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아레스 멤버들의 거친 숨소리가 푸른빛 마이크로폰 라인을 타고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땀방울이 조명빛을 받아 은하수처럼 흩날리는 순간이었다.
서버 상태를 모니터링하던 기술 팀장의 손가락이 마우스 휠을 거칠게 굴렸다.
“대, 대표님! 이것 좀 보십시오.”
도경이 한 걸음 다가서며 기술 팀장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고정했다. 모니터 화면 가득 시뻘건 경고등처럼 깜빡이는 트래픽 유입 경로 그래프가 비정상적인 곡선을 그리며 수직으로 치솟고 있었다.
“디도스 공격입니까? 아니면 해외 매크로 봇인가요?”
옆에 서 있던 실무 직원이 사색이 되어 물었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의 카르텔이 아레스의 숨통을 막기 위해 인터넷 생중계마저 마비시키려고 공작을 개시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조정실 내부를 무겁게 짓눌렀다.
도경은 팔짱을 낀 채 붉게 물든 세계 지도 그래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귓가에 웅웅거리는 이명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의 판단력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했다.
“IP 대역 필터링해 봐요. 프록시 우회 경로인지, 실제 고유 접속자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잠시만요. 패킷 분석 들어갑니다.”
기술 팀장의 손가락이 키보드 자판 위를 기관총 소리처럼 두드렸다. 장비가 노후한 탓에 메인 서버의 냉각팬이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잠시 후, 모니터에 유입 경로의 최종 분석 보고서가 한 줄씩 출력되기 시작했다. 기술 팀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매, 매크로가 아닙니다! 프록시 우회도 없어요. 전부 미국 동부와 북유럽 지역의 실존하는 고유 IP들입니다. 유입 원천지가…… 여기로 잡힙니다.”
팀장이 모니터 한구석을 가리켰다. 화면에 뜬 영문 사이트의 로고는 선명했다.
[Nostalgia : The Future of Sound]
미국의 전설적인 팝 매니아 포럼이자, 전 세계 얼터너티브 음악 트렌드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비밀 커뮤니티 ‘노스탤지어’였다. 그곳의 메인 페이지 최상단에 붉은색 ‘HOT’ 배지가 붙은 게시글이 박혀 있었다.
작성자의 닉네임은 ‘Synth_Slayer’. 업계에서 귀신같은 청각과 까다로운 안목으로 수십만 명의 추종자를 거느린 파워 유저였다. 도경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7화에서 자신이 흘려두었던 그 미끼를, 저들이 마침내 완벽하게 물어뜯은 것이다.
도경이 마우스를 빼앗아 게시글을 한글로 번역했다.
[이것은 2014년의 아날로그 신스 디스코와 미래에서 온 듯한 미니멀리즘 비트가 결합한 정교한 유기체다. 특히 인트로와 프리코러스 구간에서 심장을 긁어내리는 듯한 독특한 주파수 변조는, 요즘 흔해 빠진 컴퓨터 가상 악기(VSTi)로는 절대로 구현할 수 없는 물리적인 하드웨어 고유의 질감이다. 이 아날로그 특유의 텁텁하면서도 따뜻한 소리야말로 진짜 음악이다. 아레스라는 동양의 신인은 기성 대기업들의 공장식 음악을 완벽하게 조롱하고 있다.]
글 아래에는 아레스의 라이브 스트리밍 링크가 걸려 있었고, 수천 개의 영문 댓글이 실시간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 ‘내가 뭘 듣고 있는 거지? 이 빈티지 사운드는 진짜 미쳤다.’ - ‘인트로 신디사이저 소리가 귀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아.’ - ‘한국 방송사들이 이 팀을 출연 정지시켰다고? 멍청한 놈들, 진짜 보석을 발로 차버렸네.’
“해냈어……”
도경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들이 열광하는 그 사운드의 정체. 그것은 JS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2층, 사채업자들의 빚독촉장과 곰팡이 냄새가 가득하던 그 초라한 연습실 구석에 버려져 있던 ‘낡은 2010년형 빈티지 신디사이저’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 고물 기기의 고유 주파수 변조 노브 장치를 밤새도록 납땜질하고, 수백 번 분해하며 주파수 대역을 깎아내 만든 도경의 집념이 마침내 세계의 귀를 관통한 순간이었다.
그때, 도경의 개인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SBC 예능국의 절대 권력자, 한태만 국장이었다.
도경은 전화를 받아 귀에 가져다 댔다.
“예, 국장님.”
- “강 대표! 지금 인터넷 판때기 뒤집어진 거 보고 있나?”
수화기 너머 한태만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의 냉소적인 방관자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 “조금 전에 우리 방송국 내부 징계위원회가 끝났다. 윤 PD 그 새끼, 백현욱한테 뒷돈 처먹고 아레스 생방송 마이크 일부러 꺼뜨린 정황 증거가 확실하게 터졌어. 자네가 넘겨준 그 USB 자료 덕분에 아주 깔끔하게 모가지를 날려버렸지. 한태만을 끌어내리려고 수작 부리던 놈들이 제 발등을 찍은 거야!”
과거의 시간선에서 한태만을 몰아내고 카르텔의 하수인이 되려 했던 윤 PD의 밀실 뇌물 수수 동향이, 도경의 치밀한 사전 작업과 폭로로 인해 완전히 분쇄되는 순간이었다.
“축하드립니다, 국장님. 이제 방송국 내부에 걸림돌은 없으시겠군요.”
- “축하는 내가 아니라 자네들이 받아야지! 지금 실시간 빌보드 소셜 차트랑 글로벌 아이튠즈 지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나? 이건 단순한 국내 바이럴 수준이 아니야!”
도경이 전화를 끊자마자 기술 팀장이 모니터를 두드리며 비명을 질렀다.
“대표님! 빌보드! 빌보드 소셜 50 차트에 아레스가 진입했습니다! 실시간 트렌드는 전 세계 2위입니다!”
“뭐라고요?”
유리창 너머 무대에서 마지막 아웃트로 안무를 마치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아레스 멤버들이 조정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리더 채아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가를 적시고 있었고, 메인보컬 민우는 목이 타들어 가는 듯 연신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피디님…… 어떻게 됐어요?”
채아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경은 아무 말 없이 메인 모니터의 화면을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화면 가득 박힌 영문 기사들과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빌보드 차트의 수치들. 아레스(Ares)라는 네 글자가 세계적인 팝스타들의 이름 바로 밑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우리가 진짜로……”
민우가 머리를 감싸 쥐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가난과 가문의 멸시 속에서 오직 목소리 하나로 버텨왔던 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채아 역시 무릎의 통증을 잊은 채 도경의 소매깃을 붙잡았다.
“피디님이 밤새도록 그 고물 신디사이저 고치면서 말씀하셨던 게…… 진짜였어요. 우리 목소리가, 우리 무대가 통할 거라고 하신 거……”
“그래. 통했어. 너희가 증명해 낸 거야.”
도경이 두 사람을, 그리고 뒤이어 달려온 멤버들을 한 품에 강하게 끌어안았다.
능력을 발동할 때마다 뇌를 찌르는 듯한 이명과, 아직 연약한 아이들의 신체적 부하를 대신 짊어지며 온몸의 관절이 쑤셔오던 그 지독한 페널티의 고통이 마침내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10년 전, 차가운 빗속에서 해체 서류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던 아이들의 얼굴 위로, 지금 이 순간 흘리는 뜨거운 청춘의 환희가 겹쳐졌다.
이것은 기적이나 요행이 아니었다. 거대 카르텔의 방해 공작을 법률과 데이터로 받아치고, 시대의 미장센 불일치를 피나는 편곡 작업으로 극복해 낸 처절한 사투의 결과물이었다.
***
같은 시각. 강남구에 위치한 TK 엔터테인먼트의 최고층 대표실.
쾅!
두꺼운 대리석 테이블 위로 값비싼 크리스탈 재떨이가 날아가 벽면에 산산조각이 났다.
“이게 무슨 소리야! 빌보드? 소셜 차트 2위? 미국 포럼에서 역주행?”
백현욱 대표의 얼굴은 붉다 못해 검푸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태블릿 PC 화면에는 전 세계 실시간 트렌드를 장악한 아레스의 소식과, SBC 윤 PD가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긴급 체포되었다는 속보가 번갈아 흐르고 있었다.
“김 실장! 대답해 봐! 지상파 블랙리스트로 묶어두면 굶어 죽을 놈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유통사들 압박해서 음원 노출 다 막아놨는데, 어떻게 이런 트래픽이 나오냐고!”
실장 김태섭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인터넷 플랫폼을 통한 우회라니…… 전 세계 리스너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건 저희 통제 범위를 벗어난 일이라……”
“통제 범위?”
백현욱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태섭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눈 핏줄이 터질 듯이 충혈되어 있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구축해 놓은 엔터포스 카르텔의 독점 체제가, 단 한 명의 삼류 매니저 출신 프로듀서와 흙수저 아이돌의 손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깟 인터넷 쪼가리가 우리 법망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주식 상장을 코앞에 두고 이딴 버러지 같은 놈들한테 내 앞길이 막힐 순 없어.”
백현욱이 멱살을 거칠게 내던지며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붉은색 가죽 바인더를 꺼냈다. 바인더 안에는 영문으로 작성된 계약서와 날인 사본들이 들어 있었다.
“스웨덴 놈들하고 작성해 둔 원본 서류 가져와.”
김태섭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대, 대표님. 그 카드는 아직 법적 검토가 완벽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우리 쪽도 이중 계약에 대한 법적 책임을……”
“시끄러워! 지금 아레스 저년들의 기세를 꺾지 못하면 우린 끝장이야. 전 세계가 보고 있다고? 그럼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표절 사기꾼으로 만들어 매장해 버리면 그만이야!”
백현욱의 입술이 잔인하게 뒤틀렸다.
10화에서 그가 북유럽 거장 작곡가와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위조해 은밀히 심어두었던 덫. 아레스의 타이틀곡 멜로디 파트가 스웨덴 작곡가의 미공개 데모를 전면 도용했다는 악의적인 사법 제소 카드였다.
“당장 보도자료 배포하고 법원에 소장 접수해. 아레스의 음원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도 동시에 진행해라. 전 세계 리스너들이 가장 혐오하는 게 뭔지 똑똑히 보여주지.”
***
다시 JS 엔터테인먼트의 임시 대기실.
아레스 멤버들이 팬들의 실시간 응원 댓글을 읽으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조정실에서 장비를 정리하던 도경의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짧고 강한 진동음과 함께 포털 사이트의 긴급 재난 문자처럼 알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속보 : TK 엔터테인먼트, 그룹 아레스 타이틀곡 표절 혐의로 공식 형사 고소 제기] [SBC 등 방송사 일제히 보도—스웨덴 거장 작곡가의 미공개 데모 파일 전면 표절 의혹] [글로벌 역주행 아레스, 데뷔와 동시에 음원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 직면]
순식간에 대기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핸드폰을 바라보던 민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고, 채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도경을 바라보았다.
“피디님…… 이게 무슨…… 표절이라니요? 우리가 밤을 새우며 직접 한 편곡인데……”
도경의 시선이 포털 뉴스에 첨부된 스웨덴 작곡가의 조작된 계약서 사본 이미지에 멈추었다.
백현욱이 가진 최후의 맹독이 마침내 아레스의 심장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그러나 도경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가락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어둔 또 다른 USB의 단단한 질감을 확인하고 있었다. 스웨덴 작곡가와의 진짜 이중계약 증거와 가짜 영수증 사본을 무력화할 진짜 원본 데이터가 담긴 무기였다.
“겁먹지 마라.”
도경이 차가우면서도 침착한 목소리로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제 발로 무덤을 파고 들어오는 중이니까.”
그의 시선이 허공을 꿰뚫듯 번뜩였다. 거대 카르텔의 마지막 발악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한, 진짜 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