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의 가슴속 깊은 구석에 고여 있던 질척한 공포와 비명이 도연의 폐부로 한꺼번에 밀려들던 그 찰나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허파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이물감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왈칵, 기침과 함께 터져 나온 뜨거운 선혈이 흑백의 건반 위로 점점이 흩뿌려졌다. 붉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는 와중에도, 도연의 눈 앞에는 푸른 안갯속에서 날카롭게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날리는 푸른 유리 파편의 환영이 선명하게 아른거렸다. 그 날카로운 진실의 파편들이 온몸의 신경을 난도질하는 통증 속에서, 도연은 버티지 못하고 깊은 암전 속으로 추락했다.
그날 밤의 지독한 폭우가 지나가고, 이튿날 아침이 밝았을 때에야 도연은 겨우 눈을 떴다.
신림당의 차가운 나무 바닥은 밤새 내린 빗물과 안개로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도연은 나지막한 신음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입가에 딱딱하게 말라붙은 피붙이가 피부를 당겨왔다. 소매 깃으로 입술 주위를 거칠게 닦아내는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가장 먼저 시선이 닿은 곳은 자신의 오른손이었다.
도연은 천천히 손가락을 쥐었다 펴 보려 했다. 엄지, 검지, 중지까지는 제 의지대로 가볍게 구부러졌다. 하지만 그 옆은 달랐다. 이미 지난 밤의 대가로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새끼손가락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옆에 나란히 자리한 약지마저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
목구멍 밖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연은 떨리는 왼손으로 오른손 약지를 억지로 꺾어 쥐어보았다. 차갑다. 얼음장 같은 냉기만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손목을 타고 올라올 뿐, 신경의 흐름이 뚝 끊겨버린 고목나무뿌리처럼 아무런 느낌도 전해지지 않았다.
1화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유독 차갑게 식어 아무리 비벼도 피가 잘 돌지 않던 그 우스운 새끼손가락의 저림 현상. 그것은 단순한 기후 탓도, 일시적인 신경통도 아니었다. 우수의 계약이 완전하게 체결되는 과정에서, 그의 육체가 영구적으로 파멸해 갈 것임을 알리는 가혹하고도 친절한 신체적 전조 증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젯밤, 두 번째 연주를 끝마친 대가로 약지마저 그 어둠의 영역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다섯 손가락 중 벌써 두 개가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개뿐이었다.
도연은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피아노 의자에 매달리듯 앉았다. 시선이 건반의 아래쪽, 어두컴컴한 틈새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난 밤 도연이 토해낸 피와 손끝에서 흘러내린 붉은 혈흔이 건반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굳어 가고 있었다.
붉고 진득한 그 흔적을 응시하는 도연의 뇌리로 박혜순이 건넸던 낮고 무거운 경고가 스쳤다.
'비가 오는 날마다 이 건반 밑바닥을 들여다보거라. 그 아래 스며든 붉은 수액 흔적이 무엇인지 아느냐? 너처럼 미련하게 남의 아픔을 제 몸으로 다 받아내고 껍데기만 남은 놈들이 흘린 마지막 피눈물이다. 우수의 대가는 절대로 공짜가 없어.'
그때는 그저 노인의 괴이한 넋두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건반 틈새로 뚝뚝 떨어져 고여 있는 자신의 붉은 혈흔은, 오래전 비극을 겪고 사라져 간 선임 연주자들의 굳어버린 핏자국 위에 한 층 더 짙게 겹쳐지고 있었다. 죽음의 대속이 바로 자신의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참혹하고 명백한 증거였다.
도연은 굳어버린 두 손가락을 감추듯 오른손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도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남의 살처럼 겉돌며 허공을 헤맸다.
스르륵, 뒤편에서 낡은 모포가 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연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간이침대 위에서 뉘어 있던 지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젯밤 그녀를 죽일 듯이 괴롭히던 공황 발작의 징후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안색은 맑았고, 거칠던 호흡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대신,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일어나자마자 피아노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도연의 뒷모습을 향해 고정되었다.
"도연아."
지원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젯밤의 혼란과 공포가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듯, 그녀의 음성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도연은 그녀와 시선을 섞지 않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돌린 채 차갑게 대꾸했다.
"정신이 들었으면 어서 나가. 네 그 지긋지긋한 발작 뒤처리하는 것도 이제 지겨우니까."
일부러 뱉은 가시 돋친 말이었다. 평소라면 이 말에 상처를 받고 입술을 깨물며 돌아섰을 지원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다. 지원은 침대에서 내려와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디뎠다. 그녀의 시선은 도연의 얼굴이 아닌, 그의 오른쪽 주머니 속에 깊이 처박혀 있는 오른손으로 향해 있었다.
"너, 손이 왜 그래?"
지원의 걸음걸이가 도연을 향해 서서히 좁혀졌다.
"신경 쓰지 말고 가라고 했을 텐데."
도연이 몸을 돌려 피하려 했지만, 지원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녀는 주머니 속으로 파고들 듯 도연의 오른쪽 손목을 억세게 낚아챘다. 가녀린 손아귀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억척스러운 아귀힘이었다. 도연은 저항하려 했으나, 이미 기력이 쇠한 몸으로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주머니 밖으로 도연의 오른손이 강제로 끌려 나왔다.
지원의 시선이 도연의 오른손 끝에 닿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도연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은 안쪽으로 기괴하게 구부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 옆의 약지 역시 부자연스럽게 꺾인 상태로 굳어 있었다. 마치 생명을 잃은 나뭇가지처럼, 아무런 온기도 핏기도 느껴지지 않는 무채색의 피부였다.
"이게…… 이게 뭐야?"
지원의 목소리가 급격히 갈라졌다. 그녀는 제 손가락으로 도연의 약지를 살며시 만져보았다. 손톱끝으로 살을 꾹 눌러보아도, 도연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무런 통증도,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진짜 죽은 살덩이였다.
"왜 손가락이 이래? 어제까지만 해도 새끼손가락만 이랬잖아. 왜 갑자기 네 번째 손가락까지 굳어버린 건데!"
지원의 목소리가 신림당의 눅눅한 천장을 때리며 울려 퍼졌다. 그녀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동안 도연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차가운 독설과 외면이 사실은 무엇을 감추기 위한 가면극이었는지, 그 잔인한 진실이 마침내 그녀의 눈앞에 완전히 벗겨져 드러난 순간이었다.
"내가 말했지. 나한테 신경 끄라고."
도연은 억지로 자신의 손목을 뒤흔들어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지원은 악착같이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으로 그의 마비된 오른손목을 강하게 움켜잡으며 그 앞에 무릎을 꿇듯 주저앉았다.
"거짓말하지 마! 내 발작이 가라앉은 거, 내가 어젯밤부터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게 된 거…… 다 이것 때문이지? 네가 피아노를 쳐서 내 고통을 다 가져간 거잖아!"
"한지원!"
"왜 그랬어! 왜 하필 네가! 네가 피아니스트인 걸 알면서, 손가락이 전부인 걸 알면서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지원의 절규가 가슴을 찢는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도연의 굳어버린 약지등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차갑게 식어 있던 도연의 피부에 그녀의 눈물이 닿자, 기이하게도 그 자리만 타들어 가듯 뜨거운 열기가 서렸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오해의 벽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도연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고 믿었던 그 왜곡된 원망의 끝에는, 오직 자신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는 한 남자의 처절한 헌신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주먹을 쥔 왼손등에 푸른 힘줄이 돋아났다. 더는 차가운 가식으로 그녀를 밀어낼 수 없음을 깨달은 그의 눈빛에 지독한 자학적 광기가 서렸다.
"그래, 맞아. 내가 가져왔어."
도연의 목소리가 낮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더는 피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진심이었다.
"네가 숨도 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걸 보느니, 내 손가락 따위 몇 개 제물로 바치는 게 훨씬 나아. 아니, 전부 다 마비돼서 평생 건반 위에 손을 올리지 못하게 된다 해도 상관없어."
"도연아, 제발……."
"내 손가락이 굳어가는 아픔 따위는, 네가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 5년의 지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것은 도연이 평생 가슴속에 품고 있던 자학적 속죄의 고백이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녀의 고통을 멈출 수만 있다면, 비록 그 끝이 자신의 완전한 파멸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건반을 누르겠다는 맹목적인 구원의 의지.
지원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이 도연의 시야 가득 들어왔다.
"아니, 난 싫어! 네가 망가지면서 얻는 평온 따위, 난 단 일 초도 원하지 않아! 왜 나 때문에 네가 무너져야 해? 왜 네 인생을 나한테 던져버리려는 건데!"
"그게 내가 살아 있는 유일한 이유니까."
도연의 단호한 선언이 지원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격렬하게 부딪쳤다. 밀어내려는 남자와, 기어코 그의 파멸을 막아서려는 여자의 의지가 팽팽하게 맞서며 대기조차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사그라지지 않는 슬픔 속에서,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도연의 기괴하게 마비된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피비린내와 빗물 냄새가 섞인 그의 차가운 손바닥을 자신의 뺨에 천천히 가져다 대며 눈을 감았다. 오열하는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그의 무감각한 손바닥을 적셨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도연의 차갑게 식어버린 손바닥이 지원의 살결에 닿는 찰나, 두 사람의 영혼을 잇는 보이지 않는 통로가 강제로 개방되었다. 우수의 계약이 초래하는 가장 잔인한 부작용인 '공명의 역효과'가 시작된 것이다.
도연의 마비된 손끝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던 영혼의 잔상. 그것이 지원의 뇌리를 향해 거침없이 역류해 들어왔다.
파아앗―!
지원의 시야가 순식간에 암전되며, 5년 전 그 비극적이었던 교통사고 당시의 처절하고 왜곡된 기억의 파편들이 환각이 되어 그녀의 뇌리를 강타했다. 푸른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도로, 붉은 헤드라이트 불빛, 그리고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튀던 푸른 유리 파편들.
그 무수한 파편의 이면에 숨겨진, 도연이 차마 말하지 못했던 5년 전 그날의 처절한 진실의 왜곡된 형상이 지원의 머릿속으로 사정없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원의 동공이 충격으로 크게 확장되며, 그녀의 호흡이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건반 위에 흩뿌려진 붉은 핏자국 위로, 아침 안개가 소리 없이 스며들고 있었다.
"아악……!"
지원의 입술 사이로 단말마 같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정신이 도연의 기억 속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다. 고막을 찢을 듯한 폭우 소리가 사방에서 고막을 때렸다. 5년 전, 그 축축하고 어두웠던 아스팔트 위의 밤이었다. 차창을 세차게 두드리던 거센 빗줄기와 제어력을 잃고 비틀거리던 차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도연의 굳은 옆모습이 환영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지원은 자신이 그 옆 조수석에 앉아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기억 속 도연의 얼굴은 원망이나 배신으로 가득 찬 얼굴이 아니었다. 절박함. 오직 그녀를 살려야 한다는 맹목적인 공포와 사랑만이 그의 눈동자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중앙선을 넘어 돌진해 오던 거대한 트럭의 전조등이 시야를 하얗게 불태웠을 때, 도연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운전대를 꺾어 자신만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조수석을 향해 제 온몸을 던져 지원의 머리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콰아앙―!*
쇠붙이가 짓겨지고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비명 같은 소음. 푸른 안갯속에서 날카롭게 깨어지며 사방으로 흩날리는 푸른 유리 파편들. 그 날카로운 파편들이 도연의 등과 어깨, 그리고 손등에 사정없이 박혀 들어갔다. 피가 철철 흐르는 손으로도 도연은 지원을 품에 안은 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지원아, 제발…… 살아야 해. 제발…….'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부짖던 목소리가 공명을 타고 지원의 심장으로 고스란히 이식되었다.
지원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5년 동안 품고 있었던 오해—도연이 자신을 버려두고 홀로 살아남기 위해 도망쳤다는 그 왜곡된 원망이, 일생 동안 자신을 착취해 온 의붓아버지 한태만이 주입한 잔인한 거짓말이었음을. 도연은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대신해 몸이 부서졌고, 찢어진 손으로 그녀를 안고 마지막 순간까지 기어 나왔던 것이다.
"하아, 하아……!"
지원이 격렬하게 숨을 몰아쉬며 도연의 손을 놓쳤다. 뒤로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그녀를 도연이 왼손으로 겨우 붙잡아 안았다. 그의 얼굴은 이미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공명의 부작용은 도연에게도 치명적이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다시금 검붉은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려 턱끝을 타고 뚝 떨어졌다.
"도연아…… 너, 왜……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지원의 목소리가 피울음처럼 젖어 있었다. 떨리는 손가락이 그의 창백한 뺨을 더듬었다.
"네가 날 구한 거였잖아. 네가 나 때문에…… 그 손이 그렇게 다 망가지면서까지 날 살린 거였잖아……!"
도연은 대답하는 대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의 긴 속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말하지 못한 진실은 언제나 소리 없는 흉기가 되어 서로를 찔러왔다. 이제야 밝혀진 진실 앞에서, 두 사람 사이에 남은 것은 구원이라는 이름의 가혹한 비극뿐이었다.
"알았으면…… 이제 가."
도연이 겨우 숨을 고르며 차갑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온기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내 손이 어떻게 되든, 그건 내가 선택한 대가야. 너는 그저…… 아프지 말고 살아가면 돼."
"싫어. 절대 안 해."
지원의 눈빛에 서린 절망이 이내 단단한 결의로 변해갔다. 그녀는 도연의 오른손, 완전히 굳어버린 두 손가락을 제 가슴팍에 꼭 끌어안았다.
"네 손가락을 제물로 바쳐서 얻는 삶 따위, 나한테는 지옥이야. 네가 치려는 그 피아노,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거야."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신림당의 목조 문이 거칠게 열렸다.
*끼이이익―*
바람을 타고 들이치는 안개 속에서, 검은 우비를 깊게 눌러쓴 박혜순과 노인회 감시자들의 실루엣이 문턱을 넘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차가운 쇠갈퀴와 가죽 끈이 들려 있었다.
지원의 어깨가 굳어졌다. 도연의 눈동자가 깊은 심연처럼 가라앉았다.
"비가 다시 거세지는구나."
혜순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무겁게 깔렸다. 그녀의 시선이 도연의 굳어버린 두 손가락과, 건반 아래 고인 붉은 흔적을 향해 멎었다.
"우림리의 법은 어긋남이 없다. 아이야, 다음 연주를 준비해야지."
창밖으로 다시금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먼지 쌓인 피아노의 건반 하나가 누군가 누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무겁게 내려앉으며, 기괴하고 낮은 불협화음을 신림당 내부에 울려 퍼뜨렸다.
세 번째 손가락의 죽음을 재촉하는, 보이지 않는 계약의 종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