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붉은 해골 마크가 모니터의 조도를 강제로 끌어올렸다.

방안이 벌겋게 물들었다.

"찾았다, 쓰레기 코더. 네가 만든 방화벽 꽤 맛있네?"

액정에 박힌 붉은색 좌표가 선명했다. `37.5665, 126.9780`.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빌딩이었다.

강민희는 계약서를 쥔 채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반사되었다.

"해킹입니까?"

"침입 시도입니다."

진서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동요는 없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살폈다. 기기 온도는 섭씨 36.5도. 정상 범위였다. 심박수 역시 분당 65회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서는 키보드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SYSTEM: REALITY DEBUGGER ACTIVE] [Target: Connection Port of 'NOAH' (IP: 211.234.110.92)] [RAM Usage Status: 4.2GB / 16.0GB]

진서의 망막에 세계가 코드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노아름의 패킷은 엄청난 속도로 우회 경로를 생성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보안 장비로는 추적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가상 사설망(VPN)을 7단계로 겹쳐 쓰고 있었으며, 매 밀리초마다 프록시 서버의 위치를 전 세계로 분산시키는 정교한 세션 하이재킹 기법이었다.

그러나 진서의 눈에는 그 가상 경로의 종착점에 연결된 물리적 랜카드와 I/O 컨트롤러의 고유 MAC 주소가 보였다. 아무리 논리적 주소를 속여도, 전기를 소모하는 물리 하드웨어의 흔적은 지울 수 없었다.

"포트 백도어 차단 및 물리 과부하 명령 전송."

진서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건조한 타건음이 통제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 target_device = select_hardware_by_mac("00:1A:2B:3C:4D:5E")` `# target_device.io_controller.voltage = MAX_LIMIT` `# target_device.usb_ports.lock_state = TRUE` `# target_device.network_adapter.power_grid.overload()`

노아름이 사용하는 메인 포터블 디바이스의 USB 포트와 충전 단자에 강제 과전류를 인가하는 코드였다.

물리적인 제어를 통해 해커의 장비를 먹통으로 만드는 전술이었다. 소프트웨어 차원의 방어막을 뚫는 데 집중하느라 하드웨어 자체의 취약점을 노출한 해커에게 날리는 치명타였다.

*파지직!*

원격지의 장비에서 발생한 미세한 전류 스파크 소리가 데이터 스트림을 타고 진서의 귀에 전해지는 듯했다.

[SYSTEM: SYSTEM CORE LOCKDOWN COMPLETED] [Target Device: Port level physical block active] [Result: Target network traffic dropped to 0 bps]

"막았습니다."

진서가 손가락을 떼며 말했다.

"하지만 상대가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장비를 교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20초 내외일 겁니다."

그 짧은 찰나, 진서의 망막에 경고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SYSTEM: ANALYSIS OF UNKNOWN TRAFFIC PATTERN] [Detected Protocol: Quantum-Entangled Sub-carrier] [Frequency Band: 15.42 GHz] [Signal-to-Noise Ratio: 45dB (Extremely High)]

추적을 차단하려는 노아름의 시스템에서 기이한 신호가 포착된 것이었다.

단순한 패킷 전송이 아니었다. 양자 얽힘 현상을 모방한 초고속 데이터 주파수였다. 미래온 아시아 지사의 해저 광케이블 신호 감쇠 비율 기록 보고서에서나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차세대 군용 암호 통신 규격에 근접한 기술이었다.

진서는 이 주파수의 파형을 정밀 분석했다.

`15.42GHz` 대역.

이것은 노아름이 독자적으로 심어둔 백도어의 특수 주파수 흔적이었다. 진서는 이 파형의 레지스트리 값을 추출하여 자신의 하드디스크 깊숙한 곳에 암호화하여 저장했다.

'쓸 만한 도구다. 나중에 이 주파수를 역이용하면 노아름의 본거지를 통째로 장악할 수 있다.'

[SYSTEM: HIGH-FIDELITY SPECTRUM ANALYZED] [Frequency Profile: 15.42 GHz (Quantum Entanglement Protocol)] [Status: Encrypted & Logged in Secure Storage]

"좌표 분석이 끝났습니다."

진서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서울 중구 을지로 3가. 대륭빌딩 지하 2층입니다."

강민희가 자신의 태블릿을 켜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정장 깃이 가볍게 흔들렸다.

"대륭빌딩이군요. 제가 잘 아는 건물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이 건물은 현재 미래온 파이낸셜이 소유권을 두고 소송 중인 부실 자산입니다. 관리 주체가 모호해서 사실상 방치된 구역이죠. 노아름이라는 해커가 숨어들기에는 최적의 음지입니다."

민희는 망설임 없이 법원 경매 및 저당권 설정 조회를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을 빠르게 미끄러졌다. 눈동자에는 오직 비즈니스적인 계산만이 가득했다.

"신탁 회사 명의로 임시 처분 가압류가 걸려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법무법인을 통해 미납된 공과금과 관리비를 대위변제하는 조건으로 즉각 점유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리스 비용은 월 40만 원 선입니다."

"진행하십시오. 그곳을 우리의 첫 번째 물리적 기지로 삼습니다."

"알겠습니다. 즉석에서 전자 계약 및 법무 대리 절차를 밟겠습니다. 미래온 측이 법적 대응을 하려면 최소 72시간이 걸리는 허점입니다."

민희가 전화를 걸어 몇 가지 법률적 조치를 단호한 어조로 지시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적인 감정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오직 법률적 실효성과 절차적 완벽함만이 존재했다.

정확히 3분 후, 진서의 화면에 경영 대장 시스템의 갱신 창이 떴다.

| 항목 | 상세 정보 | 변동 자산 | | :--- | :--- | :--- | | 물리 인프라 | 을지로 대륭빌딩 B2 (독점 점유) | -12,000,000 KRW (보증금) | | 법률 방어 | 강민희 변호사 대리 집행 성공 | Grade A 유지 | | 종합 평가 | 인프라 확보율 12% 증가 | 가치 환산 불가 |

"계약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그 지하 공간은 법적으로 저희의 사유지입니다. 무단 침입자는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습니다."

민희가 태블릿을 접으며 말했다.

"그럼 직접 확인하러 가시죠."

진서가 코트를 집어 들었다.

두 사람은 신속하게 이동했다. 을지로로 향하는 차 안에서 진서는 끊임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며 노아름의 디바이스 상태를 모니터링했다.

물리적으로 잠겨버린 노아름의 메인 노트북은 여전히 먹통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가 보유한 서브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활성화되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진서가 말했다.

"탈출을 시도하는군요."

"대륭빌딩 지하 주차장은 출구가 하나뿐입니다."

민희가 가속 페달을 밟으며 대답했다.

차량은 15분 만에 대륭빌딩 지하 주차장 입구에 도달했다.

노후된 빌딩의 주차장은 음산했다. 천장에서는 정체 모를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형광등은 주기가 맞지 않는 주파수로 깜빡였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통로는 좁고 가팔랐다.

진서와 민희가 차에서 내렸다.

지하 2층 구석, 녹슨 철문이 달린 간이 배전실 겸 창고의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 다급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검은색 후드티를 깊게 눌러쓴 왜소한 체구의 여성이 장비가 가득 담긴 백팩을 짊어지고 나오고 있었다.

노아름이었다.

그녀는 진서와 민희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후드 아래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미친... 벌써 왔다고?"

노아름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옆에 주차되어 있던 구형 아반떼 차량의 운전석으로 뛰어들었다.

*콰르릉!*

구형 아반떼의 엔진이 거칠게 요동치며 시동이 걸렸다.

그녀는 후진 기어를 넣고 타이어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량의 후미가 기둥을 스칠 듯이 비껴갔다.

"막아야 합니다."

민희가 앞으로 나서려 했다.

"가만히 계십시오."

진서가 그녀의 팔을 가볍게 제지했다.

그의 손에는 이미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화면에는 리얼리티 디버거의 제어 콘솔이 구동 중이었다.

[SYSTEM: REALITY DEBUGGER ACTIVE] [Target: Delung Building B2 Parking Gate & Hyundai Avante ECU] [RAM Usage Status: 9.8GB / 16.0GB]

뇌에 묵직한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관자놀이 부근이 찌릿하며 가벼운 두통이 발생했다.

연산 장치(RAM)의 과부하 전조증상이었다.

'최적화 연산 실행. 최소 비용으로 대상을 무력화한다.'

진서는 주차장 전체의 전력 배선도와 차량의 전기 계통을 겹쳐 보았다. 차단기 게이트를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차량 자체의 전자제어장치(ECU)를 직접 간섭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었다.

`# target_gate = get_object_by_id("gate_01")` `# target_car = get_object_by_id("car_avante_9982")` `# target_gate.barrier.drop()` `# target_car.ecu.ignition_relay.voltage = 0`

진서의 손가락이 화면을 두 번 두드렸다.

*쾅!*

주차장 출구의 철제 차단기 바가 강제로 내려앉았다. 거의 동시에, 출구를 향해 시속 40킬로미터로 돌진하던 아반떼의 엔진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엔진 오일이 타는 냄새가 주차장에 퍼졌다.

차량의 모든 계기판 불빛이 꺼졌다. 헤드라이트도, 미등도 완전히 암전되었다.

노아름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동력을 잃은 차량은 관성에 의해 차단기 바 바로 앞 10센티미터 지점에 멈춰 섰다.

"비프- 비프- 회수되지 않은 차량입니다."

주차장 관리 시스템의 무미건조한 기계음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오직 아반떼의 본넷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열기만이 공간을 채웠다.

진서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구두 굽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규칙적으로 부딪혔다.

"차에서 내리십시오, 노아름 씨."

진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당신은 방금 사유지 무단 침입 및 당사 요새 시스템에 대한 불법 해킹 시도를 저질렀습니다. 법률에 의거해 현 시간부로 신병을 인도받겠습니다."

조용해진 지하 주차장.

아반떼의 거친 운전석 문이 난폭하게 열렸다.

*쾅!*

문이 열리며 흘러나온 열기 속에서, 노아름이 내렸다.

그녀의 단발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오른쪽 눈가에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특수 모니터링 안경이 걸쳐져 있었다. 안경의 렌즈에는 여전히 녹색의 코드가 어지럽게 흐르고 있었다.

노아름은 안경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그녀의 눈동자에 독기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차 문을 걷어차듯 닫으며 진서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네가... 그 쓰레기 코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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