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임창수의 눈동자가 완전히 뒤집히며 백색 공막만 남았다. 검은 피가 섞인 가래가 그의 잘려 나간 호흡기 사이로 끓어올랐다. 그의 손가락 끝이 강인의 코트 깃을 꽉 움켜쥐었다가 이내 힘없이 미끄러졌다. 툭, 하고 바닥에 부딪힌 그의 손가락 끝은 이미 보랏빛으로 변색하기 시작했다.

지하실 안의 공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웅덩이처럼 고인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불규칙했다. 일정한 초침 소리가 아니었다. 천장 부근에 매달린 파이프에서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낙하 주기 1.2초. 점도는 물보다 높았다.

"야, 이 새끼 숨 넘어갔다."

마광두가 임창수의 목덜미에서 손을 떼며 나직하게 뱉었다. 그의 손바닥에 끈적한 인공 혈액과 타액이 묻어 있었다. 마광두는 그것을 자신의 청바지 허벅지 춤에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았다.

강인은 무릎을 꿇었다. 바닥의 시멘트 가루가 바지 무릎을 하얗게 오염시켰다. 그는 임창수의 벌어진 입술 틈새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식도 안쪽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시안화수소의 독특한 아몬드 냄새가 비강을 찔렀다.

"치사량 주입 후 사망까지 걸린 시간 42초."

강인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 오른손에 끼었다.

"학자 놈이 이 새끼 위장에 미리 지연성 캡슐을 심어둔 거다. 우리가 도달하는 순간 터지도록."

"시체 치우는 건 광수대 몫이고, 우린 빠져야 해. 타이머 소리가 기분 나쁘게 커진다."

마광두가 강인의 깃덜미를 붙잡아 당겼다.

강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임창수의 셔츠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낡은 수첩과 손목의 쓸린 자국에 고정되어 있었다. 범인의 흔적은 아직 식지 않았다. 피해자의 체온이 36.5도에서 하강하는 지금 이 순간이 기말 장부를 가동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강인은 왼손을 뻗어 자신의 코트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있었다. 마광두가 건네주었던 한세희의 유품, 녹슨 태엽식 회중시계였다. 내부의 무브먼트가 뻑뻑하게 걸려 작동하지 않는 그 고장 난 시계 안에는 마이크로 SD 카드가 숨겨져 있었다. 아직 열어보지 못한 15년 전의 진실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강인은 시계를 꽉 쥐었다가 이내 손을 놓았다. 지금은 뇌세포를 아껴야 할 때가 아니었다.

강인은 장갑을 벗었다. 맨손으로 임창수의 아직 온기가 남은 목덜미, 그 보랏빛 반점이 피어오르는 피부를 움켜쥐었다.

"강인아, 너 또 그 짓거리 하려고 그러지."

마광두의 목소리에 서늘한 경고가 실렸다.

강인은 대답하는 대신 눈을 감았다.

뇌 내부의 신경망이 일제히 요동쳤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전기 신호가 폭발하듯 번져나갔다. 이마의 측두엽 부근에서 찌르는 듯한 극통이 시작되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이명처럼 귓가를 때렸다.

오감이 일시에 차단되었다. 암전된 시야 너머로 푸른색의 숫자 체계가 가상공간을 그리며 솟구쳤다.

[범죄 흔적 기말 장부 가동.] [대상: 임창수 (남, 34세)] [동기화율: 87.4%] [사망 직전 10분의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시계의 초침이 거꾸로 돌았다.

어둠 속에서 강인의 시야가 임창수의 시야로 대체되었다. 식도가 타들어 가는 고통이 실시간으로 강인의 신경계를 난도질했다.

위장 내 산성 농도: pH 1.2. 인공적으로 합성된 황산과 시안화칼륨이 위벽을 녹이며 가스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강인은 가상의 공간에서 신음했다. 목구멍이 막히고 폐가 굳어가는 감각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하지만 그는 고통에 함몰되지 않았다. 정량화된 수치들을 하나씩 뜯어보았다.

임창수의 위장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의 소리가 뇌 속에서 음향 그래프로 시각화되었다. 치직거리는 기포 소리, 위벽이 부식되는 파열음. 그것은 단순한 부패음이 아니었다. 서도현이 설계한 독극물의 화학적 배합 비율이었다.

'서도현은 완벽한 무흔적 독살을 노렸다.'

그러나 강인의 시뮬레이터는 법의학적 한계를 넘어섰다. 위장 내 강산성 농도의 미세한 진동 주파수를 분석하자, 임창수가 사망하기 5분 전 마셨던 음료의 성분이 도출되었다.

[성분 분석: 메탄올 12%, 에틸렌글리콜 4%, 그리고 아주 미세한 합성고무 산화 방지제 성분.]

합성고무 산화 방지제는 일반적인 음료에 들어갈 수 없는 물질이었다. 그것은 타이어 공장이나 정비소에서 흔히 쓰이는 공업용 세척제에 혼입되는 성분이었다.

'학자는 임창수를 정비소 혹은 차량 내부에서 만났다.'

강인은 임창수의 마지막 동선을 역추적했다. 임창수의 망막에 남아 있던 마지막 잔상이 번쩍였다. 흐릿한 계기판의 불빛과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도로. 그리고 차량 내부의 독특한 주파수 소음이 고막을 두드렸다.

차량의 내장 내비게이션 라디오 주파수가 고정되어 있었다.

[주파수 대역: 102.3MHz]

그것은 일반 방송 주파수가 아니었다. 난수 방송이나 사설 포럼에서 사용하는 암호화된 오프라인 무선 대역이었다.

그 순간, 강인의 머릿속에서 강렬한 불꽃이 튀었다.

이전에 다크웹 캡처 이미지 내의 '백색 서재' 표식에서 발견했던 정체불명의 난수배열 '0412'가 뇌리를 스쳤다. 당시에는 단순한 날짜나 암호 코드인 줄 알았던 그 네 자리 숫자가, 이 주파수 대역과 결합하는 순간 하나의 수식으로 완성되었다.

0412는 주파수 102.3MHz의 서브 캐리어 신호를 변조하는 디코딩 키였다.

'찾았다.'

서도현이 이 신호 대역을 통해 '백색 서재'의 추종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살인 교본을 송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창수의 스마트폰에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그의 뇌 속 청각 피질에는 102.3MHz의 잔향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강인은 그 주파수의 고유 변조 파형을 자신의 뇌세포에 강제로 때려 박았다.

머리가 쪼개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시뮬레이션의 한계 시간이 임박했다.

[뇌 동조율 급증. 측두엽 손상률 14% 돌파.] [경고: 영구적 기억 손실이 발생합니다.]

강인의 의식 속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을날의 낙엽처럼 바스라지는 기억 조각들이었다.

처음으로 경찰 제복을 입었던 날의 기억이 흐려졌다. 거울을 보며 빳빳한 옷깃을 매만지던 자신의 손길,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신념을 다지며 스스로에게 했던 맹세,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거창하고 숭고했던 최초의 사명감들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왜 경찰이 되었는지, 왜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지, 그 본질적인 온기가 강인의 가슴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갔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대상의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차가운 사냥꾼의 본능과 기계적인 계산식뿐이었다.

"아..."

강인은 가상의 공간에서 신음을 내뱉었다. 사명감이 사라진 자리에 시린 허무가 들어찼다.

현실로 돌아온 강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왼쪽 콧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마에서도 식은땀과 섞인 피가 눈매를 따라 뺨으로 번졌다.

"강인아!"

마광두가 강인의 어깨를 세게 흔들었다.

강인은 마광두의 손을 차갑게 쳐냈다. 그의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은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철저히 규격화된 살인 기계의 눈이었다.

"주파수 102.3메가헤르츠."

강인은 피가 묻은 입술을 움직였다.

"그리고 차량 타이어 성분. 금호 타이어 엑스타 시리즈, 마모도 60% 이상. 차량 내부에는 공업용 에틸렌글리콜 냄새가 났다. 서도현의 이동 수단이다."

마광두는 강인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평소처럼 낄낄거리며 던지던 조롱 섞인 농담이 그의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마광두의 거친 손이 강인의 어깨 위에 무겁게 얹어졌다.

"너, 또 뭘 지운 거냐."

"알 필요 없다."

강인은 셔츠 소매로 콧피를 닦아냈다.

"이제 정의 같은 건 상관없어. 놈을 죽여서 이 판을 끝내면 그만이다."

"말하는 뽄새가 아주 괴물이 다 됐네."

마광두가 혀를 찼지만, 그의 눈빛에는 짙은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때였다. 지하실 입구 쪽의 낡은 철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열렸다.

쿵!

먼지 구덩이 사이로 강한 서치라이트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여러 명의 무거운 군화 발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울렸다.

"꼼짝 마! 경찰이다! 손 머리 위로 올려!"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장전된 총구들이 강인과 마광두를 향해 조준되었다. 전술 조끼를 입은 광역수사대 대원들이 순식간에 지하실 내부를 포위했다.

그들 사이로 낯익은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서늘한 눈매를 가진 여자, 은영채 경감이었다.

은영채는 바닥에 누워 있는 임창수의 시체와 그의 목덜미를 쥐고 있던 강인의 피 묻은 손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강인 경정님."

은영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현장 무단 침입에, 용의자 사망이라뇨. 더는 묵과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허리춤에서 은색 수갑을 꺼내 들었다. 금속이 부딪히는 찰칵 소리가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용의자 하강인, 살인 혐의 및 공무 방해로 긴급 체포합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강인의 왼쪽 손목을 파고들었다. 은영채는 주저 없이 수갑의 반대쪽 고리를 자신의 손목에 채웠다.

"이거 놔."

강인은 움직이지 않은 채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그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임창수의 시체 너머, 어두운 구석에 방치된 녹슨 하수구였다.

"서에 가서 말씀하시죠."

은영채가 수갑을 잡아당겼다. 강인의 몸이 앞으로 미세하게 기울었다가 이내 중심을 잡았다.

"야, 은영채! 장난 똥 때리지 말고 내 말 들어!"

마광두가 앞을 가로막으려 하자, 진압 방패를 든 대원 둘이 그의 가슴을 압박하며 밀어냈다. 금속 방패가 부딪히는 둔탁한 마찰음이 지하실을 울렸다.

"마 형사님, 공무집행 방해로 같이 넣기 전에 가만히 계세요."

은영채의 시선은 강인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썹을 타고 내려와 턱끝에서 툭 떨어졌다.

"똑."

강인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했습니까?"

"똑, 똑, 똑."

강인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응시했다. 천장 파이프에서 떨어지는 액체는 하수구 그릴 안쪽의 정체불명의 플라스틱 용기로 정확히 떨어지고 있었다.

"황산의 낙하 속도가 빨라졌다. 분당 120방울."

강인의 건조한 목소리가 지하실의 습한 공기 사이로 퍼졌다.

"그릴 밑에 깔린 건 시안화칼륨 결정이다. 황산과 반응하면 시안화수소 가스가 발생하지."

대원 중 한 명이 무전기를 켜려 했다. 하지만 치직거리는 잡음만 새어 나올 뿐, 본서와의 연결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은 경감, 냄새 안 나나?"

마광두가 코를 킁킁거리며 방패 뒤에서 소리쳤다.

"아몬드 냄새. 씹할, 이거 독가스잖아!"

하수구 그릴 틈새로 미세한 백색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기는 바닥을 기며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대피해! 전원 방독면 착용하고 퇴로를 확보..."

은영채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지하실 입구의 철문이 거친 기계음과 함께 닫혔다.

쾅!

두꺼운 철판이 프레임에 맞물리며 전자식 잠금장치가 세 번 연속으로 걸리는 소리가 울렸다.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동시에 은영채의 어깨에 매달린 무전기 데시벨 메터가 요동쳤다. 경찰 주파수가 아닌, 강인이 방금 뇌리에 각인했던 102.3MHz의 신호 대역이 무전기의 수신 채널을 강제로 잠식했다.

잡음이 걷히고, 정돈된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스승님.

서도현의 목소리였다. 라디오 드라마를 낭독하듯 부드럽고 맑은 음색이 무전기 스피커를 통해 지하실 사방으로 체계적으로 울려 퍼졌다.

- 공식의 답을 맞히셨군요. 하지만 제 제자 임창수는 오답을 냈습니다. 오답을 제출한 교실에는 벌이 내려져야 합니다.

지하실 구석의 하수구에서 백색 가스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원 하나가 기침을 터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열쇠."

강인이 수갑으로 연결된 은영채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죽음의 공포도, 당혹감도 없었다. 오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기계적인 연산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수갑 열쇠 내놔. 죽고 싶지 않으면."

은영채의 동공이 가스의 독성에 반응해 급격히 수축했다. 그녀의 손이 허리춤의 열쇠 파우치로 향했으나,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은 지퍼조차 제대로 열지 못했다.

무전기 너머의 서도현이 나직하게 웃었다.

- 스승님의 마지막 무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남은 시간은 180초입니다.

백색 가스가 강인의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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