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이거 박자가…… 어디가 정박이에요?”
민우가 데모 CD가 돌아가는 스피커를 가리키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스피커에서는 쇳소리를 닮은 차가운 기계음과 정형화되지 않은 불규칙한 타악기 소리만 불완전하게 잘려 나가고 있었다. 2024년의 홍대 지하 클럽에서나 유행할 법한 극단적인 미니멀 하우스 트랙이었다. 멜로디라고 부를 만한 선율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직 음침하게 내려앉는 베이스 톤과 인간의 성대를 시험하는 듯한 초고음역대의 스크래치 보컬 가이드만 얹혀 있을 뿐이었다.
2014년의 대중에게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불쾌한 소음에 가까웠다. 백현욱이 예능국 내의 연줄을 동원해 아레스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던진 독사과가 분명했다.
“박자를 타려고 하지 마.”
도경이 스피커 볼륨을 줄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곡은 박자를 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박자를 만들어서 대중의 심장에 박아 넣어야 하는 곡이야.”
“하지만 피디님, 이 상태로는 라이브는커녕 무대 위에서 중심을 잡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보컬 라인도 옥타브를 세 번이나 넘나들며 꺾이는데, 숨 쉴 구간조차 없어요.”
리더 채아가 악보를 꽉 쥐었다.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가까스로 되찾은 목소리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 같은 곡이었다. 타 기획사 연습생들이라면 악보를 받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을 난이도였다.
하지만 도경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미 백현욱의 목줄을 죌 첫 번째 칼날이 쥐어져 있었다.
띠리리릉.
타이밍 좋게 도경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SBC 예능국장 한태만이었다. 도경은 민우와 채아에게 눈빛으로 안정을 건넨 뒤, 연습실 구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예, 국장님.”
- 강 피디. 자네가 보낸 메일, 방금 확인했네.
수화기 너머 한태만의 목소리는 벼랑 끝에 선 맹수의 그것처럼 짓눌려 있었다.
- 윤 PD 그 새끼가…… 감히 내 자리를 넘보고 TK 놈들과 밀실에서 그런 추잡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었을 줄이야. 대기발령 조치 내렸네. 오늘 밤 안으로 감사팀에서 검찰 고발 수순까지 밟을 거야. 방송사 밥을 먹은 지 20년인데, 내 등에 칼을 꼽으려던 놈을 자네 덕에 솎아냈군.
4화에서부터 심어두었던 윤 PD의 밀실 뇌물 수수 동향 보고서가 마침내 제 역할을 다한 순간이었다. 아레스의 생방송 무대 마이크를 고의로 꺼뜨려 매장하려 했던 악질적인 테러의 배후. 그 꼬리를 완벽하게 잘라내자, 한태만은 이제 완전히 도경의 배에 승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국장님의 깨끗한 안목에 흙탕물을 뿌리려던 먼지를 털어낸 것이니까요.”
- 고맙네. 하지만…… 자네들에게 내려간 최종 관문 미션 곡은 이미 심의실과 예능국 전체에 공유된 상태라 내가 임의로 교체해 줄 수가 없네. 백현욱이가 아주 교묘하게 손을 써뒀더군. 해외 유명 작곡가가 쓴 ‘아방가르드 팝’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해서 말이야. 이 곡으로 무대에 서서 시청률 1등급 보증 서약을 지키지 못하면, 나로서도 아레스의 데뷔를 전면 취소할 수밖에 없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경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곡을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파괴적인 명곡으로 뜯어고칠 겁니다. 국장님은 무대 심의 규정대로만 공정하게 평가받을 판을 깔아주십시오.”
전화를 끊은 도경의 시선이 연습실 구석, 뽀얗게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어 있던 기계로 향했다.
2010년형 빈티지 신디사이저.
2화에서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을 막아내고 지하 연습실을 사수했을 때, 구석진 창고 보관함에서 찾아냈던 고물 장비였다. 디지털 음원 복제로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특유의 아날로그 질감과 묵직한 구리선 전송 주파수를 가진 아날로그 기기. 특히 이 신디사이저의 우측 하단에 장착된 ‘고유 주파수 변조 노브’는 현대의 정밀한 디지털 튜닝 프로그램조차 흉내 내지 못하는 끈적하고 정교한 베이스 런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도경은 신디사이저 앞으로 다가갔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투박한 주황색 액정 화면이 깜빡이며 기계음을 뱉어냈다.
“민우야, 채아래. 이리 와라.”
도경이 노브를 서서히 돌리기 시작했다.
“2024년의 미니멀 트랙이 대중에게 낯설고 기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 하나야. 귀를 잡아끌 ‘정직한 무게감’이 없기 때문이지. 요즘 세련됐다고 하는 기계음들은 허공을 둥둥 떠다녀. 하지만 여기에 2014년 디스코 풍의 묵직하고 정교한 펑키 베이스 런을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
도경의 손가락이 건반을 눌렀다.
두우웅—!
지하 연습실의 콘크리트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빈티지 신디사이저의 변조 노브에서 흘러나온 주파수가 스피커를 거치며 2024년풍 미니멀 비트의 빈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쪼개지던 폴리리듬이, 묵직한 아날로그 베이스 라인을 만나자 순식간에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극상의 그루브로 변모했다.
“……어?”
민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박자가…… 박자가 들려요. 그냥 들리는 게 아니라, 몸이 멋대로 움직여요.”
“이게 로컬라이징이다.”
도경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웃었다.
“아무리 시대를 앞서간 곡이라도, 대중의 심장 박동 수에 맞춘 베이스가 깔리면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어. 백현욱이 던진 덫을, 우리가 역사의 이정표로 바꾼다.”
그 순간, 도경은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켰다. 미국의 K-POP 매니아 포럼 ‘노스탤지어’의 백도어 트래픽을 감시하던 중, 뜻밖의 이메일 패킷이 인터셉트되었다. 백현욱의 개인 비서가 스웨덴의 거물 신예 작곡가 집단 ‘노르딕 사운드 랩’의 에이전트와 주고받은 미공개 독점 양도 계약서 초안이었다.
[계약 내용: 아레스의 서바이벌 미션 곡 원본 저작권을 TK 엔터테인먼트가 사후 독점 양도받으며, 방송 이후 표절 혐의 제기 시 모든 사법적 권한을 백현욱 대표에게 위임함.]
도경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역시 그랬군.’
백현욱은 아레스가 이 곡을 어떻게든 소화해 내면, 방송 직후 스웨덴 작곡가들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일으켜 아레스를 완전히 매장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승리해도 파멸하는 외통수를 준비한 것이다.
도경은 유출된 계약서 사본과 스웨덴 에이전트의 불법 송금 내역 패킷 데이터를 외장 하드에 차곡차곡 담았다.
‘백현욱, 네가 판 함정이 네 무덤이 될 거다.’
하지만 음모를 분쇄하기 전, 가장 큰 장벽은 무대의 완벽한 완성이었다.
“다시 가자. 동선 맞춘다.”
도경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골든핑거의 능력, ‘미래 음원 싱크로율 감응’을 발동시키는 순간이었다.
눈앞의 공간이 파랗게 얼어붙으며 멤버들의 신체 위에 황금빛 오라가 씌워졌다. 그들이 춤을 출 때마다 관절이 꺾이는 각도와 성대의 피로도가 실시간 그래프로 시각화되어 뇌리로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지독한 등가교환의 법칙이 도경의 머리를 때렸다.
삐이이이이—!
고막을 찢는 듯한 고주파 이명이 고통스럽게 고막을 찔렀다. 이윽고 주위의 모든 소리가 단숨에 소거되었다. 일시적 청각 상실. 전 세계가 물속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완벽한 무음의 세계가 도경을 덮쳤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코끝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
채아가 놀라 도경에게 달려오려 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모양이 ‘피디님!’ 하고 외치고 있음이 보였다.
도경은 손을 뻗어 채아를 제지했다. 손수건으로 코피를 대충 훔쳐내며, 그는 오로지 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신디사이저의 저음 진동 주파수만을 몸으로 느꼈다.
귀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황금빛 오라가 가리키는 안무의 오차는 눈에 보였다. 도경은 수동으로 멤버들의 팔 각도와 발 디딤새를 직접 잡아주며 동선을 교정했다.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 오직 청춘들의 뜨거운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궤적만을 이정표 삼아 지휘했다.
‘내가 무너지면, 이 아이들의 미래도 없다.’
도경은 자신의 생명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감각을 무시한 채, 멤버들과 함께 어둠 속을 나아갔다.
사흘 후, SBC 대회의실.
예능국 심의위원들과 기성 작곡가 단체 대표들, 그리고 임시로 서바이벌 심사를 맡은 음악 전문가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백현욱의 사주를 받은 가요계 원로 작곡가 박만수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비아냥댔다.
“이 곡은 인간이 부를 수 있는 곡이 아니야. 대중성도 전혀 없고, 박자도 엉망진창이지. JS 엔터테인먼트의 아레스인가 하는 애들이 이걸 라이브로 소화한다고? 방송 사고나 안 나면 다행이지.”
“맞습니다. 이건 대중음악에 대한 모독이에요. 이런 괴상한 곡을 최종 미션으로 올린 것 자체가 에러입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도경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로 아레스의 수정된 데모 음원 마스터 CD가 한태만 국장의 손에 들려 있었다.
“불가능한지 가능한지는, 들어보고 판단하시죠.”
도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박만수를 쏘아보았다.
한태만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터 CD를 재생 장치에 넣었다.
치익— 하는 아날로그 노이즈와 함께, 회의실 스피커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난해한 미니멀 기계음이 들리는 듯하더니, 이내 2010년형 빈티지 신디사이저로 가공한 끈적하고 묵직한 디스코 베이스 라인이 아스팔트처럼 단단하게 바닥을 깔았다. 그 위로 민우의 가창력이 폭발했다. 초고음역대의 스크래치 보컬이 기괴한 소음이 아닌, 리드미컬하고 세련된 야성의 포효로 승화되어 스피커를 찢고 나왔다.
쿵! 쿵! 쿵! 쿵!
규칙적이면서도 극도의 그루브를 자랑하는 복합 댄스 곡의 탄생이었다. 미래의 세련됨과 과거의 아날로그적 흥겨움이 절묘하게 얽힌,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미지의 명곡이 회의실 가득 울려 퍼졌다.
“……어, 어떻게?”
비아냥대던 박만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회의실에 있던 다른 음악 전문가들은 자신도 모르게 발끝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불만 가득했던 얼굴들이 경탄과 전율로 물들어갔다.
“이건…… 완벽한 리듬 구조야. 기계적인 소음을 아날로그 베이스로 묶어서 대중에 맞게 완벽하게 튜닝했어. 천재적인 편곡이군!”
한태만 국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이것으로 미션 곡 편곡 심의는 완벽하게 통과다. 반론이 있는 분은 없겠지?”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기성 카르텔의 비아냥을 실력 하나로 짓밟아버린, 통쾌한 사이다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SBC 서바이벌 <넥스트 스타> 생방송 최종 리허설 당일.
화려한 조명과 레이저가 무대 위를 수놓았고, 아레스 멤버들은 완벽하게 튜닝된 반주에 맞춰 리허설 무대에 올랐다.
도경은 무대 아래 콘솔 석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매서운 눈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채아가 중앙 동선으로 이동하며 타이틀곡의 클라이맥스 고음을 준비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찌지직—!
도경의 눈에, 무대 천장 상부의 기하학적 오라 중 일부가 급격하게 붉은색 경고등으로 깜빡이는 것이 포착되었다.
무대 장치를 지탱하고 있던 거대한 리깅 와이어의 나사 결합부가, 허용 한도를 초과해 조금씩 풀리며 쇠사슬이 비틀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열창을 준비하는 채아가 서 있었다.
스태프 중 누군가의 실수, 혹은 백현욱 측의 마지막 발악이었을까.
위잉—!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지탱력을 잃은 묵직한 중계용 무전기와 스틸 고정 장치가 채아의 머리 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채아야, 피해—!!”
소리치는 도경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