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현이 주먹으로 철제 책상을 내리쳤다. 낮게 울리는 진동이 취조실 바닥을 타고 강인의 구두 굽에 닿았다.
"역시 최고의 스승이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청량리 기와집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다음 타깃의 목숨도 구할 계산이 서셨습니까?"
서도현의 입꼬리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찢어졌다. 그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없이 강인의 얼굴을 조준하고 있었다.
강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세 가지 물건을 바라보았다. 은영채가 두고 간 검은색 볼펜, 종이컵, 그리고 마광두가 건네주었던 녹슨 태엽식 회중시계였다. 강인은 오른손 검지 끝으로 종이컵을 밀어 볼펜과 정확히 3센티미터의 간격을 맞추었다. 이어서 회중시계를 들어 올려 그 옆에 나란히 놓았다. 물건들의 끝단이 완벽한 평행을 이룰 때까지 손가락을 세 번 반복해서 움직였다.
손바닥에 닿는 회중시계의 차가운 금속 질감이 비정상적으로 또렷했다. 15년 전 세희가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강인은 시계의 용두를 천천히 돌렸다. 내부에서 톱니바퀴가 헛돌며 쇠 긁는 소리가 났다. 5화에서 마광두가 건넸을 때부터 무브먼트 안쪽에 무언가 꽉 끼어 움직이지 않던 고장이었다.
강인은 시계 측면의 힌지를 손톱 끝으로 눌렀다. 뒷면 덮개가 얇은 금속성 파열음과 함께 열렸다. 태엽 스프링 사이, 규격에 맞지 않는 사각형의 이물질이 끼어 있었다. 가로 11밀리미터, 세로 15밀리미터의 검은색 플라스틱 칩이었다.
마이크로 SD 카드였다.
강인은 핀센트 대신 손톱으로 그것을 끄집어냈다. 칩의 동도금 단자 부분에 굳은 그리스가 묻어 있었다. 강인은 그것을 셔츠 소매로 닦아낸 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노트북 리더기에 밀어 넣었다. 화면에 15년 전 청량리 사건의 음향 파일이 복원된 파형으로 떠올랐다. 서도현의 앳된 성대 주파수와 일치하는 오디오 데이터였다.
서도현의 눈썹 한쪽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강인은 회중시계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서도현의 목덜미를 응시했다. 그의 우측 경동맥이 와이셔츠 깃을 밀어 올리며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맥박수 분당 135회였다.
서도현은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혈류의 속도까지 속이지는 못했다. 강인은 코끝을 스치는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취조실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소독약 냄새 사이로 이질적인 분자 화합물이 섞여 있었다.
강인의 뇌 속에서 기말 장부의 고밀도 후각 시뮬레이션이 가동되었다.
[입자 분석: 황 75%, 질산칼륨 15%, 목탄 10%. 연소 잔사 유입 확인.]
그것은 흑색화약의 냄새였다. 서도현의 소매깃과 손톱 밑에 미세하게 잔류한 입자들이 강인의 비강을 자극했다. 그는 단순히 방화 상황을 중계하는 것이 아니었다. 불과 한 시간 전, 청량리 기와집의 기폭 장치를 제 손으로 직접 조립하고 온 것이 분명했다.
"연기는 피웠지만, 불길은 통제 범위를 벗어났군."
강인이 낮게 읊조렸다. 시선은 여전히 서도현의 코끝에 둔 채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네 손끝에 남은 탄화 질소 수치가 말해주고 있다. 흑색화약의 연소 속도는 초당 400미터다. 가로 세로 8미터의 목조 서재를 태우는 데 필요한 양을 계산할 때, 너는 산소 공급률을 누락했다. 지금 기와집 내부의 기압은 급상승 중이다."
서도현의 미소가 물리적으로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0.5밀리미터가량 흔들렸다.
그때 대기실 의자에 걸터앉아 있던 마광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육중한 그림자가 서도현의 머리 위를 덮었다. 마광두는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지만, 눈빛은 살기등등했다.
"야, 대가리 터지기 전에 빨리 불어라. 나 퇴직금 받아서 유흥비 써야 되는데, 여기서 시간 낭비할 여유 없다."
마광두가 팔을 뻗어 서도현의 와이셔츠 깃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가죽 재킷이 쓸리는 거친 마찰음이 취조실을 채웠. 마광두는 서도현의 몸을 그대로 들어 올려 철제 의자째로 뒤로 밀어붙였다. 의자 다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찢어지는 소음을 냈다.
"놔라, 이 무식한 퇴물 형사."
서도현이 턱을 치켜들며 으르렁거렸다.
"네놈 가죽을 벗겨서라도 자백받을 테니까 엄살 부리지 마라, 꼬맹아."
마광두가 서도현의 얼굴 앞까지 주먹을 들이밀며 고압적으로 휘저었다. 서도현의 고개가 본능적으로 좌측으로 꺾였다. 조사실 내부의 고광도 할로겐등 불빛이 그의 안구 표면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강인은 그 0.1초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서도현의 확장된 동공, 그 투명한 각막 위에 미세한 격자무늬의 푸른 빛이 잔상으로 맺혀 있었다. 가로 16대 9 비율의 직사각형 화면이었다. 열 센서 카메라가 송출하는 붉은색과 노란색의 온도 분포도가 그의 망막에 선명한 청색광 잔영으로 박혀 있었다.
그것은 실시간 방화 현장을 모니터링하던 스마트 기기의 디스플레이 잔상이었다.
강인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얼음 송곳으로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기말 장부의 연산 장치가 뇌세포의 단백질을 급격히 태우기 시작했다. 뇌압이 한계치를 초과하며 코끝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다.
두두둑, 하는 환청과 함께 머릿속의 기억 보관함 하나가 통째로 부서져 내렸다.
가을날이었다. 대학 교정의 오래된 벤치였다. 세희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수천 장의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 강인은 그 낙엽들의 색깔을 기억하려 애썼다. 붉은색이었던가. 노란색이었던가. 아니면 갈색이었던가.
기억의 픽셀들이 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낙엽의 색상이 사라지자, 이내 세희의 미소마저 윤곽선만 남은 채 안개 속으로 흩어졌다. 가장 소중했던 사적 기억의 영구적 소멸이었다.
강인은 신음조차 내지 않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입안에서 터진 피가 이빨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 파괴된 뇌세포의 잔해 위로, 정량화된 물리적 데이터가 인쇄되듯 떠올랐다. 서도현의 안구 잔상에서 추출해 낸 청량리 기와집의 내부 구조 온도 분포 수치였다.
[화원 발화 온도: 섭씨 480도. 연소 파급 속도: 초속 1.2미터. 기압 변화율: 1.05기압/분.]
서도현이 설계한 덫의 진정한 의도가 강인의 뇌 속에서 입체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정문이 아니다."
강인이 눈을 뜨며 잔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입술 끝에 붉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마광두가 서도현의 멱살을 잡은 채 고개를 돌렸다. 취조실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상황을 관망하던 은영채 경감도 강인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
"하 교수, 그게 무슨 소리야?"
은영채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서도현은 경찰들이 기와집 정문으로 진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문 벽면 내부에 설치된 질산암모늄 기폭 장치는 문이 열리는 순간 산소와 결합하여 백드래프트 현상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문 진입조는 전멸한다."
강인은 노트북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다. 화면 위에 청량리 재개발 구역의 위성 지도가 펼쳐졌다. 강인은 마우스 포인터로 기와집 후방의 좁은 골목길을 지정했다.
"서도현의 추종자들이 이동하는 진짜 루트는 이곳이다. 전농동 이면도로에서 제기동 골목길로 이어지는 하수관로 인근. 그들은 이곳을 통해 기와집 후방의 우물터 배수구로 진입하고 있다. 발화 지점의 대류 현상을 이용해 화재를 확산시키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의도다."
강인은 은영채에게 노트북 화면을 돌려주었다. 화면에는 사설망 주파수를 역추적하여 얻어낸 백색 서재 추종자들의 실시간 무선 신호 밀집 지역이 붉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 주파수 대역을 타격해라. 기와집 외곽 200미터 지점에 바리케이드가 아닌 이동식 전파 차단기를 배치해야 한다. 그들의 통신을 끊으면 폭파 신호는 전달되지 않는다."
서도현의 얼굴에서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가 핏발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선생님, 그건 단순한 추측일 뿐입니다. 만약 제 계산이 맞다면, 당신이 지목한 후방 진입로는 이미 불길에 가로막혀 있을 겁니다."
서도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우성치듯 말했다.
강인은 책상 위의 종이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컵 안에 남아 있던 차가운 물을 서도현의 구두 위에 천천히 떨어뜨렸다. 물방울이 가죽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조 건물의 연소 공학을 무시하지 마라. 기와집 서재의 기둥은 참나무다. 참나무의 탄화 속도는 분당 0.6밀리미터에 불과하다. 15년 동안 방치되어 건조해진 상태라 해도, 기둥이 무너지기까지는 최소 42분이 소요된다. 지금 불길이 시작된 지 18분이 지났으니, 후방 배수구의 온도는 섭씨 65도를 넘지 않는다. 진입 가능하다."
강인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차갑고 정확했다.
서도현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그는 지적 패배를 인정한 동물처럼 신음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마광두의 거대한 손아귀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은 경감, 들었지?"
마광두가 은영채를 바라보며 턱짓을 했다.
"현장 타격대 즉시 후방 우물터로 이동시킵니다. 전파 차단 장비 동원하고, 정문 진입은 전면 통제하세요."
은영채가 무전기를 꺼내 들며 취조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의 다급한 명령 소리가 열린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취조실 내부에는 차가운 침묵만이 남았다. 서도현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오만한 천재성은 강인이 제시한 정교한 연소 방정식 앞에 무력하게 조각나 있었다.
"선생님이 이기신 것 같습니까?"
서도현이 바닥을 향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 기이한 변조음 같은 떨림이 섞여 있었다.
강인은 손가락으로 셔츠 깃을 매만졌다. 머릿속의 통증은 여전히 박동치고 있었고, 세희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은 이제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백색의 공백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계산을 끝냈을 뿐이다."
강인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 순간, 취조실 천장의 할로겐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지지직거리는 전류의 파열음이 벽면 내 콘듀이트 파이프를 타고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쾅.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기계음이 울리며 건물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취조실을 밝히던 모든 전등이 일제히 꺼졌다. 암흑이 공간을 지배했다. 오직 컴퓨터 모니터의 잔광만이 세 사람의 얼굴을 푸르스름하게 비추었다.
삐이이이이-.
비상 전력 조항이 작동하기도 전에, 복도 끝에서 날카로운 비상경보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뭐야? 정전인가?"
마광두가 허리춤의 권총을 만지며 주위를 경계했다.
서도현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서 번져나갔.
"제 제자들이 선생님을 뵈러 온 모양입니다."
취조실 문틈 사이로 매캐하고 하얀 연기가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최루 성분이 섞인 연막탄의 냄새였다. 복도 쪽에서 비명과 함께 무거운 물체가 쓰러지는 소리, 그리고 유리창이 박살 나는 굉음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