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10 PM 수술실(OR) 제1번 방.
"이 수술도, 조만간 네놈들이 거머쥔 이 병원도 전부 내 손만 보게 될 거다. 얌전히 구경이나 해라."
수술실 벽면에 설치된 스피커 너머로 최형석의 악에 받친 비명이 뚝 끊겼다. 내가 제어 콘솔의 인터콤 수신 볼륨을 제로로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이중 강화유리 저편, 최형석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이내 흑자색으로 죽어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휴대폰을 귀에 대고 발을 동동 굴렀다. 기조실장 강현민에게 전화를 걸어 멸망전이라도 준비하려는 모양새였다.
"한지호 선생,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요."
서채윤이 마스크 위로 서늘한 눈빛을 빛내며 다가왔다. 그녀는 이미 에어샤워를 거쳐 멸균 가운과 라텍스 장갑을 완벽하게 착용한 상태였다.
"무단 침입에 불법 집도라니. 환자가 테이블 데스(Table death)*라도 하는 날엔 우리 둘 다 의사 면허가 박탈되는 걸로 안 끝나요. 형사 처벌입니다."
"면허 박탈?"
나는 메스를 고쳐 쥐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내 손의 가치는 이 병원 이사회 전체의 지분을 사고도 남는다. 서채윤 선생, 쓸데없는 걱정으로 칼끝 흔들리게 하지 말고 석션이나 제대로 준비해."
나는 환자의 으스러진 우측 전완부(Forearm)로 시선을 돌렸다.
상태는 처참했다. 개방성 골절로 뚫고 나온 요골(Radius) 파편들이 주변 신경과 미세 혈관들을 사정없이 찢어발겨 놓았다. 근육 사이로 쿨럭이며 뿜어져 나오는 암적색 혈류가 수술대를 적시고 있었다.
일반적인 외과의라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혈관 결찰(Ligation)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을 터였다.
하지만 내 눈은 달랐다.
스르륵.
안구 뒤쪽에서부터 뇌를 관통하는 듯한 찌릿한 열감이 솟구쳤다.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환자의 찢어진 조직 사이로 형광색 붉은 실선들이 선명하게 투사되었다.
'적광안(赤光眼).'
완벽하게 끊어져 근육 깊숙이 말려 들어간 요골신경(Radial nerve)*의 양 끝단.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갈가리 찢어진 척골신경(Ulnar nerve)*의 단면들이 서로를 향해 붉은 유도선을 뻗고 있었다.
그 붉은 실선들은 마치 "이 경로를 따라 봉합하라"고 지시하는 신의 설계도와 같았다.
"10-0 나일론(Nylon)*."
내 오른손이 허공으로 뻗었다.
어시스트 스크럽 간호사는 내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엉겁결에 마이크로 바늘홀더(Needle holder)를 내 손바닥에 탁 소리가 나게 쥐여주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미세 봉합사 끝에 달린 반원형 곡반늘이 무영등 불빛을 받아 은밀하게 반짝였다.
"수술 현미경 배율 20배로 고정해."
나는 미세 수술용 의자에 깊숙이 앉아 현미경 렌즈에 양눈을 밀착시켰다.
렌즈 너머로 확대된 세계는 붉은 광선의 길잡이들로 가득했다. 0.1밀리미터 수준의 오차도 파멸을 부르는 극도의 초미세 영역.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늘을 찔러 넣었다.
서채윤이 내 손놀림을 포착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잠깐, 미세 현미경 조절도 안 끝났는데 바로 진입해요? 신경외막(Epineurium)* 매칭은 어떻게 하려고..."
"눈으로 보고 맞추는 단계는 지났다. 핀셋으로 신경 끝단 고정이나 해."
내 오른손이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슥, 슥, 슈슉.
바늘이 신경외막의 가장 단단한 초입부를 부드럽게 관통했고, 왼손의 마이크로 포셉이 실끝을 낚아채 정교한 매듭을 지었다. 하나의 매듭이 완성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초에 불과했다.
"말도 안 돼..."
서채윤의 입술 사이로 신음 같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12:16:45 PM 수술실 제1번 방.
"서 선생, 멍하니 구경하러 들어왔나? 석션 팁 위치 오른쪽으로 3밀리미터 이동. 시야 확보해."
"아, 예! ...아니, 그런데 봉합 속도가 왜 이래요? 무슨 공장의 자동 재봉틀도 아니고..."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손끝의 궤적에 맞춰 귀신같이 석션과 리트랙션(견인)을 수행했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이 속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녀의 이성적인 판단력과 뛰어난 어시스트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재봉틀이라니. 예술품을 만드는 장인에게 실례되는 비유군."
"예술품이요? 지금 이 환자 살려서 재단 지분 뜯어낼 궁리만 하면서 무슨 장인 타령입니까? 철저한 비즈니스맨이라면서요."
"돈을 많이 주는 거래처일수록 납품하는 제품의 퀄리티는 완벽해야 하는 법이지. 그래야 내 몸값이 떨어지지 않으니까."
내 냉소적인 대답에 서채윤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지독한 인간이네. 환자의 생명을 주식 거래용 칩으로 보는 의사라니, 의대 다닐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졸면서 들었나 보죠?"
"선서 따위가 날 배신한 이사회로부터 지켜주진 않더군. 하지만 내 실력은 이 환자의 팔을 완벽하게 살려낸다. 서 선생이 그토록 숭상하는 '인간적인 의사'들이 포기한 팔을 말이야."
내 손끝은 단 1초도 쉬지 않았다. 붉은 광선이 가리키는 최적의 궤적을 따라 미세 바늘이 춤을 추듯 신경망을 가로질렀다. 요골신경의 첫 번째 다발이 완벽하게 결합되었다.
그때였다.
내 왼편에 서 있던 스크럽 간호사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극도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참관실 유리 너머에서 최형석이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공작인가.'
챙그랑-!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수술대에 준비되어 있던 마이크로 가위(Castroviejo scissors)*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세 신경의 끝단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 필수적인 초고가 장비였다.
"앗...!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손이 미끄러져서..."
간호사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고의성이 다분한 실수였다. 현장에서 장비가 오염되면 소독을 위해 최소 20분 이상의 시간이 지체된다. 그사이 골든타임은 날아가고 신경은 괴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참관실의 최형석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이 유리를 투과해 보이는 듯했다.
"한 선생, 가위가 오염됐어요. 다른 세트를 가져오려면 시간이..."
서채윤이 다급하게 외쳤다.
"필요 없어."
나는 차갑게 간호사를 쏘아보았다.
"거기 서 있는 인턴, 바닥에 떨어진 가위 주워서 폐기함에 넣어. 그리고 11번 메스(Blade) 새로 까서 가져와."
"11번 메스요? 그걸로 신경외막을 다듬겠다고요? 미세 가위 없이 메스 날로만 작업하는 건 신경 다발을 찢겠다는 소리예요!"
서채윤이 아연실색했다. 부하 간호사의 사보타주에 말려들어 수술을 망칠 셈이냐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미 다른 길이 보이고 있었다.
적광안의 붉은 광선이 지지직거리며 궤적을 수정했다. 가위가 없을 때, 메스의 칼날이 진입해야 할 가장 안전하고 미세한 가이드라인이 파란색과 붉은색의 혼합 광선으로 재계산되어 뇌리에 박혔다.
"나한테 안 되는 건 없다."
나는 건네받은 11번 메스를 펜처럼 쥐었다.
손끝의 미세한 떨림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터치. 메스 날이 0.5밀리미터 두께의 신경 다발 표면을 스치듯 지나갔다.
삭- 삭-.
가위보다 더 깔끔하게, 단 한 가닥의 신경 섬유도 손상시키지 않고 표면이 매끄럽게 정리되었다.
"세상에..."
사보타주를 감행했던 간호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기적적인 손재주였다. 뇌와 손의 완벽한 동기화가 아니면 불가능한 신기(神技).
12:20:15 PM 수술실 제1번 방.
어느새 참관실 유리벽 뒤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신경외과,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이 유리창에 바짝 붙어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불신과 경악이 교차했다.
"지금 한지호 저 친구, 현미경 배율을 몇으로 잡고 하는 건가?"
"25배율입니다. 저 배율에서는 숨만 크게 쉬어도 화면이 흔들리는데... 손이 전혀 떨리지 않아요."
"미친 속도군. 봉합 속도가... 기계보다 빨라!"
그들의 수군거림이 마이크를 타고 수술실 안으로 미세하게 흘러들었다.
나는 그들의 경악을 비웃듯 집도 속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초당 3침.
눈으로 쫓기조차 힘든 속도로 바늘이 허공을 가르고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묶고, 자르고, 다시 찌르는 행위가 단 하나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이어졌다.
기계조차 계산할 수 없는 신의 영역.
서채윤은 이제 비난하는 것도 잊은 채, 내 손끝이 만들어내는 기적적인 궤적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한지호 선생... 당신 진짜 괴물이었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경외감이 묻어 있었다.
참관실의 최형석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그의 입이 떡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지호를 불법 의료 행위로 고발하려던 그의 계획은, 이 압도적인 실력의 시연 앞에서 완전히 분쇄되었다. 이 수술을 멈추는 것은 의사로서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기에.
척골신경의 마지막 결합부 매듭을 지어야 할 순간이었다.
붉은 실선들이 서로 맞물리며 완벽한 원을 그리며 사라져 갔다.
그와 동시에.
쿵-!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고동쳤다.
머릿속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시야의 적광안이 지지직거리며 노이즈를 일으켰다.
'윽...!'
신경 역류의 법칙. 능력을 단시간에 과도하게 활성화한 대가였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차갑고 무거운 감각이 시작되더니, 이내 팔꿈치를 지나 손가락 끝까지 딱딱하게 굳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감각이 마비되고 있었다.
왼손에 쥔 마이크로 포셉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지막 매듭을 묶어야 하는데, 왼손 손가락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이 나무토막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한 선생? 왜 멈춰요?"
서채윤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참관실의 수많은 눈동자 역시 내 멈춰버린 손끝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비는 점점 더 위로 타고 올라와 내 목덜미까지 조여 오기 시작했다.
***
*요골신경 (Radial nerve): 팔의 뒤쪽에 위치하며 손등과 손가락의 신전(펴는 동작)을 담당하는 신경. *척골신경 (Ulnar nerve): 팔의 안쪽을 지나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과 감각을 담당하는 신경. *신경외막 (Epineurium): 말초신경의 가장 바깥쪽을 싸고 있는 결합조직 막. *나일론 10-0 (10-0 Nylon): 미세혈관 및 미세신경 수술에 사용되는 극도로 얇은 봉합사. *Castroviejo scissors: 미세 수술 시 정교한 조직 절개를 위해 사용되는 스프링 형태의 마이크로 가위. *테이블 데스 (Table death):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