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빗줄기는 사정없이 뺨을 때렸다. 가죽 재킷을 적신 빗물이 어깨를 타고 내려와 등줄기를 차갑게 적셨다. 품에 안은 지원의 체온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마치 서서히 식어가는 얼음 조각을 품에 안은 것처럼, 그녀를 쥔 도연의 두 손 끝이 가늘게 떨렸다.

“비키라고 했을 텐데.”

도연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이빨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결이 하얀 김이 되어 흩어졌다.

한태만은 뒤로 쓸어 넘긴 머리칼에서 빗물을 뚝뚝 흘리며 킬킬거렸다. 그의 눈빛은 뱀처럼 축축하고 집요했다. 5년 전, 지원의 재능을 착취하고 결국 그녀의 삶을 망가뜨렸던 그 탐욕스러운 시선이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번들거렸다.

“강도연 군, 여전히 싸가지가 없네. 귀한 남의 딸내미를 품에 안고 어디로 가시나? 병원은 내가 데려간다니까? 물론, 그전에 네 자식 놈 집안에서 받아내야 할 위자료 정산부터 깔끔하게 끝내고 말이지.”

태만이 비열하게 웃으며 한 걸음 다가서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우림리 노인회 감시자들이 젖은 우비를 펄럭이며 그들의 거리를 좁혀왔다. 기괴할 정도로 고요한 움직임이었다. 노인들의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저 마을의 비밀을 수호하고, 고통의 계약자가 제 몸을 바쳐 제물을 완성하는 과정을 감시하는 기계적인 눈망울들이었다.

지원의 가녀린 신음이 도연의 가슴팍에 닿았다. 그녀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도연의 뺨으로 흘러내려 빗물과 섞였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호흡은 이미 한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연은 이를 악물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은 이미 감각을 완전히 잃어 굳어버린 나무토막처럼 대롱거렸다. 지난번 연주로 치른 첫 번째 대가. 아무리 비벼도 피가 돌지 않고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던 그 손가락은 단순한 저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수의 계약이 그의 육체를 갉아먹기 시작했다는 선고이자, 되돌릴 수 없는 마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마비의 푸른 기운이 약지 손가락마저 타고 올라와 마디마디를 옥죄고 있었다. 손가락 두 개가 굳어가는 기이한 감각 속에서도, 도연은 남은 세 손가락과 왼손의 완력만으로 지원을 한층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비켜.”

태만이 손을 뻗어 지원의 어깨를 낚아채려던 찰나였다. 도연이 어깨를 비틀며 그대로 태만의 가슴팍을 들이받았다.

“억!”

단단한 골격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태만이 뒤로 나자빠졌다. 진흙탕에 엉덩이를 찧은 태만이 비명을 질렀다. 그 틈을 타 도연은 감시자들의 사이를 맹렬하게 돌파했다. 빗물에 젖은 노인들의 손길이 그의 가죽 재킷을 붙잡으려 허공을 긁었으나, 도연은 짐승 같은 기세로 그들을 밀쳐냈다.

쾅!

신림당의 낡은 목조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어두컴컴한 내부로 들이친 빗줄기와 함께 도연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오래된 레코드판 냄새와 눅눅한 안개 냄새가 섞인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도연은 주저 없이 지원을 낡은 벨벳 소파 위에 눕혔다. 그녀의 입술은 이미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고, 얇은 가슴은 불규칙하게 들썩였다.

“지원아, 조금만 참아. 제발.”

지원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도연의 손길이 애처롭게 떨렸다. 손끝에 닿는 그녀의 이마는 불덩이 같았다.

도연은 차가운 피아노 앞으로 돌진하듯 걸어가 건반 덮개를 열었다. 먼지 쌓인 건반들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이빨을 드러냈다. 건반 밑바닥, 희미하게 빛바랜 붉은 얼룩이 도연의 시야에 들어왔다. 언젠가 박혜순 할머니가 경고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 건반 밑에 스며든 붉은 수액이 뭔지 아냐? 너처럼 미련하게 남의 아픔 가져가겠다고 깝치던 놈들이 흘린 피눈물이야. 결국엔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고 평생을 송장처럼 살다 죽었지.’

그것이 피눈물이든, 영혼의 잔해든 상관없었다. 지금 지원을 살릴 수 있다면 제 손가락 전부를 이 건반에 갈아 넣어도 좋았다.

도연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양손을 건반 위에 올렸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은 건반 위에 닿지도 못한 채 공중에 삐딱하게 굳어 있었다. 약지 역시 마디마디가 뻣뻣하게 굳어 건반을 누를 힘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칠 수 있어. 남은 손가락으로 치면 돼.’

그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 중지 세 손가락만을 사용하는 변칙적인 타건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왼손이 묵직한 베이스를 받쳐주고, 오른손의 세 손가락이 쪼개진 멜로디를 메워야 했다. 비정상적인 연주법이었지만, 그의 천재적인 재능은 이미 뇌 속에서 건반의 도약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창밖의 빗소리가 거세질수록, 피아노 내부의 현들이 공명하듯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첫 음이 울렸다.

도레미파의 단조로운 스케일이 아니었다. 거칠고 날카로운, 그러나 한없이 슬픈 선율이 어두운 신림당 내부를 채우기 시작했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쓰지 못해 발생하는 기묘한 불협화음은 오히려 곡의 비장함을 더했다.

그 순간, 도연의 손목에 새겨진 푸른 흉터 같은 무늬가 서서히 붉은빛을 띠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열기가 팔뚝을 타고 심장으로 역류했다.

“아……!”

도연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소파에 누워 있던 지원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우수의 계약이 발동했다.

두 사람의 영혼이 비를 매개로 연결되는 강제적인 공명. 도연의 눈앞에 왜곡된 시공간의 틈새가 벌어지며, 5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지원의 무의식 세계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 도연아, 왜 날 버렸어?

지원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귓가에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도연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환청이었다.

— 네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피아노도, 내 삶도 전부 너였는데…… 어떻게 나만 두고 그렇게 도망쳐?

하얀 병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울부짖는 고등학생 시절의 지원이 보였다. 그녀의 휠체어를 가로막고 서서 비열하게 웃는 한태만의 실루엣도 함께였다.

— 지원아, 그 녀석은 이미 서울로 떠났다. 손가락이 부러진 널 보고 질려버린 거지. 쓸모없는 기집애라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라. 네 년이 기댈 곳은 이 애비밖에 없어. 알겠냐?

태만의 거짓말이 지원의 영혼에 낙인처럼 찍히는 과정이 도연의 뇌리에 적나라하게 주입되었다. 지원은 도연이 자신을 버렸다고 믿었다. 사고로 손을 다쳐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된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첫사랑이 가장 차가운 방식으로 내쳤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그 오해 아래에 숨겨진 것은 깊은 증오가 아니었다.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과, 혼자 남겨진 이의 뼈를 깎는 외로움이었다. 그녀가 매일 밤 겪어야 했던 공황 발작은, 도연이 자신을 떠나던 날의 빗소리와 태만의 가스라이팅이 결합해 만들어낸 끔찍한 감옥이었다.

“아니야…… 지원아, 난 그런 적 없어……”

도연은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건반을 더 강하게 내리쳤다. 그녀의 억울함과 원망이 온전히 그의 가슴으로 전이되었다.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심장을 손으로 꽉 쥐고 비트는 것 같은 통증에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도연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세 손가락에 힘을 실었다. 지원이 짊어져야 했던 그 무겁고 어두운 감정의 파편들을 자신이 전부 가져오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흘려야 했던 눈물을 대신 흘리고, 그녀가 받아야 했던 상처를 대신 받으면 그만이었다.

공명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의 거리는 단 1밀리미터도 남지 않은 것처럼 밀착되었다. 서로의 숨결이 섞이고, 심장 박동이 하나의 궤적으로 포개졌다. 지원의 고통이 도연의 육체로 넘어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와 동시에 도연의 손목에 새겨진 무늬는 푸른빛에서 완전한 선홍빛으로 변해갔다. 그것은 타들어 가는 촛불처럼, 도연이 지불해야 할 신체적 한계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잔인한 경고등이었다.

“흐윽…… 윽……”

소파 위 지원의 거친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얗게 질려 있던 그녀의 뺨에 미약하게나마 온기가 돌았다. 끊임없이 바르르 떨리던 손가락 끝이 진정되고, 잔뜩 찌푸려져 있던 미간이 서서히 펴졌다. 그녀를 옥죄고 있던 공황의 쇠사슬이 도연의 연주 소리에 맞춰 하나씩 끊어져 가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었고, 동시에 잔혹한 등가교환이었다.

툭.

도연의 오른손 약지 손가락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연주하는 도중, 약지가 건반 위로 힘없이 고꾸라졌다. 아무리 뇌에서 명령을 내려도 손가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감각이 사라진 자리를 차가운 마비의 전율이 완전히 지배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이어 약지까지. 두 개의 손가락이 영구적으로 죽어버린 순간이었다. 이제 피아니스트로서의 강도연은 완전히 파멸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선 셈이었다. 한 손의 절반이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도연의 입꼬리에는 미약한 안도의 미소가 걸렸다.

지원의 호흡이 완전히 평온해진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악몽에서 벗어나,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한 꿈나라로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지원의 고통을 수거한 대가는 도연의 육체를 가차 없이 파괴했다.

“커헉……!”

갑자기 도연의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과 함께 조여들었다. 지원의 폐부를 짓누르고 있던 마지막 트라우마의 덩어리, 사고 당시 차량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가슴을 짓눌렀던 그 압박감이 도연의 폐로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기도가 막히는 듯한 질식감 속에서, 도연은 격렬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울컥하며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도연은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으나, 손가락 사이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와 하얀 건반 위를 적셨다. 붉은 피가 백건과 흑건 사이의 틈새로 흘러내려, 건반 밑바닥의 오래된 붉은 자국과 섞여 들어갔다.

시야가 푸르게 흐려졌다. 빗소리가 멀어지고, 사방이 짙은 푸른 안개로 가득 차오르는 환각이 눈앞을 덮쳤다. 그 안갯속에서, 도연은 보았다. 5년 전 교통사고의 순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유리 파편을 온몸으로 막아 서던 한 소녀의 마지막 미소를.

그것은 그가 알지 못했던, 지원이 숨겨둔 마지막 진실이었다.

“지원…… 아……”

도연은 피로 물든 건반 위로 천천히 쓰러졌다. 건반들이 불협화음을 내며 무겁게 내려앉았고, 그의 의식은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열린 문틈으로 성난 폭우가 들이치며 신림당의 낡은 바닥을 적셔갔다.

피아노 건반 위로 흘러내린 붉은 피는 빗물에 씻겨 내리지 못한 채, 지워지지 않을 흉터처럼 건반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문이 삐걱거리며 더 크게 열렸다. 젖은 구두 굽이 마루판을 짓밟는 둔탁한 소리가 어둠을 깨뜨렸다.

비린내 섞인 진흙 냄새가 도연의 코끝을 찔렀다. 뺨을 타고 흐르는 건반의 냉기마저 아득해질 무렵, 거칠게 끄는 숨소리가 지독한 이명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것 봐라. 아주 지들끼리 신파극을 찍고 자빠졌네.”

태만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없었다. 건반 위에 쓰러진 도연을 내려다보는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피아노를 집어삼켰다. 태만이 손을 뻗어 도연의 어깨를 밀쳐내려던 순간이었다.

소파 위, 굳게 닫혀 있던 지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허파 가득 차 있던 무거운 안개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낯설고 뜨거운 타인의 기억이 해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5년 전,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을 안고 병원 복도를 달리던 도연의 절규. 제 다리가 으스러지는 통증 속에서도 자신만을 바라보던 그의 애처로운 눈빛. 그리고 지금, 제 고통을 대신 짊어지며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간 그의 손가락들.

“아……!”

지원이 가슴을 움켜쥐며 상체를 일으켰다. 숨통을 조이던 발작은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심장이 터질 듯한 통증이 다른 의미로 그녀를 옥죄었다. 그녀의 시선이 흔들리며 피아노 앞에 쓰러진 도연에게로 향했다.

그의 턱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붉은 선혈이 건반을 적시고 있었다.

“도연아……!”

지원은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듯 바닥으로 내려왔다. 무릎이 쓸리고 진흙이 묻는 것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기어이 도연의 곁으로 달려가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도연의 몸은 끔찍할 정도로 차가웠다.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새끼손가락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굽혀지지 않았고, 그 옆의 약지마저 생기를 잃은 회백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리 쥐고 비벼도 온기가 돌지 않는, 완전히 죽어버린 나뭇가지 같은 감각.

“너…… 왜 그랬어……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지원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와 도연의 젖은 뺨 위로 떨어졌다. 도연은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겨우 지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들썩였으나, 목소리 대신 붉은 피거품이 새어 나왔을 뿐이다. 그는 마비되지 않은 왼손 끝을 간신히 움직여 지원의 젖은 소매 끝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은 바닥을 쓸 뿐이었다.

태만이 그들 사이를 갈라놓듯 끼어들었다.

“야, 한지원. 정신 차렸으면 가자. 요새 네 몸뚱이 다 고쳐놨다고 소문나서, 서울에 있는 회장님이 아주 눈독을 들이고 계셔. 이 녀석 손가락 몇 개 분질러진 게 대수냐? 네가 살아야 내 주머니가 두둑해지지.”

태만이 지원의 팔뚝을 억세게 쥐어 올렸다.

“놓으라고!”

지원이 태만의 손등을 손톱으로 사정없이 긁어내렸다. 악에 받친 비명이 좁은 신림당 내부를 울렸다. 태만이 앗 뜨거워라 하며 손을 떼자, 지원은 도연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가녀린 어깨가 사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태만을 노려보는 눈빛만큼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때, 열린 문턱 너머의 어둠 속에서 박혜순 할머니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어깨 위로 들이치는 빗방울이 가죽 외투를 적셨다. 노인은 말없이 도연의 피투성이가 된 오른손과 건반 위에 스며든 붉은 핏자국을 응시했다. 그녀의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짙은 탄식이 흘러내렸다.

“기어이 두 개를 바쳤구나, 미련한 놈.”

혜순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그녀의 뒤편, 검은 우비를 입은 노인회 감시자들이 신림당의 출구를 촘촘히 에워쌌다.

태만은 기괴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의 비열한 눈동자는 곧 피아노 건반 위의 피와, 급격히 호전된 지원의 상태를 번갈아 보며 기이한 확신으로 가득 찼다.

“잠깐…… 진짜였어? 이 새끼가 피아노만 치면, 저 년 고통이 이놈한테 옮겨간다는 그 소문이?”

태만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탐욕에 눈이 먼 뱀의 눈빛이 도연의 남은 오른손 손가락들을 집요하게 훑었다.

“이거 아주 대단한 노다지였네. 강도연 군, 네 손가락 세 개만 더 제물로 바치면, 서울에 널린 돈 많은 노인네들 병도 다 고칠 수 있겠어. 안 그래?”

태만이 품 안에서 날카로운 잭나이프를 꺼내 들며 도연의 남은 손가락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지원은 본능적으로 도연의 몸 위로 자신을 던졌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폭우 소리와 태만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뒤섞여 신림당을 가득 채웠다.

도연은 점차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태만의 칼날 앞을 막아선 지원의 작은 등을 바라보았다. 지켜야 할 사람을 두고 눈을 감아야 하는 절망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차가운 빗물이 바닥의 핏자국을 희석하며 길게 흘러나갔고, 어둠은 더 깊은 늪이 되어 두 사람의 발목을 붙잡았다.

우림리의 빗소리는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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