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 화면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헤드라인들이 차 안의 정적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단독] 신인 그룹 '아레스', 데뷔 무대 직후 실시간 차트 폭등…… 조직적 음원 사재기 및 유령 계정 조작 의혹 제기.
손가락 끝을 파르르 떨며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서채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갓 데뷔 무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트 턱밑까지 치고 올라간 순위에 기뻐하던 기쁨의 온기는 순식간에 식어 내렸다.
"채아야, 폰 이리 줘."
도경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는 조종석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은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이민우는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다른 멤버들 역시 갑작스러운 마녀사냥에 숨을 죽인 채 도경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형…… 우리 진짜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기사 댓글들 보면 우리가 돈 써서 기계 돌렸다고 난리에요. 이제 막 사람들이 우리 노래 들어주기 시작했는데……."
민우의 목소리가 끝내 젖어 들었다. 가난과 멸시 속에서 오직 목소리 하나로 버텨온 그에게 '조작'이라는 낙인은 영혼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었다.
도경은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귓가에서 삐이이- 하는 약한 이명이 일어났다. 채아의 성대 손상을 대신 짊어졌던 여파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하지만 도경은 아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흔들리면 10년 전의 그 참혹한 해체가 되풀이될 뿐이다.
"울지 마라. 민우 너, 그 눈물 아껴 둬. 나중에 1등 트로피 안고 울어야 하니까."
도경이 기어를 바꾸며 차를 거칠게 꺾었다.
"이건 우리가 잘나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야. 백현욱 대표가 초조해졌다는 뜻이지. 똥줄이 타니까 이런 유치한 진흙탕 싸움을 거는 거야."
카니발은 빗물이 고인 아스팔트를 튀기며 JS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연습실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차가운 시멘트 냄새가 뒤섞인, 그들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혁명의 발원지였다.
지하 연습실로 내려서자마자 도경은 책상 위의 낡은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던 낡은 악기를 가리켰다.
"민우야, 저거 먼지 좀 털어내고 전원 올려 봐."
도경이 가리킨 것은 지난번 황학동 고물상에서 구해왔던 2010년형 빈티지 신디사이저였다. 구석구석 녹이 슬고 볼품없는 외관이었지만, 도경의 손끝이 그 기기 위에 머물렀다.
"형, 갑자기 이 신디사이저는 왜요?"
채아가 눈가를 훔치며 물었다.
"이게 우리의 가장 강력한 알리바이가 될 거거든."
도경이 신디사이저 우측 상단에 위치한, 손때 묻은 '고유 주파수 변조 노브(Frequency Modulation Knob)'를 부드럽게 돌렸다. 징- 하는 묵직한 아날로그 하울링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요즘 대형 기획사들이 쓰는 최신 디지털 가상악기(VSTi)는 소리가 너무 칼같이 깨끗해. 반면에 매크로 조작 업체들이 음원을 대량으로 재생할 때 쓰는 가상 컴퓨터(VM) 환경은 시스템 오버헤드를 줄이려고 음질 주파수를 극단적으로 압축하지. 16비트 이하로 뭉개버린단 말이야."
도경의 손가락이 건반을 내리눌렀다. 2024년의 미니멀한 비트를 2014년의 아날로그 감성으로 로컬라이징하기 위해, 밤새도록 밤을 새우며 튜닝했던 바로 그 질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빈티지 신디사이저의 아날로그 변조 노브를 이용해서, 디지털 음원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24비트 고유 배음 주파수를 심어 놨어. 인간의 귀에는 따뜻한 아날로그 디스코 사운드로 들리지만, 분석기 상으로는 고유한 '아날로그 랜덤 노이즈' 패턴이 파형 전체에 깔려 있는 셈이지."
도경은 노트북 자판을 빠르게 두드렸다.
"조작 업체들이 쓰는 가상 플레이어는 이 특유의 고주파 배음 대역을 정상적으로 디코딩하지 못하고 패킷 전송 과정에서 무조건 에러 로그를 남기거나, 주파수를 강제로 깎아 먹어. 즉, 진짜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들었을 때의 트래픽 패킷과 기계가 돌린 패킷은 서버 전송 로그에서 완전히 다른 신호 체계로 기록된다는 뜻이다."
"그럼……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건가요?"
민우의 눈이 커졌다.
"인터넷에 대고 백날 '우리는 억울합니다', '열심히 했습니다' 호소해 봐야 대중은 믿지 않아. 그들이 원하는 건 눈물이 아니라, 반박할 수 없는 차가운 숫자와 법적 증거지. 난 처음부터 놈들이 이 카드를 꺼낼 줄 알고 있었어."
도경은 곧바로 마우스 클릭을 멈추지 않은 채, 음원 플랫품사인 '멜론'과 '지니'의 기술 운영팀, 그리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공정상생센터 웹페이지를 띄웠다.
"지금 즉시 JS 엔터테인먼트의 이름으로 두 가지를 정식 신청한다. 첫째, 아레스의 데뷔곡 'Last Fire'의 실시간 유입 트래픽에 대한 '풀 패킷 데이터 전수 감사'. 둘째, 사이버수사대에 당사 음원의 IP 유입 경로 추적 수사 의뢰."
도경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우리가 직접 수사 의뢰를 한다고요? 사재기 혐의를 받는 당사자가?"
채아가 놀란 듯 되물었다.
"그래. 진짜 죄가 있는 놈들은 수사 기관이 개입하는 걸 극도로 무서워하지. 하지만 우리는 켕길 게 없어. 오히려 우리가 먼저 수사 의뢰를 하고 패킷 감사를 신청하면, 음원 플랫폼사 입장에서는 거부할 명분이 사라져. 방송 심의 규정상으로도 수사 중인 곡에 대해 함부로 방송 출연을 정지시킬 수 없게 만드는 방어막이 되지."
도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회귀 전, TK 엔터테인먼트가 신인들을 매장할 때 애용하던 불법 다중 IP 매크로 업체의 정보와 주소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중국 연변과 국내 오피스텔에 서버를 분산해 둔 '스타네트워크'.'
그곳이 바로 백현욱의 더러운 손발 역할을 하던 사재기 공장이었다. 도경은 10년 뒤의 기억을 더듬어, 해당 업체의 IP 대역 정보와 그들이 사용하는 프록시 서버의 고유 식별 패턴을 정리한 PDF 문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이버수사대 제보 창에 첨부했다.
[제보: 대형 기획사 연루 의혹이 있는 인터넷 광고 대행업체의 불법 다중 IP 생성 및 타사 음원 고의 조작 정황 증거 제출.]
"사재기를 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모함하기 위해 유령 계정으로 비정상적 트래픽을 강제로 밀어 넣은 정체불명의 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짜는 거야. 그 배후가 어디인지는 경찰이 IP를 추적하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겠지."
노트북 화면의 푸른 빛이 도경의 냉철한 옆얼굴을 비췄다.
그때, 조용히 서 있던 민우가 침을 꿀꺽 삼키며 도경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눈가엔 아직 붉은 기가 남아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형. 저희 이제 뭐 하면 돼요?"
"연습."
도경이 짤막하게 답했다.
"저들이 우리를 가짜라고 부를 때, 우리는 진짜가 무엇인지 무대 위에서 보여주면 돼. 다음 주 라이브 무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가혹하게 갈 거다. 채아 너 무릎 괜찮겠어?"
채아는 자신의 왼쪽 무릎을 가볍게 두드렸다. 도경이 고통을 대위해 준 덕분에 연골판의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이 제 목숨까지 구해주셨는데, 이 정도 무릎쯤이야 부서져라 춰야죠. 얘들아, 다들 안 일어나? 대표님이 판 깔아주셨잖아. 우리가 흙수저라고 비웃던 놈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야지!"
채아의 외침에 흔들리던 멤버들의 눈빛이 일제히 타올랐다.
"좋아, 가자!"
민우가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지하 연습실의 먼지 낀 거울 위로, 땀방울이 서리기 시작했다. 고장 난 제습기에서는 덜덜거리는 소음이 흘러나왔지만, 그 소마저 아레스가 뿜어내는 열기에 묻혀버렸다.
도경은 구석에 앉아 그들의 동선을 모니터링했다. 귓가에서 다시금 찌릿한 통증과 함께 이명이 스쳐 지나갔다. 멤버들의 피로도와 부상을 제 몸으로 전이받는 '골든핑거'의 대가. 어깨가 무겁고 숨이 가빠왔지만, 아이들의 땀방울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사흘 뒤.
도경이 신청한 '실시간 패킷 감사 결과'와 사이버수사대의 1차 내사 결과가 업계에 공유되었다. 결과는 도경의 완벽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속보] 경찰, 신인 그룹 '아레스' 음원 조작 의혹 유포한 매크로 업체 전격 압수수색…… "타 기획사 배후 정황 포착"
[공식입장] 멜론 측 "아레스의 트래픽은 98.2%가 정상적인 개별 유저의 아날로그 오디오 파일 디코딩 패턴…… 사재기 흔적 없음 확인"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억울하게 누명을 쓸 뻔한 실력파 신인 그룹과, 그들을 시기해 불법 공작을 벌인 거대 카르텔의 구도가 명확해진 것이다. 커뮤니티는 아레스를 옹호하는 글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 와, JS 엔터 일 처리 미쳤네. 감정에 호소 안 하고 바로 패킷 로그 까버리는 대담함 보소 ㄷㄷ - 진짜 실력파니까 당당하게 수사 의뢰한 거였음. - 대형 기획사 놈들 양아치 짓거리 하다가 역풍 제대로 맞네 ㅋㅋㅋ 아레스 노래 진짜 좋던데 이번 주 음방 무조건 본방사수한다.
SBC 예능국장실에서 한태만 국장은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강 프로듀서, 자네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군. 보통 이런 일이 터지면 대표들이 내 방에 와서 울고불고 봐달라고 사정하기 마련인데…… 기소 접수증에 이어 패킷 감사 결과표라니. 내 20년 방송 생활 동안 이런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역으로 쳐부수는 놈은 처음 보네."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국장님. 시청률과 화제성, 둘 다 확실하게 챙겨드리겠다고."
도경이 차분하게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음 주 생방송 무대 연출 수정안입니다. 이번엔 100% 핸드마이크 라이브로 가겠습니다. 아레스의 진짜 가창력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한태만은 서류를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번 무대 데코레이션과 서브 카메라 워킹은 자네가 원하는 대로 전폭 지원해주지. 시청률 15%를 뚫어준 보답이야."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대형 카르텔의 음모를 데이터와 법률로 격파하고, 지상파 무대에서의 화려한 비상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거대 카르텔 '엔터포스 연합'의 맹주이자 TK 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백현욱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생방송 당일, SBC 방송국 대기실 복도는 리허설을 준비하는 스태프들과 출연자들로 분주했다. 아레스 멤버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목을 풀며 무대 의상을 다듬고 있었다. 반짝이는 스팽글이 달린 블루 톤의 슈트는 어두운 지하 연습실에서 흘린 땀방울의 결실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대기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SBC 음악 방송의 메인 음향 독점 감독이자, 예능국 내에서 한태만 국장의 라이벌인 윤 PD의 최측근인 최 감독이 거만한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TK 엔터테인먼트의 김태섭 실장이 비열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최 감독은 아레스 멤버들을 훑어보더니, 들고 있던 큐시트를 툭툭 쳤다.
"아레스 팀? 오늘 너희 무대, 라이브 취소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리더 채아가 당황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최 감독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차가운 목소리로 뱉어냈다.
"귀가 먹었어? 오늘 너희 무대, 100% 립싱크 MR 전용으로 전환하라고. 마이크 다 꺼버릴 테니까 그냥 입만 벙긋거려. 방송 심의 규정상 신인 그룹의 가창력 논란 예방 어쩌고 하는 내부 지침이니까 토 달지 말고."
"하지만 저희는 핸드마이크 라이브로 한태만 국장님과 이미……."
민우가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이려 하자, 김태섭 실장이 비웃음을 흘리며 가로막았다.
"야, 신인 찌레기들이 어디서 국장 이름을 함부로 올려? 음향 콘솔 잡는 건 감독님 권한이야. 사재기 누명 벗었다고 세상이 다 네 것 같지? 무대 위에서 목소리 한 소절도 못 내보내는 반쪽짜리 가수가 무슨 라이브 무대야. 그냥 시키는 대로 인형처럼 춤이나 추다 내려가."
백현욱 대표가 심어둔 방송사 내부 카르텔의 끈질기고 저열한 역공이었다. 음원 조작 혐의가 무죄로 밝혀지자, 아예 대중에게 그들의 진짜 무기인 '가창력'을 보여줄 기회 자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수작이었다.
리허설 시작 고작 10분 전.
마이크가 꺼진 무대 위에서 입만 벙긋거려야 하는 굴욕적인 지시 앞에, 아레스 멤버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도경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으며, 최 감독과 김태섭의 얼굴을 매섭게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