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측 뇌엽 깊숙한 곳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고막을 찔렀다. 주파수가 어긋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잡음과 유사했다. 그 소음 너머로 한세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학 졸업식 날, 교정의 붉은 벽돌 앞에서 그녀가 남겼던 마지막 웃음소리였다. 목소리의 파형이 뇌리 속에서 잘게 쪼개지며 백색소음으로 변해갔다. 이내 소리는 완전히 소멸했고, 그 자리에 차가운 진공 상태의 공허가 들어찼다. 기억의 한 조각이 영구히 소실되었음을 알리는 뇌세포의 비명이었다. 강인은 주머니 속 구리 열쇠를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열쇠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손바닥 살을 파고들어 붉은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비린 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 순간, 현관 너머의 복도 바닥을 누르는 묵직한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 뚜벅.
일정한 보폭이었다. 보폭 사이의 간격은 대략 0.7미터로 추정되었다. 젖은 시멘트 바닥을 진흙 묻은 고무창이 문지르는 소리도 함께 섞여 있었다. 강인은 호흡을 멈추고 문고리를 응시했다. 문의 먼지 쌓인 표면 위로 바깥 복도의 미세한 진동이 전달되었다. 문고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삐걱거리는 경첩의 비명이 좁은 방 안의 공기를 찢었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어둠 속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들이닥쳤다.
강인은 들고 있던 메스를 어둠 속으로 치켜세우려 했다. 그러나 들이닥친 인물의 어깨에서 풍기는 익숙한 냄새가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젖은 가죽 냄새와 싸구려 담초 타르의 매캐한 향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열린 문틈으로 흘러들어와 사내의 얼굴을 비추었다. 사냥개처럼 뭉툭한 코와 거칠게 자란 희끗희끗한 구레나룻이 보였다. 전직 형사 마광두였다.
강인은 치켜들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이 한순간에 이완되었다. 그와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압력이 울컥 솟구쳤다.
"컥."
강인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바닥의 누런 장판 위로 붉은 점들이 불규칙한 원을 그리며 흩뿌려졌다. 기말 장부를 가동한 대가로 지불된 뇌세포의 괴사가 자율신경계를 뒤흔든 결과였다. 강인은 무릎을 꿇으며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 손가락 끝이 허공을 긁으며 미끄러졌다. 시야가 붉은 장막을 친 것처럼 흐려졌다.
광두는 품속에서 거친 광목 손수건을 꺼내 강인의 얼굴 앞으로 던졌다. 손수건이 바닥에 떨어지며 가벼운 먼지를 일으켰다. 광두는 구두 끝으로 피가 묻은 바닥을 툭툭 쳤다.
"이 꼬락서니로 용쓰다간 세희 면상도 기억 못 하고 뒤지겠구나."
광두의 목소리에는 동정이나 염려의 기색이 없었다. 가죽 코트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툭 던지는 그의 손길은 무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강인은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입가에 묻은 비린 즙을 닦아내는 손길이 미세하게 떨렸다.
"쓸데없는 소리."
강인은 짧게 뱉으며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흐트러진 볼펜 세 자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볼펜의 끄트머리를 정확히 맞추어 1센티미터 간격으로 평행하게 정렬했다. 흐트러진 사물을 바로잡는 강박적인 행동을 세 번 반복한 후에야 뇌 속의 이명이 차츰 가라앉았다.
광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불을 붙이지 않고 귀에 걸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거칠게 구겨진 A4 용지 한 장을 꺼내 정렬된 볼펜 옆에 던졌다.
"그 미친 학자 놈이 다크웹에 올린 홍보 글이다. 기술팀 놈들이 캡처한 걸 한 장 쌔벼왔지."
강인은 구겨진 종이를 가져와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폈다. 종이의 네 모서리를 책상의 각진 부분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매만졌다. 종이 중앙에는 '백색 서재'라는 문구와 함께 해골이 책을 갉아먹고 있는 기괴한 문양이 인쇄되어 있었다.
강인의 동공이 미세하게 축소되었다. 그의 시선은 문양이 아닌, 종이 우측 하단의 어두운 배경 구석으로 향했다. 인쇄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노이즈처럼 보이는 미세한 점들이 배열되어 있었다. 강인은 돋보기를 꺼내지 않고도 그 배열의 규칙성을 읽어냈다. 픽셀의 농도가 미세하게 다른 여덟 개의 점이었다.
"0, 4, 1, 2."
강인은 나직하게 읊조렸다. 광두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강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뭐냐, 그 숫자는. 번호판이라도 되냐?"
강인은 서랍을 열어 낡은 가죽 수첩을 꺼냈다. 만년필 촉이 종이에 닿으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수첩의 정중앙에 '0412'라는 네 자리를 정갈한 서체로 기입했다.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놈이 파놓은 다음 낙서장의 좌표다."
강인의 손끝이 수첩 표면을 쓸었다. 이 숫자는 살인마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남겨둔 가상 도메인의 고유 열쇠이자, 다음 살인 예고를 숨겨둔 밀실의 주소였다.
그때 광두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 금속성 수신기 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광역수사대 은영채 경감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기 스피커의 얇은 막을 찢고 흘러나왔다.
- 본부, 지원 바람. 다크웹 허브 서버 진입 시도 중 가상 IP 우회 장벽에 막혔다. 실시간으로 변조되는 128비트 암호 체계다. 기술팀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광두는 무전기를 꺼내 들고 혀를 찼다. 그는 무전기의 전원 스위치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영채 저 가시내는 맨날 소리만 지르다 볼일 다 보는구먼."
"끄지 마라."
강인이 광두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그의 손가락 끝은 얼음처럼 차가웠으나 아귀힘은 기묘할 정도로 강했다. 강인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구형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화면의 푸르스름한 광원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강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미끄러졌다. 타자음이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화면에는 광수대 기술팀이 헤매고 있는 다크웹 가상 도메인의 진입 장벽이 붉은색 경고창과 함께 나타나 있었다. 복잡한 난수들로 구성된 방화벽이 1초 간격으로 형태를 바꾸며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광두는 담배를 귀에서 빼내 손가락 사이로 굴렸다.
"저걸 무슨 수로 뚫냐. 국정원 놈들을 불러도 반나절은 걸릴 텐데."
강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 기말 장부가 다시 한번 요동쳤다. 조금 전 각성했던 1화 피해자의 마지막 10분의 데이터가 정량화된 수치로 뇌리에 떠올랐다.
피해자의 최종 박동수 142. 사망 직전의 공포도 수치 87. 범인이 흉기를 내리친 물리적 속도 초속 14미터.
이 수치들은 단순한 생체 정보가 아니었다. 범인인 '학자' 서도현이 피해자를 살해하며 자신의 범죄 공식에 대입했던 변수들이었다. 강인은 이 수치들을 다크웹 화면 우측 구석에서 찾아낸 난수 '0412'와 조합하기 시작했다.
142, 87, 14, 그리고 0412.
강인은 이 숫자들을 하나의 함수식으로 재구성했다. 그의 두뇌 속에서 복잡한 수식의 나열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손가락이 키보드의 엔터키를 가볍게 눌렀다.
탁.
정확히 3초가 흘렀을 때였다.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붉은색 경고창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대신 선명한 녹색의 시스템 루트 권한 획득 메시지가 화면 중앙에 떠올랐다. 서버의 허브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열린 것이었다.
동시에 광두의 무전기 너머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은영채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전해졌다.
- 어... 장벽이 해제되었습니다. 우회 포트가 통째로 열렸습니다. 기술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무슨 외부 IP가 개입한 거지?
기술팀원의 다급한 중얼거림이 무전기 배경음으로 깔렸다.
-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서버 자체의 고유 변수값을 다이렉트로 입력했습니다. 이건 범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강인은 무전기를 향해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노트북 마우스패드를 가볍게 쓸어 넘기며 차가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공식을 모르면 평생 문 앞만 두드리며 짖는 법이지."
광두는 무전기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강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여전하네. 아주 재수 없는 머리통이야."
강인은 대답 대신 모니터 화면에 집중했다. 녹색으로 빛나던 시스템 화면이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면의 픽셀들이 깨지며 지이잉 하는 고주파 소음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화면의 녹색 빛이 순식간에 가라앉더니,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강제 변환되었다.
배경음마저 완전히 차단된 정적 속에서, 화면 중앙에 하얀색 수신 알림창이 나타났다. 발송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무명(Anonymous)이라는 글자만이 회색빛으로 깜빡였다.
강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키보드를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림창 내부에서 붉은색 글자들이 한 글자씩 타자 타이핑 소리를 내며 박히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타닥.
마치 보이지 않는 유령이 강인의 눈앞에서 키보드를 누르고 있는 듯한 기괴한 소음이었다. 글자들은 피가 번지는 듯한 붉은색으로 화면을 채워나갔다.
[스승님의 십계명 중 제2조를 어떻게 파괴해 드릴까요.]
글씨의 붉은 잔상이 강인의 망막에 깊게 박혔다.
창밖에서 몰아치는 빗줄기가 유리창을 거세게 두드렸다. 깨진 틈새로 스며든 차가운 바람이 강인의 젖은 목덜미를 쓸고 지나갔다. 강인은 주머니 속 열쇠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굳어버린 손가락 끝에서 다시 한 번 미세한 통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강인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안구가 미세하게 충혈되며 시야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졌다. 뇌 속의 시뮬레이터가 강제로 구동되려는 듯 관자놀이 부근의 혈관이 굵게 튀어나왔다. 강인은 왼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꽉 움켜쥐었다. 손톱끝이 나무 표면을 파고들어 하얗게 변했다.
"제2조라."
광두가 담배를 마침내 입에 물고 성냥을 켰다. 황염이 그의 거친 얼굴을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였다가 사라졌다. 매캐한 유황 냄새가 좁은 방 안의 습기와 섞였다.
"네가 쓴 그 잘난 교과서의 두 번째 공식이 뭐였지? 내 기억이 맞다면 '범행 도구의 선택은 범인의 무의식적 결핍을 반영한다'였던가."
강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우스패드 위에서 검지손가락을 세 번 가볍게 두드렸다. 규칙적인 타격음이 마광두의 성냥 타는 소리를 덮었다.
"제2조는 '가장 완벽한 알리바이는 피해자의 일상 내부에 존재한다'이다."
강인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일정했다.
"범인은 피해자의 시간선 안으로 완전히 녹아들어가 스스로를 소거한다. 그것이 내 프로파일링 십계명의 두 번째 규칙이다."
화면의 붉은 글씨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모니터 하단의 시스템 온도 표시기가 섭씨 82도를 가리키며 붉은색 경고등을 켰다. 냉각팬이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서도현은 강인이 정립한 수사 기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피해자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 자체를 통째로 조작해 알리바이를 분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강인은 키보드 자판의 'F12' 키를 눌러 개발자 콘솔 창을 강제로 호출했다.
0412.
조금 전 메모했던 네 자리 난수를 콘솔 창의 소스 코드 입력란에 타이핑했다. 타자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잘게 쪼갰다. 난수가 입력되자 붉은 글씨의 도발장 뒤편으로 숨겨져 있던 데이터 패킷의 흐름이 실시간으로 노출되었다. 발송 경로를 역추적하는 경로당(Routing) 로그 파일들이 화면 가득 쏟아져 내렸다.
"추적하는 거냐."
광두가 연기를 뱉으며 물었다. 강인은 대답 대신 마우스 휠을 빠르게 내렸다.
"이놈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로그 파일의 마지막 IP 주소가 화면에 고정되었다. 강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화면에 표시된 좌표의 물리적 위치는 서울 시내의 원격 서버가 아니었다.
"거리 30미터."
강인의 입술이 건조하게 갈라졌다.
"이 건물 내부다."
광두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구두 굽으로 비벼 껐다. 그의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가죽 코트 안쪽의 권총 홀스터로 향했다. 젖은 가죽이 쓸리는 서늘한 마찰음이 일었다.
그 순간, 노트북 화면이 다시 한 번 거칠게 흔들렸다. 검은 창이 통째로 닫히더니 윈도우 바탕화면에 있던 CCTV 모니터링 프로그램이 강제로 실행되었다. 화면은 강인의 가옥이 위치한 골목길 초입의 보안 카메라를 비추고 있었다.
빗줄기가 카메라 렌즈를 두드려 화면 전체가 물방울로 번져 있었다.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 검은색 장우산을 쓴 실루엣 하나가 서 있었다. 사내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우산의 깊은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빗물에 젖어 번쩍이는 금속 물체가 그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낡은 태엽식 회중시계였다. 초침이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는, 15년 전 청량리 미제사건의 현장에서 사라졌던 한세희의 유품과 동일한 모델이었다.
사내는 카메라를 향해 그것을 천천히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했다.
지이잉.
노트북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방 안의 형광등이 거세게 깜빡이더니 완전히 꺼졌다. 암전이었다. 가전제품의 작동음이 일시에 멈추며 빗소리만이 방 안을 무겁게 채웠다.
어둠 속에서 강인의 거친 호흡 소리가 짧게 이어졌다.
구리 열쇠를 쥔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복도 저편에서 다시 한 번, 아주 미세한 구두 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