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쏴라."

한성태의 입술이 거칠게 비틀렸다. 요원들의 전술 장갑이 소총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총구가 일제히 백진서의 미간과 심장을 겨냥했다. 격발 직전의 팽팽한 장력 속에서, 제어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 찰나였다.

*오오옹-*

실내를 무겁게 채우던 넥서스의 양자 공명음이 일순 극도로 높은 고음을 내며 멈췄다. 동시에 한성태의 가슴팍에 장착된 전술 무전기에서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이 터져 나왔다.

- 실장님! 행정안전부 메인 제어 서버가 다운되었습니다! - 국가 전력 배송망 세그먼트 전면 파괴! 전국 관공서 메인 소스 신호가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무전 너머의 목소리는 공포로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한성태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서 굳었다. 그의 굵고 거친 눈썹이 꿈틀거리며 솟아올랐다.

진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왼손 끝을 가볍게 내리며 손목시계의 센서 온도를 확인했다.

[기기 구동 온도: 36.1℃. 안정.]

진서의 망막 위로 푸른색 소스코드의 폭포가 쏟아졌다. 대한민국 전역의 통신망과 전력 배송망이 차례로 검게 죽어가는 실시간 로그였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백진서."

한성태가 이빨을 악물며 물었다. 총구를 쥔 그의 팔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한 게 아닙니다."

진서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감정의 고저가 전혀 없는, 기계적인 톤이었다.

"당신들이 넥서스의 광대역 양자 실드를 강제로 압류하려 들면서 생긴 물리적 공백입니다. 그 틈을 타서 누군가 국가 전력 배송 서버를 직접 찌르고 들어갔을 뿐이지."

"헛소리 마라! 그 짧은 시간에 국가 보안망이 통째로 뚫린단 말이냐?"

"가능합니다. 원래 구멍이 뚫려 있던 망이니까."

진서는 팔짱을 낀 채 벽면에 설치된 150인치 홀로그램 모니터를 턱으로 가리켰다.

화면 위로 붉은색 경고 코드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고 있었다.

[WARNING: 전력 배송망(KPX) 메인 서버 침투 완료] - 침투 세력: Unknown Hacker Group (Signature: Black-Mirae) - 시스템 제어권 상실율: 87.4% - 전국 블랙아웃 도달 예정 시간: 04분 12초

"블랙... 미래?"

한성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래온의 사설 블랙햇 집단입니다."

옆에서 모니터를 조작하던 노아름이 자판을 두드리며 끼어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진서 씨, 저놈들 침투 경로가 이상해. 일반적인 게이트웨이가 아냐. 이건... 전에 내가 넥서스에 테스트용으로 심어뒀던 양자 얽힘 기반 초고속 백도어 프로토콜의 특수 주파수 흔적이야!"

노아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신이 만든 프로토콜의 알고리즘 패턴이 적들의 침투 경로에서 고스란히 검출되고 있었다. 812.4MHz 대역의 특수 양자 공명 주파수. 그것은 과거 그녀가 진서의 코어를 뚫기 위해 설계했던 독보적인 백도어의 흔적이었다. 미래온이 그녀의 과거 포트폴리오나 유출된 소스코드를 입수해 개량한 것이 분명했다.

진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미 예측 범위 내에 존재하는 변수였다.

"아름 씨.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진서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볍게 튕겼다. 그의 머릿속 연산 장치(RAM)가 가파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RAM 사용량: 12.8GB / 16.0GB] - 리얼리티 디버거(Reality Debugger) 기동 시작. - 타깃 프로토콜: 812.4MHz 양자 얽힘 백도어 흔적 역추적.

"이미 그 주파수의 디버깅 코드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진서는 3화에서 입수했던 미래온 아시아 지사의 해저 광케이블 신호 감쇠 비율 기록 보고서를 뇌리에서 호출했다. 보고서에 적혀 있던 특정한 감쇠 주파수 대역과 노아름의 백도어 주파수를 교차 검파일하는 연산이 실시간으로 수행되었다.

*파지직!*

허공에서 미세한 스파크가 튀었다. 진서의 망막에 정렬된 코드가 순식간에 재조합되었다.

[디버깅 완료: 신호 감쇠 주파수 역이용 알고리즘 적용] - 미래온 아시아 행 해저 트래픽 우회율: 100% - 넥서스 양자 코어로의 트래픽 강제 납치 성공. - 침투 세력의 소스 제어권 무력화 완료.

"어...?"

노아름이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미래온의 해커들이 기세 좋게 타고 들어오던 양자 통로가 순식간에 넥서스의 내부 흡수 루프로 전환되어 있었다. 그들이 쏘아 보낸 공격 패킷은 국가 전력망이 아닌, 넥서스의 거대한 양자 데이터 덤프장으로 흘러 들어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미래온의 해저 트래픽 자체가 백진서의 손아귀로 완전히 납치된 것이다.

하지만 진서는 전력망의 제어권을 국가에 돌려주지 않았다. 그저 전력망으로 가는 길목을 넥서스의 가상 게이트웨이로 꽉 틀어막고 팔짱을 꼈을 뿐이다.

"백진서! 흐름을 막았으면 당장 망을 복구해라!"

한성태가 고함을 질렀다.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진서의 대답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건 내 사적 자산인 넥서스의 보안 영역 안에서 처리된 트래픽입니다. 국가 공공망의 복구는 내 알 바가 아닙니다만."

"이 미친... 지금 전국 병원의 수술실이 멈추고 지하철이 터널 한가운데서 급제동하고 있어! 수천, 수만 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국가 비상사태다!"

그때, 제어실의 대형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양복 상의가 땀으로 완전히 젖은 중년 사내가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이닥쳤다. 안보 부처의 차관보이자, 이번 국유화 작전의 실질적 행정 책임자인 김성국이었다.

그의 얼굴은 흙빛을 넘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백... 백진서 대표!"

김성국이 허겁지겁 진서의 앞으로 달려왔다. 그의 구두가 대리석 바닥에 미끄러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발... 제발 대승적인 차원에서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국가 안보실에서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전력 배송망이 3분 더 마비되면 원전 제어 시스템까지 비상 정지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끝입니다!"

그의 눈가에 핏발이 서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일국의 고위 관료가 일개 기업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구걸하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이건 공익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애국심과 인류애가 있다면 무상으로 임시 복구 코드만이라도 전송해 주십시오! 나중에 정부 차원에서 훈장이든 보상이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조율해 주겠습니다!"

김성국이 진서의 소매깃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척.*

옆에 서 있던 강민희 변호사가 날카로운 동작으로 김성국의 손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눈빛은 칼날처럼 예리했다.

"공무원법 및 국가재난대비법 어디에도 민간의 기술 자산을 무상으로 징발하고 사후에 구두 약속으로 때울 수 있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차관보님. 더 이상의 무단 접촉은 민사상 불법행위로 간주하겠습니다."

강민희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온기도 없었다. 진서와 완벽하게 동기화된 초이성적 비즈니스 태도였다.

진서가 차갑게 웃었다.

"훈장?"

그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딴 고철 조각은 내 경영 대장의 자산 항목에 등록되지 않습니다. 애국심으로 서버가 돌아갑니까? 인류애로 양자 컴퓨터의 발열이 잡힙니까?"

"백 대표...!"

"헛소리는 사양합니다. 나는 철저히 수치와 계약으로만 움직입니다."

진서가 손가락을 튕기자, 태블릿 화면 하나가 김성국과 한성태의 눈앞으로 떠올랐다.

그곳에는 이미 강민희와 진서가 실시간으로 작성한 초고액의 긴급 재난망 관제 및 보안 독점 유료 계약서가 띄워져 있었다.

"읽어 보시죠."

김성국의 눈동자가 계약서의 수치들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 항목 | 상세 내용 | 금액 / 조건 | | :--- | :--- | :--- | | **기본 계약** | 국가 극비 재난 통제망 마스터 레지스트리 독점 관제 | 월 2조 8,500억 원 | | **긴급 복구** | 전력 배송망(KPX) 우회 경로 강제 매핑 및 디버깅 수행 | 일회성 5,000억 원 | | **연체료 조항** | 지불 예정 시간(매월 1일 00:00) 기준 초당 지연 이자율 | 초당 1억 원 (복리 적용) | | **특약 사항** | 정부의 넥서스 인프라에 대한 일체의 행정 압류 및 국유화 시도 영구 포기 | 위반 시 즉각적인 연결 차단(Connection Timeout) |

"이... 이 무슨 노예 계약서란 말인가! 초당 1억 원의 연체료라니! 이건 국가를 상대로 강도짓을 하겠다는 소리잖아!"

김성국이 바르르 떨며 소리쳤다.

"절대 서명할 수 없다! 이건 헌법 제23조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 제한 조항에..."

"서명하지 마십시오."

진서가 말을 잘랐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남은 시간 1분 15초. 원전 비상 정지까지 75초 남았습니다. 원전이 멈춘 후의 경제적 손실은 대략 120조 원으로 추산되더군요. 5,000억 원 아끼려다 120조 원을 날리는 계산법이 국가 안보실의 표준입니까?"

"백진서...!"

한성태가 소총을 다시 들어 올리려 했다.

"쏘세요."

진서가 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내가 사망하는 즉시 넥서스 제1 코어의 마스터 키는 영구 폐기됩니다. 전국의 전력망은 영원히 암전될 것이고, 대한민국은 오늘부로 19세기로 돌아갑니다. 해보시겠습니까?"

한성태의 소총 끝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툭, 툭 떨어져 번졌다.

절대적인 기술 독점의 힘 앞에서, 국가의 무력은 무용지물이었다.

"시간 초과 30초 전."

진서의 건조한 카운트다운이 제어실에 울려 퍼졌다.

"29... 28..."

김성국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테이블 위의 전자 펜을 움켜쥐었다.

"서... 서명하겠소! 서명할 테니 당장 살려주시오!"

그가 미친 듯이 태블릿 화면에 인감 인증과 사인을 갈겨썼다.

[시스템 안내] - 긴급 계약 체결 완료: 국가 재난망 보안 관제 및 KPX 복구 - 계약 주체: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및 국가정보원 - (주)넥서스 테크놀로지 - 일시금 5,000억 원 즉시 입금 확인 완료. - 경영 대장 시스템: 누적 자산 가치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됩니다.

[누적 자산 가치: 4조 9,200억 원]

진서의 눈앞에 선명한 녹색의 수치 카타르시스가 펼쳐졌다.

"입금 확인되었습니다. 디버깅 코드를 송신합니다."

진서가 자판의 엔터키를 가볍게 눌렀다.

순식간에 넥서스 코어에서 뻗어 나간 양자 공명 주파수가 전국의 전력 배송 서버를 뒤덮었다. 죽어 있던 제어 노드들이 차례로 녹색 불빛을 켜며 되살아났다.

김성국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고, 한성태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진서를 노려보았다.

사인을 마친 한성태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국가의 자존심이 완전히 짓밟힌 순간이었다.

진서는 그들의 절망을 감상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복구 완료율이 99.8%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삐익-!*

모니터 중앙에 기괴한 노이즈가 끼어들었다.

전산 복구의 실시간 추이 그래프가 급격한 우하향 곡선을 그리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제3의 세력이 복구 코드를 강제로 교란하고 있었다.

[WARNING: 국가 극비 재난 통제망 마스터 레지스트리(ID: 0x7F9A) 내의 숨겨진 백도어 활성화] - 외부 강제 간섭 차단 실패. - 원인: 정부 내부 시스템에 심어진 미지의 상위 권한 마스터 키 작동 중.

진서의 두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한성태와 정부조차 모르는, 마스터 레지스트리의 더 깊은 나락 속에 도사리고 있던 또 다른 백도어가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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