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으로 도장된 특수 정보원 장갑차 수십 대가 넥서스 제1 코어의 강화유리 정문 앞에 늘어섰다. 헤드라이트의 푸른 불빛이 밤의 어둠을 가르고 차가운 아스팔트를 비췄다. 무장을 마친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총기를 비스듬히 쥔 채 삼엄한 대형을 유지했다. 그들의 한가운데에 선 한성태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메가폰을 내려놓았다.
"백진서, 3분 주겠다. 정문을 열어라."
그의 거친 음성이 전조등 불빛 사이로 흩어졌다.
제어실 내부의 모니터에는 게이트 앞의 모든 상황이 초고화질로 전송되고 있었다. 노아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잘게 떨렸다. 강민희는 가죽 서류 가방을 쥔 채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백진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망막 위로 푸른빛의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조용히 명멸했다.
[뇌 연산 장치(RAM) 사용량: 48% / 16GB] [경영 대장 시스템: 보유 자산 1,420억 원] [실시간 위협 수준: HIGH (물리적 진입 시도 98%)]
진서의 시선은 냉정했다. 감정의 동요는 연산 속도를 늦출 뿐이었다. 그는 손목시계의 기기 구동 온도를 확인했다. 섭씨 32.4도. 지극히 정상 범위였다.
한성태가 게이트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관인이 선명하게 찍힌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정문의 투명한 하이브리드 글라스에 거칠게 밀어붙였다.
"국가 안보 긴급 행정 명령에 따른 자산 압류 및 수색 영장이다. 넥서스는 이 시간부로 국가 소유로 임시 징발된다. 거부 시 공무집행방해 및 국가 전복 음모죄를 적용해 즉각 사살을 허가받았다."
유리창 너머의 한성태는 승리를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 일개 개인이 버틸 수 없다는 오만이 그의 주름진 얼굴에 가득했다.
강민희가 진서의 옆으로 다가와 나직하게 속삭였다.
"저 영장, 형식적 요건은 갖췄어요. 하지만 행정 절차법상 초법적인 조항들이 섞여 있어요. 국가 위기 사태라는 명분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겁니다. 시간을 끌면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할 수..."
"필요 없습니다."
진서가 강민희의 말을 잘랐다.
"법정 싸움은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은 곧 비용입니다. 저들의 물리적 에너지를 먼저 0으로 수렴시켜야 합니다."
진서가 노트북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건반 위를 걷듯 가볍게 움직였다.
[Reality Debugger v4.21] - 대상: 넥서스 정문 외곽 경비 게이트 및 전자기장 발생기 - 수정 코드: Overload_Current_Factor = 750% - 영향 범위: 반경 15m 이내의 모든 전도성 금속 및 하드웨어
"아름 씨. 5화에서 당신이 내 서버에 심어두었던 양자 얽힘 기반 초고속 백도어 프로토콜의 특수 주파수 흔적 기억합니까?"
노아름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아직도 기억해? 진작에 다 지워진 거 아니었어?"
"지우지 않았습니다. 내 제어권 아래에 두고 주파수 대역을 변조해 두었을 뿐입니다. 지금 그 백도어의 양자 공명 주파수를 게이트의 고압 라인과 동기화시킵니다."
진서의 손가락이 엔터키를 가볍게 두드렸다.
*타닥.*
[디버깅 시작: 연산 장치(RAM) 점유율 61%로 상승] [경고: 뇌 과부하 경계선 진입]
순간, 넥서스 정문 주변의 공기가 기묘하게 떨렸다. 무장한 요원들이 들고 있던 전자기 펄스(EMP) 차단 장비와 전술 무전기에서 지독한 고주파 소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악!"
요원 중 하나가 귀를 부여잡으며 무전기를 바닥으로 던졌다. 무전기 안쪽의 리튬 배터리가 가열되며 붉은 불꽃과 함께 녹아내렸다.
장갑차의 엔진룸에서도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차량 내부의 디지털 계기판이 미친 듯이 깜빡이다가 완전히 암전되었다. 양자 공명 주파수가 전자기적 유도를 일으켜 요원들의 첨단 장비를 내부에서부터 완벽하게 구워버린 것이다.
"무슨 짓이냐, 백진서!"
한성태가 무전기를 두드리며 악을 썼지만, 그의 손에 들린 무전기 역시 이미 차가운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무장 대원들의 돌격 소총에 장착된 전자식 조준경마저 투명한 유리알로 변해 있었다.
진서가 마이크를 켰다. 그의 건조한 목소리가 정문 외부의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갔다.
"물리적 무력은 논리적 오류에 불과합니다. 시스템의 전류 값을 조금 수정했을 뿐입니다. 더 진입하려 한다면 다음은 대원들의 심박 조율기나 스마트폰 배터리가 대상이 될 겁니다."
한성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장갑차의 물리적인 문을 발로 차며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국가를 상대로 테러를 벌이겠다는 거냐! 이 나라의 인프라와 법체계 위에서 돈을 벌었으면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따위로 배신을 해?"
"배신이라는 단어는 계약 관계에서만 성립합니다."
진서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와 동맹 계약을 맺은 적이 없습니다. 세금은 정당하게 납부했으니 납세자로서의 의무는 다했습니다. 그 이상의 애국심을 요구하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진서가 모니터를 터치하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문서 하나가 한성태가 들고 있는 먹통이 된 스마트 패드의 화면을 강제로 점거하며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3화에서 확보했던 미래온 아시아 지사의 해저 광케이블 신호 감쇠 비율 기록 보고서와 넥서스의 자산 가치가 정밀하게 계산된 수치 명세서였다.
[넥서스 테크 제국 일평균 가치 청구서] | 항목 | 세부 내역 | 일평균 가치 (원) | | :--- | :--- | :--- | | 아시아 해저 광케이블 | 트래픽 제어 및 양자 암호 우회 비용 | 45,000,000,000 | | 데이터 요새 인프라 | 극자외선(EUV) 반도체 생산 라인 유지비 | 32,000,000,000 | | 국가 재난망 보안 | 백도어 필터링 및 침입 방어 수수료 | 18,000,000,000 | | **합계** | **일평균 손실 보전 요구액** | **95,000,000,000** |
한성태가 패드에 뜬 숫자를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루에 950억 원? 미친 소리를 하는군. 네놈이 점거하고 있는 해저 광케이블은 국가의 공공재다!"
"틀렸습니다."
진서가 차갑게 대꾸했다.
"3화 보고서에 기록된 해저 광케이블의 신호 감쇠 비율은 15.4%였습니다. 미래온이 불법으로 감청 분기점을 만들어 신호를 가로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감쇠 주파수를 역이용해, 합법적으로 버려진 트래픽을 인수했습니다. 11화에서 완료된 납치 작업으로 인해 현재 아시아 전체 금융 트래픽의 42%가 이 넥서스의 코어를 통과합니다."
진서의 손가락이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내가 이 시스템을 끄는 순간, 대한민국 코스피 시장은 물론이고 아시아 전역의 외환 거래가 즉시 마비됩니다. 950억 원은 내가 이 시스템을 유지해 주는 대가로 청구하는 최소한의 일일 용역비입니다."
"이 건방진 자식이...!"
한성태가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장비가 먹통이 되었어도 물리적인 화약식 권총은 구동이 가능했다. 그는 정문의 강화유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우리가 네놈을 사살하고 이 기지를 강제로 접수하면 그만이다. 국가의 행정력과 군사력은 네깟 놈의 잔머리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한성태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렸다. 그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절박함에서 나오는 광기였다.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이 괴물 같은 인프라를 오늘 반드시 회수해야만 자신의 목숨줄이 보존된다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었다.
강민희가 급히 진서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진서 씨, 위험해요!"
하지만 진서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정문 유리 바로 앞까지 걸어가 한성태의 총구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의 무감각한 눈동자가 한성태의 시선과 얽혔다.
"쏘십시오."
진서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 총알이 이 유리를 뚫는 속도보다, 내 시스템이 대한민국의 모든 정부 기관 네트워크를 차단하는 속도가 0.003초 더 빠를 겁니다."
진서의 왼손 손가락이 엔터키 위에 가볍게 얹혀 있었다. 그의 망막에서 붉은빛의 마스터 레지스트리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위성 기반 국가 극비 재난 통제망 마스터 레지스트리] - Status: READY TO TERMINATE - Target: 대한민국 전역 관공서 및 군 지휘통제망 메인 소스 - Action: Connection Timeout (무제한)
한성태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백진서라는 인간의 눈빛이 증명하고 있었다. 이 남자는 정말로 국가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직 자신의 이익과 계산을 위해서.
"이... 매국노 같은 놈..."
한성태가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매국이라는 단어는 나라를 파는 행위를 뜻합니다. 나는 파는 것이 아닙니다. 정당한 가격에 대여할 뿐입니다."
진서가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초과되었습니다. 협상 테이블의 온도가 내려갔군요."
한성태의 얼굴이 극도로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참지 못하고 뒤에 대기하고 있던 소총수들을 향해 팔을 치켜올렸다. 사격 명령을 내리기 위한 수신호였다.
"전 대원, 사격 개시! 유리를 깨부수고 진입해!"
그의 손이 아래로 내리쳐지려는 바로 그 찰나.
삐이이이이이-.
한성태의 품 안에서, 그리고 살아남은 장갑차의 비상 수신기에서 찢어지는 듯한 경고음이 일제히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저 멀리 서울 도심 쪽에서 비쳐오던 정부 청사의 푸른 조명들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암전되었다. 전국의 관공서로 연결되는 메인 소스 신호가 완전히 끊겨버린 것이었다.
바람조차 멎은 듯한 적막 속에서, 한성태의 품 안에서 날카로운 진동음이 터졌다.
전술 조끼에 장착된 위성 통신 단말기였다. 전자기 마비 속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청와대 직통 비상 연락망이었다.
한성태가 떨리는 손으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단말기 너머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한 처장! 지금 당장 작전 중단해! 국방망, 행정망, 경찰 신호망까지 전부 올스톱됐다! 국가 전산망 마스터 키가 통째로 묶였어! 그쪽에서 무슨 짓을 벌인 건가?!"
한성태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그가 고개를 들어 유리를 바라보았다.
유리 너머의 백진서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 가만히 얹혀 있을 뿐이었다.
"한 처장님."
스피커를 통해 진서의 건조한 음성이 울렸다.
"이것은 단순한 데모 버전입니다. 제한 시간은 5분입니다."
"네놈이... 감히 대한민국을 인질로 잡겠다는 거냐!"
"인질이 아니라, 시스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검증 프로세스입니다."
진서가 엔터키를 툭 쳤다.
한성태의 위성 패드 화면이 다시 한번 강제로 전환되었다. 붉은색 경고창이 사라지고, 깔끔한 서식의 계약서 한 장이 나타났다.
[국가 재난 통제망 임시 보안 관제 계약서] - 제공자: 넥서스 (대표 백진서) - 제공 서비스: 국가 극비 재난 통제망 마스터 레지스트리 실시간 복구 및 상시 보안 필터링 - 계약 기간: 1개년 (자동 연장 조건) - 월 이용료: 2,850,000,000,000원 (2조 8,500억 원) - 특약 사항: 국가 공권력의 넥서스 인프라에 대한 일체의 무력 개입 및 압류 시도 즉시 계약 파기 (차단 복구 불가)
"2조... 8천억?"
한성태의 목소리가 완전히 갈라졌다.
"이건 강도질이다. 국가 예산을 이딴 식으로 갈취하겠다고?"
"미래온이 국가망을 몰래 감청하며 갈취해가던 기회비용에 비하면 저렴합니다."
진서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남은 시간은 3분 12초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데모 라이선스가 만료됩니다. 만료 후 재가동 비용은 두 배로 할증됩니다."
"백진서!"
"선택하십시오. 예산을 지키고 국가의 모든 행정 기능을 영구 정지시킬지, 아니면 합법적인 유료 비즈니스 계약을 맺을지."
극단적인 실리주의.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조차 백진서에게는 그저 거액의 청구서를 발행할 대상에 불과했다.
수화기 너머 국가안보실장의 목소리는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다.
- "한 처장! 당장 그 자가 원하는 대로 해! 지금 금융 결제망까지 마비되기 직전이다! 1분만 더 지체되면 국가 부도 선언을 해야 할 판이야!"
한성태의 이가 맞부딪히며 으드득 소리가 났다. 평생을 국가와 애국을 위해 바쳐온 그에게, 이 상황은 굴욕을 넘어선 재앙이었다.
그는 천천히 권총을 내렸다. 손가락끝의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철수한다."
그의 명령에 요원들이 일제히 소총을 낮추었다.
"서명은... 정부 공식 채널을 통해 전달하겠다. 당장 망부터 복구해."
"입금이 확인되는 즉시 복구 코드를 송신하겠습니다."
진서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시스템 안내] - 임시 계약 체결 완료: 국가 재난망 보안 관제 - 예상 매출: 월 2조 8,500억 원 (익일 자정부터 정산 시작) - 경영 대장 시스템: 누적 자산 가치 실시간 반영 중...
제어실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노아름이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미친 사람... 진짜로 국가를 상대로 이겨먹었어."
강민희 역시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지만 진서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의 망막에 비친 푸른색 소스코드가 갑자기 거칠게 일그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위잉-*
주 모니터의 우측 하단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빠른 속도로 깜빡였다.
[WARNING: 외부 프로토콜 강제 주입 감지] - Source: Unknown (Encrypted) - Target: 국가 극비 재난 통제망 마스터 레지스트리 (ID: 0x7F9A) - 침투율: 12.8% (급속 상승 중)
진서의 미간이 좁아졌다.
국가망이 차단된 그 짧은 틈을 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제3의 세력이 마스터 레지스트리의 핵심 권한을 탈취하려 들고 있었다.
그 소스코드의 끝자락에 새겨진 특유의 암호화 알고리즘 구조. 진서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차현우."
미래온 그룹의 회장, 차현우의 개인 백도어 시그니처였다.
동시에, 영종도 앞바다의 해저 센서에서 강력한 물리적 충격파 경보가 제어실 전체를 울렸다.
*쾅!*
창문이 미세하게 흔들릴 정도의 묵직한 진동이었다.
"진서 씨! 해저 광케이블 4번 라인의 신호가 완전히 끊겼어! 이건 단순한 감쇄가 아니야... 대형 잠수정이 물리적으로 케이블을 절단하고 있어!"
노아름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진서의 시선이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다 너머를 향했다.
국가의 압박을 꺾은 바로 그 순간, 더 거대하고 노골적인 미래온의 물리적 파괴 공작이 넥서스의 심장을 겨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