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갈래 백합. 붉은 글씨. 황후 델피네.
카리엘의 손끝이 명단의 종이 위에서 굳었다. 손톱 밑까지 차가워졌다. 얼음 창고에서 밤새 계약서를 품고 돌아온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손톱 밑의 냉기는 밤의 눈보다 더 깊었다.
전생의 품위 심사에는 세 사람이 앉았다. 예법 장관 하나, 원로원 노부인 둘. 그녀는 그 방의 창 위치까지, 노부인이 부채를 접던 방향까지 조각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네 번째 이름이 그 위에 얹혀 있었다. 조각에 없는 이름. 전생에 결코 그 방에 앉지 않았던 사람.
"영애?" 옆에서 시엔나가 목소리를 낮췄다. "안색이……"
"괜찮다." 카리엘은 종이에서 손을 뗐다. "가자."
괜찮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역독을 아무리 뒤져도 열릴 조각이 없다는 것. 미래의 지도에 통째로 빈칸이 생겼다는 것. 그녀가 지금껏 믿어온 유일한 무기—전생에 직접 본 것만은 확실하다는 그 뼈대가, 이 한 줄 앞에서 소리 없이 금이 갔다.
판을 흔든 대가였다. 그녀가 아드리안의 손을 거절하고, 대공과 계약하고, 전생에 없던 선을 넘을 때마다, 세상은 그녀가 모르는 방향으로 조금씩 어긋났다. 그 어긋남이 지금 붉은 글씨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품위 심사장은 장미궁 서쪽 대리석 홀이었다. 겨울 햇살이 높은 창을 넘어 바닥에 길고 창백한 사각을 그렸다. 앞선 두 후보가 차례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벤가의 이자벨은 나오면서 카리엘을 흘겨보고는 아무 말 없이 지나쳤다. 개막식 회랑에서 밀 값으로 체면을 잃은 뒤로 그녀는 카리엘을 피했다.
"셋째. 아르덴 백작가의 카리엘 폰 아르덴."
문이 열렸다.
정면에 세 심사관이 앉아 있었다. 예법 장관, 노부인 둘—조각 속 그 얼굴들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오른쪽 끝, 조금 물러난 자리에 한 사람이 더 앉아 있었다. 은사 자수의 흰 드레스, 무릎 위에 포갠 두 손. 자애로운 미소.
황후 델피네.
카리엘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다리가 후들거릴 것 같았다. 정해진 위치까지 걸어가, 배운 대로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
"오너라, 아이야." 델피네의 목소리는 다과회 때와 똑같이 부드러웠다. 손끝에 온기가 도는 듯한 목소리. 전생의 판결문에 인장을 찍은 손에서 나오는 목소리. "긴장할 것 없다. 오늘은 그저 너희가 궁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를 보는 자리일 뿐이야."
거짓이었다. 이 사람에게 '그저'라는 말은 없다. 카리엘은 시선을 낮춘 채 그 미소를 저울에 올렸다. 무엇을 노리는가. 왜 전생엔 없던 이 자리에 앉았는가.
예법 장관이 먼저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만찬의 좌석 서열, 외국 사절 접견 시의 언어. 카리엘은 막힘없이 답했다. 노부인 하나가 걸음걸이를 물었고, 다른 하나가 자수 문양의 격을 물었다. 전생에 한 번 통과했던 관문이었다. 이 세 사람의 질문까지는 조각에 있었다.
그리고 델피네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묻자꾸나."
홀의 공기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노부인들이 부채질을 멈췄다.
"네가 만약 황태자비가 된 뒤, 북부 대공가와 제국 황실 사이에 다툼이 생긴다면." 델피네의 미소는 흔들리지 않았다. "너는 어느 쪽 편에 서겠느냐?"
카리엘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이건 예법 질문이 아니었다. 함정이었다. 그것도 그녀만을 겨눈 함정. 황실 편이라 답하면 대공과의 접촉을 스스로 자백하는 꼴이 된다—왜 하필 대공을 예로 드는가, 라는 반문이 나온다. 대공 편이라 답하면 황태자비 후보로서 반역에 가까운 불충이 된다.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목이 걸리는 질문이었다.
델피네는 알고 있었다. 카리엘이 대공과 무언가를 주고받았다는 것을. 어디까지 아는가. 언제부터 알았는가.
카리엘은 조각을 뒤졌다. 이 방의 이 순간은 전생에 없었으니, 답을 직접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델피네의 화법, 그녀가 함정을 놓는 방식—전생 어느 밤엔가 비슷한 것을 봤을지 모른다. 카리엘은 무리하게 봉인을 밀었다.
관자놀이가 조여들었다.
조각 하나가 억지로 열렸다. 흰 탑의 회랑, 등을 돌린 자의 목소리, 세 갈래 백합 인장을 손질하는 손—그러나 소리가 어긋나 있었다. 전생엔 봄이었던 창밖이 지금 조각에선 눈으로 덮여 있었다. 델피네의 말이라 여겼던 목소리가, 다시 들으니 회계관의 것이었다. 정보가 뒤엉켜 있었다. 낡은 지도였다. 그녀가 판을 흔든 만큼, 이 조각도 이미 쓸모를 잃고 있었다.
그리고 대가가 왔다.
가슴 한복판이 얼음물에 잠기듯 서늘해졌다. 무언가가 조용히 타서 사라지는 감각. 심장 어딘가의 서랍 하나가 소리 없이 비워졌다. 눈앞이 잠깐 흐려졌다가, 다시 또렷해졌을 때—
홀 구석에 선 시엔나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카리엘을 향해 절박한 눈으로 서 있었다. 어제까지, 그 절박함은 성가시지만 견딜 만한 것이었다. 값을 청구하는 고용 관계로 묶어둔 사람. 그런데 지금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했다. 저 애가 왜 저러지. 무엇을 노리고 저러지. 저 절박함의 진짜 값은 무엇이지.
신뢰의 한 조각이 타버린 자리였다. 어제는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누군가 나를 걱정할 수도 있다'는 감각이, 방금 소각과 함께 재가 됐다. 카리엘은 그 낯섦을 삼켰다. 지금은 그것을 붙잡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역독은 답을 주지 않았다. 낡은 지도, 어긋난 조각. 이제 남은 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카리엘은 고개를 들었다.
"황후 폐하께 여쭙습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하나만 확인하고 싶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다툼'은, 어떤 성질의 다툼입니까?"
델피네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성질이라 함은?"
"제국의 법에는 두 종류의 관계가 있습니다." 카리엘은 또박또박 말했다. "황제 폐하의 절대권 아래 있는 봉토의 다툼과, 국경 조약법이 관할하는 계약의 다툼입니다. 앞의 것은 황실이 판결하고, 뒤의 것은 서명된 문서가 판결합니다. 두 영역은 애초에 다투는 법정이 다릅니다."
홀이 조용했다. 예법 장관이 눈을 깜빡였다.
"만약 봉토의 다툼이라면, 저는 마땅히 황실의 판결에 따릅니다. 그것이 제국의 신하 된 자의 도리이며, 황태자비 후보가 지녀야 할 품위입니다." 카리엘은 한 박자 쉬었다. "허나 조약법이 관할하는 다툼이라면, 그것은 편을 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조약법은 감정도 명분도 혈통도 보지 않고, 오직 서명된 조건과 그 이행만을 봅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누군가의 '편'을 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조약법을 모르는 무례가 됩니다."
카리엘은 델피네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러니 저는 편에 서지 않겠습니다. 어느 다툼이든, 저는 법이 정한 대로 서겠습니다. 그것이 다투는 두 쪽 모두에게 가장 공정한 답이라 배웠습니다."
침묵.
노부인 하나가 조용히 부채를 폈다. 예법 장관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의 두 갈래—황실이냐 대공이냐—를 카리엘은 통째로 비껴갔다. 그녀는 편을 고르지 않았다. 편을 고르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전제임을 법으로 되받아쳤다. 대공을 안다는 자백도, 불충의 꼬리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후보가 갖춰야 할 '법에 대한 이해'라는 품위를 증명해 보였다.
델피네의 미소는 여전했다. 그러나 그 미소가 처음으로, 아주 잠깐, 굳었다.
"……잘 배웠구나."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좋은 스승을 붙였던 모양이야."
"과찬이십니다, 폐하."
"통과다." 예법 장관이 선언했다. "아르덴 백작가의 카리엘, 품위 심사를 통과했다."
카리엘은 예를 올리고 돌아섰다. 문을 향해 걷는 동안, 등 뒤에서 델피네의 시선이 못처럼 박히는 것을 느꼈다. 자애로운 미소 아래에서, 그 사람은 지금 카리엘을 다시 재고 있었다. 예상보다 성가신 물건이라고. 물건이 아니라 변수라고.
문이 닫혔다.
*
회랑으로 나오자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카리엘은 벽에 손을 짚었다. 무리한 역독의 후유증이 뒤늦게 밀려들었다. 심장이 무겁게 뛰었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영애!" 시엔나가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종이 같아요."
카리엘은 그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낯설었다. 방금 타버린 신뢰의 자리가 아직 재였다. 저 애의 걱정이 진짜인지, 저울 위에 얹어 무게를 재려는 습관이 손끝에서 자동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번엔 소리 내어 밀어내지 않았다.
"통과했다." 카리엘은 벽에서 손을 뗐다. "물이나 좀 가져와."
시엔나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뛰어갔다. 소매가 걷혀 손목이 잠깐 드러났다. 화상이라 둘러대던 그 흉터. 카리엘의 시선이 스쳤다. 지금은 캐물을 때가 아니었다.
시엔나가 물잔을 가져왔을 때, 카리엘은 외투 안에서 계약서를 꺼내지 않은 채 그 위에 손만 얹었다.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통과보다 중요한 것은, 방금 그녀가 얻은 정보였다.
델피네는 대공과의 접촉을 눈치챘다. 첫 관문 심사관 자리에까지 스스로 앉아 카리엘을 직접 흔들어 보았다. 이건 대공에게 팔 수 있는 실적이었다. 황실이 대공가의 국경 정보를 얼마나 예민하게 감시하는지—그 감시의 손이 황후 본인이라는 것—북부 대공이 지불하고도 남을 정보였다.
카리엘은 그날 밤 별궁 서재에서 백지를 폈다. 조각을 아끼기로 했으니, 아는 것은 종이에 옮긴다. 델피네의 질문, 함정의 구조, 그녀가 대공을 예로 든 사실. 깃펜이 종이 위를 달렸다.
*
이틀 뒤, 얼음 창고의 접선 통로로 대공가 상단의 회신이 왔다. 카리엘이 넘긴 정보를 검토했다는 짧은 서찰과 함께, 레온하르트가 직접 남긴 한 줄이 있었다.
"확인했다. 문서로 정리해 다시 보내라."
그녀는 정리해 보냈다. 감정도 수사도 없이, 조건과 사실만으로. 황후가 대공가의 움직임을 감시한다는 사실, 그 감시의 정황, 첫 관문에서의 함정 질문 전문. 사흘 뒤 검증될 제37 수비대 정보와는 별개의, 예정에 없던 추가 실적이었다.
*
그믐 지난 밤, 다시 얼음 창고.
레온하르트는 카리엘이 보낸 문서 두 장을 탁자에 펼쳐 놓고 있었다. 등불 하나가 검은 현무암 벽에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그는 첫 만남 때와 똑같은 무표정으로 종이를 훑었다.
"황후가 첫 관문 심사관으로 앉았다." 그가 종이 한 장을 손끝으로 짚었다. "그리고 다툼이 생기면 어느 편에 설 거냐고 물었다. 대공가를 예로 들면서."
"예."
"이건 검증할 수 있는 정보다." 레온하르트가 고개를 들었다. "심사관 명단은 궁정 기록에 남는다. 황후가 예정에 없이 추가된 것도 대조하면 나온다. 네 말이 참이라는 뜻이지."
"애초에 거짓을 팔 생각은 없었습니다."
"거짓을 팔 생각이 없는 것과, 참을 파는 것은 다르다." 그가 문서를 접었다. "너는 참을 팔았다. 그것도 예정에 없던 실적을 한 건 더."
레온하르트는 품에서 접힌 계약서를 꺼냈다. 카리엘이 외투 안에 지닌 것과 짝을 이루는 반쪽. 그는 조약법 관리자의 인장을 탁자에 올려놓고, 계약서의 한 조항 옆에 새 문구를 적어 넣었다. 붉은 밀랍을 녹여, 그 옆에 카를슈타인의 문장을 다시 눌렀다.
"제2조를 격상한다." 그가 말했다. "지금까지 너는 '검증 대기 중인 정보원'이었다. 첫 실적이 검증 가능한 것으로 들어왔으니, '검증 중인 협력자'로 조정한다. 보호 등급이 한 단계 오른다. 별궁 안에서 네게 손을 대는 자는, 이제 조약법의 관할을 침해한 것으로 본다."
카리엘은 그가 밀어주는 계약서 반쪽을 받았다. 새 문구 옆에 두 개의 인장. 아직 마르지 않은 밀랍이 등불에 붉게 빛났다.
한 칸. 그녀는 한 칸 앞으로 갔다. 이용 대상에서, 검증 중인 협력자로. 감정으로는 결코 얻지 못했을 자리를, 문서 한 줄과 실적 한 건으로 얻었다.
"사흘 뒤 제37 수비대 건이 참으로 판명되면." 레온하르트가 인장을 거뒀다. "한 칸 더 오른다. 거짓이면 제4조가 발동한다. 알고 있겠지."
"유용성이 소진되면 자동 파기." 카리엘은 계약서를 외투에 넣었다. "잊지 않았습니다."
*
관문 통과와 실적 보고를 마친 다음 날 정오, 장미궁 회랑에서는 첫 관문을 넘긴 후보들을 위한 소규모 다과가 열렸다. 형식뿐인 자리였고, 후보들은 서로의 심사 소식을 재며 미소를 나눴다. 카리엘은 창가에 서서 겨울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애 폰 아르덴."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카리엘이 돌아보았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회색 관복, 굽은 어깨, 소심하게 시선을 내리깐 얼굴. 손에는 서류철을 안고 있었다. 카리엘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율리안 베르크.
전생에, 마지막 재판정에서 조작된 증언에 서명하며 그녀에게 등을 돌렸던 남자. 그녀가 물에 빠질 때 손을 놓은 여럿 중 하나. 그 얼굴이 지금, 아직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채,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율리안이 목소리를 더 낮췄다. 주위를 한 번 살피고는, 서류철을 고쳐 안았다. "첫 관문을 통과하셨다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베르크가의……" 카리엘은 겨우 이름을 삼켰다. "무슨 일이신지."
율리안이 잠깐 망설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저는 당신 편에 서고 싶습니다."
회랑의 소음이 멀어졌다. 카리엘은 그 내민 손을 내려다보았다. 저 손이 전생에 어떤 종이에 서명했는지, 카리엘은 조각으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손은 아직 깨끗했다. 아무것도 서명하지 않은 손. 무엇을 노리고 내미는 손.
언제 나를 배신할까—습관처럼 저울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