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레스 팀? 오늘 너희 무대, 라이브 취소다."

최 감독의 거만한 음성이 좁은 대기실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귀를 의심케 하는 선언에 아레스 멤버들의 신체 활동이 일시적으로 정지했다. 리더 채아의 올린 머리칼 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민우는 쥐고 있던 마이크를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대기실 한구석에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TK 엔터테인먼트의 김태섭 실장. 그의 눈빛은 사냥감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하이에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귀가 먹었어? 오늘 너희 무대, 100% 립싱크 MR 전용으로 전환하라고. 마이크 다 꺼버릴 테니까 그냥 입만 벙긋거려."

최 감독은 귀찮다는 듯 큐시트를 흔들며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저희는 핸드마이크 라이브로 한태만 국장님과 이미……."

민우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한 걸음 나섰다. 그의 목소리에 깃든 떨림을 포착한 김태섭이 핏대를 세우며 가로막았다.

"야, 신인 찌레기들이 어디서 국장 이름을 함부로 올려? 음향 콘솔 잡는 건 감독님 권한이야. 사재기 누명 벗었다고 세상이 다 네 것 같지? 무대 위에서 목소리 한 소절도 못 내보내는 반쪽짜리 가수가 무슨 라이브 무대야. 그냥 시키는 대로 인형처럼 춤이나 추다 내려가."

폭력적인 언사가 대기실의 공기를 무겁게 얼려버렸다. 억울함과 모멸감에 채아의 입술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때, 뒤편에 고요히 서 있던 강도경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도경의 차가운 시선이 최 감독의 명찰과 김태섭의 얼굴을 차례로 관통했다.

"SBC 방송 강령 및 제작 가이드라인 제34조 제2항을 정면으로 위반하시는군요, 최 감독님."

낮게 가라앉은 도경의 목소리가 대기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최 감독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방송사는 아티스트의 예술적 표현과 가창 방식을 존중하며, 사전 협의되지 않은 강제적 음향 제한을 통해 무대의 질을 저하시켜서는 안 된다.’ 정확히 명시되어 있는 조항입니다. 특히 한태만 국장님과 체결한 '시청률 보증 서약'의 세부 부속 합의서에는 아티스트의 가창 형태 결정권이 전적으로 책임 프로듀서인 저와 아레스에게 있다고 명문화되어 있지요."

도경은 주머니에서 깔끔하게 접힌 서류 한 장을 꺼내 최 감독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한태만의 친필 서명과 SBC 예능국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서약서 사본이었다.

"이게 무슨……."

최 감독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경은 상대의 숨통을 조이듯 말을 이어붙였다.

"최 감독님이 무슨 권한으로 예능국장 직인이 찍힌 서약서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가이드라인을 강요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지금 즉시 SBC 심의평가실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특정 대형 기획사와의 유착에 의한 예술적 표현권 침해'로 정식 민원을 접수하겠습니다. 녹취록과 함께 말이죠."

도경이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의 화면을 켜 보였다. 붉은색 녹음 표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김태섭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이, 이 양아치 새끼가 진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겁도 없이!"

"겁이 없는 건 그쪽이겠지."

도경이 김태섭을 쏘아보는 눈빛에는 살기마저 서려 있었다.

"SBC는 공영 방송사입니다. 대형 기획사의 사리사욕을 채워주기 위해 메인 음향 감독이 방송 심의 규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방통위에 접수되는 순간, 최 감독님은 물론이고 이 무대를 연출하는 윤 PD님까지 줄줄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겁니다. 한태만 국장님이 이 좋은 명분을 그냥 넘기실 것 같습니까?"

최 감독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예능국 내에서 한태만 국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윤 PD 라인인 자신으로서는, 한태만에게 꼬투리를 잡히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이 없었다. 국장의 직인이 찍힌 서약서는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든 자신들의 목을 칠 수 있는 단두대의 칼날이었다.

최 감독은 침을 꿀꺽 삼키며 김태섭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큐시트를 거칠게 말아 쥐었다.

"……흥, 오해를 한 모양인데. 신인들의 성대 보호 차원에서 제안한 내부 의견이었을 뿐이야. 그렇게 라이브를 고집하겠다면 마음대로 해 봐. 대신 음향 사고가 나거나 무대를 망치는 건 전적으로 너희 책임이다."

최 감독은 핑계를 대며 서둘러 대기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 남겨진 김태섭이 도경의 멱살을 잡을 듯이 다가왔으나, 도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강도경, 네 놈이 언제까지 그 알량한 머리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다음은 없어."

"다음 걱정은 네 놈들이나 하라고."

도경의 서늘한 대꾸에 김태섭은 이를 갈며 대기실 문을 부서질 듯 닫고 사라졌다.

"후우……."

폭풍이 쓸고 간 대기실 안. 멤버들이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민우는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고쳐 잡았고, 채아는 도경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피디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무대 위에서 바보가 될 뻔했어요."

"감사할 것 없어. 너희는 무대만 생각하라고 내가 여기 있는 거니까."

도경은 덤덤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으드득.

어깨뼈 마디마디가 쪼개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골든핑거의 대가였다. 멤버들의 무대 완성도를 극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리고 채아의 성대 부상을 완전히 흡수해 완치시킨 대가로 그의 육체는 실시간으로 갉아먹히고 있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린 피맛이 올라왔다. 도경은 멤버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가볍게 기침을 하며 목 안의 핏기를 삼켰다.

그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통증을 잊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다.

화면을 켜고 그가 접속한 곳은 미국의 유명 인디 음악 매니아 포럼인 '노스탤지어(Nostalgia)'였다. 국내의 음원 조작 프레임에 갇혀 있을 때, 도경은 이미 국경 너머의 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던 그의 눈이 멈추었다. 아레스의 데뷔곡 티저 영상에 대한 영문 분석 글타래가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User_X: 이 한국 신인 그룹의 신디사이저 소스 들었어? 80년대 아날로그 하드웨어 롤랜드 주피터의 질감이 느껴지는데, 현대적인 808 베이스랑 기가 막히게 믹싱되어 있어. 이건 가짜 미디가 아니야.] [User_Y: 동감이야. 특히 4kHz 대역의 고주파 변조가 엄청 따뜻하게 귀를 감싸네. 요즘 한국 아이돌 음악에서 이런 정통 신스 디스코 사운드를 들을 줄은 몰랐어. 프로듀서가 천재인 게 틀림없어.]

도경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는 해당 화면들을 하나하나 캡처해 보안 클라우드에 저장했다.

이 독보적인 아날로그 질감을 만들어낸 일등 공신은 바로 JS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연습실 구석에 버려져 있던 낡은 2010년형 빈티지 신디사이저였다.

그 찌그러진 고물 악기의 고유 주파수 변조 노브 장치를 도경이 직접 분해하고 재납땜하여 튜닝해 낸 결과물이었다. 2024년의 극단적인 미니멀리즘 비트를 그대로 가져왔다면 2014년의 리스너들에게는 그저 빈약하고 낯선 기계 소음으로 들렸을 터였다. 하지만 도경은 그 빈티지 노브를 통해 고주파 대역의 끝자락을 거칠면서도 따뜻한 아날로그 신스 디스코 감성으로 벼려냈다. 시대적 미장센의 비동기화 장벽을 기술과 집념으로 넘어선 순간이었다.

미국 포럼의 파워 유저들이 이 미세한 주파수의 차이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훗날 TK 엔터테인먼트가 가해올 모든 언론 플레이를 무력화할 글로벌 역수입 트래픽의 불씨였다.

"피디님, 리허설 스탠바이 하랍니다!"

스태프의 외침에 도경이 노트북을 덮고 일어섰다.

순간, 귓가에서 찢어지는 듯한 이명이 발생했다.

삐이이이ㅡ.

머릿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도경은 자신도 모르게 대기실 벽을 짚었다. 시야가 일시적으로 흐려지고 귀가 먹먹해졌다. 뇌신경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능력을 발동할 때마다 찾아오는 한계 반응이었다.

"피디님?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너무 하얗게 지렸는데……."

채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도경의 팔을 붙잡았다. 도경은 이빨을 악물고 이명을 눌러 담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긴장 풀지 마."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며 아레스 멤버들을 이끌고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무대 위, 화려한 조명들이 엠블럼처럼 아레스를 조명하고 있었다.

도경의 눈앞에 황금빛 오라가 펼쳐졌다. 능력이 발동되며 멤버들이 밟아야 할 기하학적 동선과 안무의 궤적이 무대 바닥 위에 선명한 선으로 각인되었다.

"채아 야."

도경은 마이크 너머로 채아를 불렀다.

"도입부 동선에서 왼쪽으로 20센티미터만 더 이동해. 조명이 떨어지는 각도와 네 시선이 마주치는 지점이 거기가 가장 역동적이야. 그리고 현우는 턴 동작을 할 때 상체 각도를 15도만 낮춰. 그래야 다음 비트에서 민우의 보컬 라인이 들어올 공간이 시각적으로 열린다."

"네, 피디님!"

멤버들은 도경의 지시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도경의 몸을 타고 흐르는 피로와 통증이 멤버들의 몸을 가볍게 만들고 있었다. 도경의 어깨는 천근만근 무거워져 숨쉬기가 힘들었지만, 무대 위의 멤버들은 마치 깃털처럼 가볍고 날카롭게 움직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칼군무가 황금빛 궤적 위에서 완성되어 갔다.

완벽한 조화였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원석들이 도경이 조율한 아날로그 주파수 안에서 하나의 거대한 화음으로 뭉치고 있었다.

"리허설 끝! 아주 좋습니다. 아레스 팀, 바로 본방송 들어갑니다. 대기해 주세요!"

FD의 목소리와 함께 스튜디오 안의 압박감이 극에 달했다.

카메라가 붉은 불빛을 반짝이며 아레스를 향해 정렬했다. 대중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지상파 생방송 무대.

도경은 무대 아래 콘솔 옆에 서서 무대를 지켜보았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지키지 못하고 은퇴와 해체로 내몰았던 아이돌들의 눈물. 이번 생에는 반드시 그 눈물을 닦아주고 세계 정상에 올리겠다는 집념이 그의 온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큐!"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무대 위로 묵직한 아날로그 신스 베이스가 터져 나왔다.

지하 연습실의 고물 신디사이저 노브에서 태어난, 2014년의 감성을 저격하는 극상의 디스코 사운드가 스튜디오 전체를 흔들었다. 관객석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채아의 수려한 몸짓을 시작으로 멤버들이 황금빛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의 땀방울이 조명빛을 받아 스팽글처럼 빛났다. 사재기 의혹이라는 오명을 완벽하게 씻어내듯,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에는 서슬 퍼런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곡의 하이라이트.

이민우가 솔로 파트를 소화하기 위해 무대 중앙으로 전진했다. 가문의 멸시와 스스로에 대한 불안을 깨부수고, 오직 목소리 하나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결의가 그의 눈동자에 가득 차 있었다.

민우가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그의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올 가장 아름다운 고음 리드 보컬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때, 음향 콘솔 구석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움직였다.

최 감독의 눈짓을 받은 조연출 황 PD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이민우의 메인 보컬 채널이 할당된 볼륨 믹서 슬라이더였다.

스윽.

황 PD의 손끝가 가볍게 움직이자, 믹서의 슬라이더가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음소거.

민우가 목청을 높여 첫 소절의 고음을 터뜨리는 그 찰나, 마이크의 전원이 무음으로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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