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엘은 촛대를 움켜쥐고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빗장을 젖히자 문이 안쪽으로 확 열렸고, 집게 끝에 물린 편지가 복도 어둠 속으로 반쯤 끌려가 있었다. 카리엘의 손이 먼저 봉투 모서리를 낚아챘다. 얇은 종이가 찢어질 듯 팽팽해졌다.
"놓아라."
목소리는 낮았지만 떨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상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집게를 쥔 손이 흠칫 풀리고, 편지가 카리엘의 손안으로 딸려 왔다. 그녀는 촛대를 높이 들어 복도를 비췄다.
바닥에 주저앉은 것은 시녀였다. 회색 앞치마, 낡은 신, 목덜미까지 흘러내린 젖은 머리카락. 열여덟이나 되었을까. 낯이 익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얼굴이 겁에 질려 있지 않았다. 겁이 아니라—분노에 가까운 것이 눈 속에 있었다.
"이 편지를 어디로 가져가려 했지."
"안 됩니다." 시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손목이 소매 밖으로 드러났다가 재빨리 안으로 감겨 들어갔다. "이걸 지금 밖으로 내보내시면… 아니, 오늘 밤은 안 됩니다. 상인 경로에 사람이 심겨 있어요. 아가씨의 편지는 북부에 닿기 전에 태자궁 서기 손에 먼저 들어갑니다."
카리엘의 손가락이 굳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제가 그 경로를 아니까요." 시녀가 침을 삼켰다. "저는… 저는 아가씨를 도우려고 온 겁니다."
우스운 말이었다. 카리엘은 웃지 않았다. 도우려는 자가 문틈으로 편지부터 훔쳐 나가지는 않는다.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저울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아이는 무엇을 원하는가. 누가 보냈는가. 진짜 정보인가, 미끼인가.
"이름."
"시엔나. 시엔나 로벨입니다."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전생의 어느 조각에도 이 얼굴은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카리엘을 긴장시켰다. 역독은 그녀가 직접 겪은 것만 봉인한다. 이 아이가 전생에 그녀 곁에 없었다면, 그건 이 아이가 무의미했다는 뜻이거나—혹은 그녀가 이 아이를 알아채기도 전에 죽었다는 뜻이었다.
"들어와."
시엔나는 문지방을 넘으면서도 복도 양쪽을 한 번씩 살폈다. 문을 닫자, 카리엘은 촛대를 책상에 내려놓고 편지 봉투를 손안에서 뒤집었다. 봉랍은 아직 찍히지 않은 채였다.
"태자궁 서기가 상인 경로를 감시한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들었습니다."
"어디서."
시엔나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 성급하게 말했다.
"아가씨,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처형일까지 버티려면—"
말이 뚝 끊겼다.
카리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서재의 공기가 한순간 얼어붙었다. 시엔나 자신도 제 입에서 나온 말을 뒤늦게 들은 사람처럼 입술을 다물었다. 손목이 다시 소매 안으로 파고들었다.
"처형일."
카리엘이 그 단어를 되뇌었다. 아주 천천히.
"검증의 계절 첫날 밤이다. 아직 누구도 죄를 짓지 않았고, 누구도 심판받지 않았어. 그런데 너는 방금 '처형일까지 버티라'고 했지."
"그건, 말이 헛나온 겁니다. 반역이라는 게 워낙 무거운 죄니까, 후보들 사이에서도 조심하라는—"
"거짓말을 하려거든 눈을 피하지 마라." 카리엘은 촛불 너머로 시엔나를 응시했다. "너는 지금 내가 언젠가 처형대에 오른다는 걸 이미 아는 사람처럼 말했어. 아니면, 그렇게 되기를 막으려는 사람처럼."
시엔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매 속의 손목을 더 깊이 감쌌다. 카리엘의 시선이 그 동작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이 아이는 손목을 가렸다. 겁먹은 자세가 아니라, 가리는 데 익숙한 몸짓이었다.
카리엘은 저울을 굴렸다. 이 아이는 위험하다. 그녀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위험한 정보원은 곧 값이 매겨진 정보원이기도 했다.
"좋아." 그녀가 편지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네가 나를 돕겠다면, 증명해. 이 편지가 어떻게 하면 태자궁 손을 거치지 않고 북부에 닿는지."
시엔나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위기에서 거래로 넘어간 것을 이 아이도 알아챘다.
"상인 경로 말고, 대공가 상단이 그믐마다 궁 후문으로 얼음술을 납품합니다. 그 상단주는 조약법 관할이라 태자궁 서기가 검문하지 못해요. 그믐이 사흘 뒤입니다."
카리엘은 잠시 셈했다. 검증할 수 없는 정보였다. 그러나 검증할 방법도 사흘 뒤면 생긴다. 거짓이면 편지는 태자궁에 들어갈 것이고, 참이면 북부에 닿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녀는 배웠다.
"그리고." 카리엘이 덧붙였다. "그믐날, 나를 그 상단주 앞으로 데려가라."
"직접 만나시려고요?" 시엔나가 눈을 크게 떴다. "위험합니다. 후보가 궁 밖 상인을 사사로이 만나는 건—"
"편지 한 장으로 대공의 신뢰를 사는 사람은 없어." 카리엘은 아버지의 협정 초안을 서랍에 넣고 열쇠를 돌렸다. "조약법의 관리자는 종이만 믿는다지. 그렇다면 나는 그 종이를 그의 손에 직접 놓아야 한다."
시엔나는 한동안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안도와 불안이 섞여 있었다. 카리엘은 그것도 저울에 올렸다. 이 아이는 내가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왜? 값이 매겨지지 않은 호의는 늘 가장 비싼 청구서를 남긴다.
"물러가라."
시엔나가 문을 나설 때, 카리엘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손목은 왜 가리지."
문고리를 잡은 시엔나의 등이 굳었다. 잠깐의 침묵 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오래된 화상입니다. 보기 흉해서요."
문이 닫혔다. 카리엘은 그 대답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캐물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촛불을 응시하며 서한을 다시 손에 들었다. 사흘. 사흘 뒤면 첫 문이 열린다.
그믐날 밤은 눈이 내렸다.
궁 후문의 얼음 창고는 사철 성에가 낀 곳이었다. 시엔나가 앞장서 카리엘을 들여보냈고, 회색 외투에 얼굴을 반쯤 가린 카리엘은 얼음술 궤짝 사이를 지나 안쪽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상단주 복장이었지만 상단주가 아니었다. 카리엘은 한눈에 알았다. 검은 모피 깃, 목례 없이 사람을 재는 회색 눈, 방 안의 온도조차 지배하는 듯한 정적. 조각에 없던 얼굴이었으나,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레온하르트 폰 카를슈타인." 카리엘이 먼저 말했다.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공 각하."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카리엘의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었다. 값을 매기는 시선이었다. 무례하다기보다, 상대를 자산으로만 계산하는 자의 습관.
"태자비 후보가 그믐밤 얼음 창고까지 기어 나올 이유는 하나뿐이지." 그의 목소리는 방 안 공기처럼 차가웠다. "제국 사법권 밖으로 도망칠 문을 찾는 자. 아르덴 백작의 딸이 협정 초안을 들고 왔다기에, 그 초안이 진짜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러 왔다."
"위조가 아닙니다."
"위조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한다."
카리엘은 협정 초안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레온하르트가 그것을 집어 들고, 촛불에 비춰 여백의 필체까지 살폈다. 그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저울에 다는 사람처럼.
"네 아비의 필체가 맞다. 이 초안은 십이 년 전 발효 직전에 폐기됐지. 아르덴가가 황실 눈치를 보다 서명을 미뤘다." 그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건 죽은 문서다. 죽은 문서를 들고 온 이유가 뭐냐."
"각하께서 신뢰하는 유일한 언어라서요." 카리엘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감정도 명분도 혈통도 아닌, 문서. 저는 지금 그 언어로 각하께 새로운 계약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레온하르트의 눈이 처음으로 조금 좁아졌다.
"후보가 대공에게 계약을 제안한다. 재미있군. 대개 이 궁의 여자들은 나를 붙잡을 때 눈물을 쓰거나, 몸을 쓰거나, 아비의 이름을 쓴다. 그런데 너는 종이를 쓰겠다고 한다." 그가 팔짱을 꼈다. "네가 무엇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정보입니다."
카리엘은 외투 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북부 제37 국경수비대. 사흘 뒤, 얼어붙은 강 상류 도하로로 이민족 선봉이 넘어옵니다. 정면 관문이 아니라 얼음 위로. 정찰이 그 경로를 놓치고 있을 겁니다."
레온하르트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종이를 받아 드는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
"이걸 어디서."
"그건 제 자산입니다. 출처를 밝히면 값이 사라지지요." 카리엘은 담담하게 답했다. "각하께서는 이 정보가 참인지 사흘 뒤에 알게 됩니다. 참이면, 수비대 하나를 몰살에서 구합니다. 거짓이면, 저는 각하께 아무 값도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얼음 창고 어딘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레온하르트는 오래도록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연민이 아니었다. 흥미도 아니었다. 순전히 계산이었다—이 여자가 조약에 유용한 자산인지 아닌지.
"조건을 말해라."
"저는 각하께 황실 내부 정보를 제공합니다. 태자궁, 황후궁, 검증의 계절의 동향. 그 대가로 저는 각하와 국경 조약법에 기초한 보호 계약을 맺습니다. 제국 사법권이 저에게 손대는 순간, 저는 조약법 관할의 계약 당사자로서 각하의 보호 아래 놓입니다."
"제국 반역죄를 뒤집어쓴 후보를 감싸라는 소리군." 레온하르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음은 아니었다. "황제와 각을 세우라고."
"각하는 이미 황실과 각을 세우고 계십니다. 조약 협상이 결렬됐으니까요." 카리엘이 받아쳤다. "저는 그 각을 각하께 유리하게 만들어 드리는 카드입니다. 황실 내부에서 황실을 견제할 눈. 그게 저의 값입니다."
레온하르트가 처음으로 자세를 바꿨다. 탁자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조약법은 감정을 모른다. 네가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네가 죽을까 두렵든 아니든, 그건 종이에 적히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진실이 아니야." 그가 카리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러니 우리 사이엔 신뢰도 동정도 없다. 오직 조건과 이행뿐이다. 감당할 수 있나."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카리엘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아주 옅은 무언가가 실렸다. 신뢰를 요구하지 않는 관계. 진심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그래서 배신조차 조항으로 규정되는 관계. 그것이 그녀가 두 번째 삶에서 유일하게 다룰 줄 아는 언어였다.
레온하르트가 품에서 얇은 계약서 양식을 꺼냈다. 조약법 관리자는 언제나 백지 계약서를 지니고 다녔다. 그가 깃펜을 들어 조항을 적어 내려갔다. 카리엘도 옆에 서서 한 줄 한 줄을 읽었다.
제1조. 을(카리엘 폰 아르덴)은 갑(레온하르트 폰 카를슈타인)에게 검증된 황실 정보를 제공한다. 제2조. 갑은 을에게 조약법 관할의 신변 보호를 제공하되, 제공된 정보가 검증되어 유효할 경우에 한한다.
"잠깐." 카리엘이 손을 들었다. "제2조에 조건을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레온하르트가 펜을 멈췄다.
"이행 실적이 누적될 때마다 보호 조항이 격상되도록 명시해 주십시오. 첫 정보 하나에 목숨을 걸긴 각하도 부담이시겠지요. 대신 제가 실적을 쌓을수록 보호의 등급이 오릅니다. 정보 하나엔 은신, 셋엔 사법 개입 저지, 다섯엔—" 카리엘은 잠시 멈췄다. "완전한 조약법 편입."
레온하르트의 회색 눈이 오래 그녀를 응시했다.
"영리하군. 위험 부담을 나에게 미루지 않고, 스스로 증명하겠다는 거냐."
"저는 각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값이 되고 싶습니다."
레온하르트는 그 말을 종이에 옮겼다. 그리고 조항 하나를 스스로 더했다. 카리엘은 그가 적는 것을 지켜보았다.
말미 조항. 을이 제공하는 자산의 유용성이 소진되는 경우, 본 조약은 어떤 통보도 없이 자동으로 파기된다.
카리엘의 손끝이 잠깐 차가워졌다. 유용성이 소진되면 버려진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이 남자가 신뢰하는 세계의 규칙이었고, 규칙을 명확히 아는 것이 규칙을 이용하는 첫걸음이었다.
"공정합니다."
레온하르트가 펜을 카리엘에게 내밀었다.
카리엘은 펜을 받아 들었다. 종이 위, 을의 자리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 나가는 동안, 이상한 감각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전생의 그녀는 이 궁에서 늘 물건이었다. 태자비 후보라는 이름의 상품. 가문의 값을 올리기 위해 저울에 얹히고, 필요가 다하자 흰 수의를 입고 광장에 세워진 물건. 누구도 그녀에게 서명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물건은 서명하지 않으니까. 팔려갈 뿐이니까.
그런데 지금, 그녀는 서명하고 있었다.
팔려가는 것이 아니라, 계약하는 것으로. 감정으로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문서로 대등하게. 이 종이 위에서 그녀는 물건이 아니었다. 조건을 제시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당사자였다.
카리엘 폰 아르덴. 마지막 획을 긋고 펜을 내려놓았다.
레온하르트가 그 아래 자기 이름을 적었다. 두 이름이 한 종이 위에 나란히 놓였다. 그는 조약법 관리자의 인장을 꺼내 봉랍에 찍었다. 붉은 밀랍 위에 카를슈타인의 문장이 눌렸다.
"이제 너는 조약법의 계약 당사자다." 레온하르트가 계약서를 반으로 나눠, 한 장을 카리엘에게 밀었다. "감정으로 나를 붙잡으려 하지 마라. 붙잡히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그것을 계약 위반으로 본다."
"걱정 마십시오." 카리엘은 계약서를 외투 안에 넣었다. "저는 각하께 마음 같은 건 팔 생각이 없습니다."
레온하르트가 처음으로, 아주 잠깐, 그녀를 다시 보았다. 흥미가 아니라 재평가에 가까운 눈빛으로. 그리고 그는 돌아섰다.
"사흘 뒤. 제37 수비대. 네 값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그때 정해진다."
카리엘이 얼음 창고를 나설 때,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시엔나가 어둠 속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하셨어요?"
"성공은 사흘 뒤에 정해진다." 카리엘은 외투 속 계약서 위에 손을 얹었다. 종이의 두께가, 이상하게 든든했다. "가자."
이튿날 아침이었다.
검증의 계절 첫 관문 명단이 별궁 회랑에 게시되었다. 후보들이 몰려들어 자기 이름과 심사 순번, 심사관을 확인했다. 카리엘도 목록 앞으로 다가갔다. 첫 관문은 '품위 심사'. 전생에도 있었던 관문이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을 찾았다.
카리엘 폰 아르덴. 순번 셋째. 그 옆에 심사관 이름.
그리고 카리엘의 손끝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전생의 품위 심사 심사관은 예법 장관과 원로원의 노부인 둘이었다. 세 사람. 그녀는 그 세 이름을 조각으로 똑똑히 기억했다. 그런데 명단에는 이름이 하나 더 있었다. 전생엔 결코 없던 네 번째 심사관.
세 갈래 백합 문장 아래, 붉은 글씨로 적힌 이름.
황후 델피네.
판결문 봉랍에 찍혀 있던 그 문장이, 지금 첫 관문 심사관의 자리에서 카리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