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제 발로 무덤을 파고 들어오는 중이니까.”
도경의 목소리는 대기실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나직하게 울렸다.
민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저려오는 연습을 견디고,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날 때까지 노래를 불렀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피와 땀이 ‘표절’이라는 추잡한 단어 한마디에 오염되려 하고 있었다.
“피디님.”
채아가 도경의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짚었다. 도경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채아는 느낄 수 있었다. 도경의 깃가 안쪽이 미세하게 붉어져 있다는 것을. 골든핑거의 능력을 발동할 때마다 도경이 치러야 하는 대가, 그 지독한 이명과 청각 과부하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멤버들의 육체적 한계를 대신 짊어지느라 성대와 관절의 통증을 고스란히 앓아내던 그의 등이 유독 작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그 어떤 대형 기획사의 대표보다 단단하고 거대했다.
“민우야, 채아야. 그리고 얘들아.”
도경이 주머니에서 낡은 USB 하나를 꺼내 손바닥 위에서 가볍게 굴렸다.
“우리가 지하 2층 그 곰팡이 가득한 연습실에서 보낸 시간은 거짓말을 안 해. 백현욱이가 아무리 돈으로 스웨덴 작곡가를 매수하고 날짜를 조작해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물리적 법칙이라는 게 있어.”
도경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지금부터 그 법칙이 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너희는 무대만 생각공간만 채워.”
***
같은 시각,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은 몰려든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TK 엔터테인먼트의 법률대리인단과 백현욱 대표가 보낸 기획조정실장 김태섭이 위풍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그들의 손에는 스웨덴의 거장 작곡가 ‘요한손’의 서명이 날인된 독점 라이선스 계약서와 미공개 데모 파일의 파형 분석표가 들려 있었다.
플래시 세례가 쉴 새 없이 터졌다.
“그룹 아레스의 타이틀곡은 북유럽 특유의 미니멀한 신스 루프를 그대로 도용했습니다! 요한손 씨가 2013년 11월에 이미 완성해 둔 데모곡 ‘Frozen Heart’와 주파수 대역 및 멜로디 전개가 98% 일치합니다. 이는 단순한 유사성을 넘어선 명백한 사법적 절도입니다!”
김태섭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기자들의 노트북 자판 위로 떨어졌다. 실시간으로 인터넷 뉴스창은 아레스를 향한 비난과 손가락질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대중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휩쓸리기 쉬운 법이었다.
바로 그 순간, 기자회견장 뒤편의 철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검은색 수트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강도경이 걸어 나왔다. 그의 뒤에는 커다란 하드케이스를 양손에 든 JS 엔터테인먼트의 로드 매니저들이 따르고 있었다.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경에게 쏠렸다.
“강도경 피디! 표절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스웨덴 작곡가 측의 데모 파일이 더 먼저 제작되었다는 증거가 나왔는데,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쏟아지는 질문 세례 속에서도 도경은 흔들림 없이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준비해 온 마이크를 잡고, 김태섭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TK 엔터테인먼트 측에 묻겠습니다.”
도경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넓은 법원 로비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 요한손이라는 작곡가가 데모를 완성했다는 날짜가 정확히 2013년 11월 14일이 맞습니까?”
김태섭이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그렇소. 소장에 첨부된 메타데이터와 공증 서류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지. 2013년 11월 14일 오후 4시, 스웨덴 스톡홀름의 스튜디오에서 렌더링 된 파일이오. 날짜와 시간까지 완벽하게 기록된 법적 물증이지. 당신들이 아무리 우겨봐야—”
“그럼 이걸 보시죠.”
도경이 손짓하자, 매니저들이 하드케이스를 열고 내용물을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기자들의 카메라 줌이 일제히 그것을 향해 당겨졌다.
케이스 안에서 나온 것은 온통 먼지가 쌓이고 모서리가 닳아 빠진, 구시대의 유물 같은 기계였다. 건반 위에 조잡하게 붙은 테이프 자국과 빛바랜 플라스틱 바디. 바로 JS 엔터테인먼트 지하 2층 구석에서 도경이 찾아내어 데비곡의 뼈대를 깎아냈던 ‘2010년형 빈티지 신디사이저’였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도경이 기계 우측 상단에 달린 녹슨 쇠붙이 노브를 툭툭 쳤다.
“이건 2010년에 단 500대만 한정 생산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Korg SV-1’의 초기 커스텀 모델입니다. 이 모델의 핵심은 바로 이 ‘고유 주파수 변조 노브’ 장치에 있죠. 아날로그 소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노브를 돌려 발생하는 정현파는 기계마다 미세한 물리적 마모도에 따라 전 세계에서 오직 단 한 가지의 고유한 주파수 파형만을 출력합니다.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말입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자 김태섭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게 표절이랑 무슨 상관이라는 거요? 말을 돌리지 마시오!”
“상관이 아주 큽니다.”
도경이 빔프로젝터 스크린을 켰다. 화면에 복잡한 주파수 스펙트럼 분석도가 나타났다.
“저희 아레스의 타이틀곡 멀티 트랙 중, 베이스 라인을 담당하는 신스 소스입니다. 여기 보이는 14.2kHz 대역의 미세한 노이즈와 불규칙한 사인파의 비대칭 흔적이 보이십니까? 이것은 이 고장 난 2010년형 신디사이저의 ‘3번 주파수 변조 노브’가 마모되어 발생하는 고유한 아날로그 결함입니다. 디지털 가상 악기로는 절대로 구현할 수 없는, 오직 이 기계만이 낼 수 있는 물리적 지문이죠.”
도경이 리모컨을 눌러 다음 화면을 띄웠다. 그것은 TK 엔터테인먼트가 법원에 제출한 요한손의 ‘미공개 데모 파일’의 스펙트럼 분석도였다.
“그리고 이것이 요한손 씨가 2013년에 만들었다는 데모곡의 주파수 분석도입니다. 놀랍게도, 요한손 씨의 데모곡에도 이 고장 난 2010년형 신디사이저의 14.2kHz 결함 노이즈가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완벽하게 일치하는군요?”
도경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스웨덴에 있는 세계적인 거장 작곡가가, 한국의 망해가는 기획사 지하 2층 구석에 처박혀 있던 이 고장 난 신디사이저를 가져다가 녹음이라도 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저희가 유튜브에 올린 티저 영상의 사운드 소스를 그대로 따서, 주파수 필터링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졸속으로 데모 파일을 조작해 맞춘 것입니까?”
“이, 이래봐야 법적 효력은—”
김태섭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법적 효력요? 당연히 있습니다.”
도경이 주머니에서 또 다른 서류 봉투를 꺼내 단상 위에 내던졌다. 탁, 하는 둔탁한 파열음이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이것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서 공식 인증받은 타임스탬프 원천 변조 방지 블록 구조 데이터와, SBC 방송국 심의실 서버에 최초 등록된 음원 마스터 파일의 제작 일지 스크린 데이터입니다. 당사 음원의 최초 생성 및 등록 시점은 2014년 2월 3일 오전 9시. TK가 주장하는 요한손의 파일은 디지털 포렌식 결과, 어제 오후 11시에 파일 내부 메타데이터가 임의로 수정되고 패킹된 흔적이 고스란히 발견되었습니다.”
완벽한 기술적 증명서와 물리적 증거의 결합이었다.
기자들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흡사 기관총 소리처럼 김태섭의 목을 조여왔다.
“말도 안 돼…… 이딴 구닥다리 기계의 노브 파형 따위가 어떻게……”
김태섭이 뒷걸음질을 쳤다.
도경은 그를 자비 없이 몰아붙였다.
“뿐만 아닙니다. 이 조작을 배후에서 진두지휘하고, 지난 생방송 무대에서 아레스의 마이크를 의도적으로 끄도록 사주한 인물이 누구인지도 이 자리에 밝히겠습니다.”
도경의 시선이 법원 로비 입구 쪽에 서 있던 한 사내에게 닿았다.
SBC 예능국의 윤 PD였다. 그는 한태만 국장을 끌어내리고 차기 제작본부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TK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수억 원대의 밀실 뇌물을 수수해 온 인물이었다.
“윤 PD님. 백현욱 대표에게 받은 차명 계좌 내역과, 마이크 오디오 라인을 차단하라고 음향 감독에게 보낸 메신저 캡처본이 이미 한태만 국장님과 방송사 감사실에 제출되었습니다. 지금 로비 밖에서 대기 중인 수사관들이 보이십니까?”
법원 입구의 회전문이 열리며 푸른색 서류 상자를 든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윤 PD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듯 군중 속으로 사라지려 했으나, 대기하던 수사관들의 손에 금세 덜미가 잡혔다.
“강도경……! 네놈이 감히 나를!”
윤 PD가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까지 소리를 질렀지만, 도경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것으로 방송사 내부의 썩은 동아줄 하나가 완벽하게 잘려 나갔다. 한태만 국장을 위협하던 가시가 제거됨과 동시에, 아레스를 억누르던 지상파 블랙리스트의 명분마저 완전히 소멸하는 순간이었다.
***
기자회견장의 충격적인 반전은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특히 K-POP의 미래 트렌드를 분석하는 미국의 유명 매니아 포럼 ‘노스탤지어(Nostalgia)’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ID: SynthWave_99] “오 마이 갓. 아레스의 프로듀서는 진짜 천재다. 2010년형 아날로그 신스의 고유 결함을 이용해 표절 조작을 밝혀내다니! 이건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사운드 엔지니어링의 마스터다.”
[ID: K_Beat_Finder] “TK 엔터테인먼트가 올린 스웨덴 작곡가의 데모를 직접 분석해 봤는데, 도경 강이 말한 대로 14.2kHz 대역의 노이즈가 그대로 남아있음ㅋㅋㅋ 훔쳐 간 소스로 날조하려다가 덜미 잡힌 거네. 진짜 한심하다 대형 기획사 수준.”
[ID: Global_Ares_Fan] “아레스의 타이틀곡은 진짜 피와 땀으로 만든 예술이다. 이들의 음악을 더럽히러 했던 카르텔은 당장 사과해라!”
‘노스탤지어’ 포럼의 파워 유저들이 올린 주파수 정밀 분석 글은 트위터와 유튜브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미국발 역수입 빌보드 트래픽 분석의 시발점이 된 이 여론은, 국내 대중들에게도 거대한 경종을 울렸다.
- 와, 진짜 소름 돋는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지문이라니 영화냐? - TK 엔터 진짜 추잡하다. 애들 앞길 막으려고 표절 조작까지 하네. - 아레스 노래 진짜 좋아했는데, 이제 안심하고 스밍 돌린다!
여론은 완벽하게 뒤집혔다.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아레스의 타이틀곡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차트 역주행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
그날 저녁, 마포의 한 방송국 인터뷰 룸.
수많은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는 아레스의 메인 보컬 민우가 홀로 서 있었다. 평소 자존감이 낮고 불안해하던 소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자가 날카로운 어조로 마이크를 내밀었다.
“이민우 군. 이번 표절 시비로 심적 고통이 크셨을 텐데, 강도경 피디의 편곡 과정에 대해 직접 증언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일각에서는 여전히 기획사의 기획된 플레이가 아니냐는 의심도 있습니다.”
민우는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가가 붉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저희 피디님은요.”
민우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잔잔하게 퍼졌다.
“제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절망하고 있을 때, 자신의 성대가 찢어지는 고통을 대신 짊어지며 저를 무대에 세워주신 분입니다.”
민우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지하 2층, 제습기도 제대로 돌지 않아 곰팡이 냄새가 나던 그 좁은 곳에서…… 피디님은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이명을 참아가며 헤드폰을 끼고 밤을 새우셨습니다. 그 낡은 신디사이저의 노브를 수천 번, 수만 번 돌려가며 저희에게 가장 잘 맞는 주파수를 찾아내셨어요. 그런 피디님이 만든 음악입니다. 저희 아레스의 모든 곡은, 강도경이라는 한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깎아서 만든 기적입니다.”
민우의 목소리에 담긴 절절한 진심과 끈끈한 유대감은 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해명이 아니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서로의 고통을 나누어 짊어진 뜨거운 청춘들의 연대 선언이었다.
***
삼성동 TK 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쨍그랑!
고가의 크리스탈 재떨이가 대리석 벽면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강도경…… 강도경 이 개자식이 감히 내 목을 쳐? 감히 내 TK를 건드려!”
백현욱의 얼굴은 악귀처럼 뒤틀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법원으로부터 송달된 ‘표절 소송 무고죄 및 업무방해 혐의 피소’ 통지서가 쥐어져 있었다.
스웨덴 작곡가와의 가짜 영수증과 독점 계약 사본마저 도경의 철저한 디지털 포렌식 증거 앞에 무력화된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파멸뿐이었다. 당장 내일 아침이면 금융감독원과 검찰이 TK의 비자금 장부와 음원 조작 혐의로 압수수색을 들어올 터였다.
“대, 대표님…… 이제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해외로 일단 피신하시는 게……”
비서가 덜덜 떨며 속삭였다.
백현욱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의 시선이 책상 밑에 숨겨진 비밀 금고로 향했다. 그 안에는 사채 시장과 연결된 거대 조직 폭력 세력의 연락처가 들어 있었다.
“아직 안 끝났어.”
백현욱이 잔인하게 웃었다.
“강도경 그 새끼가 아무리 똑똑해 봐야, 결국 몸뚱이는 하나야. 그 잘난 디지털 데이터? 원본이 사라지면 그만이야.”
그가 수화기를 들어 거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애들 풀어. JS 엔터테인먼트 지하 연습실로 가서, 거기 있는 컴퓨터, 마스터 하드 디스크, 백업 드라이브까지 단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쓸어와. 저항하는 놈이 있으면 다리를 분질러 놓아도 좋다. 내 모든 걸 잃더라도, 그놈들의 심장만큼은 내 손으로 찢어버릴 테니까!”
어둠이 짙게 깔린 한강 대로를 향해, 검은색 승합차 여러 대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목적지는 JS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2층 연습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