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끼이익!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찢어지는 소리가 대성 전자기전 공장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검은색 제네시스 세단 세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멈춰 섰다. 차 문이 동시에 열리고, 칼날같이 날이 선 차콜 그레이 슈트를 입은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법원의 직인이 찍힌 서류 봉투와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공장 메인 컨트롤러의 가동 스위치를 올린 지 정확히 1분 45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선두에 선 사내가 포켓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미래온 그룹 전담 로펌, 법무법인 '태평'의 수석 파트너 변호사 김성수입니다. 백진서 씨, 그리고 강민희 변호사님도 여기 계시는군요."

김성수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태블릿 화면을 진서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동시에 진서의 개인 노트북 화면 오른쪽 하단에 메일 수신 알림이 요란하게 깜빡였다.

[수신: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민사부 - 임시 가압류 및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 결정 서송]

"공장 가동을 시작하자마자 서버 신호가 잡히더군요."

김성수가 서류 봉투를 진서의 책상 위에 툭 던졌다.

"귀하가 가동한 대성 전자기전의 다중 데이터 변조 라인은 미래온의 원천 특허인 '고효율 다중 데이터 주파수 변조 제어 시스템'을 무단 도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본 공장의 모든 생산 설비 및 원자재에 대한 임시 가압류 집행을 통보합니다. 지금 즉시 가동을 중지하십시오."

공장 가동 스위치를 올리자마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온 소송의 덫. 미래온은 진서가 이 공장을 인수하고 재가동할 순간만을 덫을 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진서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후 3시 14분.

그의 심박수는 분당 62회로 극히 안정적이었다. 감정의 동요는 사치였다. 오직 뇌 속의 연산 장치만이 차갑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압류라."

진서가 낮게 읊조리며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 변호사님."

"예, 대표님."

옆에 서 있던 강민희가 이미 서류 봉투를 찢어 내용물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움직였다.

"미래온이 청구한 특허 번호는 KR-10-202X-0145281입니다. 청구 범위 제1항부터 제5항까지가 우리 공장의 신호 제어 보드 설계와 완벽히 일치하도록 조작되어 있네요. 전형적인 특허 알박기 및 기획 소송입니다."

강민희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분노가 서려 있었지만, 진서의 목소리는 오히려 기계처럼 건조했다.

"시간은 얼마나 벌 수 있습니까?"

"집행관들이 물리적으로 봉인을 붙이기 전까지 법리적 소명 기한은 앞으로 48시간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들고 온 가처분 결정문은 즉시 효력이 발생합니다. 공장을 멈추지 않으면 시간당 수천만 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됩니다."

김성수가 턱을 치켜세우며 거만한 태도로 나섰다.

"법대로 하시죠, 백진서 씨. 미래온의 기술을 훔친 대가는 뼈아플 겁니다. 대기업의 특허 장벽은 당신 같은 하청업체 출신이 넘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요."

진서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푸른빛의 디지털 격자로 물들기 시작했다.

'리얼리티 디버거, 기동.'

[시스템: 리얼리티 디버거(Reality Debugger) 활성화] [가용 RAM: 14.0 GB] [타깃 분석: 특허 번호 KR-10-202X-0145281 (미래온 소유 데이터 변조 시스템)]

진서의 시야에 김성수가 들고 있는 서류와 태블릿의 픽셀 단위 정보가 0과 1의 이진 코드로 분해되어 나열되었다. 특허청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미래온의 특허 원부 코드가 네트워크 망을 타고 진서의 뇌로 다이렉트 링크되었다.

`class MiraeOn_Patent_0145281:` ` def __init__(self):` ` self.frequency_multitasking = True` ` self.error_correction_rate = 0.9998` ` self.encryption_key_depth = 256`

진서는 미래온이 등록한 특허의 소스코드를 한 줄씩 짚어 내려갔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무선 주파수 변조 알고리즘이었지만, 본질은 진서가 과거 미래온 하청 시절 개발했던 초기 프로토타입의 복사본에 불과했다. 그들이 강탈해 간 코드였다.

진서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원천 특허라니, 과분한 단어를 쓰는군요."

'디버깅 실행. 특허 소스코드 내 주파수 동기화 함수 영역의 오버플로우 한계값을 무제한으로 조작한다.'

[시스템 경고: 특허청 원부 소스코드 실시간 디버깅 시 RAM 3.5 GB 소모] [가용 RAM: 14.0 GB -> 10.5 GB] [부작용: 가벼운 이명 및 안구 건조 발생]

삐이-

귓가에 날카로운 고주파 소음이 스쳐 지나갔다. 진서는 눈을 깜빡이지 않은 채 마우스를 움직였다.

`# Modifying Patent Source Code` `# target: self.error_correction_rate` `# self.error_correction_rate = 0.9998 -> 0.0000 (Force Zero)` `# target: self.frequency_multitasking_logic` `# inject_infinite_loop_on_null_pointer()`

수정이 완료된 순간, 특허청 서버에 등록된 미래온의 특허 명세서 원본 코드가 실시간으로 변조되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특허가 아니라, 특허청 전산망에 등록된 '수학적 알고리즘의 논리적 무결성' 자체가 붕괴된 것이다.

이제 이 특허는 작동하는 순간 시스템 전체를 다운시키는 '치명적 에러 코드'를 내포한 쓰레기 문서에 불과했다. 특허로서의 실효성 자체가 원천적으로 상실된 상태. 즉, '무효 사유'가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김성수 변호사님."

진서가 노트북 화면을 돌려 김성수에게 보여주었다.

"귀사가 주장하는 특허의 핵심 청구항 제1항, 다중 주파수 동기화 알고리즘의 수학적 증명 식을 보시죠. 이 알고리즘은 변수가 '0'에 수렴할 때 무한 루프에 빠져 전체 시스템의 오버플로우를 유발하는 치명적인 연산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결함 있는 코드는 특허법 제29조 제1항에 따른 '산업상 이용 가능성'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원천적으로 무효인 특허라는 뜻입니다."

김성수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굳어졌다.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우리 특허는 이미 3년 전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 등록된..."

"직접 검증해 보시겠습니까?"

진서가 엔터 키를 눌렀다.

노트북 화면에 특허청 공식 웹사이트의 특허 정보 검색 창이 떴다. 김성수가 침을 삼키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특허 명세서의 소스코드 검증 시뮬레이터 탭을 누르자, 새빨간 에러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Error: DivisionByZero in Frequency Alignment Module. System Halted.] [상태: 기술적 구현 불가능 (Invalid Patent Claim)]

"이, 이게 무슨..."

김성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가 들고 있던 태블릿의 특허 관련 문서 파일들까지 동시에 동기화 오류를 일으키며 강제 종료되었다.

"특허에 치명적인 하자가 존재하네요."

옆에서 지켜보던 강민희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진서가 어떻게 단 몇 초 만에 특허청 서버의 오류를 잡아내고 이를 증명했는지 검증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즉각 법률가로서의 본능을 발휘했다.

"김 변호사님. 특허법상 실현 불가능한 기술을 바탕으로 법원에 가압류를 신청한 행위는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악의적인 업무방해죄로 형사 고소 대상입니다. 특히 대성 전자기전의 가동을 방해하여 발생하는 당사의 시간당 손실 약 4,500만 원에 대해서는 귀 로펌과 미래온 그룹에 연대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소송 대리인으로서 이 사실을 인지하셨습니까?"

강민희의 서늘한 목소리가 사무실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는 품 안에서 만년필을 꺼내 가압류 서류 위에 붉은 선을 그었다.

"우리는 즉시 서울중앙지법에 가압류 이의 신청 및 집행정지 신청서를 제출하겠습니다. 증거는 방금 확인하신 미래온 특허의 원천적 기술 결함입니다. 법원에서 뵙죠."

김성수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등 뒤에 선 집행관들의 눈치를 보던 그는, 결국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뒤로 물러섰다.

"……조사해 보고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가자."

그들이 들이닥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초라한 모습으로 공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강민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진서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외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백 대표님. 방금 그 특허 분석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미래온의 보안망을 뚫고 특허 원부의 에러를 실시간으로 찾아내다니…… 법조계에 10년을 몸담았지만 이런 반론 시나리오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성적인 계산의 결과일 뿐입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진서는 건조하게 대답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경영 대장 시스템 현황] | 구분 | 상세 내용 | 수치 및 상태 | | :--- | :--- | :--- | | 보유 자산 | 대성 전자기전 공장 부지 및 설비 | 42,000,000,000 원 | | 가용 RAM | 연산 장치 잔여 용량 | 10.5 GB / 16.0 GB | | 위협 요소 | 미래온 특허 가처분 소송 | 무력화 진행률 85% |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미래온의 차현우가 겨우 이 정도로 물러설 자가 아니라는 건 잘 아실 텐데요."

진서의 말에 강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특허가 막히면 그들은 금융 압박이나 사설 해킹 부대를 동원할 겁니다. 이미 노아름의 백도어 침투 시도도 있었고요."

진서는 책상 서랍에서 낡은 USB 하나를 꺼냈다. 3화에서 확보해 두었던 가치 있는 전리품이었다.

'미래온 아시아 지사의 해저 광케이블 신호 감쇠 비율 기록 보고서.'

"이걸 사용할 때가 되었군요."

진서가 USB를 노트북에 꽂았다. 화면에 수많은 주파수 그래프와 숫자들이 나열되었다.

"이게 뭡니까?"

강민희가 다가와 물었다.

"미래온이 아시아 전역의 트래픽을 독점하기 위해 태평양에 깔아둔 해저 광케이블의 물리적 감쇠 데이터입니다. 그들은 이 신호 감쇠를 숨기기 위해 규정 대역폭 이상의 고출력 주파수를 불법으로 송출하고 있습니다. 인근 국가들의 전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죠."

진서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이 불법적인 인프라 유지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차현우는 개인 소유의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불법 주식 초단타 거래를 감행해 왔습니다. 소위 말하는 '자금 세탁 및 시세 조종'입니다."

노트북 화면에 싱가포르의 한 유령 회사 명의로 개설된 해외 주식 계좌의 거래 내역이 실시간으로 디버깅되어 나타났다.

[시스템: 해외 불법 주식 거래 패턴 분석 완료] [대상: 차현우 차명 계좌 (Paper Company: Vesper Ltd.)] [누적 불법 거래액: 142,500,000 USD (한화 약 1,900억 원)]

강민희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성적인 그녀조차 이 엄청난 액수와 명백한 범죄의 증거 앞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걸 법정에 터뜨리실 생각인가요?"

"아닙니다."

진서가 고개를 저었다.

"법정은 보여주기 식 무대일 뿐입니다. 이 데이터 중 일부를 미래온의 이사회와 주요 주주들에게 익명으로 먼저 유출할 겁니다. 차현우의 독단적인 소송전 때문에 자신들의 불법 비자금 계좌가 통째로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부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날 테니까요."

"철저하시군요. 차현우의 목줄을 쥐고 흔들겠다는 뜻이군요."

"거래의 기본은 상대방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인질로 잡는 것입니다. 차현우에게 그것은 미래온의 승계권과 자금줄이죠."

진서는 마우스를 클릭해 데이터를 암호화된 노드를 통해 미래온 사외이사들의 개인 메일함으로 발송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

사흘 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1민사부 법정 앞.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복도에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미래온 측이 신청한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에 대한 심문 기일이었다.

강민희는 정갈한 블랙 슈트 차림으로 서류 가방을 든 채 진서의 곁을 지켰다.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대표님, 준비는 끝났습니다. 특허 무효 소명 자료와 수식 검증서, 그리고 미래온의 불법 광케이블 감쇠 보고서까지 법원에 제출할 대기 상태입니다. 상대가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오든 법리적으로는 우리가 완승입니다."

진서는 묵묵히 법정의 육중한 나무 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가용 RAM: 10.5 GB] [경고: 상대측의 돌발적인 기술적 위협 감지 시 연산 과부하 대비 필요]

그때였다.

복도 저편에서 정연한 구두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호원 네 명을 대동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이탈리아제 맞춤 슈트, 그리고 타인을 배터리 수준의 소모품으로밖에 보지 않는 오만한 눈빛.

미래온 그룹의 유력한 후계자, 차현우였다.

그는 진서의 앞에 멈춰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백진서 씨. 오랜만이네. 하청업체 구석에서 먼지나 먹던 쥐새끼가 제법 큰 집을 구했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습니다."

차현우의 목소리에는 뼈를 깎는 듯한 거만함과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법원에 제출된 특허 무효 자료 따위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운 태도였다.

그가 진서의 귓가에 고개를 숙이며 낮게 속삭였다.

"내 특허를 좀 건드렸던데…… 과연 법정이 그 가짜 코드를 진짜로 인정해 줄까? 대한민국 법은 진실이 아니라, 권력이 만드는 거거든."

법정 내부의 문이 열리고, 법원 경위가 외쳤다.

"민사 제51부, 심문 시작합니다. 양측 대리인 및 당사자 입장해 주십시오."

차현우가 거만한 웃음을 지으며 먼저 법정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진서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빛의 코드가 무서운 속도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