하지만 강인의 초점은 흐려지지 않았다. 그는 화면 속 서도현의 미세한 움직임을 법의학적 시선으로 해체했다.
"가짜다."
강인의 건조한 음성이 취조실의 냉기를 깨뜨렸다.
"뭐라고?"
박강식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생중계 화면 속 서도현의 후두개 움직임과 턱관절의 수축 타이밍에 0.03초의 지연이 발생한다. 프레임 레이트를 인위적으로 보정한 흔적이다. 저것은 실시간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한 대역이거나, 사전에 정교하게 합성된 녹화본이다."
"헛소리 마라! 현장에서 청장님이 직접 살을 맞대고 악수를 나눴어!"
"청장 역시 속았거나, 아니면 그 대가로 놈의 유치한 연극에 동조하고 있는 거겠지."
취조실 내부의 공기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은영채의 손이 허리춤의 권총 가죽 홀스터로 향했다가 멈추었다.
"하 교수, 그 발언은 사법 협조자로서의 선을 넘은 겁니다."
"수식의 오류는 언제나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조건에서 발생한다."
강인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 상단의 수신 감도 표시기를 은영채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 건물의 지하 기지국 주파수는 2.1기가헤르츠 대역이다. 하지만 방금 수신된 문자의 데이터 패킷 도달 시간은 0.01초 미만이다. 이것은 외부 기지국을 거치지 않고, 반경 10미터 이내의 로컬 송신기에서 직접 발신된 신호다."
강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도현은 지금 신라호텔에 없다. 놈은 이 건물 지하의 공조실 배관 내부, 혹은 폐쇄된 인접 구역에 숨어 있다. 그곳에서 우리의 무선 주파수를 가로채고 있는 거다."
지지직.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거친 피드백 소음이 고막을 찔렀다.
동시에 테이블 위의 태블릿 PC 화면이 검게 변하더니, 파란색 텍스트 터미널 창이 활성화되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흰색 글자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스승님의 프로파일링 십계명 제3조: '범인은 수사관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가장 가까운 안전지대에서 수사 상황을 관찰한다.']
글자들이 순간적으로 지워지고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정답입니다. 저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스승님의 뇌세포가 파괴되는 과정을 즐겁게 지켜보는 중입니다.]
스피커의 잡음 너머로 정돈된 사내의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자, 선택할 시간입니다. 선생님.
철컥.
취조실의 두꺼운 철문이 기계음과 함께 외부에서 완전히 잠겼다. 붉은색 비상 탈출 표시등이 깜빡이며 꺼졌다.
- 이 건물의 공조 장치 밸브를 개방했습니다. 유입되는 가스는 시안화수소입니다. 남은 산소량은 정확히 90초 분량입니다. 저를 잡기 위해 알리바이를 깨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밀실에서 질식해 죽겠습니까?
천장의 환기구 그릴 틈새로 미세한 백색 가스가 번지기 시작했다. 특유의 시큼한 아몬드 냄새가 차가운 취조실 내부로 빠르게 가라앉았다.
강인은 오른손을 가만히 코트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손가락 끝에 마광두가 건넸던 녹슨 태엽식 회중시계가 만져졌다. 시계태엽 틈새에 단단히 끼어 있는 마이크로 SD 카드의 차가운 질감이 그의 지문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