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스윽.

황 PD의 손끝이 움직이자, 믹서의 슬라이더가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이민우의 마이크가 완벽히 차단된 순간이었다. 2014년 지상파 생방송의 거대한 스튜디오 안에서, 터져 나와야 할 고음 리드 보컬이 무음의 허공으로 증발하려는 찰나였다.

콘솔 옆에 서 있던 강도경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졌다.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이명이 날카롭게 고막을 찔렀다. 골든핑거의 '미래 음원 싱크로율 감응'이 뇌신경을 자극하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민우의 목소리가 닿아야 할 황금빛 주파수 궤적이 허공에서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시각적 잔상이 눈앞에 선명했다.

황 PD와 저 멀리 서 있던 윤 PD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말려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음향 사고로 처리해 아레스를 영원히 가창력 미달의 '망돌'로 매장하려는 수작.

하지만 도경은 이미 이 더러운 수작을 예견하고 있었다.

도경은 민우와 시선을 맞추었다. 무대 위에서 마이크가 죽었다는 것을 직감한 민우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평생 따라다닌 가문의 멸시, 자존감 바닥의 불안이 민우의 어깨를 짓누르려는 순간이었다.

도경이 오른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네 목소리를 믿어라.'

그것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었다. 도경의 골든핑거 능력이 극대화되며, 민우가 느끼는 성대의 과부하와 호흡의 고통을 도경의 몸이 고스란히 나누어 받기 시작했다.

커흑.

도경의 목구멍 안쪽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피비린내가 훅 끼쳤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다리가 꺾일 것 같았지만, 도경은 콘솔을 붙잡고 버텼다. 도경이 고통을 짊어진 만큼, 무대 위 민우의 성대는 급격히 가벼워졌다.

민우의 흔들리던 눈빛이 단단하게 가라앉았다. 민우는 마이크를 내렸다. 마이크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듯,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흉성을 극대화한 날 것 그대로의 육성이 생방송 스튜디오를 찢고 터져 나왔다.

“단 한 번의 불꽃을 위해, 나는 어둠을 질주해!”

마이크 필터를 거치지 않은, 날것의 거친 에너지가 담긴 초고음 보컬이 방청석 전체를 직접 강타했다. 스피커를 통하지 않았음에도 스튜디오 천장을 때리고 잔향을 남기는 압도적인 성량이었다.

2014년의 세련되지만 다소 차가웠던 디지털 방송 음향 사이로, 인간의 육체가 가진 가장 뜨겁고 순수한 울림이 침입했다.

관객석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경악 섞인 탄성이 터졌다.

“어……? 마이크 꺼진 거 아냐?” “육성으로 부르는 거야? 저 고음을?”

웅성거림은 순식간에 거대한 전율로 변했다. 채아를 비롯한 아레스 멤버들이 민우의 뒤를 받치며 칼군무의 동선을 더욱 정교하게 쪼갰다.

지하 연습실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버려져 있던 낡은 2010년형 빈티지 신디사이저. 도경이 밤을 새워가며 그 고유 주파수 변조 노브 장치를 손수 깎고 튜닝했던 그 아날로그 신스 베이스 음향이, 민우의 거친 육성 보컬과 기적처럼 맞물렸다.

2024년의 트렌디한 미니멀 미장센을 2014년 리스너들의 귀에 달라붙게 만들기 위해 처절하게 로컬라이징했던 그 주파수 세팅이, 마이크 테러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오히려 무대의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신의 한 수가 된 것이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빈티지 신스 디스코의 비트 위로, 민우의 육성과 멤버들의 완벽한 화음이 얹어졌다. 그것은 기계로 다듬어진 인위적인 무대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청춘의 투쟁이었다.

무대가 끝남과 동시에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것은 정적이 아닌, 고막이 터질 듯한 기립박수와 함성이었다.

“아레스! 아레스!”

방송 사고를 예술로 승화시킨 무대. 현장의 관객들은 물론, 부조정실에서 지켜보던 한태만 국장의 입술 역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미친놈들.”

한태만이 나직하게 내뱉은 한마디는 비난이 아닌, 경외에 가까웠다.

* * *

생방송의 붉은 불빛이 꺼지자마자, 도경은 쥐어짜는 듯한 목의 통증을 억누르며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갔다. 민우를 비롯한 멤버들이 숨을 몰아쉬며 도경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피디님, 목은 좀 어떠세요?” “난 괜찮아. 너희는 대기실로 가 있어.”

도경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번뜩였다.

도경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부조정실 뒤편, 황 PD와 윤 PD가 초조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비상계단 앞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한태만 국장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윤 PD, 황 PD.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인가?” 한태만의 목소리에 서리가 내렸다.

윤 PD는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국장님, 단순한 기계 오작동입니다. 생방송 중에 음향 장비 믹서가 간혹 오버플로우를 일으키는 거 모르십니까? 아레스 놈들이 운이 나빴던 거죠.”

“운이 나빴다라.” 도경이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차갑게 읊조렸다.

“강도경 매니저. 여긴 방송사 내부 일이야. 외부인이 끼어들 자리가…….” 윤 PD가 쏘아붙이려던 찰나, 도경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에는 하나의 동영상 파일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것은 3일 전, 강남의 한 일식집 밀실에서 윤 PD가 TK 엔터테인먼트의 백현욱 대표 측 비서로부터 묵직한 가죽 가방을 건네받는 장면이었다. 가방이 살짝 벌어질 때 안에서 번쩍인 것은 노란빛의 금괴, 즉 골드바였다.

윤 PD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이, 이게 무슨……!”

“방송사 예능국의 절대 강자인 한태만 국장님을 끌어내리려 벼르시더니, 뒤로는 TK의 개가 되어 움직이고 계셨더군요.” 도경의 목소리가 비상계단 벽면에 차갑게 부딪혔다.

“윤 PD가 받은 골드바의 일련번호와 TK 엔터테인먼트의 비자금 계좌 흐름을 이미 사법 기관에 제보해 두었습니다. 방송법 위반, 배임수재, 그리고 생방송 업무방해죄까지.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이죠.”

도경은 시선을 돌려 한태만을 바라보았다. “국장님. 국장님의 자리를 노리던 내부의 암덩어리를 도려낼 기회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태만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도경이 건넨 물증의 파괴력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사내 정치에서 자신을 위협하던 경쟁자 윤 PD를 단숨에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힐 수 있는 완벽한 패였다.

“황 PD, 당장 윤 PD의 사원증 압수해. 그리고 보안팀 불러.” 한태만의 단호한 명령에 윤 PD의 다리가 풀렸다.

“국장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이건 TK에서 시켜서……!” “끌어내.”

비명 섞인 윤 PD의 외침이 보안요원들의 손에 이끌려 사라졌다.

한태만은 천천히 도경에게 다가왔다. 그의 냉소적이던 얼굴에 기묘한 흥분과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강도경. 자네 보통내기가 아니군. 단순히 음악 잘 만드는 프로듀서인 줄 알았더니, 판을 짤 줄 아는 놈이었어.” “국장님이 원하시던 시청률과 사내 정치의 승리, 둘 다 쥐어드렸습니다.”

도경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한태만은 껄껄 웃으며 도경의 어깨를 툭 쳤다.

“좋아. 약속은 지키지. 아레스의 가창력 논란은 오늘 무대로 완벽히 뒤집혔어. 다음 달에 우리 SBC에서 야심 차게 기획 중인 초대형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 넥스트 스타>가 있네. 거기에 아레스를 ‘특급 초청 게스트’이자 스페셜 매치 가수로 정식 헌정하겠네. 지상파 황금 시간대 단독 편성 무대야.”

이민우와 서채아를 비롯한 아레스 멤버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상파 단독 스페셜 무대라니, 중소 기획사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파격적인 특혜였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도경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 *

그날 밤, JS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2층 곰팡이 연습실.

비록 사채 빚 독촉장과 낡은 제습기가 웅웅거리는 초라한 공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온기가 가득했다. 멤버들은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민우야, 너 오늘 진짜 대박이었어! 마이크 꺼졌을 때 나 심장 멎는 줄 알았다고!” “맞아, 그 상태에서 육성으로 뚫어버릴 줄은 몰랐다.”

동생들의 찬사에 민우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예전의 불안과 패배감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목소리 하나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싹트고 있었다.

리더 채아가 도경에게 다가왔다. “피디님, 목은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아까 무대 아래에서 피디님이 가슴을 부여잡고 계신 걸 봤어요. 꼭…… 저희 대신 아파해 주시는 것처럼요.”

도경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긴장해서 체기가 올라왔던 것뿐이야. 걱정 마라. 너희 무대가 완벽했으니 그걸로 됐다.”

도경의 손끝이 여전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능력을 발동한 대가로 몸의 관절 마모와 청각 과부하가 여전히 통증으로 남아있었지만,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이번 생에는 반드시 너희를 세계 정상에 올린다.

도경이 다짐하듯 주먹을 쥔 순간, 연습실의 낡은 철문이 거칠게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먼지와 함께 들어선 인물은 JS 엔터테인먼트의 소유 건물을 관리하는 대리인이었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딱지가 가득한 법원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강도경 사장 있나?” 도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강도경입니다. 무슨 일이죠?”

대리인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서류를 도경의 가슴팍에 툭 던졌다.

“이 건물, 임의 경매 처분 통지서야. 사채 대출금 연체로 인해 채권자가 건물 전체를 압류하고 강제 경매를 신청했거든. 당장 다음 주까지 이 지하 연습실 비우고 나가야 할 거야.”

도경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사채업자 오창석의 배후이자, 방송사 내 권력을 잃고 독기가 바짝 오른 TK 엔터테인먼트의 백현욱 대표.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 아레스를 매장하려던 공작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사채 금융 세력을 총동원해 아레스의 유일한 보금자리이자 혁명의 기지인 이 지하 연습실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마지막 발악을 시작한 것이었다.

“다음 주라니요? 아직 임대 계약 기간이 남아있습니다!” 채아가 놀라 소리쳤지만, 대리인은 코방귀를 꼈을 뿐이다.

“법원 경매 앞에서는 임대차 계약이고 뭐고 없어. 억울하면 사채 빚 수억 원을 한 번에 갚던가. 안 그래?”

도경의 손에 쥐어진 경매 통지서 서류가 구겨졌다.

지하 2층 곰팡이 연습실을 빼앗기면, 아레스의 연습은 물론 도경의 아날로그 편곡 작업마저 완전히 중단된다. 이제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아레스의 날개를 꺾기 위해, 백현욱이 거대한 자본의 덫을 놓은 것이다.

침묵이 흐르는 지하 연습실 속에서, 도경의 눈빛이 서늘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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