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4:02 - 수술실 제3룸]
왼손 끝에서부터 시작된 결빙이 팔꿈치를 지나 어깨죽지를 타고 목덜미까지 뻗어 올라왔다.
피가 흐르지 않고 액체 질소가 혈관 속을 관통하는 감각.
뇌신경계의 역전류가 시각 피질을 사정없이 짓이기고 있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형광 붉은색 실선들이 미친 듯이 명멸하며 노이즈를 내뿜었다.
"한 선생? 왜 멈춰요?"
서채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일론 10-0 봉합사를 쥔 내 왼손 마이크로 포셉이 0.1밀리미터 단위로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그녀가 놓칠 리 없었다.
참관실 유리에 달라붙은 최형석 과장의 실루엣이 보였다.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수술실 문을 박차고 들어올 기세였다.
'이 타이밍에 마비라니.'
어금니를 악물자 턱관절에서 빠드득 소리가 났다.
환자의 척골신경 외막은 단 한 침의 매듭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여기서 손을 놓으면 지금까지 이은 미세 신경들이 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뜯겨 나간다. 환자는 평생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불구로 살아가야 하고, 내 복귀 시나리오는 시작되기도 전에 휴지조각이 된다.
머릿속에서 기계적인 경고음이 고막을 두드렸다.
[경고: 신경역류 현상 위험 수위 도달.] [좌측 상지 운동 신경 마비율 82%. 즉각적인 적광안(赤光眼) 비활성화를 권장합니다.]
'시끄러워.'
적광안을 끌 수는 없다. 이 매듭은 오직 붉은 실선이 가리키는 최적의 궤적대로 묶어야만 완벽한 전도율을 보장받는다.
필요한 건 정화제다. 이 빌어먹을 마비를 상쇄할 실질적인 자산.
'시스템. 평판 지수를 확인해.'
[현재 보유 중인 '경영 평판 누적 지수': 105 포인트.] [알림: 100 포인트를 소모하여 신경역류 페널티를 일시적으로 억제하시겠습니까? (억제 시간: 10분)]
'전액 소모한다. 당장.'
결단과 동시에 심장 부근에서 뜨거운 전류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어깨를 짓누르던 얼음 같은 마비 장벽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손끝으로 뜨거운 혈류가 다시 공급되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굳어 있던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드럽게 풀렸다.
"한 선생?"
"타이업(Tie-up) 합니다."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차갑고 가라앉아 있었다.
서채윤이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내 왼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굳어 있던 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끄러운 궤적이었다. 마이크로 포셉이 허공에서 두 번 회전하더니, 척골신경을 감싸는 신경외막의 마지막 경계를 완벽하게 맞물렸다.
스윽.
나일론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단단한 매듭을 형성했다.
그 순간, 시야를 가득 채우던 적색 실선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며 환자의 끊어졌던 신경망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완벽한 봉합. 신경 전도 테스트를 할 필요도 없을 만큼 무결한 결합이었다.
"……미친."
서채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수술대 위의 환자와 내 손을 번갈아 바라보며 완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 신경외과 교과서에 나오는 그 어떤 대가의 집도보다도 신속하고, 정밀하며, 기계적인 수술이었다.
"타이 끝났습니다. 세척하고 스킨 클로저(Skin closure) 준비하세요. 서 선생."
나는 메스를 놓고 수술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겨우 10분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평판 지수는 이제 단 5포인트 남았다. 이 병원에 도사린 적들을 완전히 짓밟고 내 영토를 매입하기 전까지는, 이 신경 마비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가야 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수술의 성공으로 내가 쥐게 될 카드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울 테니까.
***
[09:35:10 - 수술실 외부 복도]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들이닥친 것은 차가운 소독약 냄새와 짓눌린 분노의 기운이었다.
"한지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복도를 가로막아 선 사내는 강현민이었다. 성진의료재단의 차기 이사장 자리를 노리는 소시오패스. 그의 뒤에는 최형석 과장이 잔뜩 독이 오른 표정으로 서 있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 줄 알아? 징계 위원회에서 해고 처분까지 받은 놈이 감히 남의 수술방을 무단으로 침입해? 이건 명백한 불법 의료 행위야!"
강현민의 고함이 복도 벽을 타고 찌를 듯이 울렸다. 지나가던 간호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수술 장갑을 벗어 던지며 무심하게 그를 응시했다.
"불법 의료 행위라."
"그래! 당장 원무과와 법무팀 호출했어. 경찰에 무단 침입 및 업무방해, 무면허에 준하는 불법 시술로 고소할 테니까 그리 알아! 네 의사 면허는 오늘부로 끝이다!"
최형석이 옆에서 거들었다.
"한 선생, 자네가 아무리 미쳐 날뛰어도 병원 규정이라는 게 있네. 감히 내 환자를 빼앗아 수술을 해? 이건 의학계에서 매장당할 짓이야!"
그들의 협박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규정. 법적 고발.
약자들이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만든 가장 비겁한 방패막이.
"최 과장님."
내가 한 걸음 다가서자, 최형석이 찔끔하며 뒤로 물러섰다.
"자네가 수술했으면 저 환자, 세 시간 안에 손가락 다 괴사해서 잘라내야 했을 겁니다. 요골신경과 척골신경의 주행 경로조차 제대로 구분 못 하고 포셉을 쑤셔 넣던데. 그게 의사입니까, 아니면 도살업자입니까?"
"뭐, 뭐라고?!"
"그리고 강현민 실장님."
내 시선이 강현민의 부들부들 떨리는 눈꺼풀로 향했다.
"경찰을 부르든 법무팀을 부르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대신 그전에 이사장님께 허락은 받으셔야 할 겁니다. 방금 내가 살려놓은 그 '무단 침입 환자'가 누군지 알고는 계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강현민의 미간이 좁아졌다.
"안선재. 나이 42세. 성진그룹 계열사 사장이자, 민태준 이사장님의 친동생 쪽 외동아들이죠. 즉, 이사장 가문의 직계 방계이자 이번 재단 지분 승계 구도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인물."
강현민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듯한 경악이 그의 눈동자를 사로잡았다.
"이사장님이 가장 아끼는 조카의 오른손을 병신으로 만들 뻔한 최 과장을 비호하고, 그걸 완벽하게 살려놓은 나를 경찰에 고발하겠다? 재미있는 그림이 되겠군요. 해 보십시오. 어디."
"너, 너……!"
강현민이 말을 잇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그는 내 복귀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했겠지만, 환자의 신원까지 계산해 움직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이 병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모든 환자의 가치와 계보를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다.
환자의 생명은 내게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카드다.
바로 그때였다.
"커흑……! 윽!"
수술실 옆 회복실 방향에서 둔탁한 신음과 함께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환자분이 갑자기 피를 토하십니다!"
회복실 간호사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복도를 찢었다.
나와 강현민, 최형석의 시선이 일제히 회복실 유리창 너머로 향했다. 침대 위에서 방금 전까지 안정을 취하고 있던 안선재 환자가 몸을 활처럼 꺾으며 붉은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뭐, 뭐야? 수술은 잘 끝났다며!"
강현민이 최형석의 덜미를 잡았다. 최형석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신경 봉합은 완벽하게 끝났습니다! 이건 신경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왜 피를 토해!"
환자의 모니터가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려댔다.
비프, 비프, 비프-!
[HR(심박수): 145, BP(혈압): 70/40, SpO2(산소포화도): 82%]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환자의 안색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해갔고, 입가에서는 거품 섞인 선혈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해, 해모프티시스(Hemoptysis, 각혈)인가? 아니면 헤마테메시스(Hematemesis, 토혈)?"
최형석이 갈팡질팡하며 환자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허공에 손짓만 해댔다. 무능한 의사의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상태였다.
나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환자를 응시했다.
동시에 내 안의 본능이 요동쳤다. 사라졌던 적광안의 투시안이 환자의 흉부를 조준했다.
'보여라.'
환자의 흉곽이 투명하게 비치며 가슴 중앙의 대동맥과 심장이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지독하게 얽힌 혈관망 사이, 우관상동맥(RCA)의 기부(Origin) 근처에서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붉은색 주머니가 보였다. 지름 3밀리미터 남짓한 미세동맥류. 그것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져 심낭(Pericardium) 내부로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회수된 잔상: 이사장 가문 가계 혈관 결함 간파 성공.] [메모: 1화에서 집도한 이사장 친척의 미세동맥류 흔적과 일치하는 유전적 병변. 민태준 가문의 대물림되는 심장 혈관 결함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과연.'
내 예측이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이 가문 놈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유전적으로 심장 미세동맥류 결함을 공유하고 있다. 안선재는 사고의 충격과 수술 마취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의 혈압 상승으로 인해 숨겨져 있던 미세동맥류가 파열된 것이다.
"심낭 압전(Cardiac Tamponade)이다."
내가 나지막이 뱉은 진단명에 최형석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야! 환자는 팔을 다쳤는데 왜 심낭 압전이 와?"
"유전성 미세동맥류 파열입니다. 지금 심낭에 피가 차서 심장을 누르고 있어요. 이대로 3분만 방치하면 심정지(Cardiac arrest)로 테이블 데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환자 차트 어디에도 심장 질환 기왕력은 없었어!"
최형석이 현실을 부정하며 소리쳤다.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 지금 환자의 가슴속에서 피가 차올라 심장을 짓누르고 있는 저 붉은 광선의 경고가.
"비켜."
나는 최형석의 어깨를 거칠게 밀쳐내고 환자에게 다가갔다.
***
[09:37:45 - 회복실]
"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마취과 의사도 없고 수술실도 준비 안 됐어!"
강현민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눈에는 환자의 목숨보다 이 상황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이 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비키라고 했습니다."
내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환자 죽여서 내 복귀 기회를 날려버리고 싶지 않으면, 그 아가리 닥치고 뒤로 물러서."
"이, 이 자식이 진짜……!"
"메스(Scalpel) 가져와!"
내가 받아친 호통에 눈이 뒤집힌 간호사가 반사적으로 메스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서채윤이 급히 회복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환자의 상태와 내 손에 들린 메스를 보고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
"한 선생! 여기서 개흉(Open thoracotomy)을 하겠다는 건가요? 무균 상태도 아닌데!"
"그럼 수술실 올라가다 죽는 걸 구경할 겁니까? 서 선생, 포셉이랑 베타딘 들고 내 오른쪽에 서요. 어시스트합니다."
"……!"
서채윤은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이를 악물고 내 지시에 따랐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림 없는 이성으로 돌아왔다. 이 여자, 마음에 든다. 의사로서 무엇이 우선인지 아는 인간이다.
"포타딘 스왑(Potadine swab), 당장 가슴에 부어!"
서채윤이 환자의 흉부에 소독약을 쏟아붓듯 발랐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메스를 쥐었다.
적광안이 가리키는 붉은색 궤적. 가슴 중앙, 흉골(Sternum)의 정중앙 라인이 선명한 절개선으로 투시되었다.
서걱-!
메스가 환자의 피부와 피하지방을 단번에 갈랐다. 선홍색 피가 솟구쳤지만 멈추지 않았다.
"전기 소작기(Bovie) 없으니까 클램프로 압박해! 서 선생, 리트랙터(Retractor)!"
"네!"
서채윤의 손길이 기계처럼 정확하게 내 움직임을 뒤따랐다.
나는 흉골 절단기도 없이, 현장에 있던 무거운 가위와 겸자를 이용해 흉골의 결합 조직을 뜯어내듯 열어젖혔다. 뼈가 어긋나는 불쾌한 파열음이 들렸지만 내 손끝은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가슴이 열리자, 검붉게 부풀어 오른 심낭이 모습을 드러냈다. 터지기 일보 직전의 풍선처럼 팽팽했다.
"메스."
끝이 날카로운 11번 메스로 심낭을 살짝 찔렀다.
픽-!
압력에 갇혀 있던 검은 피가 내 안면 보호 실드로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짓눌려 있던 심장이 다시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둥, 둥, 둥-!
"혈압 올라갑니다! SpO2 90% 회복!"
간호사의 외침이 들렸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분출하는 피 사이로 적광안의 투시선이 찢어진 우관상동맥의 미세동맥류 부위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1초. 피의 분출 경로를 확인했다. 2초. 디벡키 포셉(DeBakey forceps)으로 출혈점의 상부를 정확히 눌렀다. 3초. 혈류가 차단되며 솟구치던 피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잡았다."
단 3초 만에 이루어진 응급 지혈이었다.
회복실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최형석은 입을 벌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강현민은 넋이 나간 눈으로 피칠갑이 된 내 손과 환자의 가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가?"
최형석의 떨리는 독백에 대답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이동식 무균 텐트와 심폐기(CPB) 준비해. 당장 테라피아 VIP 전용 수술실로 환자 이송한다."
회복실 입구에서 차갑고 단호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예원.
성진의료재단의 지분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이는 냉혈한 투자자이자, 아산재단의 실세인 그녀가 보디가드들을 대동하고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환자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나를 흥미롭게 응시했다.
"한지호 선생. 여전하군요. 아니, 예전보다 더 괴물이 되었어."
나는 포셉을 쥔 손을 떼지 않은 채 은예원을 바라보았다.
"은 대표님. 비즈니스를 하러 오셨다면, 서류부터 정리하셔야 할 겁니다."
"서류라니요?"
은예원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흔들림 없는 내 눈빛에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읽어냈을 것이다.
"이 환자, 내가 손을 떼는 순간 죽습니다. 그리고 이 환자가 죽으면 성진재단의 지분 구도는 대혼란에 빠지겠죠. 당신이 기획하는 M&A도 물거품이 될 테고."
나는 강현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무능한 자들이 내 복귀를 가로막고 법적 고발을 운운하고 있더군요. 은 대표님이 해결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지금 손을 놓고 이사장 조카의 장례식장에 조화를 보낼까요?"
"한지호! 네놈이 감히 협박을……!"
강현민이 소리를 질렀으나, 은예원의 차가운 시선이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강 실장. 조용히 해요. 당신의 그 멍청한 판단 때문에 재단 지분 수천억 원이 날아갈 뻔했으니까."
은예원이 비서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비서가 서류 가방에서 태블릿 PC와 종이 서류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혜성대학교병원 이사회 임시 복귀 승인서. 그리고 성진의료재단 우호 지분 2%의 수수료 양도 계약서입니다. 이미 이사장님의 전자 서명까지 받아두었죠. 한 선생이 이 환자를 완벽하게 살려낸다는 전제하에 효력이 발생합니다."
은예원의 제안은 철저히 비즈니스적이었다.
그녀는 내 실력을 믿었고, 나는 그녀의 자본과 영향력을 이용한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좋습니다. 거래 성립입니다."
나는 서채윤을 바라보았다.
"서 선생, 환자 이송 준비해요. 테라피아 수술실로 갑니다."
"네, 한 과장님."
서채윤의 호칭이 어느새 '과장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
[10:15:00 - 테라피아 VIP 전용 수술실]
수술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파열된 미세동맥류를 프롤린 6-0 봉합사로 이중 결찰하고, 대동맥의 혈류를 정상화시켰다. 바이탈은 완벽하게 안정되었고, 환자의 오른손 신경 역시 정상적인 전도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수술실을 나와 소독포를 벗는 내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알림: 성진의료재단 우호 지분 2.0%가 한지호 님의 명의로 신탁 등록되었습니다. (누적 지분: 2.0%)] [알림: 경영 평판 누적 지수 +150 포인트 획득. (현재 잔여 포인트: 155 포인트)]
차가운 활자가 내 눈을 채웠다.
팔의 마비 증세는 완전히 사라졌고, 내 영토를 매입하기 위한 첫 번째 벽돌이 단단히 박혔다.
복도 저편에서 강현민이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스마트폰에도 재단 지분 변동 내역이 전송되었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흙빛을 넘어 회색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재단의 핵심 지분 2%가, 단 한 번의 수술로 내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피가 묻은 채 굳어버린, 아까 개흉할 때 썼던 메스를 꺼내 그의 가슴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강 실장님."
나는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다음엔 당신 차례입니다. 심장 관리 잘해두십시오. 내 칼이 언제 당신 가슴을 열지 모르니까."
강현민의 눈동자가 공포와 분노로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그를 지나쳐 테라피아의 깊은 복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이 거대한 병원 제국의 첫 번째 방이 내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