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분홍빛 심장소리처럼 뜨거웠으나, 도연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은 그 어떤 자극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타인의 떨림을 구경하는 무감각한 돌덩이 같았다.
처음 우림리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아무리 주무르고 비벼도 피가 통하지 않던 오른쪽 새끼손가락의 그 지독한 저림. 도연은 그것을 그저 안개 낀 분지 마을의 습한 기후 탓으로 돌리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기후의 장난이 아니었다. 비를 매개로 타인의 고통을 대속하는 ‘우수(雨奏)의 계약’이 그의 육체를 잠식해 들어가며 내린 첫 번째 선고이자, 되돌릴 수 없는 영구 마비의 신호탄이었다는 것을 도연은 이제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지원의 손가락이 마비된 그의 마디를 쓸어내릴 때마다, 도연은 가슴속 깊은 곳이 칼로 저며지는 듯한 환통을 느꼈다.
“이게…… 뭐야?”
지원의 목소리가 잘게 갈라졌다. 그녀의 동공이 제멋대로 흔들리며 도연의 굳어버린 손가락에 박혔다.
“도연아, 너 손이 왜 이래? 왜 아무런 힘도 없어? 어째서…….”
도연은 턱끝을 굳게 사렸다. 상처를 들킨 짐승처럼, 그의 눈동자에 서늘한 방어기제가 번뜩였다. 그는 지원의 따뜻한 손아귀에서 제 손목을 거칠게 빼냈다. 억세게 잡아채는 힘에 지원의 가냘픈 신형이 앞으로 툭 쏠렸다.
“상관없는 일이야.”
도연의 목소리는 빗소리보다 차가웠다.
“상관이 없다니? 네가 피아노를 치는데, 손가락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상관이 없어!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렇지? 그날 밤, 네가 나 대신…….”
“착각하지 마.”
도연은 비웃음이 섞인 헛웃음을 흘렸다. 가슴속에서는 피눈물이 솟구쳤지만, 입술은 가장 잔인한 언어를 골라냈다. 그녀가 더 이상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이 불길한 희생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이 방법뿐이었다.
“네가 뭔데 내 손을 걱정해? 5년 전에 날 버리고 떠난 건 너야, 한지원.”
지원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도연아…….”
“동정하지 마. 구차하니까. 이 손은 과거의 사고 때문이고, 네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나서 얼쩡거리는 것 자체가 불쾌할 뿐이야. 그러니까 더는 주제넘게 굴지 말고 가.”
도연은 등을 돌렸다. 주먹을 쥔 왼손이 바르르 떨렸다. 지원을 상처 입히기 위해 뱉은 칼날 같은 말들이 도리어 그의 심장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쓸모를 증명하려는 그의 뒤틀린 자학은, 지원의 눈물을 먹고서 더욱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지원은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도연의 넓고 쓸쓸한 등을 응시했다. 거짓말. 그녀의 직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도연의 차가운 눈빛 너머에 일렁이던 그 처절한 슬픔을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도연의 독설은 그녀의 여린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겼다.
* * *
LP 바 ‘신림당’의 내부는 낮고 무거운 기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연은 창밖의 푸른 안개를 멍하니 바라보며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다. 우림리의 안개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기괴한 생명체처럼 축축하고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스산한 한기가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쿵.’
머릿속에서 무거운 건반 소리가 울렸다.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영혼의 밑바닥에서부터 공명해 오는 기이한 진동이었다. 신림당 중앙에 놓인 낡은 피아노와 자신의 영혼이 붉은 실로 묶여 있는 듯한 감각.
도연은 자신의 눈앞에 가상으로 펼쳐지는 ‘우수 계약 패널’의 붉은 수치들을 느꼈다. 비가 내릴 때마다 활성화되는 그 잔혹한 계약의 수치가, 지금 무서운 속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다음 통증 전이가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영혼의 전율이었다.
오른손 약지 손가락 끝이 찌릿하며 무거운 통증이 번졌다. 새끼손가락에 이어, 이제는 약지마저 앗아가겠다는 우림리의 무언의 경고였다.
도연은 피아노 건반 밑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며칠 전, 혜순 할머니가 건반 아래를 닦아내며 흘리듯 했던 경고가 뇌리를 스쳤다.
‘이 피아노 건반 밑바닥을 봐라. 이 붉은 수액 흔적들이 다 뭔 것 같냐? 이 마을에서 남의 아픔 대신 짊어지겠다고 깝치던 미련한 놈들이 흘린 핏물이야. 대가를 치른 놈들은 예외 없이 손이 썩어 문드러져서 비참하게 죽어 나갔어. 너라고 다를 것 같냐? 당장 이 마을을 떠나, 이 미련한 놈아.’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붉은 자국들이, 이제는 피아노 건반 사이사이에서 핏빛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환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도연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그의 삶은 이미 5년 전 그 사고에서 멈춰 있었다. 지원의 꿈을 앗아갔다는 죄책감,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 차라리 자신의 양손이 완전히 굳어 돌처럼 변해버릴지언정, 그녀가 매일 밤 겪어야 하는 그 지옥 같은 고통을 전부 빼앗아 올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것이 도연이 세상을 향해 속죄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 * *
콰르릉!
마른하늘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벼락 소리와 함께, 우림리의 하늘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것은 단순한 빗방울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수와도 같은 폭우였다. 성당의 낡은 유리창들이 바람에 덜커덩거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비명처럼 질러댔다.
“아…… 악!”
성당 한구석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도연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지원이었다. 그녀는 성당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제 목과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지원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녀의 시야 속에서, 5년 전 그 끔찍한 교통사고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사방을 가득 채운 푸른 안개. 그리고 그 안갯속에서 날카롭게 산산조각 나며 자신들의 살을 찢고 들어오던 푸른 유리 파편들의 환각.
“숨이…… 숨이 안 쉬어져…… 도연아…… 살려줘…….”
지원은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젓다 그대로 차가운 나무 마룻바닥 위로 쓰러졌다. 그녀의 작은 몸이 사시나무 떨듯 무섭게 진동했다. 5년 전 사고 당시, 부서진 차량 유리가 폐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폐 통증이 발작과 함께 그녀의 육체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피비린내가 역류하는 듯한 착각에 지원은 밭은기침을 토해내며 온몸을 뒤틀었다.
도연의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방금 전 그녀에게 모진 말을 내뱉으며 밀어냈던 이성은 폭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갔다. 오른손 약지에서 느껴지는 타들어 가는 듯한 마비의 경고음도, 온몸의 세포가 지르는 비명도 지금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녀가 아프다.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이 도연의 영혼을 강타했다.
도연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쓰러진 지원을 품에 안았다.
“지원아! 정신 차려, 한지원!”
지원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도연은 그녀를 품에 더 세차게 끌어안았다. 제 가슴이 터져나갈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지원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가쁜 숨소리가 그의 가슴팍에 고스란히 닿았다.
도연의 눈빛에서 차가운 가면이 완전히 벗겨져 나갔다. 그 자리에는 오직 한 사람만을 구원하겠다는 처절하고도 맹목적인 의지만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가져갈게. 전부 다 내가 가져갈 테니까…… 이제 아프지 마.”
도연은 지원의 땀적은 이마를 제 어깨에 묻게 하고, 그녀의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 새끼손가락 대신, 아직 살아 있는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그녀의 온몸을 빈틈없이 옭아맸다.
지금 당장 연주해야 한다. 비를 타고 흐르는 이 저주 같은 계약의 선율로, 그녀의 폐를 짓누르는 저 유리 파편 같은 통증을 제 몸으로 옮겨와야 했다.
도연은 정신을 잃어가는 지원을 단단히 고쳐 안아 올렸다. 그녀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도연은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성당 문을 거칠게 밀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차가운 빗줄기가 온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힘든 장대비 속에서, 도연은 오직 저 멀리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신림당의 피아노만을 바라보며 달렸다. 거친 숨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흩어졌다.
그때였다.
푸른 안개와 폭우가 뒤엉킨 도로 한가운데에서, 기괴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스윽, 스윽.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검은 우비를 눌러쓴 형체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씩 솟아올랐다. 그들의 손에는 낡은 손전등과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나무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우림리 노인회 감시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거미줄을 치듯, 도연과 지원이 가야 할 길목을 촘촘하게 에워쌌다. 손전등의 차가운 백색광이 도연의 얼굴을 사납게 비추었다.
노인회의 선두에 선 한 노인이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빗소리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기괴한 음성이었다.
“어디를 가려는 게냐, 연주자여.”
도연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품 안에서 지원이 밭은 숨을 몰아쉬며 신음했다. 도연의 눈빛이 짐승처럼 사납게 이글거렸다.
“비켜.”
“이곳의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 고통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억지로 막아서면 온 마을이 재앙을 입는 법. 그 계집의 고통을 억지로 거두려 하지 마라. 그것이 자연의 순리다.”
감시자들의 포위망이 서서히 좁혀왔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빗물이 기괴하게 흘러내렸다. 신림당의 피아노까지는 불과 수십 미터. 하지만 그들을 가로막은 검은 장벽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견고해 보였다.
도연은 지원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폭우가 그들의 온몸을 적시는 가운데, 도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어둠을 뚫고 쏟아지는 백색광 아래로, 검은 우비를 입은 노인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섰다. 그들의 눈빛은 온기가 배제된 채, 마치 잘 벼려진 칼날처럼 도연의 숨통을 겨누고 있었다.
“비켜.”
도연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품에 안긴 지원의 불규칙한 숨소리가 그의 귓가를 사정없이 때릴 때마다, 가슴뼈 안쪽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렸다.
“이 아이는 제물이 아니다. 우림리의 슬픔을 씻어낼 귀한 그릇을, 고작 외지인의 하찮은 통증 따위로 더럽힐 셈이냐.”
무리 뒤편에서 들려오는 노회한 목소리에는 감정이 거세되어 있었다. 평생을 마을의 기이한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온 방관자의 목소리였다. 그의 주름진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빗물이 기괴한 광택을 만들어냈다.
“네 손가락은 이 마을의 것이다. 그 가치를 사사로운 감정으로 낭비하지 마라.”
그들의 목소리는 비바람에 섞여 기괴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도연의 입술이 비틀려 올라갔다. 분노로 인해 그의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이 손이 누구의 것이든, 내가 어디에 쓰든 당신들이 상관할 바 없어.”
그가 한 걸음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른손 약지 손가락 끝에서부터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격통이 치솟았다.
기어이 올 것이 오고 있었다. 아직 피아노 건반을 누르지도 않았건만, 지원의 고통이 극에 달하자 매개체인 그의 육체가 먼저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약지 마디마디의 뼈가 삐걱거리며 급격히 차갑게 식어 내렸다. 감각의 영토가 한 뼘 더 좁아지는 공포가 그의 뇌리를 스쳤으나, 도연은 오히려 지원을 안은 팔을 더 단단히 조여 맸다.
“아윽……!”
품 안의 지원이 다시 한번 몸을 뒤틀었다. 그녀의 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감긴 눈꺼풀 아래로 동공이 빠르게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의식 세계는 지금 5년 전 그 푸른 안갯속에 갇혀 있었다.
살을 찢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유리의 비명. 사방으로 튀던 푸른 파편들. 지원의 손톱이 도연의 젖은 가죽 재킷을 찢을 듯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도연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도, 도연아…… 도망쳐…… 유리가, 유리가 온다…….”
가냘픈 신음소리가 도연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도연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이마에 제 입술을 꾹 눌렀다. 비장하기까지 한 그의 눈빛이 검은 우비 무리를 꿰뚫었다.
“비키라고 했어.”
낮게 가라앉은 맹수의 으르렁거림 같은 목소리였다. 도연은 정면을 향해 돌진하듯 발을 내디뎠다.
그때, 노인들이 길을 터주듯 서서히 갈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양보가 아니었다. 갈라진 무리의 틈바구니, 신림당의 낡은 목조 문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비죽 솟아오른 깃과 천박할 정도로 번들거리는 눈빛. 빗속에서도 감출 수 없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사내.
한태만이었다.
“어이, 강도연 군. 오랜만이네?”
그의 목소리가 폭우를 뚫고 도연의 고막을 찢듯이 파고들었다. 지원의 숨통을 조여 오던 만악의 근원이자, 그녀의 고통을 돈줄로 여기는 기생충이 마침내 그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태만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마치 사냥감을 몰아넣은 사냥꾼처럼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우리 지원이가 많이 아픈가 보네? 걱정 마, 내가 좋은 병원으로 데려갈 테니까. 물론, 그전에 우리가 정산해야 할 금전적인 문제들이 좀 남았지만 말이야.”
한태만의 시선이 도연의 굳어버린 오른손으로 향했다. 그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동시에, 도연의 오른손 약지 손가락이 완전히 힘을 잃고 툭 아래로 처졌다. 두 번째 마비가 완전히 그의 육체를 잠식한 순간이었다.
가장 잔인한 폭우 속에서, 그의 남은 손가락들이 연주해야 할 구원의 선율은 이미 핏빛 소나기에 씻겨 흐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