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법정 내부 문이 열리고 미래온의 후계자 차현우가 경호원들을 데리고 거만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 들어온다.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은 국내 최대 로펌 태산의 엘리트 변호사 여덟 명이었다. 그들이 안고 있는 가죽 서류 가방에서 묵직한 탐욕의 냄새가 풍겼다.

백진서는 자리에 앉아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기기 온도 32.5도. 정상 범위다. 자신의 심박수 역시 분당 68회로 일정했다. 감정의 동요는 연산을 흐리게 만드는 쓰레기 데이터에 불과했다.

"피신청인 백진서, 대리인 강민희 변호사 참석했습니다."

강민희가 서류를 정리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의 손끝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법정 안의 공기는 무겁고 건조했다. 방청석에는 이미 수십 명의 기자와 업계 관계자들이 들어차 있었다. 미래온이 기획한 여론전의 결과물이었다.

재판장 조형식 부장판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서류를 들추었다.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미래온 측 대리인석에 머물렀다. 편향된 저울의 추가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눈빛이었다.

"신청인 미래온 측, 가처분 신청 요지를 진술하십시오."

태산의 수석 대리인 황보윤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준비된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가리키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피신청인 백진서는 미래온 그룹의 하청업체 근무 시절 취득한 무선 광대역 전송 제어 소스코드를 무단 탈취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성 전자기전의 설비를 인수하여 독자적인 반도체 칩셋을 생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영업비밀 침해이자 특허법 위반입니다. 따라서 본안 판결 전까지 피신청인의 모든 생산 설비 가동과 기술 배포를 금지해야 합니다."

그가 제시한 화면에는 미래온의 등록 특허 번호 'KR-10-202X-XXXXXXX'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소스코드의 유사도 비교 차트가 98.7%라는 붉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방청석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차현우는 턱을 괴고 진서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내 손바닥 안이다'라는 오만이 그 눈빛에 가득했다.

조형식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신청인 측, 소스코드의 유사도가 이토록 높은 것에 대해 소명할 수 있습니까?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신청인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부의 어조는 이미 결론을 내린 듯 차가웠다. 사법부의 권력마저 미래온의 자본 아래 조종당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강민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목소리는 법정의 차가운 벽면을 타고 명확하게 울려 퍼졌다.

"재판장님, 소스코드의 유사도가 98.7%에 달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래온이 등록한 특허 자체가 피신청인 백진서가 과거 작성했던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를 무단 도용하고, 치명적인 오류가 포함된 상태로 조작하여 등록한 사기 특허이기 때문입니다."

법정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황보윤 변호사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반박했다.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해당 특허는 미래온 연구소가 수조 원의 연구 개발비를 투입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입니다. 일개 하청업체 개발자의 코드를 도용했다니, 모함도 분수가 있어야지……."

"도용이 아니라면, 이 코드가 설명되지 않을 텐데요."

강민희가 자신의 태블릿을 법정 스크린에 연결했다.

화면에 복잡한 C++ 기반의 소스코드가 나열되었다. 그것은 미래온이 자신들의 핵심 자산이라 주장하는 무선 제어 시스템의 원천 코드였다.

진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망막 위로 푸른색 시스템 콘솔이 활성화되었다.

[리얼리티 디버거 가동] [대상: 미래온 등록 특허 소스코드 'KR-10-202X-XXXXXXX'] [가용 RAM: 10.5 GB -> 8.2 GB] [뇌 연산 장치 과부하율: 28%]

안구 뒷부분에서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단기 기억 영역의 일부가 흐려지는 감각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성적인 계산 능력은 오히려 극대화되었다.

진서는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통해 미래온 특허 코드의 치명적인 모순점을 실시간으로 컴파일했다.

[디버깅 시작: 메모리 누수(Memory Leak) 및 역방향 백도어 세그먼트 감지] [검증 코드 주입 완료]

진서가 강민희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신호였다.

강민희가 스크린의 특정 라인을 가리켰다.

"미래온의 원천 특허 코드 제407라인부터 제415라인을 봐주십시오. 이 부분은 네트워크 대역폭을 강제로 감쇄시키는 특수한 주파수 알고리즘을 담고 있습니다. 미래온은 이것을 효율적인 대역 제어 기술이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해저 광케이블의 신호 전송 효율을 고의로 떨어뜨려 트래픽을 독점하려는 대기업의 불법 감쇄 알고리즘입니다."

그 순간, 차현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강민희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미 미래온 아시아 지사의 해저 광케이블 신호 감쇠 비율 기록 보고서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기록된 강제 감쇠 주파수의 패턴은 지금 미래온이 자신들의 독점 특허라고 주장하는 저 코드의 매개변수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복선이 실체화되어 법정의 공기를 찢었다. 3화에서 진서의 손에 들어왔던 그 비밀 보고서가 마침내 미래온의 목을 죄는 올가미로 변한 것이다.

"게다가."

강민희의 목소리가 한 층 더 차가워졌다.

"이 코드에는 원작자만이 남길 수 있는 특수 서명이 숨겨져 있습니다. 소스코드의 컴파일 시 생성되는 메타데이터의 해시 값을 역추적하면, 최초 작성일은 3년 전이며 작성자의 시스템 고유 ID는 백진서 대표의 개인 단말기 하드웨어 주소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미래온은 이를 복사하여 특허를 출원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제어할 수 없는 오류 코드까지 그대로 복사해 넣었습니다."

황보윤 변호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유사성일 뿐……!"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강민희가 스크린의 실행 버튼을 눌렀다.

"미래온의 특허 코드는 치명적인 메모리 오버플로우 취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작자인 백진서 대표의 허가 없이 해당 코드를 무단으로 상용 서버에 적용할 경우, 시스템은 스스로 붕괴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지금 미래온의 핵심 금융 인프라망이 이 기술을 기반으로 구동되고 있지 않습니까?"

진서가 마음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 2. 1.

[디버깅 명령 실행: 'Null Pointer Exception' 강제 주입] [가용 RAM: 8.2 GB -> 6.1 GB] [경고: 가벼운 이명 현상 발생 가능]

귀에서 삐- 하는 고주파음이 들렸지만 진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순간, 미래온 측 법무팀의 태블릿과 노트북 화면이 동시에 파랗게 질려버렸다. 블루스크린이었다.

동시에 법정 내부의 중계 화면에 미래온 원천 특허 기술의 가상 컴파일 결과가 나타났다. 수천 개의 에러 메시지가 붉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ERROR: Invalid Memory Access in 'MiraeOn_Core_Driver'] [ERROR: Patent Source Code Is Corrupted] [SYSTEM: 컴파일 실패. 해당 소스코드는 기술적으로 구현 불가능한 '사기성 코드'로 판명됨]

법정 안이 발칵 뒤집혔다.

기자들이 일제히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속보가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조형식 재판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 정도로 명백하고 압도적인 기술적 증거 앞에서는 사법부의 그 어떤 편향된 권력도 미래온을 비호할 수 없었다. 법리적 판단을 넘어, 이 기술이 사기라는 사실이 실시간으로 만천하에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것은……."

재판장이 말을 더듬었다.

차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값비싼 맞춤 슈트 자락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백진서……!"

차현우가 이를 갈며 진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진서는 그 오만한 자본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자신의 망막에 떠오른 '경영 대장 시스템'의 수치 변화에 고정되어 있었다.

[경영 대장 시스템 업데이트] [보상: 미래온 특허 무효화 성공 및 기술적 신뢰도 획득] [실시간 자산 변동 내역] | 항목 | 변동 전 | 변동 후 | 증감 | | --- | --- | --- | --- | | 기술 특허 가치 | 15,000,000,000 원 | 85,000,000,000 원 | + 700% | | 미래온 주가 | 245,000 원 | 182,000 원 | - 25.7% | | 예상 수수료 수익 | 0 원 | 12,000,000,000 원 | + 120억 원 |

[평가: 시장 독점력을 지닌 기술적 권위 확보 완료]

단 한 번의 판결로 미래온이 자랑하던 수조 원 가치의 원천 특허는 한순간에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 주식 시장의 공룡인 미래온의 주가는 끝을 모르고 대폭락하기 시작했다.

"신청인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합니다."

조형식 재판장이 떨리는 손으로 의사봉을 두드렸다.

탕! 탕! 탕!

"또한 피신청인 측이 제출한 특허 무효 소명 자료의 신빙성이 인정되므로, 본 재판부는 해당 특허에 대한 효력 정지 및 특허청으로의 무효 심판 청구 이송을 결정합니다."

완벽한 승리였다.

황보윤 변호사를 비롯한 태산의 법무 보좌단은 당황하여 서류 더미를 허둥지둥 가방에 쑤셔 넣었다. 서류 몇 장이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주울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도망치듯 퇴장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패잔병 그 자체였다.

차현우는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들어올 때의 오만함을 완전히 잃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진서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용 RAM: 6.1 GB -> 7.5 GB (회복 중)]

뇌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갔다.

그때, 진서의 시선이 방청석 맨 뒷줄의 구석진 자리에 머물렀다.

낡은 회색 코트를 입은 중년의 사내가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다른 기자들이나 관계자들처럼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다.

진서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경고등이 명멸했다.

[미지의 고주파 신호 감지] [프로토콜 분석: 양자 얽힘 기반 초고속 백도어 프로토콜 흔적 감지] [추적 노드: 방청석 ID 'H-907']

진서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저 백도어 프로토콜의 특수 주파수 흔적은 5화에서 해커 노아름이 자신의 시스템에 침투하려 할 때 남겼던 것과 동일한 구조였다. 노아름의 배후, 혹은 그녀가 사용하던 툴의 원천 기술이 저 사내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진서는 디버거의 렌즈를 극도로 미세하게 조정하여 사내가 소지한 특수 단말기의 패킷을 가로챘다.

[단말기 마스터 레지스트리 분석 중……] [경고: 국가 정보기관 극비 재난 통제망(K-GNS)의 마스터 암호 키 단서 탐지] [데이터 보안 등급: 극비 (Class-S)]

'국가 정보원.'

진서는 사내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했다. 국가 정보원의 정보 요원, 한성태였다. 그가 보유한 극비 재난 통제망의 마스터 레지스트리 유출 단서가 진서의 시스템 내부에 뚜렷한 복선으로 심어졌다.

강민희가 서류 가방을 닫으며 진서에게 다가왔다.

"대표님, 성공입니다. 미래온의 특허가 무효화되었으니, 이제 대성 전자기전 공장의 무선 칩셋 생산 라인을 가동하는 데 법적 걸림돌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은 이미 법정 문을 나서고 있는 한성태의 뒷모습에 가향해 있었다. 감정과 연민이 배제된 진서의 뇌는 이미 다음 비즈니스의 비용 대비 효율을 계산하고 있었다.

국가 정보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자신을 국가의 도구로 부리거나 혹은 제거하려 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진서에게 국가란 그저 규모가 조금 큰 거래처에 불과했다.

"돌아가죠."

진서가 차갑게 말했다.

두 사람이 법정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법원의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복도 구석, 대리석 기둥 뒤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와 진서의 앞을 가로막았다.

회색 코트의 사내, 한성태였다.

그는 담배갑을 만지작거리며,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눈빛으로 진서를 응시했다. 은근한 압박감이 복도 전체를 짓눌렀다.

"백진서 씨. 제법이더군. 대기업 하나를 아주 손쉽게 요리했어."

한성태의 목소리는 낮고 탁했다.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이 방금 무너뜨린 그 특허는 국가 안보 자산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거든. 미래온의 해저 광케이블 망은 국가 비상 통신망의 일부요. 그걸 건드린 건 단순한 기업 간의 싸움이 아니라,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 행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가 진서의 코앞까지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눈빛에 서린 살기가 공기를 얼려버릴 듯 차가웠다.

"개인의 천재성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날 때,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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