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14:02:15]

삐—————!

고막을 찢을 듯한 예리한 경고음이 수술실 내부를 강타했다. 수술대 옆에 늘어선 바이탈 모니터의 수치들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쳤다.

"환자 혈압 급하강! 120에서 순식간에 50까지 떨어집니다!"

마취과 의사의 날카로운 외침이 귀를 찔렀다.

"맥박수 35! 싸이누스 브라디카디아(Sinus Bradycardia, 동서맥)[7] 발생! 어시스톨(Asystole, 심정지)[8] 직전입니다!"

"뭐라고?"

서채윤이 비명을 지르듯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아직 본격적인 마취 유도제가 주입되기도 전이었다. 피부 절개조차 시작하지 않은 환자의 생체 신호가 이토록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은 의학적 상식을 벗어난 현상이었다.

삐- 삐- 삐-!

[경고: 환자의 혈압 조절 시스템 일체에 원인 불명의 급격한 쇼크 자극 주입 감지!] [약물 주입 라인 내 이상 화학 물질 유입 위험!]

시야를 가득 채운 투명한 공간 위로 붉은색 경고 텍스트가 명멸했다. 적광안(赤光眼)을 극대화하여 환자의 정맥 라인을 투시했다. 수액 백에서 뻗어 나온 얇은 튜브를 타고, 정체불명의 푸르스름한 독극물 반응이 핏줄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궤적이 뚜렷하게 보였다.

누군가 마취 시스템과 수액 백에 손을 써 둔 것이 분명했다. 수술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사장을 테이블 데스(Table Death)[4]로 몰고 가려는 가장 비열하고 잔혹한 암살 공작.

"한 과장님! 어떻게 해요? 심장이 멈춰가요!"

서채윤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술실의 공기를 얼려 버렸다. 나는 메스(Scalpel)[2]를 쥔 손가락 끝을 단단히 고정하며 모니터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수액 라인 전부 차단해. 당장."

내 목소리는 수술실의 경고음보다 더 낮고 냉정했다.

"예? 하지만 수액을 끊으면 약물 투여가……."

"마취과 과장, 내 말 안 들려? 저 수액 백 안에 심정지를 유발하는 칼륨이나 신경독성 물질이 혼입되어 있어. 지금 당장 라인을 클램프로 잠그고 새로운 노멀 셀라인(Normal Saline, 생리식염수) 백으로 교체해. 30초 준다."

마취과 의사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성진의료재단의 수장인 민태준 이사장의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상황에서, 내 명령은 절대적인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는 허둥지둥 수액 라인의 밸브를 잠그고 새로운 식염수 백을 걸었다.

하지만 이미 체내로 유입된 약물은 민태준의 심장을 멈추기 위해 질주하고 있었다. 모니터의 심전도 파형이 완만하게 누워 가며 일직선을 그리려 했다.

"심장 압박 시작할까요?"

서채윤이 손을 모으며 수술대 위로 올라서려 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한 손으로 제지했다.

"안 돼. 뇌간 부근의 미세 혈관들이 이미 압력을 받아 팽창해 있어. 여기서 흉부 압박을 가해 혈압을 급격히 변동시키면 뇌간 교종(Brainstem Glioma)[10] 주변의 혈관이 먼저 터져 뇌사로 직행한다."

"그럼 이대로 보고만 있으란 말씀이세요? 심장이 멈추면 끝장이에요!"

서채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나는 차갑게 가라앉은 머리로 계산을 시작했다. 민태준이 죽으면 그가 가진 성진의료재단의 우호 지분과 약속된 경영권 승계 카드는 그대로 휴지조각이 된다. 내 영토를 구축하기 위한 거대한 자산이 눈앞에서 증발하는 꼴은 용납할 수 없다.

"우회 혈관 접합을 고안한다. 그리고 환자의 전신 대사를 인위적 저체온으로 낮춘다."

"저체온 요법(Therapeutic Hypothermia)[9]이요? 이 상황에서?"

"체온을 32도까지 떨어뜨려 뇌세포의 산소 소비량을 극한으로 줄인다. 그러면 심장이 정지하더라도 뇌괴사 없이 버틸 수 있는 골든타임이 최소 20분은 더 늘어나. 서 선생, 당장 쿨링 패드 가져와서 환자 전신에 부착하고 냉각 수액 주입해."

내 지시는 단호했다. 망설일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채윤은 내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확신에 질려, 군말 없이 쿨링 장치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적광안의 투시 범위를 민태준의 뇌저부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바로 그때, 붉은 실선으로 엉켜 있는 뇌저동맥의 가지들 사이에서 기이하게 부풀어 오른 부위가 포착되었다.

'이 흔적은…….'

뇌간 바로 옆, 0.5mm도 되지 않는 미세한 혈관 벽이 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3년 전, 내가 이사회에서 쫓겨나기 직전 집도했던 이사장 친척의 수술이 머릿속을 스쳤다. 당시 그 환자의 뇌 속에서도 이와 완벽히 동일한 형태의 희귀 미세동맥류(Microaneurysm)[5] 흔적이 발견되었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적 혈관 결함.

민태준의 의무 기록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던 은밀한 약점이 내 적광안 앞에서 날것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역시 유전이었군."

나는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민태준은 자신이 가진 이 치명적인 결함을 숨기기 위해 개인 진료 기록부까지 조작하며 이중 제약사 거래를 통해 비밀리에 약을 처방받아 왔을 터였다. 강현민이 해외 투자자 은예원에게 넘기려 했던 그 이중 에스크로 계좌의 자금들 역시 이 추악한 비밀을 은폐하는 윤활유로 쓰였음이 자명했다.

"미세동맥류의 위치를 특정했다. 저체온 요법이 시작되는 즉시, 혈류가 완전히 멎기 전에 저 결함 부위부터 우회로를 만들어 묶는다."

"미세동맥류가 있다고요? 기록부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습니다!"

서채윤이 소리쳤다.

"기록부를 믿는 의사는 삼류다. 내 눈앞에 있는 환자의 육체만을 믿어라. 10-0 나일론 실 준비해."

나는 마이크로 가위를 쥐고 민태준의 두개골 내부, 뇌간과 소뇌 사이의 좁은 틈새로 손을 밀어 넣었다.

***

[14:15:30]

환자의 체온이 32.5도에 도달하자 생체 신호가 극도로 느려졌다. 심장 박동은 분당 25회까지 떨어졌지만, 저체온 상태 덕분에 뇌세포는 가사 상태에 빠져 괴사를 면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20분. 그 안에 뇌간 교종 절제와 미세동맥류 봉합을 동시에 끝낸다."

내가 메스를 고쳐 잡은 그 순간이었다.

툭.

수술실을 환하게 비추던 수만 와트의 무영등이 거짓말처럼 꺼졌다.

동시에 산소포화도 측정기와 인공호흡기, 바이탈 모니터의 화면들이 단 한순간에 암전되었다. 수술실 전체가 빛 한 점 없는 완벽한 칠흑 속에 잠겼다.

"엄마야!"

"정전이야? 비상 발전기는 왜 안 돌아가!"

마취과 레지던트의 비명과 의료진의 당황한 숨소리가 어둠 속을 가득 채웠다.

병원 전체의 전력을 통제하는 배전반이 물리적으로 차단되지 않는 한, 중환자실과 수술실의 전력이 이토록 완벽하게 끊어질 수는 없었다. 강현민과 이사회 놈들이 마지막 발악을 시작한 것이다. 수술실 내부에서 환자를 합법적으로 죽이기 위해 배전반을 공격한 것이 분명했다.

"모두 제자리 지켜! 움직이지 마!"

내 서늘한 외침이 어둠을 갈랐다.

"한 과장님,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수술을 중단해야 해요!"

서채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천재 의사라 할지라도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뇌수술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단 1mm의 오차만으로도 환자는 즉사한다.

사방은 고요했고, 오직 환자의 약한 호흡 소리만이 들려왔다.

"서 선생, 주머니에 있는 펜라이트나 스마트폰 라이트 켜서 수술 부위만 겨우 보일 정도로 비춰."

"예? 하지만 그런 희미한 불빛으로는 미세 혈관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신경을 건드리면 끝장이에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시간 없어."

서채윤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플래시를 켰다. 가느다란 백색광이 민태준의 열린 두개골 내부를 비추었지만, 깊고 어두운 뇌간의 틈새는 그림자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인 외과의라면 여기서 손을 놓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평범한 인간의 눈이 아닌 것이 있었다.

'적광안, 전개.'

스마트폰의 희미한 불빛을 비집고, 내 시야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민태준의 뇌 조직을 얽어가고 있는 수만 개의 신경망이 형광 빛을 발하는 붉은색 실선으로 찬란하게 떠올랐다. 종양 세포가 신경을 갉아먹고 있는 경계면이,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며 빛났다.

뇌간 교종의 정확한 경계선이 내 시야에 완벽한 지도로 그려진 것이다.

"보인다."

나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뭐가 보이신다는 겁니까? 이 어둠 속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서채윤이 말을 잇지 못했다.

내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메스와 초음파 흡인기를 쥔 내 손끝에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스윽. 스윽.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속도로, 메스의 날이 뇌간의 복잡한 신경 다발 사이를 정확하게 비집고 들어갔다. 종양의 외막만을 정밀하게 긁어내며, 붉게 빛나는 정상 신경망에는 단 0.1mm의 스크래치도 허용하지 않았다.

"포셉(Forceps)."

"아…… 예, 여기요!"

서채윤은 거의 본능적으로 기구를 내밀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나는, 빛이 없는 심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실을 자르고 붙이는 기괴한 마술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경고: 적광안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시신경 및 삼차신경역류 현상 감지!] [좌측 상지 감각 마비 진행률 45%!]

왼쪽 손가락 끝이 서서히 얼어붙는 듯한 차가운 감각이 몰려왔다. 뇌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경영 평판 누적 지수 1,500포인트 소모. 신경 마비 억제.'

[시스템: 평판 지수가 소모되었습니다. 신경 역류 억제 필터 가동.]

머리를 짓누르던 통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손끝의 감각이 다시 날카롭게 돌아왔다.

나는 메스를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뇌간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교종의 핵심 덩어리를 단숨에 드러내어 흡인기로 빨아들였다.

그와 동시에, 아까 포착했던 미세동맥류의 결함 부위로 바늘을 가져갔다. 붉은 광선이 가이드해 주는 최적의 선로를 따라, 10-0 나일론 실이 어둠 속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단 세 번의 정교한 매듭.

터지기 일보 직전이던 미세동맥류가 완벽하게 폐색되며 혈류 우회로가 완성되었다.

"종양 절제 및 미세동맥류 결찰 완료. 지혈 확인해."

내 목소리가 수술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벌써…… 다 끝내셨다고요? 이 어둠 속에서 뇌간 교종을 전부 박리했다고요?"

서채윤의 목소리는 경악을 넘어 공포에 가까웠다. 그녀가 스마트폰 라이트를 더 가까이 대고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단 1mm의 정상 신경 손실도 없었다. 뇌간의 미세 혈관들은 상처 하나 없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종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초미세 수술이, 빛 하나 없는 암흑 속에서 단 15분 만에 완벽하게 완결된 것이다.

***

[14:22:05]

탁! 웅—————!

수술실의 무영등이 다시 켜지며 눈이 부실 정도의 백색광이 쏟아졌다. 정지했던 바이탈 모니터들이 차례로 부팅되며 날카로운 비프음을 뱉어냈다.

뚜, 뚜, 뚜, 뚜.

민태준 이사장의 맥박수가 분당 75회로 정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혈압 역시 120에 80으로 완벽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바이탈…… 정상입니다. 혈액 가스 분석 수치도 완벽합니다."

마취과 의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적이에요…… 정말로 불 없이 이 수술을 성공시키다니……."

서채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을 듯 비틀거렸다. 그녀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수술실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메스를 트레이에 내려놓았다.

"기적이 아니라 정밀한 계산의 결과다. 서 선생, 마무리 봉합은 네가 해라."

내가 수술 장갑을 벗어 던지며 수술대에서 한 걸음 물러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수술실의 육중한 이중 차폐문이 거칠게 열리며 뒤로 밀려났다.

수술실의 엄격한 멸균 구역 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채, 수술 가운도 입지 않은 정장 차림의 남성 수십 명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혜성대학교병원 이사회 소속 보안팀의 표식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차가운 미소를 지은 강현민이 서 있었다.

"수술은 아주 눈부시게 끝난 모양이군, 한지호 과장."

강현민이 이죽거리며 다가왔다. 그의 뒤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수술대를 포위하듯 늘어섰다.

"이게 무슨 짓이지? 여기는 수술실이다. 당장 나가."

서채윤이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지만, 경비원들은 그녀를 가볍게 밀쳐냈다.

"비켜, 서 선생. 지금부터 우리는 병원의 규정과 법을 집행하려는 것뿐이니까."

강현민이 품 안에서 붉은색 직인이 찍힌 문서를 꺼내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한지호. 당신을 미국 의사 면허 도용 및 위조, 그리고 무면허 의료 행위 혐의로 이사회 특별 조사위원회 명의로 긴급 체포 및 연행한다."

"면허 도용이라고?"

서채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를 돌아보았다.

강현민의 눈빛에는 마침내 사냥감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는 비열한 승리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네 놈이 해외에서 취득했다는 그 화려한 임상 경력과 면허들, 우리가 손을 써서 전부 무효화시켰지. 넌 이제 천재 의사가 아니라, 이사장을 살해하려 한 무면허 사기꾼일 뿐이다. 끌어내!"

무장 경비원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눈으로 강현민의 얼굴을 응시하며,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사냥터의 형세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

[주석] 1. 교모세포종(Glioblastoma): 뇌에 발생하는 가장 흔하고 침습적인 악성 뇌종양. 2. 메스(Scalpel): 수술 시 피부나 조직을 절개하는 데 사용하는 외과용 칼. 3. 어블레이션(Ablation): 절제술 또는 소작술. 조직을 고주파나 레이저 등으로 파괴하여 제거하는 치료법. 4. 테이블 데스(Table Death):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하는 일. 5. 미세동맥류(Microaneurysm): 모세혈관이나 미세 동맥의 벽이 약해져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증상. 터질 경우 뇌출혈을 유발함. 6. 안검하수(Ptosis): 윗눈꺼풀을 올리는 근육의 힘이 약해져 눈꺼풀이 아래로 처지는 현상. 뇌신경 마비의 전조증상일 수 있음. 7. 동서맥(Sinus Bradycardia): 심장의 박동 수가 분당 60회 이하로 느려지는 상태. 8. 어시스톨(Asystole): 심장의 전기적 활동이 완전히 멈추어 수축하지 않는 상태. 심정지. 9. 저체온 요법(Therapeutic Hypothermia): 이산화탄소 배출과 산소 소비를 줄이기 위해 환자의 체온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여과 치료법. 10. 뇌간 교종(Brainstem Glioma): 뇌의 생명 유지 장치를 담당하는 뇌간 부위에 발생하는 종양으로 수술적 접근이 극도로 까다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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