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의 거대한 품에 갇힌 분지 마을, 우림리의 공기는 언제나 물을 가득 머금은 스펀지 같았다. 낮게 내려앉은 지붕들 사이로 안개가 이끼처럼 번져 나갔다. 이곳의 기압은 유독 낮아, 가슴뼈 안쪽을 묵직하게 누르는 감각이 일상이었다.
강도연은 낡은 LP 음악 바 ‘신림당’의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쪽 새끼손가락 끝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손가락을 굽혀 보려 했지만, 마디 끝에서 서늘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손목 안쪽 뼈 밑바닥에서부터 찌르르한 통증이 가느다란 바늘처럼 돋아나 뼈를 긁어내렸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의 온기를 나누어 주려 아무리 문질러 보아도, 새끼손가락의 한기는 살갗 아래 아주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척추를 타고 서서히 타고 올라왔다. 기온 탓이 아니었다. 이 마을에 들어온 날부터 시작된 이 기묘한 무감각은, 마치 몸 안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굳어 가고 있다는 경고 같았다.
딸랑.
문가에 매달린 낡은 황동 종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눅눅한 바깥바람이 안개와 함께 실내로 들이쳤다. 도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문틀 사이에 서서 우산을 접고 있는 여자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물기 어린 긴 머리칼이 어깨 위로 무겁게 흘러내려 있었고, 옅은 베이지색 코트 자락 끝은 이미 흙탕물로 얼룩져 있었다.
한지원.
5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옆얼굴을 알아보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젖은 우산을 꽂이에 꽂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지원의 움직임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잘게 떨리더니,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얇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도연은 급히 움켜쥐고 있던 오른손을 테이블 밑으로 내렸다. 손끝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입안이 바짝 말라붙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원은 도연을 피해 다른 테이블로 가려 하지 않았다. 대신 곧장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구두 굽이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디딜 때마다 도연의 가슴속 깊은 곳에 박힌 파편들이 삐걱거리는 듯했다.
지원이 도연의 테이블 앞에 멈춰 섰다. 그녀의 목덜미 부근, 깃 아래로 살짝 드러난 곳에 5년 전 그 끔찍했던 사고의 흔적인 허연 흉터가 희미하게 보였다. 도연의 시선이 그 흉터에 닿자마자, 지원은 깃을 거칠게 세워 올리며 그 시선을 차단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나?”
지원의 목소리는 빗물에 젖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슬픔보다 증오가 먼저 벼려진 목소리였다.
도연은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꺼끌거렸다. “...지원아.”
“그 이름 부르지 마.” 지원은 테이블을 손끝으로 짚었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손가락 마디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5년 동안 죽은 듯이 숨어 살다가, 왜 이제 와서 내 눈앞에 알짱거리는 건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여기 있어?”
“우연히... 흘러들어온 것뿐이야.” 도연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변명치고는 가엾을 정도로 초라했다. 그는 진짜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매일 밤 죄책감에 짓눌려 손가락이 마비되는 악몽을 꾸다가, 결국 이 비 내리는 무덤 같은 마을까지 도망쳐 왔노라고 고백할 수는 없었다.
“우연?” 지원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실소였다. “네 우연 때문에 내 인생이 어떻게 박살 났는지 알면서도 그 말이 나와? 그날 밤, 네가 날 차에 태우지만 않았어도... 네가 그 피아노만 치지 않았어도!”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5년 전의 폭우, 찢어지는 듯한 타이어 굉음, 그리고 산산조각 나던 차창 너머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지원의 모습이 도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도연은 눈을 감았다. 그 죄책감은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미안해.”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스스로가 가증스러울 정도로 무력한 단어였다.
“그 가벼운 사과 한마디로 다 끝날 일이었으면, 난 약에 취해 잠들지 않아도 됐어.” 지원의 눈에 설핏 물기가 고였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가시 돋친 눈빛으로 도연을 쏘아보았다.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하지 말고, 죽은 사람처럼 살아. 그게 네가 나한테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니까.”
지원은 말을 마치고 홱 돌아섰다. 그녀의 단호한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부감이 도연의 온몸을 옥죄었다. 그녀는 구석 테이블로 걸어가 의자를 거칠게 빼고 앉았다. 가방에서 꺼낸 약통을 손에 쥐는 그녀의 손길이 몹시도 다급해 보였다.
콰르릉!
그 순간, 지붕을 무너뜨릴 듯한 천둥소리가 우림리의 하늘을 찢었다.
동시에 창밖을 뒤덮고 있던 안개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요동치더니, 무서운 기세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빗소리가 신림당의 유리창을 거세게 두드렸다.
“아윽...!”
짧고 고통스러운 신음이 실내의 정적을 깨뜨렸다.
도연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원이 자리에 앉은 채로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를 잃고 종이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가방에서 꺼내려던 약통이 바닥으로 떨어져 굴렀고, 하얀 알약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아, 흑... 후우...”
지원은 숨을 쉬지 못했다. 목구멍에 단단한 돌덩이라도 걸린 것처럼, 기도가 완전히 막힌 듯한 거친 바람 소리만 새어 나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제 목과 가슴팍을 쥐어뜯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5년 전 사고의 트라우마가 폭우와 천둥이라는 방아쇠를 당겨 유발한, 극심한 심장 트라우마 발작이었다.
지원의 몸이 경련하듯 떨렸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허공을 헤맸으며, 입술은 이미 검푸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산소가 부족해 헐떡이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 같았다.
“지원아! 지원아!”
도연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이는 지원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지원은 다가오는 도연을 보며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손을 내저었다. 오지 말라고, 건드리지 말라고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기도가 막혀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명백한 거부를 담고 있었다.
도연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자신이 다가가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발작이 더 심해질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을 증오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는 가장 큰 트라우마이자 고통의 원흉이었다.
어떡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저 숨을 쉬게 만들 수 있지?
심장이 머리끝까지 뛰었다. 그때, 도연의 시선이 신림당 한구석,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방치된 구형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에 닿았다.
마을 노인회의 박혜순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우림리의 비는 사람의 고통을 전해다 주지. 제 한 몸 부서져라 연주할 미련한 놈만 있다면 말여.’
피아노를 치면 그녀의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미신이든, 혹은 자신의 미쳐버린 뇌가 만들어낸 망상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저 여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도연의 가슴속에서 자학적인 충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내가 아픈 것이 낫다. 내가 숨을 쉬지 못하고,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이 저 여자가 저러고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 백번 천번 나았다.
도연은 피아노를 향해 달렸다.
건반 덮개를 거칠게 열어젖혔다. 오랫동안 조율되지 않아 군데군데 때가 탄 상아 건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연은 의자에 앉아 오른손을 건반 위에 올렸다. 하얗게 식어버린 새끼손가락이 마음에 걸렸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간절함과, 스스로를 파괴해서라도 그녀를 구하겠다는 파멸적인 속죄감이 건반 위로 쏟아져 내렸다.
타앙-!
첫 음이 울려 퍼졌다.
신림당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거칠고 날카로운 단음이었다. 도연은 숨을 들이쉬며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쇼팽의 프렐류드 15번, ‘빗방울’. 그러나 그가 연주하는 곡은 평화로운 빗방울이 아니었다. 거친 폭풍우 속에서 부서지는 영혼의 비명에 가까웠다.
두 손이 건반 위를 휘몰아쳤다.
도연은 오직 한 사람, 바닥에서 숨을 헐떡이는 지원만을 바라보며 연주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가져와. 그 고통을 나한테 줘. 네 아픔을 전부 나한테 넘겨.’
그의 간절한 갈망이 건반을 타고 공기 중으로 번져 나갔다.
그 순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창밖을 사납게 때리던 폭우의 소리가 피아노 선율과 기묘하게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쏴아아 하는 빗소리가 피아노의 페달 소리처럼 울렸고, 천둥소리는 저음부의 웅장한 타건과 맞물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신림당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눅눅하고 어두운 공기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창밖을 가로막고 있던 짙은 회색빛 안개 사이로, 기이하도록 투명하고 푸른 빛줄기가 스며들었다. 그 푸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실내를 감돌며 쓰러져 있는 지원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흡!”
지원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마치 꽉 막혀 있던 댐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그녀의 기도가 시원하게 뚫렸다. 산소가 허파 깊숙이 밀려 들어가며 그녀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검푸르게 죽어가던 입술에 순식간에 붉은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있던 식은땀이 거짓말처럼 마르기 시작했고, 사지를 옥죄던 경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숨막히던 통증과 공포가 흔적도 없이 소멸해 가는 경이로운 구원의 순간이었다.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제 가슴을 짚었다. 날카롭게 찌르던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지원의 눈동자가 피아노 앞에 앉은 도연에게로 향했다.
도연은 멈추지 않고 건반을 내리쳤다.
한지원의 고통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그의 가슴속으로 끔찍한 압박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숨이 턱 막혔다. 허파에 물이 차오르는 듯한 답답함과 함께,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도연의 육체를 엄습했다.
그녀의 고통이 자신에게로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었다.
도연은 입술을 깨물며 연주를 이어갔다. 아팠다. 숨이 가빠오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기묘할 정도로 평온해졌다. 드디어 그녀의 아픔을 대신 짊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자학적인 안도감이 그를 지배했다.
마지막 화음을 강하게 내리치며 연주가 끝났다.
신림당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밖의 폭우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지만, 실내를 감돌던 푸른 빛줄기는 서서히 바래져 갔다.
도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건반 위에서 손을 떼려 했다.
화아악-!
갑자기 건반에 닿아 있던 그의 오른손 손목을 타고 기이한 열감이 스쳐 지나갔다.
도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그의 시선이 제 손목으로 향했다. 손목 안쪽의 흰 살결 위로, 기이한 고대의 문자 혹은 낙인 같은 푸른빛 잔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가 이내 살갗 아래로 스며들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오른손 끝에서부터 끔찍한 무감각이 시작되었다.
단순히 피가 통하지 않는 저림이 아니었다. 손가락 끝의 뼈와 살이 통째로 돌처럼 굳어가는 듯한, 생명력이 완전히 소멸해 버리는 듯한 가혹한 감각이었다. 그 차가운 무감각은 오른손의 가장 바깥쪽, 새끼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되어 손목을 타고 그의 심장을 향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도연은 제 새끼손가락을 움직이려 힘을 주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은 완벽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움직일 수 없는 의수(義手)를 달아놓은 것처럼, 아무런 신경의 신호도 가지 않았다.
이것이 대가인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도연은 굳어버린 손가락을 쥔 채, 바닥에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원을 응시했다. 그녀의 숨소리는 이제 완전히 평온해져 있었다. 구원의 대가로 그가 치러야 할 파멸의 서막이, 비 내리는 우림리의 낡은 바 안에서 잔인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창밖의 빗소리는 더욱 거세져 가고, 도연의 오른손 끝은 차갑게 죽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