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이 찾아온 지 정확히 마흔다섯 분 뒤, 일산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천장의 백색 형광등이 일정한 주기로 미세하게 떨리며 안구를 자극했다.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와 수액의 차가운 감각이 왼쪽 손등을 타고 올라왔다. 빗소리는 병실 창문을 두꺼운 장벽 너머로 두드리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감각은 두개골 안쪽에 뜨거운 모래를 채워 넣은 것 같았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액정 화면에 뜬 것은 포털 사이트의 긴급 속보였다.
[경기 파주 광탄면 기산저수지, 신원 미상의 50대 남성 사체 인양. 시신 훼손 흔적 발견.]
동시에 메일 수신 알림음이 울렸다. 발신인은 공백이었다.
'스승님의 십계명 중 제2조를 어떻게 파괴해 드릴까요.'
송신 시간은 정확히 삼십 분 전이었다.
하강인이 정립한 프로파일링 십계명 제2조. '면식범의 가석방 살인은 반드시 피해자의 주거지 반경 2킬로미터 이내에서 발생하며, 침입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학자는 그 규칙을 정면으로 조롱하고 있었다. 저수지라는 개방된 공간, 그리고 신원 미상의 사체. 면식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무대 장치였다.
왼쪽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을 거칠게 뽑아냈다. 투명한 수액 튜브 끝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침대 시트를 적셨다. 알코올 솜으로 누를 시간 따위는 없었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구두를 찾아 발을 밀어 넣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병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마광두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낡은 종이컵에 담긴 맥심 커피가 들려 있었다. 광두는 피로 물드는 침대 시트와 강인의 맨발을 번갈아 보더니 커피를 바닥에 뱉듯 내려놓았다.
"죽으려면 조용히 약 먹고 죽지, 왜 병원 기물까지 더럽히고 지랄이냐."
"비켜."
강인은 휠체어 손잡이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꺾이며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찰나, 광두의 억센 손귀가 강인의 셔츠 깃을 낚아챘다. 젖은 가죽 냄새와 담배 찌든 내가 코를 찔렀다.
"놓아."
"놓으면 뒤질 놈이 입만 살았네."
광두는 강인의 뒷덜미를 움켜쥔 채 침대로 가볍게 밀쳐냈다. 그의 눈동자는 장난기가 사라진 채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세희 묘비 앞에서 쪽팔리게 하지 마라. 내 손으로 네 시체 치우는 일은 사양이니까."
"그놈이 움직였다."
강인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액정을 광두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속보 기사와 메일 화면이 번갈아 깜빡였다. 광두의 시선이 메일의 붉은 글씨에 머물렀다. 그의 턱관절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기산저수지다."
강인은 침대 옆에 정렬해 둔 안경과 지갑을 차례로 챙겼다. 세 번씩 위치를 맞추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광두는 주머니에서 구형 패스파인더의 차 키를 꺼내 손가락 끝으로 돌렸다.
"뒤지더라도 내 조수석에서 뒤져라. 기름값은 네가 내고."
광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강인은 벽을 짚으며 그의 뒤를 쫓았다.
구형 패스파인더의 조수석은 낡은 가죽 시트가 터져 스펀지가 드러나 있었다. 차 안은 온통 눅눅한 습기와 광두가 피워댄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엔진이 걸리자 차체가 덜덜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와이퍼가 앞유리를 긁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치익, 척. 치익, 척.
강인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강하게 눌렀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뜯겨 나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뇌세포의 소멸 단계였다.
갑작스러운 공포가 척수를 타고 흘러내렸다.
세희와 함께 대학가 골목을 걸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의 가사가 기억나지 않았다. 멜로디는 귓가에 맴도는데, 가사의 첫 줄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의 서재에서 책 한 권이 통째로 불타 사라진 기분이었다.
"가사가……."
"뭐라고 중얼거리냐, 대가리 덜 깨진 새끼처럼."
광두가 룸미러로 강인을 흘겨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강인은 손가락을 세 번 튕겼다. 딱, 딱, 딱. 사라진 단어를 채우려는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머릿속의 기말 장부가 무겁게 출렁이고 있었다. 대가는 이미 지불되기 시작했다.
차량은 서울 외곽의 어두운 도로를 빠르게 달려 기산저수지 초입에 도착했다.
사방이 어둠에 잠긴 저수지는 폴리스라인과 경찰차의 경광등 빛으로 얼룩덜룩하게 물들어 있었다. 빗물에 젖은 흙비린내와 썩은 수풀 냄새가 차창 틈새로 밀려 들어왔다.
강인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흙탕물을 밟았다. 다리가 휘청였지만 광두가 어깨를 지탱해 주었다.
저수지 제방 아래, 가마니로 덮인 형체가 놓여 있었다. 그 주변을 과학수사대 요원들과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은영채 경감이었다. 그녀는 타이트한 가죽 재킷을 입고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여기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입니다. 당장 나가세요."
은영채가 강인을 발견하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녀의 시선은 강인의 젖은 환자복 바지와 흙투성이가 된 구두에 머물렀다.
"하강인 씨, 은퇴하셨으면 집에서 쉬시죠. 여긴 당신 놀이터가 아닙니다."
강인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은영채가 팔을 뻗어 막아섰으나, 광두가 자연스럽게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에이, 은 경감. 우리끼리 왜 이래? 전직 스승님 모시고 산책 좀 나온 건데."
"마 형사님, 퇴직하셨으면 품위 유지나 하세요. 현장 훼손하면 공무집행방해로 입건합니다."
은영채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강인은 가마니 틈새로 드러난 사체의 손을 응시했다. 남성의 손가락 끝은 물에 불어 하얗게 짓무르고 있었으나, 손톱 밑에 검은색 이물질이 끼어 있었다.
"피해자 신원은?"
강인이 물었다.
"확인 안 됐습니다. 소지품도 없고, 면식 관계를 추정할 만한 단서도 전혀 없습니다. 전형적인 외지인 투기 혹은 무동기 범죄입니다. 당신이 주장하던 '면식범의 가석방 살인' 공식은 여기에 대입 안 됩니다."
은영채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강인은 사체의 주머니를 눈여겨보았다. 외투 안쪽 주머니가 젖은 채로 약간 부풀어 있었다.
"주머니 속은 확인했나."
"이미 다 수색했습니다. 젖은 종이 쪼가리 몇 개와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이 전부였습니다. 의미 없는 잡화입니다."
강인은 무릎을 꿇었다. 진흙이 환자복 바지를 적셨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는 과학수사대 요원의 손에서 라텍스 장갑을 빼앗듯 가로채 꼈다.
"비켜 봐."
"하강인 씨!"
은영채가 소리쳤으나 강인은 이미 피해자의 외투 주머니에서 지폐 세 장을 꺼내 들고 있었다. 젖어서 서로 달라붙은 천 원짜리 지폐였다.
강인은 코끝을 지폐에 가져다댔다.
비린내가 났다. 단순한 민물저수지의 물비린내가 아니었다. 염도가 높은 해수, 그리고 썩은 생선 내장의 냄새였다.
머릿속의 기말 장부가 요동치며 정량적 분석 데이터를 뇌리에 띄웠다.
[트리메틸아민(Trimethylamine) 농도: 42ppm. 염화나트륨 검출 수치: 3.2%. 수산시장 가판대의 전형적인 오염 물질.]
"피해자는 마포 농수산물 시장의 생선 가판대 상인이다."
강인의 건조한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렸다. 은영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단순한 물비린내일 수도……."
"민물에는 트리메틸아민 수치가 이 정도로 검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폐 표면을 봐."
강인은 지폐의 중간 부분을 가리켰다. 미세하게 붉은색 타액 흔적이 남아 있었다.
"타액의 아밀라아제 잔존 수치와 건조 상태를 볼 때, 사망 직전 약 두 시간 전에 묻은 것이다. 범인은 피해자와 돈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침이 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은영채는 할 말을 잃은 듯 강인을 응시했다.
"우연한 비접촉 시비가 아니다. 범인은 피해자가 매일 같은 시간에 시장 뒤편 골목으로 퇴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곳에서 대기했다. 돈을 매개로 한 접촉, 즉 면식 관계의 변형이다."
강인의 분석은 단호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은영채의 가설은 현장에서 완전히 분쇄되었다.
광두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은 경감, 우리 스승님 클래스 아직 안 죽었지? 공부 좀 더 하고 와라."
은영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강인은 지폐를 내려놓고 사체의 목덜미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시체의 차가운 피부에 닿는 순간, 머릿속의 기말 장부가 강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오감이 차단되었다.
저수지의 빗소리가 사라지고, 뇌 속의 가상 공간이 펼쳐졌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차가운 물의 압력이 온몸을 짓눌렀다.
[피해자의 사망 직전 10분 시뮬레이션 개시.] [공포도: 92.] [체온: 31.2도. 저체온증 진행 중.] [주변 소음 수치: 78데시벨. 거친 물살 소리.]
귀를 찢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해자의 청각이 복원되면서 뇌리로 직접 꽂히는 비명이었다.
"살려줘! 제발,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그것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피해자는 물속에서 누군가에게 강제로 밀려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첨벙, 첨벙. 스스로 깊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규칙적인 걸음걸이였다.
[피해자의 운동 제어 능력: 외부 약물에 의한 마비율 84%. 환각 물질 유입.]
강인은 숨이 막히는 통증을 느끼며 현실로 돌아왔다.
허파 가득 물이 들어차는 오감의 재현에 강인은 격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입가로 붉은 피가 섞인 침이 흘러내렸다.
"강인아!"
광두가 급히 강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강인은 물비린내가 진동하는 저수지 수면을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동심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검은 물결 위로, 학자의 비웃음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강인은 피 묻은 입술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에 기괴한 웃음이 번졌다.
"이 시체, 스스로 걸어 들어간 거야."
그의 건조한 목소리가 빗속으로 흩어졌다.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강인의 기괴한 미소에 고정되었다.
은영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주변에 서 있던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손에 들고 있던 랜턴을 바닥으로 내렸다. 빗방울이 가마니 위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무슨 헛소리야, 하강인."
은영채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피해자의 위장에는 다량의 물이 차 있지만, 기도와 폐포의 손상 상태는 완만하다."
강인은 가죽 장갑을 벗어 바닥에 던졌다. 그의 손등에 맺힌 핏방울이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강제로 물에 처넣어졌다면 격렬한 버둥거림이 동반된다. 비말과 기포가 폐 깊숙이 박혀 출혈을 일으켰겠지. 하지만 이 시체는 깨끗하다. 욕조에 스스로 누워 숨을 거둔 것처럼 말이다."
강인의 시선은 시체의 벌어진 입술 안쪽을 향했다.
"스콜라민 계열의 환각제다."
광두가 담배를 입에 물며 끼어들었다.
"좀비 마약이라고 불리는 그거 말이냐."
광두의 목소리는 낮고 탁했다. 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을 지닌 채 운동 능력을 통제당했다. 범인은 단 한 번의 물리적 충돌도 없이, 피해자의 발로 직접 물속 깊은 곳까지 걸어가게 만들었다. 이것이 놈이 말한 제2조의 파괴다."
침입 흔적도, 강제력의 흔적도 없는 살인. 면식범의 영역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정신적 지배였다.
그때, 제방 위쪽에서 경적 소리가 두 번 울렸다. 한 형사가 빗속을 뚫고 은영채를 향해 달려왔다.
"경감님, 저수지 진입로 측면 공터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1톤 탑차가 발견되었습니다."
형사의 이마에서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땀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은영채는 강인을 매섭게 노려본 뒤, 제방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두가 강인의 팔을 부축했다.
"갈 수 있겠냐."
"가야 한다."
강인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통증을 무시했다. 뇌세포가 괴사할 때마다 눈앞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흐려졌다. 서서히 지워지는 기억의 공백을 이성으로 메워야 했다.
공터에 주차된 흰색 탑차는 시동이 켜진 채 헤드라이트만 꺼져 있었다. 차량 적재함에는 '마포 수산'이라는 글자가 반쯤 지워진 채 인쇄되어 있었다. 은영채의 요원들이 운전석 문을 열고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대시보드 위의 GPS 콘솔이 잠겨 있습니다. 외부 입력 장치가 연결되어 있네요."
요원이 콘솔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은 일반적인 내비게이션이 아니었다. 검은 바탕 위에 백색으로 그려진 책 모양의 표식이 깜빡이고 있었다. '백색 서재'의 문양이었다. 그 아래로 네 자리 숫자를 입력하라는 텍스트 상자가 깜빡였다.
[PIN CODE REQUIRED. 잔여 횟수: 1회. 오류 시 시스템 포맷 및 내부 데이터 영구 삭제.]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강인이 차 문을 붙잡으며 경고했다.
"비켜요, 하강인 씨. 우리 사이버수사대 팀이 해독할 겁니다."
은영채가 강인의 어깨를 밀쳐내려 했다.
"시간이 없다."
강인은 주머니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액정에는 이전에 수집했던 다크웹의 패킷 로그 이미지가 띄워져 있었다. 난수 배열의 모서리에 아주 미세하게 각인되어 있던 네 자리 숫자였다.
0412.
"그 숫자가 뭔데?"
은영채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물었다. 강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젖은 손가락을 뻗어 콘솔 화면의 가상 키패드를 눌렀다.
0. 4. 1. 2.
마지막 숫자를 누르는 순간, 화면의 백색 서재 표식이 사방으로 깨어지며 붉은색 경고등처럼 변했다. 삐- 하는 날카로운 비프음이 탑차 내부를 가득 채웠다.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한 거야!"
은영채가 권총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시스템은 파괴되지 않았다. 붉은 화면은 순식간에 녹색으로 전환되며, 엑셀 파일 형식의 데이터 시트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피해자의 최근 동선과 거래처 장부, 그리고 실시간으로 조작된 GPS 경로 데이터였다.
"해독 성공이다."
광두가 혀를 내찼다. 하지만 강인의 시선은 데이터 시트의 맨 아래쪽에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단 한 줄의 붉은 텍스트가 실시간으로 타이핑되듯 나타나고 있었다.
[스승님의 프로파일링 십계명 제3조: '연쇄살인마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사체를 훼손하지 않는다. 훼손은 분노의 방증이기 때문이다.']
글자가 사라지더니, 탑차의 라디오 스피커에서 치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기계음으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제3조의 파괴를 시작합니다, 선생님.
동시에 GPS 화면의 지도가 빠르게 축소되더니, 서울 도심의 한 사거리를 붉은 점으로 표시했다. 그곳은 강인이 현직 시절 자주 방문했던 경찰청 본청 앞 사거리였다. 붉은 점 옆으로 붉은색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01:59:59]
두 시간의 제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화면 한구석에 실시간 비디오 스트리밍 창이 활성화되었다. 어두운 밀실, 쇠사슬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비쳤다. 남자의 등 뒤로 거대한 전기톱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이런 미친……."
은영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강인은 화면 속 남자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현직 경찰청 고위 간부의 신분증이었다. 학자는 다음 타깃을 경찰 내부로 정했다. 그것도 강인의 지론을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부수기 위해 사체를 산산조각 내는 퍼포먼스를 준비한 채로.
머릿속의 기말 장부가 다시 한번 요동치며 강인의 뇌세포를 갉아먹었다.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지며 강인은 탑차 문짝을 붙잡고 간신히 버턌다. 학자는 강인의 모든 과거와 지식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다음 파멸까지 남은 시간은 단 12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