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우범의 손끝에서 푸른 정전기가 튀었다.

내 피부가 반응하기 전에 신경이 먼저 알아챘다. 저건 나와 같은 종류의 능력이다. 아니, 더 정제된 무언가다.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불순물이 비명을 지른다. 아버지의 유령이 내 손목을 잡아당긴다.

"네 아버지에게서 추출한 이 물질, 드디어 완성했어."

우범이 소매를 걷어올리자 팔뚝 안쪽으로 형광색 혈관이 지도를 그렸다. 주사 바늘 자국 수십 개가 별자리처럼 박혀 있다. 그는 피부 밑에서 꿈틀대는 푸른 빛을 손가락으로 눌러보이며 웃었다.

"이제 너와 나는 같은 무기로 싸우는 거다."

빗물이 옥상 바닥을 때리는 소리. 철제 난간이 바람에 떨리는 소리. 내 귀는 모든 진동을 촉각으로 번역해낸다. 우범의 신경 신호가 공기 중으로 번져나와 내 피부에 달라붙는다. 개방된 신경끼리 부딪히는 소음. 유리 긁는 쇳소리와 비슷했다.

"아버지가 왜 당신에게 능력을 줬을 거라 생각해."

우범의 왼손이 번쩍였다. 피하기 전에 어깨로 전격이 꽂혔다. 통증이 아니다. 통증의 반대편으로 뒤집힌 감각이 쇄골을 타고 내려간다. 근육이 경련하며 무릎이 풀렸다. 아스팔트에 무릎을 찧으며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그 순간, 초등학교 운동장의 모래 냄새가 기억에서 한 조각 떨어져 나갔다.

"통증을 쾌락으로 왜곡하는 건 기본이지."

그가 다가온다. 구두 밑창이 빗물을 밟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네 아버지는 그걸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어. 나는 그의 능력을 추출하면서 배웠다. 피를 뽑고, 신경을 분리하고, 냉동 보관한 조직을 해동해서 주입하고... 20년이 걸렸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일으켰다. 어깨가 아직 마비되어 있었다. 능력을 개방해 신경을 재정렬한다. 통증 수용체를 닫고 쾌락 회로를 열었다. 감각이 뒤집히며 어깨가 뜨거워졌다. 그 대가로 군대에서 처음 담배를 배우던 날의 풍경이 지워졌다.

"그럼 이건 배웠나."

내가 손을 뻗었다. 우범의 정강이에 닿기 직전 그가 뒤로 물러섰다. 내 손가락 끝이 그의 바짓자락을 스쳤다. 0.3초의 접촉. 그걸로 충분했다.

우범의 왼다리 신경을 왜곡한다. 발바닥의 압력 감각을 성기의 쾌락 수용체와 교차 연결.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에서 오르가즘에 가까운 자극이 전달되도록 재프로그래밍했다. 동시에 중학교 시절 불렀던 노래 가사가 기억에서 증발했다.

"이건...!"

우범이 휘청였다. 오른손으로 난간을 잡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떨리고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사타구니 쪽 바지가 부풀어 올랐다.

"재미있군."

그가 웃었다. 형광색 눈동자가 푸르게 번뜩였다. 이내 그의 손이 자신의 허벅지를 쥐었다. 손가락으로 살점을 파고들며 감각을 재조정하는 중이었다. 내가 심은 왜곡이 풀려나갔다. 신경 회로가 원위치되는 감각이 내 손끝으로 전해져왔다.

"하지만 아직 덜 익었어."

우범이 돌진했다. 오른손 주먹을 내 명치로 꽂아넣으며 동시에 왼손으로 내 목을 쥐었다. 피부 접촉. 그의 능력이 내 경동맥 주변 신경으로 침투해왔다. 산소 부족의 질식감이 성적 흥분으로 전환된다. 숨이 막히는데 사타구니가 뜨거워졌다. 뇌가 산소 부족을 오르가즘 직전의 고양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도 쾌락으로 느끼게 해주지."

우범의 손아귀가 조여왔다. 시야가 좁아졌다. 검은 점들이 눈앞에서 춤췄다. 기도가 막히고 폐가 타들어 가는데 성기가 바지 안에서 완전히 발기했다. 귀두가 바지 천을 밀어내며 요도구에서 쿠퍼액이 스며나왔다. 질식의 쾌락과 실제 성적 흥분이 뒤섞이며 뇌가 과부하를 일으킨다. 구토 반사와 사정 충동이 동시에 올라왔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 저편에서 소멸했다.

그때였다.

"손을 놔."

채령의 목소리였다.

두 남자의 신경이 충돌하는 틈새로 그녀가 걸어들어왔다. 빗물에 젖은 블라우스가 가슴에 달라붙어 젖꼭지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치마는 허벅지까지 올라가 찢어져 있었다. 그녀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3년 전 그날처럼. 그녀가 나를 선택한 이유는 그 눈빛에 있었다. 우범의 완벽한 통제 속에서도, 그녀는 내 손이 기억하는 유일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망가뜨린 적이 없었다. 단지 그녀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뿐이다.

우범이 고개를 돌렸다.

"물러나 있어. 이건 남자들의 일이야."

"이건 내 일이기도 해."

채령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은 뜨거웠다. 내 손이 그녀를 만지는 법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녀의 신경도 내 손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세 개의 신경계가 충돌했다.

우범의 질식 왜곡. 나의 쾌락 회로. 그리고 채령의 신경 전체가 내 손바닥을 통해 열려 들어왔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내 손가락 마디로 전달되었다. 폐의 팽창과 수축. 장의 연동 운동. 자궁이 미세하게 수축하는 리듬. 모든 내장 기관의 움직임이 내 신경과 연결되었다.

"네 아버지도, 너도..."

채령이 내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젖은 블라우스 너머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 박동이 내 손바닥을 때렸다.

"나는 이 손만 기억해."

우범의 감각 왜곡이 분산되었다. 그가 내 목에 걸었던 질식 쾌락이 채령의 신경계로 흘러들어갔다. 그녀의 목 근육이 경련했다. 기도가 막히는 고통이 성적 흥분으로 전환되며 그녀의 젖꼭지가 딱딱해졌다. 동시에 내 사타구니로 몰렸던 피가 심장으로 돌아왔다. 시야가 맑아졌다. 첫사랑의 이름이 내 의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 방법이..."

우범이 손을 떼려 했지만 늦었다.

채령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의 손이 내 벨트 버클을 풀었다. 지퍼를 내리자 발기된 성기가 튀어나왔다. 귀두는 검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표면에는 핏줄이 실핏줄처럼 서 있었다. 그녀는 내 바지를 무릎까지 끌어내리고 내 성기를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내가 먼저 할게."

그녀가 무릎을 꿇으며 내 성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혀가 귀두를 감싸고 요도구를 핥았다. 쿠퍼액의 짠맛이 그녀의 미각 신경을 타고 나에게 전달되었다. 그녀의 입술이 귀두 테두리를 따라 움직이며 내 성기 전체를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연구개까지 닿는 깊이였다. 그녀의 목젖이 귀두를 스치며 구역질 반사가 일어났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그 반사로 생긴 식도 근육의 수축을 이용해 내 성기를 더 조였다.

"채령..."

그녀가 고개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볼 안쪽 점막이 내 성기 표면을 쓸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내 고환을 감싸쥐고 부드럽게 주물렀다. 다른 손은 내 허벅지 안쪽을 쓸며 회음부 쪽으로 내려갔다. 그녀의 손가락이 항문 주변 신경을 자극하자 척수를 타고 전립선 쪽으로 쾌감이 번져갔다.

나는 왼손으로 채령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오른손을 그녀의 치마 속으로 밀어넣었다. 팬티를 옆으로 젖히자 이미 젖어 있는 음모가 손가락에 감겼다. 애액이 손끝을 적셨다. 그녀의 질 입구가 내 검지를 빨아들였다.

"보고 있나, 우범."

질벽 안쪽이 뜨거웠다. 주름진 점막이 내 손가락을 조여왔다. 나는 촉각 지배 능력을 개방했다. 채령의 질 내부 신경을 내 신경계와 직결시킨다. 그녀의 질벽 감각이 내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동시에, 내 손가락의 촉각이 그녀의 뇌로 직접 전달되도록 경로를 열었다. 동시에 그녀의 입 안에서 내 성기가 어떤 감각을 받는지도 그녀의 뇌로 피드백되도록 연결했다. 그녀는 자신이 내 성기를 빨면서 동시에 내 손가락이 자신의 질을 만지는 감각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네가 평생 소유하려 했던 여자가, 지금 내 성기를 입에 물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똑똑히 느껴봐."

검지를 더 깊이 밀어넣으며 중지로 음핵을 눌렀다. 딱딱하게 발기한 음핵이 손가락 밑에서 맥박 쳤다. 채령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 진동이 내 성기에 전해졌다. 나는 그녀의 질벽 신경 마디 하나하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구부려 G스팟을 문질렀다. 요도 주변의 해면체가 부풀어 오르는 감각. 자궁 경부가 아래로 내려오며 내 손가락 끝에 닿았다.

"아... 안 돼... 여기서..."

채령이 잠시 입을 떼고 신음했다. 그녀의 침과 내 쿠퍼액이 섞여 그녀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질 근육이 내 검지와 중지를 리드미컬하게 조여왔다. 나는 손가락을 빼지 않고 엄지로 음핵을 원을 그리며 문질렀다. 귀두와 같은 해면체 조직이 엄지 아래서 경련했다. 그녀의 자궁이 수축하기 시작했다. 오르가즘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보여줘. 이 여자가 어떻게 가는지."

그녀가 다시 내 성기를 입에 넣었다. 더 깊이. 더 빠르게. 그녀의 입이 내 성기를 빨아들이는 리듬과 내 손가락이 그녀의 질을 찔러넣는 리듬이 동기화되었다. 질벽 안쪽에서 애액이 분수처럼 솟구쳐 손바닥을 적셨다. 채령의 허벅지 안쪽 근육이 떨렸다. 항문 괄약근까지 수축하는 감각이 내 손바닥 바깥쪽으로 전해졌다.

"가."

명령과 동시에 질벽 전체가 격렬하게 수축했다. 그녀의 오르가즘 파형이 내 손가락을 타고 내 뇌로 전달되었다. 골반 근육의 경련. 자궁 경부의 개폐. 질 점막의 온도 상승. 동시에 그녀의 입 안에서도 혀와 연구개가 경련하며 내 성기를 압박했다. 그녀의 쾌락 데이터가 내 신경계에 저장되었다. 그 대가로 아버지의 얼굴 윤곽이 더 흐려졌다.

채령이 내 품에 쓰러지며 다리가 풀렸다. 애액이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 빗물과 섞였다. 그녀의 질 근육은 아직도 내 손가락을 기억하며 간헐적으로 경련하고 있었다.

우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노인지 굴욕인지 구분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의 사타구니도 젖어 있었다. 내가 걸었던 발바닥 쾌락 왜곡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었다.

"이게... 네가 원하던 거냐."

우범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채령에게서 손가락을 뺐다. 그녀의 애액이 손가락 사이로 실처럼 늘어졌다. 그 손으로 우범의 가슴을 짚었다.

"아니. 내가 원하는 건 이거야."

심장 부위에 직접 접촉. 셔츠와 피부 사이로 관상동맥의 박동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심장 신경을 열었다. 통증 수용체도, 쾌락 수용체도 아닌,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감각인 압각을 조준했다.

"네 아버지가 나에게 주려던 건..."

우범의 눈이 커졌다. 형광색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압각을 제로로 설정했다.

심장이 뛰는 감각이 사라졌다. 혈액이 동맥을 타고 흐르는 촉각이 사라졌다. 갈비뼈 안쪽에서 폐가 팽창하는 감각. 횡격막이 오르내리는 감각. 위장이 연동하는 감각. 장이 꼬이며 소화액을 분비하는 감각. 신장이 피를 걸러내는 감각. 방광에 오줌이 차는 감각.

모든 내장 감각이 소멸했다.

우범은 심장이 멈춘 줄 알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단지 그걸 느낄 수 없을 뿐이었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모든 감각이 사라진 육체. 그는 자기 몸속에서 표류하는 유령이 되었다. 방광의 괄약근이 풀리며 바지 안으로 오줌이 흘러내렸지만, 그 젖은 감촉조차 그에게는 없었다. 다리가 접히며 무릎을 찧었지만 충격은 전달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몸이 어디서 끝나고 바닥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게... 이게..."

그가 무릎을 꿇었다. 빗물 고인 옥상 바닥에 무릎을 찧었지만 그 충격조차 느끼지 못했다. 자기 몸무게가 뼈를 누르는 감각도 사라졌다. 중력의 방향도 알 수 없었다. 그는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마치 우주 공간에 버려진 폐기물처럼 팔다리가 제멋대로 흩어졌다.

"네 아버지가... 나에게 주려던 거였어..."

그가 중얼거렸다. 눈물이 흘렀지만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감각은 그에게 없었다.

"20년 전... 강필두가 말했어... 언젠가 너에게 이걸 가르쳐주겠다고... 모든 걸 빼앗는 자에게... 주는 벌이라고..."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차 여러 대가 건물을 포위하는 소리.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빗줄기를 갈랐다. 채령이 보낸 장부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범의 조직은 이미 붕괴하고 있었다.

계단문이 열리고 수진과 유라가 뛰어올라왔다. 유라의 어깨 붕대에는 아직 피가 번져 있었다. 수진은 두꺼운 서류 봉투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경찰이 곧 올라올 거야."

수진이 우범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표정은 차가웠다.

"우범 씨, 내 아버지를 죽인 게 누군지 이제 알겠더라고요."

우범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목 근육의 위치 감각이 사라져 방향을 가늠하지 못했다.

"당신이었죠. 당신이 구해준 척 하면서 내 인생을 조종했어요."

수진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이 서류에는 당신이 내 아버지 회사를 빼앗은 증거도 들어 있어요. 이걸로 끝이에요."

유라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쓰러진 채령을 한 번 내려다보고, 내 젖은 오른손을 보았다. 아직 채령의 애액이 묻어 있는 손가락을.

"이제 네가 질 이유는 없어."

그녀의 손이 내 어깨를 짚었다. 총상 입은 어깨가 아니라 반대쪽 어깨였다. 그녀의 손바닥은 뜨거웠다. 신경이 개방된 상태라 그녀의 통증이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어깨의 총상이 욱신거렸다.

"내 통증은 내가 감당해. 너는 네 여자나 챙겨."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채령을 안아 올렸다. 그녀의 몸은 가벼웠다. 뼈와 살의 무게보다 내 신경에 각인된 감각의 무게가 더 컸다.

계단을 내려갔다. 형광등 불빛이 깜빡이는 비상계단을 한 걸음씩. 채령의 호흡이 내 목에 닿았다.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내 팔뚝을 스쳤다. 모든 접촉이 신경 데이터로 변환되어 내 기억 회로로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그 데이터가 저장되는 동시에 다른 무언가가 삭제되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 어머니의 목소리. 첫사랑의 이름. 초등학교 운동장의 모래 냄새. 중학교 시절 불렀던 노래 가사. 군대에서 처음 담배를 배우던 날의 추억.

모든 것이 지워지고 있었다. 신경계가 기억을 소모하며 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내가 누군지 서서히 잊고 있었다.

구급차 뒷좌석에 채령을 눕혔다. 구급대원이 산소 마스크를 씌우고 혈압을 쟀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깨어났을 때는 병원이었다.

하얀 천장. 염소 냄새. 심전도 기계가 규칙적으로 삐 소리를 내고 있었다. 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근육이 굳어 있었지만 통증은 없었다. 아니, 통증을 느끼는 방법 자체가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문이 열리고 여자가 들어왔다. 긴 생머리. 창백한 피부. 손목에 오래된 자해 흔적.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강현 씨..."

나는 그녀를 보았다. 예쁜 여자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턱에서 떨어졌다. 그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내 청각도 뭔가 달라져 있었다.

"누구... 세요?"

내 목소리는 건조했다. 담배를 오래 피우지 않은 목소리.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이 내 손등에 닿자 내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손목을 감싸쥐고 엄지로 맥박을 짚었다. 요골동맥의 박동이 내 지문을 때렸다.

그리고 내 손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을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 어느 지점을 누르면 그녀의 신경이 열리는지. 어떤 리듬으로 문지르면 그녀의 숨이 가빠지는지. 손가락을 어디로 움직여야 그녀의 젖꼭지가 딱딱해지는지. 손바닥을 어디에 대야 그녀의 자궁이 수축하는지.

모든 것을 내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내 손은 그녀의 질벽 주름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완벽하게 움직이지만, 정작 나는 그녀의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한다. 그녀가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가 어떤 계절을 함께 보냈는지, 그녀가 왜 손목에 흉터를 새겼는지. 모든 서사는 사라지고 촉각의 지도만 남았다. 그 지도는 너무나 정밀해서 그녀의 신경계 전체를 소유할 수 있었지만, 그 지도가 가리키는 땅의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이상하군..."

내 입이 움직였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 손은 당신을 만지는 법을 기억해."

여자가 내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환자복 너머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내 손바닥을 때렸다. 익숙한 리듬이었다. 내 신경 어딘가에 저장된 리듬이었다.

"그거면 충분해."

그녀가 무릎을 꿇었다. 병원 바닥에 무릎을 대고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녀의 눈물이 내 손등을 적셨다.

"네가 나를 만질 수만 있다면... 나는 영원히 네 거야."

그녀가 내 환자복 바지를 끌어내렸다. 아직 완전히 발기하지 않은 성기가 드러났다. 그녀는 내 성기를 손으로 감싸며 혀를 귀두에 댔다. 천천히, 마치 처음 맛보는 음식처럼 혀끝으로 요도구 주변을 핥았다. 그녀의 침이 마르며 미세한 냉각 감각을 남겼다. 내 성기가 그녀의 입술 안에서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어. 네 손길이 나를 기억하니까."

그녀가 내 성기를 입에 넣으며 동시에 내 오른손을 자신의 치마 속으로 끌어당겼다. 팬티를 벗기자 질 입구가 이미 젖어 있었다. 그녀는 내 검지를 자신의 질 안으로 밀어넣으며 입으로는 내 성기를 더 깊이 삼켰다. 그녀의 혀가 성기 기둥을 따라 움직이고 입술이 귀두를 감쌌다. 동시에 질벽이 내 손가락을 리드미컬하게 조여왔다.

나는 그녀의 신경계를 열었다. 그녀가 내 성기를 빨면서 느끼는 미각과 촉각, 그리고 내 손가락이 그녀의 질을 찔러넣는 감각이 모두 연결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나를 애무하면서 동시에 내가 그녀를 만지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손끝에 닿은 눈물이 미지근했다. 염화나트륨의 미세한 결정이 내 지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당신이 우는 건 싫어."

그녀가 내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입술이 손가락 마디를 스치며 떨리고 있었다. 혀가 내 검지 끝을 스쳤다. 그녀의 침이 마르며 미세한 냉각 감각을 남겼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의 몸이 내 품으로 쓰러졌다. 익숙한 무게였다. 내 가슴 근육이 그녀의 체형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병원 침대에 눕히고 그녀의 치마를 허벅지까지 올렸다. 이미 젖어 반짝이는 음모와 충혈된 음핵이 드러났다. 그녀의 질 입구가 내 성기를 기다리며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시 만나러 올게. 내 손이 당신을 찾을 테니까."

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벌리고 성기를 질 입구에 댔다. 귀두가 애액에 젖어 미끄러졌다. 그녀의 질 입구가 내 귀두를 빨아들였다. 나는 천천히 밀어넣었다. 질벽이 내 성기 전체를 감싸며 조여왔다. 그녀의 체온이 내 성기를 통해 전해졌다. 자궁 경부가 귀두에 닿을 때까지 깊이 삽입했다.

"아... 강현..."

그녀가 내 등을 붙잡았다. 손톱이 환자복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녀의 신경계를 완전히 열었다. 그녀의 질 내부 감각이 내 성기에 직접 전달되도록 경로를 개방했다. 동시에 내 성기가 느끼는 그녀의 질벽 촉각이 그녀의 뇌로 피드백되도록 연결했다. 그녀는 자신의 질이 내 성기를 어떻게 조이는지, 내 귀두가 자궁 경부를 어떻게 밀어내는지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너도... 느끼고 있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과 땀이 섞여 베개를 적셨다.

"네가... 내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느껴져..."

나는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기를 빼다가 다시 깊이 밀어넣었다. 질벽의 주름이 내 성기 표면을 쓸었다. 그녀의 G스팟이 귀두에 닿을 때마다 그녀의 질 근육이 경련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음핵을 문지르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유두를 비볐다. 젖꼭지가 딱딱하게 발기해 내 손가락 끝을 밀어냈다.

"가고 있어... 또 가..."

그녀의 질벽이 격렬하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오르가즘의 파형이 내 성기를 타고 내 뇌로 전달되었다. 그녀의 자궁이 수축하며 귀두를 조였다. 나는 그 감각에 반응해 그녀의 질 깊숙이 사정했다. 정액이 자궁 경부를 때리며 질벽을 채웠다. 그녀의 질 근육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듯 수축했다.

그녀는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내 등 뒤로 돌아가 환자복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젖은 숨이 내 빗장뼈에 닿았다. 내 성기는 아직 그녀의 질 안에 있었다. 질벽이 간헐적으로 경련하며 정액을 질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기다릴게."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몇 번이든... 처음부터 다시."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 손바닥이 그녀의 등을 쓸었다. 척추를 따라 신경 다발이 손끝으로 감지되었다. 나는 그녀의 신경계를 망가뜨린 적이 있다. 그리고 그걸 수리하는 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되돌리는 법은 몰랐다. 아니, 되돌리고 싶지 않았다.

내 손은 그녀를 절대 놓지 않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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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이 지났다.

나는 해결사 일을 다시 시작했다. 빚은 거의 갚았다. 민 사장은 감옥에 갔고, 우범의 조직은 와해됐다.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군지 잘 몰랐다. 어렸을 적 사진을 봐도, 졸업장을 봐도, 옛날 사무실 서랍에서 나온 낡은 라이터를 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라이터에는 동묘 일파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게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안다고 했다. 유라라는 여자는 내게 빚이 있다고 했고, 수진이라는 변호사는 나와 동업 관계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거짓말을 하면 내 손이 알아챘다.

오늘도 사무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재떨이에 불씨가 쌓여 갔다. 창밖으로 도시의 네온이 깜빡였다. 빗방울이 창문을 때렸다.

문이 열렸다.

여자가 들어왔다. 긴 생머리. 창백한 피부. 손목에 오래된 자해 흔적.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현 씨."

그녀가 명함을 내밀었다. 받지 않았다. 내 손은 이미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저는 채령이라고 합니다. 당신에게 의뢰가 있어서 왔어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낯선 얼굴이었다. 기억 속 그 어디에도 없는 얼굴. 하지만 내 손은 그녀의 맥박을 짚고 있었다. 요골동맥의 박동이 내 지문을 때렸다. 익숙한 리듬.

"이상하네요..."

내 엄지가 그녀의 손목 안쪽 흉터를 쓸었다. 오래된 자해 흔적. 피부가 얇게 접혀 있었다. 이 흉터의 기원을 나는 몰랐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알고 있었다. 이 흉터가 생겼을 때 이 여자가 얼마나 아팠는지. 그리고 그 통증을 내가 어떻게 지워줬는지.

"처음 보는 분인데... 왠지 당신을 만지는 법을 아는 것 같아요."

채령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대신 내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심장 박동이 손바닥을 때렸다. 그녀의 자궁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젖꼭지가 천 위로 올라왔다. 내 손은 이미 그녀의 신경을 열고 있었다.

"그럼..."

그녀가 무릎을 꿇었다. 사무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녀의 입술이 내 손가락에 닿았다.

"그 손길로 저를 다시 찾아주세요."

눈물이 내 손등을 적셨다. 미지근했다. 염화나트륨의 미세한 결정이 내 지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몇 번이든... 처음부터 다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억은 없었다. 그녀의 이름도, 그녀와 내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왜 그녀가 우는지도.

하지만 내 손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신경계 전체를 소유하는 법을.

그녀의 통증을 쾌락으로 뒤집는 법을.

그녀의 오르가즘을 내 손끝에 각인시키는 법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의 몸이 내 품으로 쓰러졌다. 익숙한 무게였다. 내 가슴 근육이 그녀의 체형을 기억하고 있었다.

"좋아요."

내 입이 움직였다.

"그 의뢰... 받겠습니다."

그녀가 내 품에서 울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쓸었다. 척추를 따라 신경 다발이 손끝으로 감지되었다. 그녀의 모든 감각이 내 손바닥 안에 있었다.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감각은 있었다.

내 손은 그녀를 절대 잊지 않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신경도, 내 손길을 절대 잊지 않도록 각인되어 있었다.

기억보다 강렬한 감각의 계약이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담배 연기가 재떨이 위로 흩어졌다.

빗소리가 창문을 때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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