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현무암 회의실의 온도는 밖의 눈보다 나을 게 없었다. 벽난로에 불이 없었다. 카를슈타인에는 온기가 없다더니 과장이 아니었다.
"증거를 대라."
레온하르트가 긴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손에는 깃펜, 앞에는 백지 한 장. 그의 눈은 카리엘의 얼굴이 아니라 그녀가 쥔 두 손을 보고 있었다. 떨림이 있는지 없는지 재는 눈이었다.
"말로는 안 됩니다." 그가 덧붙였다. "이 방에서 나가는 모든 문장은 문서가 되고, 그중 한 줄이라도 거짓이면 당신은 반역자와 같은 칼을 받습니다. 알고 왔겠지."
카리엘은 알았다. 그래서 여기 왔다. 황궁의 자백은 조작되고, 이곳의 서명은 조작될 수 없다. 진실만이 살아남는 방—그녀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잔인함이었다.
"증거는 제 안에 있습니다."
"당신 머릿속을 문서에 옮길 수는 없어."
"옮길 겁니다. 지금부터."
카리엘은 눈을 감았다. 역독을 열기 전 늘 하던 것처럼,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두 번째로 겪는 이 감각을 그녀는 아직도 몸이 거부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열었다.
—목에 칼날의 냉기. 정오의 햇빛이 눈을 태우고, 흰 수의 자락이 발목에 감긴다.
숨이 막혔다. 그녀는 탁자 모서리를 붙잡았다. 손톱이 현무암 결을 긁었다.
"카리엘 폰 아르덴."
레온하르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녀는 기억의 가장자리를 노려보았다. 이번엔 처형장 아닌 다른 조각을 겨눴다. 전생, 흰 탑에 유폐되기 사흘 전. 아드리안이 그녀의 방에 들어와 웃던 밤.
조각이 열렸다. 그리고 가장자리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또.'
기억의 테두리가 종이 타듯 오그라들어 있었다. 지난 두 번의 열람으로 이미 조금씩 먹혔던 자리다. 아드리안의 얼굴 절반이 그을음에 묻혀 흐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남아 있었다.
"—순시 명령서에 서명만 하면 돼, 카리엘. 봉토 재정을 정리하겠다는 뜻이니까. 폐하도 기뻐하실 거야."
전생의 그녀는 그 명령서에 서명했다. 그게 반역의 물증으로 둔갑했다. 아르덴가 봉토의 병력을 사사로이 움직였다는 죄목. 그녀 손으로 쓴 이름 석 자가 처형장의 기둥이 되었다.
카리엘은 눈을 떴다. 관자놀이에서 땀이 흘렀다.
"서류가 있습니다. 아드리안이 저에게 서명시킨 봉토 순시 명령서. 그가 반역의 물증으로 조작할 예정인 서류. 형식은 재정 정리, 실체는 병력 사병화 혐의."
레온하르트의 깃펜이 백지 위를 달렸다. 멈추지 않았다.
"날짜는."
"검증의 계절 마흔이레째. 서명 장소는 로제라움 동편 접견실."
"당신은 그 서류를 지금 갖고 있나?"
"없습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까." 카리엘은 그의 눈을 마주 봤다. "3년 뒤에 만들어질 서류입니다."
깃펜이 멈췄다. 회의실에 눈 쓸리는 소리만 남았다.
"존재하지 않는 서류를 증거라 부를 수는 없어."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당신은 방금 조약법 앞에서 거짓을 말할 뻔했다."
"거짓이 아닙니다." 카리엘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심장이 아직도 칼날의 잔재로 뛰고 있었다. "제 말을 옮기십시오. '카리엘 폰 아르덴은 아드리안 황태자가 봉토 순시를 명분으로 서명을 유도해, 훗날 이를 병력 사병화의 물증으로 조작할 것을 증언한다.' 이건 예언이 아니라 증언입니다. 제가 겪은 것에 대한."
"겪지 않은 미래를."
"이미 한 번 겪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그 갈라짐을 감추지 않았다. 감추면 계산으로 보일 테니까. "당신은 제가 왜 사흘을 마차에 갇혀 이 얼음 무덤까지 왔다고 생각합니까. 미쳐서? 무서워서? 저는 이미 목이 잘렸습니다, 대공. 그 냉기가 지금도 여기 있어요."
그녀는 자기 목을 손끝으로 그었다.
레온하르트는 오래 그녀를 봤다. 연민은 없었다. 그의 눈에는 저울만 있었다.
"검증 가능한 조항으로 바꾼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카리엘 폰 아르덴은 향후 아드리안 황태자가 자신에게 봉토 순시 명령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할 것이며, 그 요구가 발생하는 즉시 본 계약의 관리자에게 통보한다. 요구가 실제로 발생하면 본 증언은 진실로 확정된다.'"
카리엘은 그 문장을 씹었다. 빈틈이 없었다. 미래는 검증 조건이 되고, 그녀가 겪은 진실은 발생 시점에 스스로 증명된다. 거짓의 여지가 없었다.
"영리하시군요."
"규칙일 뿐이야."
깃펜이 다시 움직였다. 그런데 카리엘은 보았다. 그가 조항을 다 적은 뒤, 여백 한구석에 다른 필체로—본문보다 작고 빠르게—한 줄을 더 적는 것을. 그녀 쪽에서는 거꾸로 보여 읽히지 않았다.
"방금 뭘 적으셨습니까."
"당신이 읽을 항목이 아니야." 그가 잉크를 말리며 답했다. "조건에 기재되지 않은 것은 효력이 없다. 그러니 신경 쓸 것 없어."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없는 것과 같다면서요."
"기록됐지. 다만 조건이 아닐 뿐."
말장난 같았다. 그러나 이 남자는 말장난을 하지 않는 부류였다. 카리엘은 그 한 줄을 머릿속 목록에 넣었다. 언젠가 값이 매겨질 변수로.
레온하르트가 문서를 돌려 그녀 앞에 밀었다. 세 개의 조항이 있었다.
첫째, 카리엘은 황실 음모에 관한 정보—델피네 밀서의 존재, 봉랍 문양, 처형 설계의 정황—를 발생 순으로 북부에 제공한다.
둘째, 그 대가로 북부 대공령은 카리엘 폰 아르덴에게 임시 후견을 부여한다. 그녀는 조약법의 보호 아래 제국 사법권의 자의적 체포·심문에서 면제되며, 카를슈타인의 궁정 정보망을 조건부로 열람한다.
셋째, 어느 한쪽이 조건을 어기면 계약은 즉시 파기되고, 거짓을 기입한 자는 참수형에 처한다.
카리엘의 손끝이 둘째 조항 위에서 멈췄다.
임시 후견. 그 네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는 정확히 알았다. 아드리안이 그녀를 처형장에 세울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오직 황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립된,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소유물. 그런데 이제 그녀 위에 다른 법의 지붕이 씌워진다. 제국의 칼이 그녀를 향하려면 먼저 북부의 조약법을 넘어야 한다.
전생의 그녀에게는 없던 지붕이었다.
"델피네가 저를 다시 처형장에 세우려면,"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이제 당신부터 상대해야겠군요."
"나를 상대하는 게 아니야. 규칙을 상대하는 거지. 나는 규칙의 문지기일 뿐."
"규칙 뒤에 숨는 걸 겸손이라 부르시는 겁니까."
레온하르트의 입꼬리가 아주 미미하게 움직였다. 웃음은 아니었다. 웃음의 뼈대 정도였다.
"서명해."
카리엘은 깃펜을 들었다. 그리고 멈칫했다.
이건 함정이 아닌가. 세상 누구도 대가 없이 지붕을 씌워주지 않는다. 아드리안도 처음엔 장미를 줬다. 델피네도 자애를 베푸는 척했다. 이 남자가 다를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은 그녀의 정보가 유용하니 후견을 준다. 정보가 바닥나면? 이용가치가 다하면? 그때 이 서명이 그녀 목의 새 기둥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나.
'결국 이자도 나를 팔아넘길 계산부터 하고 있겠지.'
손이 떨렸다. 이번엔 역독 때문이 아니었다.
"망설이는군." 레온하르트가 그 떨림을 읽었다. "규칙은 진심을 묻지 않아. 당신이 나를 믿든 안 믿든 계약은 이행되면 유효하고 어기면 파기돼. 그러니 믿음은 여기 필요 없는 재료야. 서명이 필요할 뿐."
이상하게도, 그 냉정함이 카리엘의 손을 움직였다.
믿음이 필요 없다. 그렇다면 배신도 계약 파기라는 이름으로만 온다. 갑작스러운 밤의 군화 소리가 아니라, 명시된 조항의 위반으로. 예측 가능한 배신. 그녀가 아는 유일하게 견딜 만한 배신.
그녀는 이름을 적었다. 카리엘 폰 아르덴. 세 글자. 전생에 처형장의 기둥이 됐던 바로 그 글자가, 이번엔 지붕의 못이 되었다.
잉크가 마르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됐어." 레온하르트가 문서를 거뒀다. "오늘부로 당신은 카를슈타인의 임시 피후견인이다. 방을 배정하겠다. 정보망 열람은 내일 절차를 밟고."
그가 일어섰다. 그러다 걸음을 멈췄다.
"당신, 아까부터 왼쪽 가슴을 짚고 있어. 세 번."
카리엘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정말 그러고 있었다. 역독의 잔재—심장이 칼날의 리듬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별것 아닙니다."
"별것이든 아니든 기록한다." 그가 다시 앉아 새 종이에 적었다. "'피후견인은 미상의 심장 부담 징후를 보임. 관찰 대상.' 조약법은 자산의 상태를 기록해."
"자산이라." 카리엘은 헛웃음을 흘렸다. "정직하시네요."
"정직이 아니라 정확이야."
그러나 그녀는 보았다. 그가 그 한 줄을 적을 때, 다른 조항들보다 조금 더 오래 펜을 눌렀다는 것을. 자산의 상태라면 숫자 하나로 족했을 텐데, 그는 '미상의'라는 단어를 지웠다 다시 썼다. 원인을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거슬리게 한 것처럼.
카리엘은 그 모순을 목록에 넣지 않았다. 넣을 자리를 찾지 못해서였다. 규칙만 믿는 남자가 원인 모를 통증에 펜을 두 번 눌렀다—그건 값을 매길 수 없는 종류의 변수였다. 값을 못 매기는 변수를 그녀는 늘 위험으로 분류해왔다.
'저것도 언젠가 청구서로 돌아온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못을 박았다. 이 방의 냉기도, 지붕도, 두 번 눌린 펜도—전부 이용가치가 다하는 날 회수될 대여품이다. 마음을 열면 그날 더 아프다. 그러니 닫는다. 이건 나약함이 아니라 경제였다.
"방으로 안내를."
그녀가 먼저 등을 돌렸다.
바로 그때, 회의실 문이 노크도 없이 열렸다. 눈을 뒤집어쓴 전령이 무릎을 꿇었다. 손에는 붉은 밀랍으로 봉한 서신—카를슈타인의 것이 아니었다. 제국 황실의 문양이 찍혀 있었다.
"북부 대공 각하께. 로제라움에서 급보입니다."
레온하르트가 봉을 뜯었다. 그의 시선이 문장을 훑는 속도가 미묘하게 느려졌다. 그가 종이를 카리엘 쪽으로 돌렸다.
"당신 앞으로 온 소식이기도 하군."
카리엘은 읽었다. 심장이 다시 칼날의 리듬을 탔다. 이번엔 역독 때문이 아니었다.
『황후 델피네의 명으로 알림. 검증의 계절 후보 카리엘 폰 아르덴의 무단 이탈에 대해 후보 자격 재심을 선언한다. 재심은 사흘 뒤 로제라움 대무도회에서 공개로 진행되며, 당사자의 출석을 요한다. 불출석 시 도주로 간주해——』
문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지만, 카리엘의 눈은 한 단어에 붙들려 움직이지 못했다.
봉랍. 넝쿨과 가시 위의 작은 왕관.
전생 흰 탑에서 본 그 문양이, 사흘 뒤 자기를 심판하겠다는 초청장 위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개 심판이군." 레온하르트가 서신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무도회 한복판에서. 흥미로운 형식이야."
"흥미로운 게 아닙니다." 카리엘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무대입니다."
그녀는 그 문양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전생, 처형이 정오의 광장에서 집행됐던 이유를 이제 온몸으로 안다. 처벌은 뒷전이었다. 중요한 건 누가 보느냐였다. 델피네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사람을 본보기로 만든다. 무단 이탈이라는 죄목을 공개 무도회에서 심판하겠다는 건, 아르덴가의 마지막 딸이 스스로 도망친 겁쟁이임을 온 궁정에 각인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불출석하면 도주로 간주된다고 적혀 있군." 레온하르트가 문장의 끝을 짚었다. "출석하면 심판대에 오르고, 불출석하면 죄를 인정하는 셈이다. 어느 쪽이든 진다는 뜻인데."
"그게 델피네의 방식입니다." 카리엘은 손끝으로 봉랍을 눌렀다. 밀랍은 이미 굳어 차가웠다. "선택지를 주는 척, 전부 함정으로 채워두는."
"그럼 어떻게 할 거지."
카리엘은 대답 대신 서신을 다시 읽었다. '당사자의 출석을 요한다.' 그 한 줄이 목에 걸렸다. 출석. 즉 델피네는 그녀가 카를슈타인에 있다는 걸 이미 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얼음 요새로 초청장을 보낼 리 없다. 시엔나가 함께 탈출했으니 델피네의 감시망은 그녀의 방에서 끊겼을 텐데, 어떻게—
'율리안.'
그녀 손으로 값을 치러 위조 통행증을 사들인 그 관료. '아르덴가 봉토 순시'라는 명목의 통행증. 그 위조 서류가 정직하게 카를슈타인을 가리켰을 리 없다. 그렇다면 델피네가 그녀의 행선지를 안다는 건, 통행증의 흔적을 누군가 흘렸다는 뜻이었다.
카리엘은 헛웃음을 삼켰다. 신뢰가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있는 변수. 그렇게 대했던 율리안이, 이번에는 그녀의 값을 델피네에게 되팔았을 가능성. 예측 가능한 배신이었다. 그녀가 아는 유일하게 견딜 만한 배신.
"대공." 그녀가 몸을 돌렸다. "방금 서명한 둘째 조항. 카를슈타인의 정보망을 조건부로 열람한다고 했지요."
"내일 절차를 밟는다고 했지."
"오늘 밟겠습니다." 그녀는 탁자를 짚었다. 심장이 아직도 뛰었지만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율리안 베르크라는 관료가 사흘 전 저에게 위조 통행증을 팔았습니다. 그 통행증의 사본이 지금 누구 손에 있는지, 그자가 최근 로제라움 어느 방에 드나들었는지. 알아야겠습니다."
레온하르트는 그녀를 잠시 재보았다.
"정보망은 대가로 열리는 문이야. 열람에는 상응하는 기여가 필요해. 당신이 무엇을 지불할 건가."
"델피네가 저를 무도회로 부른 이유." 카리엘은 서신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이 초청장 자체가 정보입니다. 델피네가 제 위치를 알아냈다는 것, 그리고 저를 공개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것. 이건 당신이 감시하는 '황실의 부패가 북부로 뻗치는 정황'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사본을 가져가십시오. 그게 제 기여입니다."
깃펜이 다시 움직였다. 레온하르트는 초청장의 내용을 조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기록하는 동안, 카리엘은 한 가지를 더 계산했다.
사흘. 무도회까지 사흘. 그리고 문서에 방금 새겨진 첫째 조항—아드리안의 봉토 순시 명령서. 전생의 그녀는 그 서명 요구를 검증의 계절 마흔이레째에 받았다. 지금은 스무날 남짓 지났을 뿐이다. 아직 그 요구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델피네가 먼저 움직였다.
'순서가 틀어졌다.'
전생에는 유폐가 먼저, 순시 명령서가 그다음, 처형이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 델피네는 유폐 단계를 건너뛰고 곧장 공개 심판으로 왔다. 그녀가 탈출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미래를 바꿨기 때문이다.
역독으로 읽은 조각들이 소용없어지는 순간이 왔다. 검게 타들어가던 기억의 가장자리—그건 단순한 소멸의 예고가 아니었다. 그녀가 개입할수록 전생의 순서가 흐트러지고, 그럴수록 '보지 못한 변수'가 늘어난다는 경고였다. 무도회는 전생에 존재하지 않았다. 카리엘에게 이 무도회의 조각은 없다. 완전한 미지였다.
그녀는 대공을 다시 봤다. 전생에 말 한 번 섞은 적 없어 조각이 존재하지 않던 남자. 그리고 이제 손에 든 초청장. 전생에 존재하지 않던 무대. 그녀의 지도에서 아는 길이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조항 추가는 끝났다." 레온하르트가 펜을 내려놓았다. "정보망은 열어주지. 다만—" 그가 서신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당신이 사흘 뒤 그 무도회에 나간다면, 그건 조약법의 보호를 스스로 벗고 제국의 심판대에 오르는 일이야. 내 지붕은 카를슈타인 안에서만 유효해."
카리엘의 손끝이 멈췄다.
지붕은 여기까지였다. 로제라움의 대무도회장, 델피네가 손수 차린 심판대 위에서, 그녀는 다시 아무 지붕 없이 혼자여야 했다.
"나가지 않으면 도주죄, 나가면 지붕 밖." 그녀가 중얼거렸다. "역시 전부 함정이군요."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레온하르트가 그녀를 정면으로 봤다. 저울이 아닌 눈빛이 처음으로 그 안에 섞였다. "당신, 알면서 그 무대에 오를 건가."
카리엘은 초청장 위의 봉랍을 마지막으로 내려다봤다. 넝쿨과 가시, 그리고 작은 왕관. 전생 흰 탑에서 이 문양을 본 순간, 그녀는 이미 처형장으로 가는 길 위에 있었다.
이번엔 그 길을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