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대리석이 정오의 빛을 튕겨냈다. 전생에 흰 수의를 입고 섰던 바로 그 자리에, 이번에는 고발자의 검은 예복을 입은 카리엘이 서 있었다.
"사술입니다."
델피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 부드러움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 카리엘은 안다.
"이 여인은 미래를 안다고 주장하지요. 죽은 자의 기억을 되짚는다고. 여러분, 그것이 마법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사술을 쓰는 자의 증언을 제국법이 받아들인 전례가 있던가요?" 델피네가 청중을 향해 팔을 벌렸다. "그리고 방금—" 그녀의 시선이 단상 위 회색 갑주의 남자에게 닿았다. "북부 대공의 관리자 자격은 황태자 전하의 밀명으로 정지되었습니다. 인증은 무효. 저 밀서는 종잇조각에 불과합니다."
회랑 아래 귀족들이 술렁였다. 조금 전까지 카리엘의 편으로 기우는 듯하던 공기가 다시 델피네 쪽으로 넘어갔다.
레온하르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지된 자격 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규칙이 그의 손을 묶었다. 카리엘은 그 얼굴을 보았다—연민도 분노도 없이, 오직 조항을 계산하는 눈. 이 남자는 끝까지 규칙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아무도 나를 위해 규칙을 깨지 않아.'
익숙한 확신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밀어내라. 계산하라. 혼자 살아남아라.
카리엘은 그 확신을 삼켰다.
"증명하겠습니다."
델피네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사술이라 하셨지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지금, 여러분 앞에서 그 사술을 열어 보이겠습니다. 대가까지 전부." 카리엘은 청중을 향해 돌아섰다. "제가 되짚는 것은 미래가 아닙니다. 제가 겪은 죽음입니다. 3년 뒤 이 광장에서, 저는 반역죄 흰 수의를 입고 참수당했습니다. 그 순간을 다시 열면—저는 그 통증을 실시간으로 다시 겪습니다. 목에 닿는 칼날의 냉기까지."
"연극이로군요." 델피네가 코웃음을 쳤다.
"연극이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습니다."
카리엘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 남은 조각. 처형의 그날. 그녀가 가장 열기를 두려워했던, 그리고 이제 거의 다 타버린 기억.
역독을 열었다.
칼날이 목을 파고들었다. 실제가 아닌데도 실제였다. 척추를 타고 얼음이 박혔고, 숨이 끊겼고, 심장이 제 리듬을 잊었다. 카리엘의 무릎이 대리석에 부딪혔다. 입술 사이로 피 맛이 번졌다—혀를 깨문 것이다. 관자놀이의 핏줄이 튀어 오를 듯 뛰었다.
"카리엘!"
시엔나가 뛰어나왔다. 근위병이 막았다.
카리엘은 손을 들어 시엔나를 제지했다. 떨리는 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청중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보이십니까." 목소리가 갈라졌다. "고통이. 이것이 조작이라면, 제 몸이 왜 이러겠습니까. 제국 어의를 부르십시오. 지금 제 심장을 짚게 하십시오. 방금 정지 직전까지 갔던 이 심장을."
두 명의 어의가 달려나왔다. 그중 하나가 카리엘의 손목을 짚더니 얼굴이 굳었다.
"맥이… 정상이 아닙니다. 심장이 방금 멈췄다 다시 뛰는 자의 것입니다."
"저는 이 기억을 열 때마다 죽음의 대가를 치릅니다." 카리엘은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델피네 황후 마마. 사술을 쓰는 자가 제 목숨을 갉아 없애면서까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습니까? 거짓말쟁이는 자기 심장을 걸지 않습니다."
청중이 조용해졌다. 어의의 증언과 눈앞에서 무너졌다 일어선 여인의 몸—그것은 봉랍 문양보다, 인장보다 더 강력한 증거였다.
델피네의 여유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북부 대공의 인증은 여전히 무효입니다. 저 밀서는—"
"그 문제라면."
레온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단상을 내려서며, 그는 품에서 낡은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카리엘이 처음 보는 문서였다.
"조약법 4조. 관리자 자격은 황실이 정지할 수 있으나, 정지의 효력은 '북부 국경에 실제 위해가 없을 때'에 한한다. 그런데—" 그가 청중을 둘러보았다. "델피네 황후가 3년 전 작성한 국경 조약 개정안에는, 북부 대공령의 사법 독립을 무력화하는 조항이 몰래 삽입되어 있었다. 이것은 국경에 대한 직접 위해다. 따라서 나의 자격 정지는 성립하지 않는다. 조약법 스스로가 그것을 거부한다."
"그런 개정안은 존재하지—"
"존재한다." 레온하르트가 양피지를 펼쳐 들었다. "당신의 사문서 인장이 찍혀 있으니까. 넝쿨과 가시, 그 위의 작은 왕관. 그리고 뒷면에—" 그가 양피지를 뒤집었다. "아무도 모른다던 두 번째 문양. 조약법 원저자의 서명 인장."
델피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카리엘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 두 번째 문양. 시엔나가 기억으로 채워준 밀서의 봉랍 뒷면. 델피네가 조약법의 원저자이며, 그 법으로 자신의 처형을 설계했다는 증거.
"당신은 조약법을 만들었고, 그 법으로 나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카리엘이 나아갔다. "카를슈타인 기록고에 예약 등록된 문서—3년 뒤 반역죄인 카리엘 폰 아르덴의 처분. 등록자 인장, 넝쿨과 가시와 왕관. 당신은 미래의 처형을 문서로 미리 예약해 두었다. 조약법의 원칙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대공?"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없는 것과 같다." 레온하르트가 대답했다. "그리고 기록된 것은—진실이다."
율리안이 앞으로 나섰다. 소심하게 몸을 웅크린 관료의 자세였지만, 손에 든 것은 확실했다.
"정본 인장입니다. 황후 마마의 사문서고에서 나온. 여벌이 아니라 진본."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제 가문은 이 순간을 위해 값을 치렀습니다. 어느 편에 붙을지 오래 고민했지요. 그런데—진실 쪽이 값이 더 나가더군요."
"흰 탑의 화재." 시엔나가 소매를 걷었다. 손목 안쪽, 녹아 붙은 화상 흉터가 정오의 빛 아래 드러났다. "그날 밤 흰 탑에 불이 났습니다. 델피네 황후의 명으로. 증거를 태우기 위해. 저는 그 안에서 카리엘 아가씨를 끌어냈고, 이 상처를 얻었습니다. 저는 황후의 감시자로 심어졌으나—" 그녀가 카리엘을 보았다.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생에도, 지난 생에도."
카리엘의 심장이 다른 이유로 뛰었다. 지난 생에도. 시엔나는 기억한다. 두 사람 모두 그 밤을 통과해 여기까지 왔다.
"황태자 전하." 델피네가 마지막으로 아들을 향해 돌아섰다. "무언가 말씀을."
아드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흠 없는 성군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그는 청중을, 그를 지켜보는 12가문의 눈을 보았고—자기 서사에 생긴 오점이 이미 지울 수 없이 커졌음을 계산했다. 그리고 도구를 버렸다.
"어머니께서 단독으로 하신 일이오. 나는 몰랐소."
델피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카리엘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들으셨습니까. 아들이 어머니를 버리고,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것이 흠 없는 황실입니까." 그녀는 재판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제국법은 자백을 증거의 왕으로 삼는다 했습니다. 방금 황태자가 황후의 단독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조약법은 기록된 것을 진실로 삼습니다. 여기 예약된 처형 문서, 원저자의 인장, 위조된 개정안이 있습니다. 두 법이 같은 결론을 가리킵니다."
재판장이 무너지듯 선고했다.
"황후 델피네, 그리고… 황태자 아드리안 폰 아르덴. 반역 및 사법 조작의 혐의로 신병을 구금한다."
근위병들이 방향을 바꾸었다. 창끝이 카리엘이 아닌, 델피네와 아드리안을 향했다.
정오의 광장에서, 전생에 흰 수의를 입고 섰던 자리에서, 카리엘은 처형당하지 않았다. 두 번째 죽음을, 그녀는 자기 손으로 멈춰 세웠다.
델피네가 끌려가며 고개를 돌렸다. "너는 착해지지 않았다. 여전히 계산하는 눈이야."
"압니다." 카리엘이 대답했다. "저는 착해진 적 없습니다. 다만 이번엔 정확하게 되갚았을 뿐입니다."
*
눈이 내렸다.
카를슈타인의 검은 현무암 위로 사철 그치지 않는 눈. 카리엘은 요새의 서고에 앉아 있었다. 손끝이 아직 저릿했다. 마지막 조각을 태운 대가였다. 역독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열 수 있는 기억이 없다. 미래를 안다는 무기는 소진되었다.
두렵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계약을 정리하러 왔습니다." 레온하르트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최초의 계약서. 4화에 두 사람이 서명한 그것.
"자산이 소멸했으니 계약도 파기입니까." 카리엘이 먼저 말했다. 밀어내는 습관. 상처받기 전에 계산하는 습관.
"조항을 읽으시오." 그가 문서의 여백을 짚었다. 최초 서명 당시, 그가 남겼던 한 줄. "'조건 미기재 항목—추후 관리자 재량으로 규정한다.'"
카리엘은 그 줄을 노려보았다. "빈칸이잖습니까."
"아니.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없는 것과 같다고 했지. 그래서 나는 그날 이 빈칸을 남겼소. 아직 규칙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까." 레온하르트가 펜을 들었다. 그리고 여백에 천천히 써 내려갔다. "'관리자는 계약 상대의 진실성을 목숨의 대가로 확인했으며, 이를 조약법상 최고 신뢰 등급으로 승인한다. 이 관계는 자산 소멸 후에도 유효하다.'"
카리엘의 입술이 벌어졌다.
"당신은 감정을 믿지 않는다고 했잖습니까."
"믿지 않소. 나는 규칙을 믿지." 그가 카리엘을 보았다. 처음으로, 조항이 아닌 사람을 보는 눈으로. "그래서 규칙에 새겼소. 감정은 흔들리지만, 서명된 진실은 흔들리지 않으니까. 당신이 오늘 목숨을 걸어 증명한 진실—나는 그것을 규칙으로 승인하겠소."
규칙이 진심에게 길을 내주었다. 감정이 아니라 서명이, 두 사람의 마음을 뒤늦게 인정했다.
카리엘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었다.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계산 없이.
레온하르트가 그 손을 잡았다.
문이 열리고 시엔나가 들어왔다. "회의는 끝났나요? 밖이 얼어 죽겠—" 그녀가 두 사람의 잡은 손을 보고 멈췄다.
카리엘은 나머지 한 손을 시엔나에게 내밀었다.
"너를 이름으로 부른 적 있지. 시엔나."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 생에 나를 불 속에서 끌어낸 것, 이번 생에 끝까지 배신하지 않은 것. 나는 그걸 계산으로 의심했어.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대신—" 손이 여전히 뻗어 있었다. "곁에 있어. 내가 붙드는 거야. 처음으로 내 의지로."
시엔나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그녀가 카리엘의 손을 거칠게 붙잡았다. 화상 흉터가 카리엘의 손목에 닿았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 지독한 여자야."
*
새 계약서가 탁자 위에 놓였다.
카리엘은 펜을 들었다. 역독은 사라졌다. 그녀는 이제 겪지 않은 미래를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한 변수가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기억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걸어야 하는 길.
그녀는 첫 장에 서명했다.
카리엘 폰 아르덴.
그 옆, 계약 조건을 적는 첫 줄에, 그녀는 두 생을 통틀어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단어를 눌러 적었다.
'이번 조건은 내가 정한다.'
그리고 자기 이름 옆에, 처음으로 한 단어를 더 썼다.
함께.
레온하르트가 그 글자를 내려다보았다. 시엔나가 어깨너머로 들여다보았다.
카리엘은 창밖의 눈을 보았다. 앞날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기억의 지도는 다 타버렸고, 이제 그녀 앞엔 아무런 예지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펜을 놓지 않았다.
"다음 조건을 쓸까요." 카리엘이 말했다. 처음으로, 미래를 두려움이 아니라 선택으로 마주하는 목소리로. "이번엔 아무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눈이 창을 두드렸다. 검은 요새 위로, 하얗게, 끝없이.
그리고 펜 끝이 다음 줄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