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손대지 마."

내 목소리는 수술실의 차가운 유리에 부딪혀 낮게 깔렸다. 수술용 라텍스 장갑을 벗어 던지는 내 손끝등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지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적광안(赤光眼)을 과도하게 활성화한 탓에 찾아오는 신경계 역류의 전조 증상일 뿐이었다.

"한지호,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강현민이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턱짓을 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설 경비원 세 명이 내 양옆을 포위하듯 좁혀왔다. 서채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거친 손길에 밀려 뒤로 비틀거렸다.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며 수술실 모니터의 잔향 속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처럼 울렸다.

"서 선생, 비켜. 저 자는 의사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미국 면허 검증 결과가 방금 이사회로 도착했어. 존재하지 않는 명의야."

강현민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그가 이 타이밍을 위해 얼마나 꼼꼼하게 덫을 놓았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해외 면허 데이터베이스의 일시적 오류를 이용했거나, 혹은 재단의 자금력으로 현지 대리인을 매수해 내 기록을 일시적으로 블라인드 처리해 두었겠지.

그들의 수법은 늘 이토록 얄팍하고 투명했다.

"가자고, 한지호 씨. 아니, 한지호 전(前) 의사선생님."

경비원의 투박한 손이 내 가운 깃에 닿기 직전, 나는 스스로 걸음을 옮겼다.

"내 발로 간다."

어깨를 가볍게 털어내며 강현민을 똑바로 응시했다. 내 차가운 침묵에 오히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냥감이 덫에 걸렸는데도 비명을 지르지 않을 때 찾아오는, 포식자의 기묘한 불쾌감이 그의 얼굴에 번졌다.

***

[14:15 - 혜성대학교병원 본관 지하 2층, 특별 징계 청문실]

사방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청문실의 공기는 습하고 무거웠다. 중앙의 길쭉한 마호가니 테이블 상석에는 이사장 민태준이 깊숙이 묻어 앉아 있었고, 그 좌우로 병원 법무팀장 송우석 변호사와 이사진 세 명이 엄숙한 표정으로 배석해 있었다.

강현민은 테이블 맞은편에서 서류 뭉치를 신경질적으로 뒤적이고 있었다.

"미국 세인트 마크 병원의 펠로우 이력, 그리고 현지 면허 취득 번호 전부 가짜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사님, 이건 단순한 대리 수술 수준이 아닙니다. 무면허 사기꾼이 병원의 핵심 VIP 수술실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집도한 초유의 사태입니다."

송우석 변호사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거들었다.

"한지호 씨. 본원 법무팀은 당신을 의료법 위반, 사기, 업무방해 및 이사장님에 대한 미수적 상해 혐의로 형사 고발할 예정입니다. 순순히 대리 수술 및 인턴 시절의 비리 혐의를 자백하고 서명하십시오. 그것만이 형량을 줄이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들이 내 앞에 밀어놓은 종이에는 이미 정교하게 작성된 자백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자를 뒤로 살짝 기대고 앉아, 가만히 그들의 얼굴을 관찰했다.

"말이 없군. 겁이라도 나는 모양이지?"

강현민이 조롱 섞인 웃음을 흘렸다.

"그 대단하던 입담은 다 어디로 갔나? 붉은 광선이니 뭐니 하면서 환자들을 홀리더니, 결국 밑천이 드러나니까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

여전히 내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침묵은 가장 강력한 거울이다. 상대가 조급할수록, 침묵은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불안을 더 빠르게 밖으로 끄집어낸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문실 내부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5분, 10분, 15분. 내가 단 한 마디의 대꾸도 없이 오직 무표정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응시하자, 송 변호사의 목줄기가 붉게 달아올랐다. 서류를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가락이 점점 빨라졌다.

"이봐요, 한지호 씨! 지금 묵비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습니까? 우리가 확보한 증거만으로도 당신은 평생 감옥에서 썩을 수 있어!"

송 변호사가 테이블을 탁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내 시선은 상석에 앉아 있는 민태준에게로 향했다.

민태준은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눈꺼풀이 아주 미세하게 아래로 처져 있었다. 안검하수(Ptosis)[6]. 그리고 그의 손목에 채워진 맥박 측정기의 수치는 분당 52회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서맥(Sinus Bradycardia)[7].

내 눈앞에 다시 한번 붉은 실선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적광안이 비춘 민태준의 뇌저동맥 부위. 그곳에는 3년 전 내가 그의 친척을 수술할 때 발견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형태의 미세동맥류(Microaneurysm)[5] 흔적이 붉은 빛을 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가문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유전적 혈관 결함.

뇌간 교종(Brainstem Glioma)[10]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대뇌 중심부에 품고 있는 노인의 상태가 내 망막 위에 실시간으로 투사되었다.

'불쌍한 노인네. 자신이 키우는 사냥개가 제 목줄을 끊으려 하는지도 모르고 저러고 있군.'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민태준의 뇌신경 세포 변성 속도는 이미 임계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한 달이다.

"한지호!"

강현민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굵게 솟아 있었다.

"끝까지 입을 안 열겠다 이거지? 조만간 네놈이 차명으로 혜성병원 지분을 사들이려 했던 그 에스크로 계좌의 실체까지 다 밝혀질 거다. 네 배후에 어떤 투자 가문이 있든, 이 병원의 주인은 성진의료재단이고 민태준 이사장님이시다!"

그가 품 안에서 또 다른 서류 봉투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뭔지 안 보여? 네 놈이 해외 투자자 은예원과 밀약을 맺고 병원 지분을 세탁하려 한 이중 계약서와 자금 흐름표다! 이래도 발뺌할 텐가?"

강현민이 기세등등하게 흔드는 서류를 보며, 나는 마침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입을 열 시간이었다.

"강현민 부원장."

내 목소리가 고요한 청문실의 침묵을 깨뜨렸다. 너무나 차분하고 낮았기에, 오히려 그들의 고막을 더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 계좌의 최종 발급 승인자가 누구인지, 정말 확인하고 가져온 건가?"

"뭐, 뭐라고?"

"송 변호사."

나는 시선을 법무팀장에게로 돌렸다.

"법무팀장이라는 자가 서류의 진위조차 검토하지 않고 부원장의 말만 믿고 청문회를 열다니. 그 대가로 성진의료재단에서 받기로 한 리베이트 지분이 꽤 쏠쏠했던 모양이지?"

"무슨 망발을...! 당장 이 자의 입을 막아!"

송 변호사가 다급하게 경비원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하지만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빔프로젝터 리모컨을 가볍게 눌렀다. 이미 청문실에 들어오기 전, 서채윤을 통해 병원 메인 서버의 보안 우회 포트를 열어둔 상태였다. 나의 '경영 평판 누적 지수' 1,500포인트를 소모해 활성화한 특수 외골격 시스템의 해킹 프로토콜이 작동한 결과였다.

*지잉-*

청문실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 푸른빛이 감돌더니, 이내 거대한 문서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은 강현민이 흔들던 서류와 똑같은 양식의 '이중 제약사 에스크로 계좌 개설 최종 승인서'였다. 하지만 화면에 뜬 문서의 하단에는 강현민이 주장하는 내 이름이 없었다.

그곳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것은, 강현민 본인의 한자 직인과 디지털 서명이었다.

"이, 이게 왜..."

강현민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서류 뭉치가 바닥으로 힘없이 후드득 떨어졌다.

"은예원 대표가 성진의료재단의 지분을 침식하기 위해 제안한 우회 리베이트 자금 450억 원."

나는 화면을 한 장 더 넘겼다.

"그 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가상의 미국 지사를 설립하고, 유령 제약사를 통해 병원 신약 개발 비자금으로 둔갑시킨 최종 결재권자. 강현민 부원장, 바로 당신이지."

"이건 조작이야! 사기라고! 이 새끼가 해킹을 해서 문서를 위조한 겁니다, 이사장님!"

강현민이 단상 위의 민태준을 향해 기어가듯 소리쳤다.

하지만 스크린에는 이미 강현민이 은예원의 대리인과 나눈 음성 녹취록과 메신저 대화 캡처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어차피 노인네는 오래 못 버텨요. 뇌간 교종이 진행 중이라 길어야 몇 달입니다. 그 전에 지분을 전부 은 대표님 쪽으로 넘기고, 저는 신임 이사장 자리에만 앉혀 주시면 됩니다. 병원 부지 매각 건은 알아서 처리하죠.]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강현민 본인의 목소리에 청문실 내부의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다.

민태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맥박 측정기가 삐- 삐- 하며 빠른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강... 현민..."

민태준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강현민을 가리켰다.

"네 놈이... 감히 나를...!"

"이사장님! 아닙니다! 저건 한지호 저 자가 저를 모함하기 위해 악마의 편집을 한 겁니다!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강현민이 민태준의 테이블 앞으로 달려들어 그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비켜라."

민태준이 강현민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하지만 그 반동으로 민태준의 몸이 뒤로 크게 기울었다. 그의 입가에서 침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어... 어어..."

민태준의 눈동자가 위로 뒤집히며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급격한 혈압 상승으로 인해 뇌저동맥의 미세동맥류가 파열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이사장님!"

송 변호사와 이사진들이 비명을 지르며 민태준에게 달려갔다.

그 혼란스러운 틈을 타, 청문실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서채윤이 법원 집행관 두 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혜성지방법원의 붉은 직인이 찍힌 서류가 들려 있었다.

"강현민 부원장님."

서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서류를 강현민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그리고 이중 계약을 통한 재단 자산 유출 혐의로 귀하가 보유한 성진의료재단 지분 8.5%에 대한 긴급 가압류 신청이 인용되었습니다."

"뭐... 라고?"

강현민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채윤을 바라보았다.

"또한, 현 시간부로 부원장직에서 해임되었음을 이사회 임시 결의에 따라 통보합니다."

서채윤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안도감과 함께,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되 적들을 철저히 파멸시키는 내 방식에 대한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한지호... 이 개새끼가!!!"

완전히 이성을 잃은 강현민이 비명을 지르며 민태준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가 병원을 위해 한 일이 얼마인데! 이 늙은이가 죽을 날 받아놓더니 노망이 났나 보군!"

경비원들이 황급히 달라붙어 강현민의 팔을 꺾어 제압하려 했지만, 발악하는 그의 광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청문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 아비규환의 중심에서, 나는 서채윤이 건네준 주식 긴급 가압류 및 양도 계약 서류를 받아 들었다.

만년필의 촉이 종이 위에 닿으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 정교한 손놀림 끝에서 강현민이 평생을 바쳐 모아 온 혜성병원의 영토가, 마침내 내 소유로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나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민태준과 울부짖는 강현민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이제 이 병원의 주인은 나다."

***

[주석] 1. 교모세포종(Glioblastoma): 뇌에 발생하는 가장 흔하고 침습적인 악성 뇌종양. 2. 메스(Scalpel): 수술 시 피부나 조직을 절개하는 데 사용하는 외과용 칼. 3. 어블레이션(Ablation): 절제술 또는 소작술. 조직을 고주파나 레이저 등으로 파괴하여 제거하는 치료법. 4. 테이블 데스(Table Death):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하는 일. 5. 미세동맥류(Microaneurysm): 모세혈관이나 미세 동맥의 벽이 약해져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증상. 터질 경우 뇌출혈을 유발함. 6. 안검하수(Ptosis): 윗눈꺼풀을 올리는 근육의 힘이 약해져 눈꺼풀이 아래로 처지는 현상. 뇌신경 마비의 전조증상일 수 있음. 7. 동서맥(Sinus Bradycardia): 심장의 박동 수가 분당 60회 이하로 느려지는 상태. 8. 어시스톨(Asystole): 심장의 전기적 활동이 완전히 멈추어 수축하지 않는 상태. 심정지. 9. 저체온 요법(Therapeutic Hypothermia): 이산화탄소 배출과 산소 소비를 줄이기 위해 환자의 체온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여과 치료법. 10. 뇌간 교종(Brainstem Glioma): 뇌의 생명 유지 장치를 담당하는 뇌간 부위에 발생하는 종양으로 수술적 접근이 극도로 까다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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