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위이이이이이잉!*

지하 통제실의 천장을 붉게 물들인 경보등이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날카로운 경보음이 밀폐된 콘크리트 벽면을 두들기며 고막을 찔렀다. 메인 모니터 화면은 이미 핏빛으로 변해 있었다.

[WARNING: EXTERNAL INTRUSION DETECTED] [Source IP: Unknown (Encrypted Quantum Tunneling)] [Target: Main Core Registry] [Port: 22 (SSH) - Brute Force Bypass in Progress]

진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왼팔을 들어 올렸다. 스마트워치의 센서가 가리키는 내부 기기 온도를 확인했다.

[Device Temp: 34.2°C]

안정적이다. 심박수 역시 분당 68회로 차분했다. 침입자는 아펙스 테크의 서버가 가동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터널을 뚫고 들어왔다. 그것도 일반적인 경로가 아니었다. 양자 암호화 터널링. 시중의 보안 장비로는 감지조차 불가능한 고차원적 침투 방식이었다.

"빠르군."

진서의 눈동자에 푸른빛의 소스코드가 투사되었다. 리얼리티 디버거가 활성화되며, 서버 내부로 휘몰아치는 패킷의 흐름이 실시간 텍스트로 변환되어 허공에 나열되었다. 초당 수십만 번의 무차별 대입 공격(Brute Force). 메인 레지스트리의 보안 키를 깨부수기 위해 쏟아지는 데이터의 폭풍이었다.

진서는 키보드 위에 손가락목을 올렸다. 뇌의 연산 영역이 강제로 확장되는 감각이 머리 뒤편을 자극했다. 현재 가용한 뇌의 연산 장치(RAM)는 단 16GB. 무리한 현실 변조나 과도한 광역 디버깅은 단기 기억 상실이나 심각한 인지 장애를 유발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야 했다.

"디버깅 대상 지정."

진서가 읊조렸다. 대상은 침입 경로인 22번 포트와 가상 방화벽 시스템. 허공에 투명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 리얼리티 디버깅 시스템 (Reality Debugger v1.02) | | :--- | | **현재 가용 RAM**: 16.0 GB | | **대상 프로세스**: iptables_firewall.sys (물리 방화벽 제어 엔진) | | **디버깅 코드 주입**: `while(true) { packets.verify(); limit_rate(1000000); }` | | **예상 RAM 소모량**: 4.2 GB | | **부작용 발생 확률**: 0.03% (안전 수준) |

"실행."

진서의 손가락이 엔터 키를 가볍게 눌렀다.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내리는 기분과 함께, 망막 너머의 코드가 재컴파일되었다.

*파지직!*

메인 서버 랙의 물리적 냉각팬이 굉음을 내며 돌기 시작했다. 초당 100만 회. 인간의 하드웨어로는 불가능한 연산 수치가 방화벽 위에 덧씌워졌다. 침입자가 들이붓던 백도어 패킷들이 거대한 논리적 장벽에 가로막혀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막는 것으로는 부족해."

진서는 공격을 튕겨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들어온 공격자들의 실시간 침입 로그 파일들을 격리 공간(Sandbox)으로 유인했다. 들어오는 문은 열어두되, 나가는 문을 완전히 용접해 버리는 논리 회로의 재구성이다.

*탁, 탁, 탁.*

키보드 타건음이 냉랭한 통제실을 채웠다. 공격 서버는 자신들이 여전히 시스템을 해킹하고 있다고 착각하겠지만, 실상은 진서가 파놓은 가상 디렉토리 안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중이었다. 공격자의 접속 IP와 전송 프로토콜의 패킷 구조가 고스란히 진서의 격리 로그 파일에 축적되기 시작했다.

[SYSTEM INFO: INTRUDER LOG CAPTURED] [File Name: temp_intruder_leak.log] [Status: Isolated (100% Secured)]

"잡았다."

진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로그 파일에 기록된 패킷의 특수 주파수 흔적. 이건 평범한 크래커의 솜씨가 아니었다. 양자 얽힘에 기반한 초고속 백도어 프로토콜. 언젠가 보았던 유명한 블랙햇 해커의 시그니처와 일치했다. 진서는 로그 파일을 개인 드라이브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지금 당장 역추격하기에는 뇌의 연산 자원이 아까웠다. 더 시급한 비즈니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서는 인터콤의 다이얼을 돌렸다.

"올라오십시오."

짧은 지시였다. 3분 뒤, 기밀 통제실의 두꺼운 철문이 스르륵 열렸다. 구두굽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검은색 칼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든 한 여성이 걸어 들어왔다. 강민희 변호사. 단정하게 묶은 머리칼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눈빛이 그녀의 성정을 대변했다. 그녀는 사방에서 회전하는 붉은 경보등과 기계음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황이 급박해 보이는군요, 백진서 씨."

민희가 진서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녀의 어조는 비즈니스 그 자체였다. 감정적인 동요나 안부 인사는 사치라는 듯했다.

"차단 조치는 끝났습니다. 대화에 지장은 없습니다."

진서는 의자를 돌려 그녀를 마주 보았다. 민희가 가방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연락을 받고 미래온 관련 소송 자료들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죠. 현재 법률적인 관점에서 백진서 씨가 미래온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이길 확률은 0%에 수렴합니다. 하청 계약서 조항 자체가 노예 계약에 가깝게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민희의 손끝이 서류의 특정 페이지를 짚었다.

"제 부친의 로펌도 똑같은 방식으로 당했습니다. 미래온은 법원의 판사들과 담합하여 증거 자체를 기각시켰죠. 법 조항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들의 거대한 카르텔을 깰 구멍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미세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부친의 일생이 담긴 테크 로펌을 공중분해 시킨 미래온. 그녀가 법률 대리인을 자처하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였다.

진서는 대답 대신 마우스를 가볍게 클릭했다.

"강 변호사님."

"예."

"법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법이 증거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당연한 상식..."

"그렇다면, 법원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진짜 증거'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진서가 모니터를 강민희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암호화된 미래온 그룹의 내부 사법 거래 문건들이 떠올랐다. 5년 전, 강민희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로펌을 파멸시키기 위해 미래온의 법무팀과 당시 담당 재판장이 주고받았던 실시간 메신저 로그 및 차명 계좌 송금 내역서였다.

민희의 시선이 화면에 닿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서류를 쥐고 있던 손끝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난 수년간 사법부의 모든 인맥을 동원하고도 단 한 조각조차 찾지 못해 절망했던, 미래온의 사법 담합 극비 문서였다.

"이건... 어떻게..."

민희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이 그녀의 얼굴을 지배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이 문서들의 원본 서버는 미래온 본사의 폐쇄망 가상 드라이브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었을 텐데요. 외부 해킹으로는 절대 접근할 수 없는..."

"저에게 불가능한 시스템은 없습니다."

진서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다. 상대의 흔들리는 감정 따위는 그의 연산 영역 밖의 일이었다. 그는 품 안에서 미리 작성해 둔 계약서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로 밀었다.

"제안을 하죠."

민희는 침을 삼키며 계약서로 시선을 옮겼다.

[독점적 법률 대리 및 인프라 확보 계약서]

문구는 극도로 이성적이고 무자비했다.

- 을(강민희)은 甲(백진서)의 모든 법적 대리인으로서 움직이며, 신의성실의 의무를 배제하고 오직 계약서에 명시된 법적 효력만을 기준으로 행동한다. - 甲은 을에게 미래온 사법 담합 증거 원본 및 소송 승소를 위한 물리적 데이터 일체를 제공한다. - 을은 본 계약의 대가로 甲이 추진하는 '넥서스' 인프라 구축을 위한 물리적 반도체 공장 및 데이터 센터 매입의 모든 법적 우회 통로를 개설한다. - 계약 위반 시, 제공된 모든 증거의 소유권은 즉각 소멸하며 을은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지고 파멸한다.

동맹이나 파트너십이라는 따뜻한 단어는 단 한 줄도 없었다.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 개인의 연민이나 복수심을 철저히 배제한, 오직 수치와 실리만을 바탕으로 한 거래였다.

"이 계약서에 서명하십시오."

진서가 펜을 내밀었다.

"이건 단순한 복수가 아닙니다. 미래온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해체하고, 그 위에 제가 설계한 새로운 규칙을 세우기 위한 비즈니스입니다. 강 변호사님은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무너뜨린 자들의 목줄을 합법적으로 쥘 수 있게 됩니다."

민희는 진서를 응시했다. 눈앞의 남자는 인간의 탈을 쓴 컴퓨터 같았다. 따뜻한 위로나 격려 대신, 오직 승리할 수밖에 없는 수식과 증거만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신뢰가 갔다. 인간의 감정은 배신하지만, 완벽하게 계산된 이익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좋습니다."

민희가 자신의 가방에서 붉은 인감도장을 꺼냈다. 망설임은 없었다. 그녀는 계약서 하단에 도장을 찍고, 정갈한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쿵.*

인감도장이 종이 위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남겼다. 그와 동시에 진서의 귓가에 시스템 알림음이 울렸다.

[SYSTEM: NEW TRANSACTION COMPLETED] [Contract: Exclusive Legal Alliance (Baek Jin-seo & Kang Min-hee)] [Current Asset Evaluation: +1,500,000,000 KRW (Indirect Value)] [Legal Protection Class: Grade A (Active)]

진서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넥서스 제국을 위한 법률적 방패가 완벽하게 손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콰르릉!*

갑작스러운 진동과 함께 통제실의 메인 서버 랙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격리 공간에 가두어 두었던 침입 로그 파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모니터 화면이 급격하게 깜빡이더니, 강민희의 서명이 완료된 계약서 스캔본 위로 거대한 붉은색 해골 마크가 덧씌워졌다.

*스스스스...*

해골 마크 아래의 텍스트가 깨진 코드로 변환되며 빠르게 새로운 문자를 조합해 나갔다.

[WARNING: SYSTEM CORE BREACHED BY BLACK-HAT 'NOAH'] [Location Coordinates Detected: 37.5665, 126.9780] [Message: "찾았다, 쓰레기 코더. 네가 만든 방화벽 꽤 맛있네?"]

붉은색 해골 마크가 화면 가득히 비웃듯 일렁였다. 격리된 줄 알았던 해커가 오히려 진서의 시스템 내부로 더 깊숙이 백도어를 찔러 넣은 것이었다. 진서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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