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손목 안쪽의 흰 살결 위로 피어올랐던 푸른빛 낙인이 스러진 자리에는, 살갗을 뚫고 들어간 지독한 냉기만이 남았다. 오른손 끝에서 시작된 마비는 뼛속의 골수를 얼려버릴 듯한 기세로 팔뚝을 타고 심장을 향해 역류했다. 단순한 저림이 아니었다. 손가락 끝의 세포 하나하나가 돌로 변해가는 듯한, 생명의 온기가 영영 거두어지는 가혹한 감각이었다. 도연은 힘을 주어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굽혀보려 했다. 그러나 손가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완전히 끊어진 신경의 침묵.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건반 위에 얹혀 있던 손이 비틀거리며 떨어졌다.

덜컹이는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도연의 상체가 앞으로 크게 기울었다. 피아노 의자 모서리를 간신히 붙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 고꾸라졌을 터였다. 허파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한 움큼 삼키는 것처럼 목구멍이 아려왔다. 방금 전까지 지원의 얇은 어깨를 사정없이 흔들던 그 지독한 호흡 곤란이, 이제는 그의 가슴팍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쿵, 쿵, 쿵.

가슴속에서 날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를 거칠게 때렸다. 도연은 왼손으로 제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젖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박동은 지나치게 빠르고 불규칙했다. 이것이 그녀가 매일 밤 마주해야 했던 지옥의 실체였다. 사방이 꽉 막힌 수조 속에 갇혀 서서히 가라앉는 듯한 단절감.

도연은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지원의 모습이 흐릿한 시야 사이로 들어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 밭은 기침을 토해내며 온몸을 뒤틀던 그녀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춰 있었다. 굳게 닫혀 있던 지원의 입술 사이로 규칙적이고 가느다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통으로 허옇게 질려 있던 뺨에는 발그레한 온기가 아주 미약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깊고 아늑한 숲속에서 단잠을 자는 아이처럼, 그녀의 얼굴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도연은 젖은 머리칼 사이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지도 못한 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픔이 전이되었다.

그녀를 괴롭히던 그 잔인한 트라우마의 손길이, 그의 연주를 타고 고스란히 그의 육체로 넘어온 것이다. 등 가죽을 파고드는 통증 속에서도 도연의 입술 끝이 미세하게 호선을 그렸다. 가슴을 가득 채운 것은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었다.

비록 오른손 끝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죽어버렸지만, 그녀가 숨을 쉬고 있었다. 고통 없는 세상에서, 온전하게.

"미련한 놈."

적막을 깨고 들려온 것은 낮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신림당의 낡은 나무 문이 어느새 열려 있었는지, 안개 냄새와 함께 젖은 외투를 입은 박혜순이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우산 끝에서 빗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혜순의 주름진 눈가에는 깊은 원망과 감출 수 없는 슬픔이 일렁였다.

혜순은 성큼성큼 다가와 도연의 오른손을 거칠게 낚아챘다. 거칠고 투박한 노인의 손가락이 도연의 오른손 마디마디를 꾹꾹 눌렀다. 힘없이 대롱거리는 새끼손가락을 만지는 순간, 혜순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결국 손을 댔구나. 기어이 그 금기를 풀었어."

"할머니."

"닥쳐라.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혜순은 도연의 손을 팽개치듯 놓고는, 피아노 건반 밑바닥을 거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두운 조명 아래, 건반 프레임 아랫부분의 해묵은 나무 틈새가 드러났다. 그곳에는 짙은 갈색으로 변해 굳어버린 얼룩들이 조각조각 엉겨 붙어 있었다. 마치 마른 피가 썩어 문드러진 것 같은 기이한 흔적이었다.

"이 얼룩들이 왜 여기 남아 있는지 아느냐? 한때 이 마을에서 너처럼 대가를 치르며 남의 지옥을 짊어지겠다고 덤벼든 미련한 인간들이 흘린 피눈물이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손가락 끝이 굳어가고, 살이 터져 피가 흘러도 멈추지 못했던 그 불쌍한 영혼들의 마지막 흔적이라고."

혜순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그녀의 굳은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 자식 놈도 그랬다. 남의 아픔을 지가 다 짊어지면 성인군자라도 되는 줄 알았지. 결국 손가락이 다 굳어 썩어 들어갈 때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더니, 마지막에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버렸어. 도연아, 이 짓거리를 시작한 이상 너는 멈출 수 없어. 네 몸뚱이는 하나씩 고장 날 게고, 끝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불구가 되어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가게 될 거다."

도연은 혜순의 다그침을 묵묵히 들으며, 슬그머니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주머니 안쪽의 천에 닿는 새끼손가락의 느낌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있는 것처럼 철저한 무감각이었다.

"지원은... 이제 숨을 쉽니다."

도연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기집애가 숨을 쉬면, 네 손가락이 죽어 자빠지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말이냐?"

"네."

단호한 대답에 혜순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직감한 노인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녀는 혀를 쯧 차며 뒤를 돌아섰다.

"지옥 길을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구나. 내 평생 너 같은 미련 곰탱이는 처음 본다."

그때, 바닥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원의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밀어 올렸다. 흐릿하던 시야가 맑아지며 신림당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원은 멍하니 누워 있었다. 언제나 가슴을 옥죄던 날카로운 무언가가 사라져 있었다. 매일 밤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들이마시는 것 같던 그 지독한 가슴 통증이 거짓말처럼 연기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고요하고 부드럽게 뛰고 있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아무런 방해물도 없는 온전한 호흡이었다.

지원의 입가에 아주 작고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너무나 맑고 안도감에 가득 차 있어서, 지켜보던 도연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늘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세상을 경계하던 그녀의 얼굴이, 오직 이 순간만큼은 예전 고등학교 시절의 그 순수했던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찰나에 불과했다.

지원이 상체를 일으키며 옆에 서 있는 도연을 발견하는 순간, 그녀의 미소는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지원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이전처럼 고통에 겨워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도연을 향한 경계심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몸에 힘이 넘쳐났다. 늘 자신을 짓누르던 무거운 피로감이 밤새 내린 비에 씻겨 내려간 것처럼 말끔히 가신 상태였다.

지원은 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몸을 살폈다. 매일 아침을 지옥으로 만들던 발작의 잔상이 흔적도 없었다.

"내가 쓰러졌던 건가?"

"가벼운 빈혈이었어. 비가 와서 기압이 낮아져 그랬겠지."

도연은 가슴을 찌르는 통증을 들키지 않으려 억지로 목소리를 평온하게 가다듬었다.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주머니 속의 오른손을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다.

지원의 날카로운 시선이 도연의 얼굴에 닿았다.

그의 얼굴은 유난히 창백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셔츠 깃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찌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 상태가 왜 그래?"

지원이 두어 걸음 다가서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염려가 묻어났다.

"아무 일도 아냐. 어제 잠을 좀 설치 법 해서."

도연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두었다. 그의 노골적인 회피에 지원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래, 네가 아프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지원은 쌀쌀맞게 쏘아붙이며 돌아섰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그녀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도연의 창백한 얼굴을 다시 한번 훔쳐보았다. 손잡이를 잡은 그녀의 손가락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걱정과 원망이 뒤섞인 복잡한 시선이 도연의 몸짓 하나하나를 쫓았다.

"다시는 이런 일로 얽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원은 그 말을 남기고 신림당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딸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빗소리 속으로 멀어졌다.

지원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도연은 참았던 거친 숨을 토해내며 싱크대로 달려갔다. 그는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빼내어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렸다.

솨아아아-!

차가운 지하수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렸다. 도연은 오른손을 그 서슬 퍼런 물줄기 아래로 밀어 넣었다.

살을 에어내는 듯한 차가움이 왼손에는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오른손 새끼손가락에는 아무런 자극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방울이 손가락 표면에 닿아 튕겨 나가는 감각조차 느낄 수 없었다.

도연은 왼손으로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뼈마디가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비틀어 보았다. 손톱 끝으로 살점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배어 나올 때까지 꼬집었다.

아무런 통증도,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죽어버린 나뭇가지와 같았다.

피아니스트로서 평생을 건반 위에서 춤추게 했던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그렇게 차가운 돌덩이로 변해 있었다. 도연은 물줄기 속에 멍하니 잠긴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하늘은 그가 치러야 할 다음 대가를 재촉하듯, 더욱 요란한 소리로 신림당의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건반 위로, 지울 수 없는 첫 번째 낙인이 깊게 새겨진 밤이었다.

빨갛게 번진 피가 하얀 사기 싱크대 구멍으로 소용돌이치며 쓸려 내려갔다. 차가운 온도가 손등을 타고 시리게 감돌았지만, 상처가 난 새끼손가락 끝은 여전히 남의 살처럼 겉돌았다. 차가운 물속에 잠긴 손끝은 어떠한 감각의 파동도 전하지 못한 채, 그저 투명한 수막 너머의 풍경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도연은 수건으로 피를 닦아내려 했으나, 다섯 손가락이 고르게 힘을 받지 못해 수건이 자꾸만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굳어버린 손가락 하나가 지탱하던 균형의 축이 무너지자, 사소한 일상적 동작조차 삐걱거렸다. 그는 왼손으로 겨우 수건을 집어 올려 오른손 상처를 감쌌다. 단단히 동여매는 동안에도 통증 대신 기분 나쁜 무거움만이 뼛속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도연은 젖은 손을 대충 문지른 뒤, 다시 홀 중앙의 피아노 앞으로 걸어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건반은 마치 이빨을 드러낸 맹수의 아가리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기적을 자아냈던 가문비나무 판때기들이 이제는 그의 생명을 갉아먹은 대가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건반 위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오른손 5번 손가락.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날렵하고 단단해야 할, 고음역의 찬란한 멜로디를 책임지는 그 손가락을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의 경계에 얹었다.

도연은 뇌에서 손가락 끝으로 신호를 보냈다. 굽혀라. 건반을 눌러라. 하지만 그의 의지는 허공에서 길을 잃은 듯 뚝 끊어졌다. 손가락은 죽은 나무토막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왼손을 가져다 대고 강제로 새끼손가락을 꺾어 건반 위로 내리눌렀다.

툭.

건반이 힘없이 내려앉으며 둔탁하고 거친 소리가 울렸다. 울림판을 제대로 울리지도 못한, 숨이 막힌 듯한 소리였다. 도연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건반에서 손을 떼자, 새끼손가락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툭 떨어져 옆 건반 위에 힘없이 얹혔다.

완벽한 영구 마비.

그것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이제 그는 바흐의 평균율도, 쇼팽의 녹턴도 예전처럼 연주할 수 없다. 단 한 손가락의 공백만으로도 그가 평생 쌓아 올린 세계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터였다.

그러나 가슴을 채운 것은 원망이 아닌 기묘한 해방감이었다. 손가락 하나를 잃은 대가로 지원은 숨을 얻었다. 그렇다면 기꺼이 바칠 수 있었다. 아홉 개가 남았으니까. 아니, 열 손가락이 모두 돌이 된다 해도 그녀가 다시 웃을 수만 있다면. 자신을 파멸시켜서라도 쓸모를 증명하려는 자학적인 충동이 그의 가슴속에서 검푸른 이끼처럼 자라났다.

도연은 건반 위에 이마를 기댄 채 거친 박동을 가라앉혔다. 그때, 피아노 의자 아래쪽에 떨어져 있는 조그만 물건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원이 쓰러지면서 주머니에서 흘린 것이 분명한 작은 가죽 지갑이었다.

도연은 왼손으로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 올렸다. 손때가 묻어 부드러워진 가죽 틈새로 접힌 종이쪽지가 삐져나와 있었다. 손가락을 제어하기 힘든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쪽지를 펼치자, 낡은 종이 냄새와 함께 잉크가 번진 글씨들이 나타났다. 병원의 처방전이었다.

[중증 공황장애 및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한 급성 통증 조절제]

하루에 세 번, 일반적인 용량의 세 배에 달하는 마약성 진통제와 항불안제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구겨진 종이 모서리마다 묻은 얼룩이 그녀가 견뎌온 지옥의 깊이를 짐작게 했다. 도연은 처방전을 쥔 왼손등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가 이토록 서서히 죽어갈 때까지, 자신은 비겁하게 도망쳐 숨어 있기 바빴다는 죄책감이 다시금 가슴을 사정없이 찔러왔다.

그때였다.

지갑 안쪽에서 진동음이 낮게 울렸다. 지갑 속에 같이 들어있던 지원의 휴대전화가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냈다. 화면 위에 뜬 발신자 이름은 '한태만'이었다.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는 적대자의 이름이 뜨는 순간, 실내의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도연은 침을 삼키며 액정 화면을 응시했다.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망설이는 찰나, 진동이 뚝 끊어지고 뒤이어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디 숨어 있는 거냐? 우림리라는 구석진 동네까지 내려갔다며. 재단에서 네 치료비 지원 끊겠단다. 당장 기어나와서 합의서에 도장 찍어. 내 인내심도 한계다.]

화면을 바라보는 도연의 눈빛이 심연처럼 깊고 차가워졌다. 한태만이 이곳 우림리까지 지원의 목덜미를 움켜쥐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얻은 찰나의 평온은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위태로운 고요에 불과했다.

스산한 바람이 창문을 거세게 흔들며 빗방울을 유리창에 흩뿌렸다.

도연은 홀로 남겨진 어두운 바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꼭 쥔 채 빗소리를 들었다.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계약의 톱니바퀴가 거칠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가 지불해야 할 형벌의 무게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하려 들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들은 마치 그의 남은 손가락들을 차례로 지목하는 냉혹한 집행관의 속삭임처럼 창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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