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이이이이-!
임시 사무실의 열두 개 모니터가 일제히 붉은색 경고등으로 물들었다. 화면 중앙에는 미래온 그룹의 코어 네트워크가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점멸했다.
[WARNING: CENTRAL AUTHENTICATION SERVER OVERLOADED (100%)] [WARNING: TRAFFIC REDIRECTION DETECTED - PATH: SUBSEA CABLE REGION 4] [STATUS: SYSTEM SHUTDOWN IN PROGRESS]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책상 위에 올려둔 개인 단말기 액정에 차현우의 이름이 박힌 채 연신 문자가 쏟아졌다.
- 백진서.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는 있나? - 당장 신호 원상복구해. 그렇지 않으면 국가 안보 위반으로 네놈의 모든 자산을 동결시키겠다. - 지금 당장 내 비서의 호출에 응해라. 마지막 경고다.
이어서 비서실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진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여 수신 거절 버튼을 눌렀다. 그의 시선은 오직 화면 우측 하단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디버깅 컴파일러에 고정되어 있었다.
"국가 안보라."
진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위성은 이미 궤도를 돌고 있고, 해저의 광신호는 넥서스의 영토로 완전히 이관되었다. 협박의 유효기간은 진작에 끝났다. 그가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를 높였다.
타타타타탁!
기계식 키보드의 타건음이 고요한 사무실을 채웠다. 지금 진서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미래온 본사의 붕괴된 방화벽 틈새로 흘러나오는 날것의 데이터 흐름이었다. 그 막대한 트래픽의 홍수 속에서, 진서는 이전에 심어두었던 두 개의 결정적인 고리를 찾아내야 했다.
첫 번째 고리는 서랍 속에서 꺼낸 낡은 종이 문서였다. 미래온 아시아 지사의 해저 광케이블 신호 감쇠 비율 기록 보고서. 3화에서 진서의 손에 들어왔던 이 극비 보고서에는 기묘한 수치가 적혀 있었다.
'1.55㎛ 파장 대역에서의 -0.18dB/km 감쇠 특이점 발생.'
일반적인 광케이블의 자연 감쇠 범위를 벗어난 인위적인 수치였다. 단순한 물리적 결함이 아니었다. 미래온이 해외로 불법 외화를 송금하고 차명 자산을 세탁하기 위해, 통신망의 특정 주파수 대역을 사유화하여 전용 암호 채널로 쓰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 감쇠 주파수가 바로 백도어의 진입로다."
진서가 중얼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보고서에 기록된 감쇠 비율의 고유 주파수를 리얼리티 디버거의 입력창에 헥사코드(Hex Code) 값으로 변환해 넣었다.
이어서 두 번째 고리를 연결할 차례였다. 진서는 노아름이 과거 자신의 시스템에 침투하기 위해 설계했던 양자 얽힘 기반 초고속 백도어 프로토콜의 특수 주파수 흔적을 추적했다. 노아름은 자신이 진서의 시스템을 해킹했다고 믿었겠지만, 진서는 이미 10화에서 역디버깅을 통해 그 주파수 노드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다.
"노아름이 파놓은 터널을 미래온의 전용 채널에 연결한다."
양자 얽힘 백도어의 특수 주파수 흔적이 미래온의 불법 감쇠 채널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그것은 미래온의 가장 깊숙한 금융 전산망, 즉 차현우가 숨겨둔 차명 자산과 불법 탈루 투자금이 예치된 해외 계좌로 직통하는 고속도로였다.
[SYSTEM: 리얼리티 디버거 가동] [SYSTEM: 대상 객체 '미래온 코어 금융 전산망' 로드 완료] [SYSTEM: 물리적 RAM 연산 장치 부하율 체크 중...]
망막 위에 시스템 경고창이 떠올랐다.
| 자원 항목 | 현재 할당량 | 상태 | | :--- | :--- | :--- | | 시스템 RAM | 14.8 GB / 16.0 GB | 과부하 위험 (92.5%) | | 뇌 연산 부하율 | 89.2% | 일시적 인지 장애 위험 | | 디버깅 대상 | 미래온 불법 자금 세탁 노드 | 디버깅 가능 |
관자놀이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뇌의 연산 장치(RAM)가 한계치인 16GB에 근접하면서 시야가 일시적으로 흐려졌다. 입안에서 쇠비린내가 감돌았다. 진서는 손목시계의 온도를 체크했다.
[36.2℃]
정상 범위다. 체온은 일정하지만, 뇌세포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진서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멈추면 미래온이 보안 패치를 적용해 이 취약점을 영구히 닫아버릴 것이었다. 그는 가장 효율적인 디버깅 코드를 연산해 냈다.
"최소 비용, 최대 효율."
진서는 불필요한 연산 과정을 전부 생략하고, 오직 자산의 '소유권 세그먼트(Ownership Segment)'만을 타깃으로 잡았다. 미래온의 전산망에 등록된 자산 소유자 코드를 자신의 넥서스 법인 코드로 치환하는 한 줄의 패치 코드였다.
```c // 미래온 차명 금융 자산 소유권 디버깅 패치 void debug_ownership() { uint64_t* target_asset = (uint64_t*)0x7FFF00A192B0; // 미래온 스위스 계좌 uint64_t* nexus_vault = (uint64_t*)0x7FFF00F299E0; // 넥서스 통합 자산 계좌 if (*target_asset->owner_signature == MIRAEON_SIGNATURE) { *target_asset->owner_signature = NEXUS_SIGNATURE; *nexus_vault->balance += *target_asset->balance; *target_asset->balance = 0; } } ```
손가락이 엔터키를 눌렀다.
탁!
[SYSTEM: 디버깅 코드 컴파일 완료] [SYSTEM: 현실 동기화 프로세스 시작 (0.01초 소요)]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과 함께 눈앞의 붉은 경고등이 일순간 청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미래온의 금융망 깊숙이 보관되어 있던 수조 원 대의 자산 데이터가 소리 없이 쪼개지며 진서의 계좌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달칵.
사무실 문이 열렸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강민희 변호사가 태블릿 PC를 든 채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규칙적으로 부딪혔다. 강민희는 화면 가득한 붉은 경고창과 진서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보았음에도, 단 한 마디의 안부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철저한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행정 처리는 끝났습니다, 백진서 씨."
강민희가 태블릿을 진서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화면에는 법원의 전자 직인이 찍힌 민사 가압류 및 파산 합의서 신청 문서가 띄워져 있었다.
"미래온의 핵심 계열사인 미래온 네트웍스와 미래온 제철의 유동성 위기가 확정되었습니다. 해저 광케이블 트래픽이 끊기면서 아시아 전역의 물류 계약 이행 보증금이 몰수되었거든요. 그로 인해 발생한 즉각적인 채무 불이행 규모만 1조 2천억 원입니다."
"그들이 법적으로 방어할 여지는?"
진서가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뇌의 과부하로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지만, 어조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없습니다."
강민희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동안 미래온이 자행해 온 독점 규제 위반 및 하청업체 기술 갈취 내역을 특허 법원에 정식 제소했습니다. 8화에서 우리가 법정에서 확보한 무죄 판결문이 결정적인 판례가 되었죠. 이제 그들은 자산 동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법원은 이미 미래온 네트웍스의 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접수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파산 절차에 들어간 그들의 물리적 인프라를 헐값에 쓸어 담는 것뿐입니다."
"차현우가 개인 자금으로 막으려 할 텐데."
"그럴 줄 알고 제가 미리 손을 써두었습니다."
강민희가 화면을 넘겼다. 그곳에는 차현우가 조세 회피처에 숨겨둔 유령 회사들의 명단과 투자금 흐름도가 정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차현우의 개인 투자금과 차명 자산은 전산상으로 완벽하게 은닉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법적 절차로는 압류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 아주 기묘한 전산 오류가 발생했더군요."
강민희가 진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노트북 화면에서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디버깅 툴의 로그를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룰이었다.
"차현우의 스위스 비밀 계좌와 케이맨 제도의 신탁 자금 전액이, 채무 변제용 에스크로(Escrow) 계좌로 자발적으로 이체되었습니다. 전산상으로는 차현우 본인의 공인 서명과 양자 암호 키가 완벽하게 인증된 거래입니다. 법적으로 백 퍼센트 합법적인 자금 회수입니다."
"그렇군."
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그가 디버깅 시스템을 통해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던 그 코드가 현실의 금융 전산망을 완벽하게 변조해 낸 결과였다.
미래온 가문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불법 기술 착취와 가스라이팅, 중소기업 공중분해로 쌓아 올린 피 묻은 자산들이었다. 그 거대한 모래성이, 단 1초 만에 논리적 오류로 판명되어 진서의 손아귀로 떨어졌다.
위잉-
진서의 시야에 '경영 대장 시스템'의 알림창이 거대하게 솟구쳤다.
[SYSTEM: 경영 대장 자산 변동 보고]
| 자산 분류 | 이전 상태 | 변동 내역 | 현재 가치 | | :--- | :--- | :--- | :--- | | 물리 인프라 | 아시아 해저 광망 확보 | 미래온 네트웍스 물리망 병합 | 8,500억 원 상당 | | 현금성 자산 | 4,200억 원 | 차현우 차명 자산 몰수 (+1.62조) | 2조 400억 원 | | **종합 순자산** | **4,200억 원** | **+1.62조 원 (폭등)** | **2조 400억 원** |
[SYSTEM: 축하합니다! 현실 보유 자금 2조 원 돌파!] [SYSTEM: 넥서스 테크 제국의 물리 인프라 확장 권한이 해제되었습니다.]
2조 원. 개인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진서의 은행 계좌와 넥서스의 자산 대장에 숫자로 선명하게 찍혔다. 그 어떤 금융 당국도, 그 어떤 국가 정보기관도 이 자금의 흐름을 역추적하거나 차단할 수 없었다. 양자 얽힘 주파수를 이용한 디버깅 세틀먼트(Settlement)는 현대 금융 보안 기술의 이해 범주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기 때문이다.
"차현우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진서가 물었다.
"지금쯤 비명을 지르고 있겠죠."
강민희가 태블릿을 거두며 답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지분과 차명 재산이 한순간에 증발했으니까요. 법적으로 그는 이제 알거지나 다름없습니다. 아니, 알거지보다 못하죠. 당장 내일부터 미래온 그룹의 채권단이 그의 목을 죄어올 테니까요."
그때, 사무실 한구석에 설치된 대형 TV 화면에서 속보를 알리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 딩동댕동.
여성 앵커의 긴박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대한민국 최대의 IT 통신 대기업, 미래온 그룹의 지주회사 및 핵심 계열사들에 대해 법원의 전격적인 가압류 및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되었습니다. 법원은 미래온 가문이 불법적으로 해외에 은닉한 비자금 수조 원이 확인되었다고 밝혔으며, 이에 따라 미래온 본사 빌딩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자산에 대해 즉각적인 매각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화면은 즉시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미래온 본사 빌딩 앞으로 전환되었다. 수십 명의 법원 집행관들과 검찰 수사관들이 파란색 압수수색 박스를 들고 빌딩 로비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들을 막아서려던 미래온의 사설 보안 요원들은 법원 집행관들이 들이민 강제 매각 영장과 자산 압류 표식 앞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섰다.
"저 빌딩도 이제 우리 겁니다."
강민희가 TV 화면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법원 경매가 시작되는 즉시, 우리가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최저가로 매입하겠습니다. 미래온의 심장부가 백진서 씨의 손에 떨어지는 겁니다."
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TV 화면 아래쪽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 뉴스에 머물러 있었다.
[국가정보원 한성태 처장, 미래온 사태에 대해 '국가 통신 인프라의 사유화는 헌법 위배'라며 강력한 유감 표명…….] [정부, 통신망 국유화 법안 긴급 발의 검토 중…….]
화면 속에서 집행관들의 진입을 지켜보며 군중 사이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카메라에 스치듯 잡혔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차가운 눈빛으로 빌딩을 올려다보는 사내. 국가정보원 요원, 한성태였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메라의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마치 렌즈 너머에 있는 진서를 보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입가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동시에 진서의 노트북 모니터 구석에 8화에서 뽑아내었던 극비 데이터, 위성 기반 극비 재난 통제망의 마스터 레지스트리 코드가 기분 나쁜 동기화 신호를 보내며 붉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국가 권력의 비수가 이제 진서의 목덜미를 향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