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머리 위 15미터 상공, 무대 천장에 매달려 있던 리깅 와이어가 뱀처럼 요동치며 풀려나갔다. 지탱력을 잃은 육중한 스틸 고정 장치와 중계용 무전기가 중력을 따라 자유낙하하는 궤적. 그 수직선 아래에는 눈을 감은 채 타이틀곡의 클라이맥스 안무 동선을 복기하던 서채아가 서 있었다.
“채아야, 피해—!!”
콘솔의 펜스를 짚고 도약한 도경의 몸이 허공을 가른다.
뇌리가 번쩍했다. 골든핑거의 시각적 오라 속에서, 채아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붉은색 경고등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0.1초의 찰나, 도경은 바닥을 구르며 채아의 허리를 강하게 밀쳐냈다.
쾅—!
“아앗!”
채아가 무대 측면의 안전 매트 위로 굴러떨어짐과 동시에, 둔탁하고 무거운 파열음이 무대 바닥을 울렸다.
스틸 고정 장치와 무전기가 무대 중앙의 합판을 박살 내며 처참하게 튀어 올랐다. 피할 틈이 없었다. 사방으로 비산한 날카로운 철제 파편과 묵직한 플라스틱 덩어리들이 도경의 등과 오른쪽 어깨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윽……!”
등 뒤에서 무언가 찢어지는 감각과 함께 뜨거운 액체가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동시에 골든핑거의 무자비한 페널티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귓가에서 이명이 폭발했다. 고주파의 삐— 소리가 고막을 찌르고 들어와 뇌를 휘저었다. 채아가 무대 위에서 감내했어야 할 안무적 피로도와 극도의 긴장감, 그리고 추락의 충격 여파가 동조 링크를 타고 도경의 뼈마디로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척추를 타고 내려가는 극심한 과부하에 도경은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짚었다. 숨이 턱 막히며 목구멍에서 비린 피 맛이 올라왔다.
“피디님! 도경 피디님!”
바닥에 쓰러졌던 채아가 비명을 지르며 기어왔다. 그녀의 눈망울이 공포와 경악으로 젖어 있었다. 리허설 무대 아래에서 모니터를 보던 이민우와 아레스 멤버들이 단상 위로 단숨에 뛰어올라왔다.
“형! 괜찮아요? 피가…… 등에서 피가 어마어마하게 나요!”
민우가 도경의 어깨를 붙잡았으나, 도경은 이를 악물고 그의 손을 밀어냈다. 이명이 고막을 꽉 막아 아레스 멤버들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웅웅거렸다. 하지만 도경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무대 사고가 아니다.
사고가 터지기 직전, 무대 뒤편 제어 콘솔 구석에서 힐끗 눈을 빛내던 남자가 있었다. SBC 예능국의 2인자이자, 한태만 국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TK 엔터테인먼트의 뇌물을 받아먹던 윤 PD.
도경은 셔츠 안쪽 주머니를 더듬었다. 다행히 피에 젖지 않은 검은색 USB가 손끝에 걸렸다. 이미 4화에서 확보해 두었던, 윤 PD가 TK 측 브로커와 밀실에서 만나 엔터포스 연합의 지분을 보장받고 거액의 현금을 수수하던 정황이 담긴 금융 거래 내역과 통화 녹취 파일이었다.
“민우야…… 채아야…….”
도경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목 통증이 극심했지만 한 글자씩 힘을 주어 뱉었다.
“나 괜찮아. 뼈는 안 부러졌어. 그러니까…… 흔들리지 마. 무대 내려가지 마라.”
“하지만 형, 응급실부터 가야 해요! 이 상태로 어떻게 무대를 봐요!”
민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스스로의 자존감이 낮아 늘 불안해하던 아이가, 지금은 분노와 걱정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도경은 손을 뻗어 민우의 멱살을 가볍게 쥐었다.
“너희가 내려가면, 저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야. 리허설 취소되고 무대 펑크 나면, 한태만 국장도 우리를 지켜줄 명분이 사라져. 무슨 뜻인지 알아?”
채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무릎 연골판 손상의 통증을 속으로 삼키며 버텨왔던 아레스의 대들보다. 도경이 대신 피를 흘리고 있는 이 상황의 배후에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챘다.
“……알겠어요. 피디님. 안 내려가요. 절대 안 비켜요, 이 무대.”
채아의 목소리에 서리가 서렸다.
도경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스태프들이 우왕좌왕하며 무대 위로 뛰어 올라오는 사이, 저 멀리서 팔짱을 낀 채 당황한 척 연기하는 윤 PD의 얼굴이 보였다. 도경은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겨 무대 감독실로 향했다.
* * *
대기실 복도 끝, 한태만 국장의 임시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어, 어이! 강 피디! 몸이 그게 무슨……!”
한태만 국장이 소파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도경의 셔츠는 이미 오른쪽 어깨부터 등판까지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도경은 대답 대신 품에서 꺼낸 검은색 USB를 한태만의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이게 뭡니까?”
한태만이 미간을 찌푸렸다.
“윤창식 PD가 지난 3년간 TK 엔터테인먼트 백현욱 대표에게 받은 정기 뇌물 송금 내역서, 그리고 이번 <넥스트 스타> 서바이벌에서 아레스의 생방송 마이크를 차단하고 무대 사고를 유발하는 대가로 강남의 아파트 분양권을 약속받은 밀실 통화 녹음 파일입니다.”
도경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이명이 웅웅거렸지만, 억지로 발음을 짓눌러 정확하게 전달했다.
“뭐, 뭐라고……? 윤 PD가?”
한태만의 얼굴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는 방송사 내부 사내 정치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시청률과 규정을 목숨처럼 지키는 사내였지만, 동시에 20년 전 아날로그 음악의 뜨거움을 기억하는 방송인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줄을 쥐고 흔들려는 경쟁자의 더러운 공작을 묵과할 위인이 아니었다.
“사실입니까?”
“열어보십시오. 폴더별로 일자, 금액, 장소까지 교차 검증된 패킷 데이터와 통화 파일이 들어 있습니다. 윤 PD는 지금 기계실 스태프를 매수해 아레스의 메인 음향 주파수 대역을 강제로 마스킹하여 라이브 가창을 소음으로 만들려고 세팅까지 끝내놓은 상태입니다.”
도경의 눈빛이 무섭게 가라앉았다.
“윤 PD를 지금 당장 대기 발령 내고 격리하십시오. 생방송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30분입니다. 한 국장님의 차기 제작본부장 자리를 찬탈하려는 자의 싹을 완전히 잘라버릴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한태만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솟구쳤다.
“……윤창식, 이 개새끼가 감히 내 방송국에서 이따위 짓을 벌여?”
한태만은 즉각 수화기를 들었다.
“보안팀? 지금 당장 부조정실에 있는 윤창식 PD 격리해. 사유는 회사 기밀 유출 및 배임 혐의다. 감사팀장한테도 내가 직접 전화할 테니까, 군말 말고 지금 당장 끌어내!”
수화기를 내려놓은 한태만이 도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경외감과 서늘함이 동시에 감돌았다.
“강 피디, 자네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군. 하지만 음향 세팅이 꼬였다면 생방송 라이브는 어쩔 건가? 저들이 주파수 대역을 꼬아놓았다면, 지금 당장 리허설 음향을 복구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도경이 피 묻은 입술을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게는 아주 특별한 사운드 트랩이 있으니까요.”
* * *
부조정실로 돌아온 도경은 메인 믹서 콘솔 옆에 자신이 지하 2층 연습실에서 직접 들고 온 낡은 장비를 배치했다.
붉은색 때가 탄 2010년형 빈티지 신디사이저.
그 구석에 장착된 '고유 주파수 변조 노브 장치'는 2화에서 도경이 발견해 낸 보물이었다. 이 장치는 아날로그 신호를 극도로 미세하게 쪼개어 특정 주파수 대역의 배음을 풍부하게 증폭시키는 독특한 주파수 필터 기능을 내장하고 있었다.
도경은 직접 장비의 케이블을 메인 오디오 믹서의 인서트 단자에 다이렉트로 물렸다.
“피디님, 정말 이 상태로 가시게요? 지혈이라도 제대로……”
음향 감독이 사색이 되어 도경의 등을 바라보았다. 거즈를 덧대고 테이핑을 대충 마쳤지만, 셔츠 위로 붉은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었다.
“시작하십시오.”
도경은 단호했다.
“TK가 심어둔 디지털 주파수 방해 신호는 이 아날로그 변조 노브의 주파수 대역으로 완벽하게 덮어버릴 겁니다. 대중의 귀에는 어떤 노이즈도 들리지 않고, 오직 아레스의 목소리만 우주의 중심처럼 울릴 테니까요.”
그때, 도경의 머릿속으로 미국의 K-POP 매니아 포럼 '노스탤지어'의 화면이 스쳐 지나갔다.
[JS 엔터의 편곡 기법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현대적인 미니멀리즘 비트 아래에 아날로그 신스의 서브 베이스를 깔아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이건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 분석글은 정확했다. 오늘 밤, 그 분석이 단순한 찬사를 넘어 업계의 카르텔을 박살 내는 실체적 무기가 될 것이다.
생방송 시작을 알리는 붉은색 On Air 불빛이 들어왔다.
웅장한 오프닝 시그널과 함께 MC의 멘트가 이어졌다.
“SBC <넥스트 스타> 생방송 파이널 무대! 대망의 마지막 주인공, 기적의 아이돌 아레스의 무대입니다!”
무대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오직 핀조명 하나만이 무대 중앙의 서채아를 비추었다.
그녀의 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조정실 지휘봉을 잡고 있는 프로듀서 강도경을 향한, 그리고 이 더러운 판을 실력으로 깨부수겠다는 지독한 투지였다.
틱, 틱, 틱, 틱.
아날로그 메트로놈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흐르자, 도경은 빈티지 신디사이저의 고유 주파수 변조 노브를 천천히 돌렸다.
스으으으— 하는 미세한 화이트 노이즈가 발생하는 듯하더니, 이내 디지털 방해 전파의 주파수 대역을 완벽하게 마스킹하며 단단하고 따뜻한 아날로그 배음이 공연장 전체를 감쌌다.
쿵!
묵직한 디스코 베이스가 바닥을 때렸다.
“……!!”
객석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2024년의 미니멀한 비트 감각과 2014년의 아날로그 신스 질감이 절묘하게 얽힌, 세상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극상의 사운드였다.
그 위로 이민우의 보컬이 터져 나왔다.
- “어둠을 찢고 솟아오른 빛 속에서, 우린 더 이상 숨지 않아!”
미친 가창력이었다. 민우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 날카로우면서도, 빈티지 신스의 배음 필터를 통과하며 청중의 심장을 직접 타격하는 입체적인 아우라로 승화되었다.
도경은 골든핑거 능력을 최대로 개방했다.
눈앞에 아레스 멤버들의 보컬 파트와 안무 동선이 황금빛 오라가 되어 실시간으로 시각화되었다. 도경의 뇌신경계가 찢어질 듯한 극심한 청각 과부하로 요동쳤다. 이명이 고막을 찔러 귀에서 진물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도경은 한 손으로 콘솔을 잡고 버티며 다른 손으로 볼륨 페이더와 변조 노브를 미세하게 조율했다.
멤버들의 육체적 피로도와 고통의 일부가 도경의 몸으로 밀려들어 왔다.
오른쪽 무릎이 끊어질 듯 아파왔고, 목구멍에서는 피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도경은 멈추지 않았다.
‘더 높이 날아라. 너희의 무대는 여기가 끝이 아니니까.’
무대 위 채아의 눈과 조정실 유리창 너머 도경의 눈이 마주쳤다.
채아는 도경의 등 뒤에서 흐르는 피와, 고통을 참으며 콘솔을 지키는 그의 실루엣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 서린 투지가 무대 위에서 폭발했다.
번쩍이는 레이저 조명 아래, 채아를 중심으로 한 아레스의 칼군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펼쳐졌다. 그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춤이 아니었다. 억압과 차별, 거대 기획사의 더러운 횡포에 맞서 싸우는 청춘들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저항이었다.
클라이맥스 파트. 민우의 스크래치 초고음이 방송국 천장을 뚫을 듯 울려 퍼졌다.
빈티지 신스의 고유 주파수 변조 장치가 만들어낸 배음의 그물망이 민우의 고음을 감싸 안으며, 청중의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와아아아아아—!!”
곡이 끝남과 동시에, 객석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함성과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석의 전문가들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고, 한태만 국장은 조정실 모니터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꿀 무대야.”
한태만이 경탄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생방송 최종 투표 결과 발표 시간.
대형 전광판의 숫자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TK 엔터테인먼트가 뒤에서 아무리 음원 차트를 조작하고 언론 플레이를 펼쳤을지라도, 실시간 문자 투표와 현장 평가단의 마음까지 조작할 수는 없었다.
띡, 띡, 띡, 띡, 띠링—!
최종 점수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 1위: 아레스 (Ares) — 총점 9,980점 ]
전무후무한 기록. 서바이벌 판정 투표 점수 비중 유례없는 최고 지표인 99.8% 달성.
거대 카르텔의 온갖 방해 공작과 음모를 완벽한 실력과 전율의 무대로 정면 돌파해 쟁취한 정당하고도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우승은, 아레스입니다!!”
MC의 외침과 함께 꽃가루가 무대 위로 쏟아졌다.
민우는 주저앉아 눈물을 터뜨렸고, 채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은 트로피를 안아 들고 조정실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강도경의 모습은 없었다.
도경은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콘솔을 붙잡고 있던 손을 풀고 조용히 대기실 복도로 걸어 나왔다. 등 뒤의 통증과 골든핑거의 페널티로 온몸의 감각이 마비될 것 같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마침내 깊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약속의 첫 단추를 채운 순간이었다.
* * *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바로 다음 날 아침.
JS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2층 사무실.
밤새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어깨에 붕대를 감은 도경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책상 위의 팩스기에서 날카로운 수신음이 울리고 있었다.
동시에 도경의 스마트폰 화면으로 포털 사이트의 긴급 속보가 팝업되었다.
[ [속보] 엔터포스 연합, "시장 질서 교란 및 방송 심의 위반 혐의 기획사 배제" 대외 선언문 발표 ] [ 지상파 3사 및 주요 음원 배급망, JS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출연 제재 협약' 가입 공포 ]
팩스기에서 흘러나오는 문서의 상단에는 거대한 붉은색 직인이 찍혀 있었다.
‘대형 기획사 연합 및 지상파 방송 협의회 공동 성명서: JS 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아레스에 대한 전 채널 영구 출연 정지 및 배급 중단 통보.’
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거대 카르텔 엔터포스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전방위적인 목줄 죄기에 나선 것이었다.
도경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