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대왕대비의 발소리가 침전 바깥에서 울렸다.

소은의 손이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듯 쿵쾅거렸다. 탁자 위 펼쳐진 벽서, 반쯤 풀어헤친 저고리, 현종의 붉어진 입술. 모조리 사형 선고와 다름없는 증거였다. 손끝이 저릿하게 식어들었다.

현종이 먼저 움직였다. 벽서를 낚아채 소은의 품에 밀어넣고, 자신의 곤룡포 앞섶을 여미며 탁자 앞에 앉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호흡조차 고요해졌다. 마치 방금 전까지 소은의 입술을 탐하던 남자가 아니라는 듯.

"들라."

문이 열렸다. 대왕대비 민씨가 염주를 굴리며 들어섰다. 그 뒤로 상궁 연화와 수행원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연화의 눈이 재빨리 침전을 훑었다. 흐트러진 이불, 반쯤 내려진 휘장, 소은의 품속으로 사라진 두루마리.

대왕대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밤이 깊었는데 전하께서 침전에 궁녀를 들이셨다 하여...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까 염려되어 왔습니다."

"대비마마께서 과인의 침전을 염려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현종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그는 손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은 차였다. 소은은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요즘 궁 안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전하께서 한낱 지밀 나인에게..."

"소문을 들으셨다면 더더욱 분명히 말씀드리지요."

현종이 대왕대비의 말을 잘랐다.

"이 아이는 과인이 점찍은 자입니다."

대왕대비의 염주가 멈췄다. 손가락 사이로 구슬을 누르는 힘이 느껴졌다.

"전하. 지금 무슨 말씀을..."

"대비마마께서는 선왕의 유품을 수색하러 오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과인의 침전을 이리도 샅샅이 살피시는지. 선왕의 유품이 과인의 침전에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현종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키가 대왕대비를 내려다보았다.

"아니면... 대비마마께서 찾으시는 것이 선왕의 유품이 아니고, 과인의 약점이라도 되옵니까."

침전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수행원들이 숨을 죽였다. 대왕대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순간, 그녀의 손에서 염주 한 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은은 품속의 벽서를 꼭 움켜쥐었다. 두루마리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아까 현종의 손이 닿았던 자리, 그의 마음이 스며든 자리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소은은 저고리 앞섶을 더 깊이 여몄다.

"전하께서 무슨 오해를 하신 듯하옵니다."

대왕대비의 목소리가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았다.

"오해라면 다행이옵니다. 그러나 대비마마. 한 가지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현종이 한 걸음 다가섰다.

"이 아이를 건드리는 것은 곧 과인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인을 건드리는 것은... 이 왕실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옵니다."

연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손이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소은은 그 손에서 비린내를 맡았다. 독을 다루는 자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 3화에서 연화가 소은의 시중드는 모습을 보며 '요즘 네게서 이상한 향이 난다'고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연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독을 품고 있었다. 소은을 향한 질투와 증오가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비롯된 살의였다.

대왕대비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전하의 말씀을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간언을 올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녀의 눈이 소은을 향했다.

"전하께서 한낱 궁녀에게 마음을 주셨다는 소문은 이미 궁 밖으로도 퍼졌사옵니다. 이는 왕실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일. 전하께서 아무리 총애하신다 하여도, 신분의 벽은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분의 벽이라..."

현종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이 잠시 허공을 맴돌았다.

"대비마마께서는 선왕께서 생전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대왕대비의 얼굴이 굳었다.

"진실된 마음은 눈이 아닌 가슴으로 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대비마마께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시옵니까."

2화에서 현종이 소은에게 들려주었던 그 말. 선왕이 어린 현종에게 속삭였던 그 말은 이제 칼이 되어 대왕대비를 향했다. 선왕의 정비였으나 한 번도 그 진심을 받지 못했던 여자. 그녀의 염주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거칠게.

"전하께서 선왕을 들먹이시니... 더 드릴 말씀 없사옵니다."

대왕대비가 돌아섰다. 그녀의 옷자락이 바닥을 쓸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궁궐의 법도는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벽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연화가 대왕대비를 따라 나가며 마지막으로 소은을 돌아보았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분명한 살의였다. 문이 닫혔다. 침전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현종이 탁자에 손을 짚었다. 그의 어깨가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방금 전까지 대왕대비 앞에서 보여주었던 위엄은 사라지고, 이제는 지친 한 남자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소은아."

그가 낮게 불렀다. 소은은 다가가지 못했다. 품속의 벽서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현종의 마음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푸른 안개. 그의 불안이었다. 짙고 어두운 향기. 그의 집착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붉게 타오르는 불꽃. 그의...

"네가 없으면... 나는 왕이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현종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탁자를 짚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의 턱선이 굳어지고,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소은은 그의 눈을 보았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왕으로서의 책무도, 군주의 위엄도 아니었다. 오직 한 여자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남자의 취약함뿐이었다.

그리고 소은은 알았다. 그가 지금 이 순간, 진심으로 왕의 자리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그 순간, 품속의 벽서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현종의 고백이 벽서를 뒤흔들었다. 푸른 안개가 소은의 폐부를 짓누르며 숨을 막았다. 그의 불안이 그녀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 심장을 움켜쥐었다. 단순히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었다. 현종이 느끼는 상실의 공포가 그대로 소은의 몸속으로 전이되어 그녀의 손발을 차갑게 식혔다. 마치 자신이 직접 왕좌를 내던지는 순간을 마주한 듯,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의 두려움이 소은의 아랫배를 짓눌렀다.

그런데 그 공포의 파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더 어둡고 달콤한 감각이 밀려왔다. 짙은 향기. 현종의 집착이었다. 소은을 완전히 소유하고 싶은 욕망, 그녀의 몸과 마음을 하나도 남김없이 삼키고 싶은 굶주림. 이 향기는 소은의 혀끝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집착이 그녀의 아랫배를 뜨겁게 달구며 질을 수축시켰다. 애액이 스며나올 정도로 강렬한 생리적 반응이었다. 현종이 그녀를 원하는 만큼, 소은의 몸도 그를 갈망하고 있었다.

소은은 벽서를 꺼냈다. 두루마리가 그녀의 손끝에서 빛나고 있었다. 선왕이 남긴 이 기록은 이제 그녀의 것이었다. 아니, 그녀와 현종의 것이었다. 읽는 이의 감정을 먹고 자라는 벽서. 1화에서 상궁 최씨가 경고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이 궁궐에서 가장 위험한 건 다정한 눈빛이야.'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가장 위험한 것은 다정한 눈빛이 아니라, 그 눈빛을 믿기로 결심한 마음이었다.

소은은 능력을 열었다.

벽서가 펼쳐졌다. 현종의 마음이 색과 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먼저 느껴진 것은 푸른 안개. 그의 불안이었다. 대왕대비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 소은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안개는 차갑고 축축했다. 소은의 폐부를 조여왔다.

그 다음은 어둡고 달콤한 향기. 그의 집착이었다. 이 향기는 소은의 혀끝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껴진 것은 붉은 불꽃.

그의 사랑이었다.

불꽃은 뜨거웠다. 그러나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했다. 소은의 온몸을 감싸는 이 열기는 현종의 가장 깊은 곳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왕의 자리, 권력, 명예. 그 모든 것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는 단 하나의 진심. 소은을 잃는 것이 죽음보다 두려운 남자의 마음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불꽃 너머에서 낯선 감각이 밀려왔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몸속으로 밀려들듯, 현종의 감정이 소은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었다. 그의 두려움이 그녀의 심장을 쥐어짜고, 그의 집착이 그녀의 아랫배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이 소은의 폐부를 가득 채워 숨을 멎게 했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었다. 현종의 감정이 그대로 소은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낯선 감정의 파도가 그녀의 온몸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파도 속에서 소은은 깨달았다. 이 감정의 전이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그녀의 두려움, 그녀의 갈망, 그녀의 사랑도 벽서를 타고 현종에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증거로, 현종의 눈동자가 갑자기 흔들렸다. 소은이 느끼는 감정이 그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그녀가 품은 죽음보다 깊은 사랑, 신분의 벽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심, 그리고 그를 향한 처절한 갈망. 그 모든 것이 현종의 심장을 관통했다.

소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하..."

그녀가 벽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현종에게 다가갔다. 망설이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나지 않았다.

"제 마음도... 전하와 같사옵니다."

현종이 소은을 끌어안았다. 그의 두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얼굴이 그녀의 어깨에 묻혔다. 소은은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빠르고 거칠게 뛰고 있었다. 그의 체온이 옷을 뚫고 전해졌다. 식은땀이 섞인 그의 체취가 소은의 후각을 자극했다. 용뇌향과 소금기 섞인 땀 냄새. 권력과 취약함이 뒤섞인 이 냄새야말로 현종의 진짜 모습이었다.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현종이 속삭였다. 그의 입술이 소은의 귀에 닿았다. 뜨거운 숨결이 귓바퀴를 타고 흘러들었다.

"대비가 무슨 짓을 하든, 이 궁궐이 무너져도... 나는 너를 놓지 않을 것이다."

그의 손이 소은의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비단이 스치며 나는 소리가 침전 안에 울렸다. 소은은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손으로 현종의 곤룡포를 벗겼다. 무명과 비단이 바닥에 떨어졌다. 두 사람의 옷이 겹쳐지며 내는 소리는 마치 숨죽인 신음 같았다.

현종의 손이 소은의 맨살에 닿았다. 그의 손바닥은 뜨거웠고 약간 거칠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굳은살이 손가락 마디에 박혀 있었다. 활을 쥐고 칼을 다루는 군주의 손. 소은은 그 손이 자신의 등을 타고 내려오는 감촉에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 손길이 닿는 순간, 소은은 느꼈다. 현종의 쾌락이 그녀에게 전이되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이 그녀의 피부를 스칠 때마다, 현종이 느끼는 전율이 소은의 신경을 타고 흘러들었다. 그녀의 살갗이 그의 손에 닿아 달아오르는 감각, 그녀의 떨림이 그의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 이 모든 것이 벽서의 능력을 통해 교차되고 있었다. 현종이 그녀를 쓰다듬을 때마다, 그 역시 자신의 손길이 소은에게 전하는 쾌락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차갑지 않느냐."

현종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평소보다 한 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었다. 차갑기는커녕 불타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이 닿는 자리마다 피부가 달아올랐다. 유두가 천천히 경직되고,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전하의 손이... 뜨거우십니다."

"네 살결이... 내 손바닥을 태우는구나."

현종의 대답은 신음에 가까웠다. 벽서를 통한 감정의 교차가 그에게도 소은의 감각을 전하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가 느끼는 열기, 그녀의 유두가 경직되는 감각, 그녀의 질이 수축하며 애액을 흘리는 촉촉함. 모든 것이 현종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그의 성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현종이 소은을 침상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몸이 요 위에 닿았다. 비단 이불이 체온을 머금고 있었다. 현종이 그녀의 위로 올라왔다. 그의 체중이 실리며 침상이 살짝 꺼졌다. 소은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그의 이마와 콧날을 비추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욕망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다.

"네 마음이 내 안에 들렸다."

현종이 소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네가 나를 읽은 것처럼... 나도 너를 읽었다."

그의 입술이 소은의 눈꺼풀로 내려왔다. 눈물에 젖은 속눈썹을 입술로 쓸어내렸다. 짠맛. 소은은 눈을 감았다. 시각이 사라지자 다른 감각들이 폭발적으로 예민해졌다. 그의 숨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의 살냄새가 폐부를 채웠다. 그의 손가락이 소은의 목을 타고 쇄골로 내려왔다.

"아..."

소은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현종의 손가락이 그녀의 유두를 스쳤다. 살짝 문지르는 듯한 움직임. 유두가 더 단단해졌다. 그런데 그 순간, 현종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소은의 유두가 경직되는 감각이 벽서를 통해 그의 손끝으로, 그리고 그의 성기로 직접 전이된 것이다. 그녀가 느끼는 쾌락이 그의 몸에 고스란히 흘러들어 발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네 쾌락이... 내게도 느껴진다."

현종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그는 손끝으로 유두를 굴렸다. 원을 그리듯, 때로는 가볍게 집듯. 그때마다 소은의 질이 수축했고, 그 수축의 감각이 현종의 성기에도 전해졌다. 마치 그녀의 질이 직접 그의 성기를 조이는 듯한 착각. 현종은 신음을 삼키며 손의 움직임을 더욱 집요하게 만들었다.

"여기...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전하... 전하도... 느끼시는 거죠?"

소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현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단순히 그녀를 애무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그녀의 쾌락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숨지 마라. 네 모든 것을 보고 싶다. 느끼고 싶다."

그는 몸을 낮추어 소은의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혀끝이 유두를 핥았다. 따뜻하고 촉촉한 감촉. 소은의 허리가 반사적으로 들렸다. 현종의 입술이 유두를 빨아들였다. 젖먹이 아이처럼 집요하게, 그러나 연인처럼 조심스럽게. 그의 혀가 유륜을 따라 움직이고, 이따금 이빨이 살짝 스치며 자극을 더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은이 느꼈다. 현종의 혀가 그녀의 유두를 핥을 때마다, 그의 혀끝에 전해지는 그녀의 살갗의 감촉이, 그녀의 유두가 그의 입안에서 단단해지는 감각이, 그 모든 것이 벽서를 통해 소은에게도 흘러들었다. 현종이 그녀의 가슴을 빨며 느끼는 쾌락이 그녀의 신경을 타고 흘러 질을 더욱 적시게 만들었다. 그가 그녀를 탐할수록, 그녀도 그가 느끼는 굶주림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전하... 전하... 제가 전하의 혀를... 느껴요..."

소은의 말은 신음에 가까웠다. 현종은 한쪽 가슴을 입으로 애무하며 다른 손으로 반대쪽 유두를 계속 자극했다. 두 갈래로 퍼지는 쾌감에 소은의 질이 수축했다. 그리고 그 수축의 감각이 다시 현종에게 전해져 그의 성기를 더욱 팽창시켰다. 감정의 교차가 쾌락을 무한히 증폭시키고 있었다.

질 안이 뜨거워졌다. 애액이 스며나오는 감각이 선명했다. 허벅지 안쪽이 젖어들었다. 현종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배꼽을 지나 하복부를 쓸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음부에 닿았다.

"벌써 이렇게..."

현종의 손가락이 음순 사이를 미끄러졌다. 애액에 젖은 음모가 손가락에 감겼다. 그는 손가락으로 음순을 벌리고, 질 입구를 살짝 눌렀다.

"흐읏..."

소은이 숨을 들이켰다. 현종의 손가락이 질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첫 마디, 두 번째 마디. 질벽이 이물감에 수축하며 손가락을 조였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속살이 그를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현종의 손가락에 전해지는 질벽의 감촉이 소은에게도 전이되었다. 자신의 질이 얼마나 뜨겁고 좁은지, 질벽이 현종의 손가락을 얼마나 강하게 조이는지, 그 모든 감각이 소은의 신경을 타고 흘러들었다. 마치 자신이 직접 자신의 질 안에 손가락을 넣은 듯한 착각. 낯설고도 강렬한 감각에 소은은 신음을 터뜨렸다.

"좁구나... 아주 많이. 네 안이... 나를 이렇게 조이는구나."

현종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그 역시 소은의 질벽이 자신의 손가락을 조이는 감각에 더해, 소은이 느끼는 충만감과 압박감까지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벽을 탐색하듯, 안쪽을 펴듯. 소은의 질은 그의 손가락을 집어삼키며 반응했다. 애액이 더 많이 흘러나와 그의 손바닥을 적셨다.

"아파요... 아니... 아프지 않은데... 이상해요..."

소은의 말이 문장을 이루지 못했다. 현종의 손가락이 질 안에서 굽어졌다. 질벽 상부의 거친 부위를 문질렀다. 그 순간, 전기 같은 쾌감이 소은의 척추를 타고 올랐다.

그리고 그 쾌감은 벽서를 통해 현종에게도 전해졌다. 소은이 느끼는 절정 직전의 전율이 그의 성기를 관통했다. 귀두가 더욱 팽창하고, 요도구에서 투명한 액체가 스며나왔다. 현종은 자신의 성기가 소은의 질 안에서 느낄 쾌락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여기인가 보구나."

현종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는 그 지점을 반복해서 자극했다.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때로는 그 자리를 압박하며 문질렀다. 소은은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전하... 그만... 이제..."

무엇을 그만하라는 것인지 자신도 몰랐다. 그러나 현종은 손가락을 멈추었다. 소은이 허전함을 느낄 틈도 없이, 그가 자신의 하의를 벗었다. 그의 성기가 드러났다. 달빛 아래에서도 선명한 발기. 귀두가 붉게 부풀어 올랐고, 표면의 핏줄이 꿈틀거렸다.

소은은 처음 보는 남성의 성기에 숨을 멈췄다. 그것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에 질이 다시 한 번 수축했다. 그리고 그 수축의 감각이 현종에게 전해지자, 그의 성기가 더욱 단단해졌다.

"무서우냐."

현종이 물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었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갈망했다. 이 남자의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의 살이 자신의 안에 닿는 순간을, 그가 자신 안에서 절정에 이르는 순간을.

"아니요... 전하를 느끼고 싶사옵니다."

현종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그가 소은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몸을 위치시켰다. 그의 성기가 소은의 질 입구에 닿았다. 귀두가 음순 사이를 미끄러지며 애액을 묻혔다. 뜨거웠다. 살이 살에 닿는 감촉이 너무나 생생했다.

그리고 그 뜨거운 감촉이 현종에게도 전해졌다. 소은의 질 입구가 얼마나 뜨겁고 촉촉한지, 그녀의 음순이 자신의 귀두를 얼마나 부드럽게 감싸는지, 그 모든 감각이 벽서를 통해 소은의 신경으로도 흘러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질 입구에 닿은 그의 성기의 열기를 느끼며, 동시에 그가 느끼는 그녀의 촉촉함과 부드러움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숨을 들이쉬어라."

현종이 말했다. 소은이 숨을 들이쉬는 순간, 그가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아... 아아..."

질 입구가 벌어졌다. 귀두가 안으로 들어왔다. 압박감과 함께 퍼지는 충만감. 소은의 질벽이 현종의 성기를 감쌌다. 너무 꽉 조여서 더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벽서가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현종의 성기가 소은의 질벽을 뚫고 들어가는 감각이, 그대로 소은의 몸속으로 전이되었다. 자신의 질이 현종의 성기를 얼마나 강하게 조이는지, 그녀의 속살이 그의 성기를 얼마나 뜨겁게 감싸는지, 그 모든 감각이 소은의 신경을 타고 흘러들었다. 동시에 현종도 느꼈다. 소은이 느끼는 압박감과 충만감, 그리고 그 이물감 속에서 피어오르는 쾌락까지. 두 사람의 감각이 완전히 뒤섞여 더 이상 누구의 쾌락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너무 좁아... 조금만 풀어줘. 네 안이... 나를 이렇게 조이면... 참을 수 없어."

현종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소은이 적응할 시간을 주며 천천히 더 깊이 들어왔다. 중간까지, 그리고 끝까지. 성기가 질 깊숙한 곳까지 닿았을 때, 소은은 자신의 몸이 완전히 채워지는 감각에 전율했다.

"들어왔어요... 전하가... 제 안에..."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소은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현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성기가 질벽을 비비며 빠졌다가 다시 들어왔다. 삽입과 인출이 반복될 때마다 애액이 섞인 소리가 났다. 퍽퍽, 하고 젖은 살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보다 더 선명한 것은, 벽서를 통해 교차되는 감각이었다. 현종의 성기가 질벽을 비빌 때마다, 그 마찰의 감각이 소은의 신경을 타고 흘러들었다. 그녀의 질벽이 그의 성기를 감싸며 느끼는 부드러움과 촉촉함이 현종의 성기로 전해졌다. 현종이 느끼는 쾌락과 소은이 느끼는 쾌락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감각이 하나로 합쳐져 무한히 증폭되고 있었다.

"소은아..."

현종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허리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성기가 질 안에서 더 깊숙이, 더 세게 들어왔다. 침상이 흔들리며 삐걱거렸다. 소은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등에 난 땀이 손바닥에 묻어났다.

"전하... 전하... 너무 깊어요..."

"아직이다... 더... 더 네 안에 있고 싶다. 네 안이... 나를 이렇게 감싸는데... 어떻게 멈추겠나."

현종의 손이 소은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는 허리의 각도를 바꾸며 더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아까 손가락으로 찾았던 그 지점을 성기로 자극했다. 귀두가 질벽 상부의 민감한 부위를 비빌 때마다 소은의 몸이 경련했다.

그리고 그 경련의 감각이 현종에게도 전해졌다. 소은의 질벽이 수축하며 자신의 성기를 조이는 감각, 그녀가 느끼는 절정 직전의 전율, 그 모든 것이 현종의 성기를 더욱 팽창시키며 사정을 재촉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소은과 함께 절정에 이르기 위해, 그녀의 쾌락을 끝까지 느끼기 위해.

질벽이 수축하기 시작했다. 오르가즘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랫배가 뜨거워지고, 질 안의 근육이 현종의 성기를 더 강하게 조여들었다.

"나... 저... 이상해요... 뭔가... 터질 것 같아..."

소은의 말은 신음에 가까웠다. 현종이 속도를 더 높였다. 그의 성기가 질을 빠르게 왕복했다. 귀두가 질 입구까지 나왔다가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 침대 시트를 적셨다.

"함께 가자... 나와 함께... 네 모든 것을... 내게 다오..."

현종이 소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땀방울이 소은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사향 같은 체취가 짙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아아...!"

소은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질벽이 강하게 수축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오르가즘이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발끝이 저리고, 손끝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 질 안에서 현종의 성기를 꽉 조여들었다.

그리고 그 절정의 감각이 벽서를 통해 현종에게도 폭발적으로 전이되었다. 소은의 질벽이 경련하며 자신의 성기를 조이는 감각, 그녀의 온몸을 휘감은 오르가즘의 파도, 그 모든 것이 현종의 성기를 관통하며 그를 절정으로 밀어붙였다.

"나도... 간다... 네 안에... 전부..."

현종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성기가 질 안에서 몇 번 더 깊게 박히더니,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정했다. 뜨거운 정액이 질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정액이 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감촉이 선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 벽서가 눈부시게 빛났다.

현종이 소은의 질내에 사정하는 바로 그 순간, 벽서가 두 사람의 감정을 완전히 하나로 엮어버렸다. 현종은 소은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녀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품었던 두려움, 그 두려움 속에서도 싹튼 갈망, 신분의 벽 앞에서도 그를 선택한 결심,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가 자신의 안에 쏟아내는 정액 한 방울까지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처절한 마음. 모든 것이 현종의 심장을 관통했다.

동시에 소은도 현종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왕으로서의 책무보다 그녀를 선택한 그의 결단, 그녀를 잃을까 봐 밤마다 잠 못 이루던 불안, 그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집착, 그리고 그녀가 품은 두려움과 갈망과 사랑을 모두 이해하고도 더 깊이 사랑하기로 한 그의 마음. 그 모든 것이 소은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두 사람의 감정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았다. 누구의 두려움이고 누구의 사랑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마음은 완전히 공명했다. 벽서가 두 사람의 감정을 잉크처럼 빨아들여 페이지 위에 쏟아내는 동안, 현종과 소은은 서로의 마음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현종이 소은의 위로 쓰러졌다. 그의 체중이 그녀를 짓눌렀다. 두 사람의 심장이 함께 뛰었다. 격렬하게, 그러나 점점 안정을 찾으며. 그의 성기가 아직 그녀의 질 안에 남아 있었다. 정액이 조금씩 흘러나와 허벅지를 적셨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숨소리만이 침전 안을 채웠다. 땀에 젖은 두 사람의 피부가 서로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소은은 현종의 품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대왕대비의 말처럼, 신분의 벽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 벽은 이미 무너졌다. 그녀의 질 안에 흐르는 이 남자의 정액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벽서를 통해 하나가 된 그들의 감정이었다.

현종의 손이 소은의 얼굴을 쓸었다.

"후회하느냐."

소은은 고개를 저었다. 후회는 없었다. 두려움도 사라졌다. 오직 이 남자와 함께라면 어떤 벌도 달게 받을 수 있다는 확신만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소은의 품에서 벽서가 굴러떨어졌다. 합방의 충격으로 저고리 사이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두루마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펼쳐졌다. 그리고 마지막 공백 페이지가...

빛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은은한 푸른 빛이었다. 그러나 점점 붉은 빛으로 변해갔다. 페이지 위에 글자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붓으로 쓰는 것도, 칼로 새기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피가 스며들듯, 뜨거운 잉크가 혈관을 타고 흐르듯 글자들이 나타났다. 소은은 손끝으로 그 글자들을 만졌다. 놀랍게도 따뜻했다. 체온이 느껴졌다. 방금 전 현종의 성기가 그녀의 질 안에서 내뿜었던 정액의 온기와 똑같은 온도였다. 두 사람의 감정이 잉크가 되어 종이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 잉크는 심장처럼 고동쳤다.

소은은 그 글자들을 읽었다.

'그리고 그날, 왕은 궁녀의 몸을 받아들였고...'

그 아래로 더 많은 글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합방, 그들의 감정, 그들의 결심. 모든 것이 그 페이지에 기록되고 있었다. 벽서는 읽는 이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벽서는 두 사람의 감정을 먹고 자라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욕망이, 그들의 두려움이 이 한 권의 두루마리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인가요."

소은의 떨리는 목소리가 침전 안에 울렸다.

현종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의 손바닥이 여전히 뜨거웠다.

"그렇다면... 이 벽서는 이제 우리의 것이다."

벽서의 빛이 점점 더 강해졌다. 붉은 글자들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그 너머로 새로운 페이지가 생겨나고 있는 듯했다. 마치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듯.

촛불이 흔들렸다. 그림자가 벽을 타고 일렁였다. 아직 채 식지 않은 체온이 이불 속에 감돌고, 둘의 숨소리가 겹쳐진 그 순간...

바깥에서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대왕대비 민씨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뒤로 연화와 호위 무사들이 횃불을 들고 있었다. 붉은 불빛이 침전 안을 집어삼켰다.

대왕대비의 눈이 바닥에 떨어진 벽서를 향했다. 빛나는 페이지. 새겨지는 글자들. 그리고 침상 위의 두 사람. 흐트러진 이불, 벗겨진 옷가지들, 채 가시지 않은 체액의 흔적.

대왕대비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전하, 결국 금기를 깨셨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승리감에 젖어 있었다.

"이제 이 죄를... 어떻게 감당하시렵니까."

벽서가 더욱 밝게 빛났다. 페이지 위의 붉은 글자들이 마치 심장처럼 고동쳤다. 소은은 현종의 손을 더욱 꼭 쥐었다. 그의 손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현종이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그는 벌거벗은 몸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대왕대비를 마주했다.

"대비마마."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이 벽서에 무엇이 기록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대왕대비의 미소가 살짝 흔들렸다.

현종이 벽서를 집어 들었다. 페이지가 그의 손에 닿자 빛이 더욱 강해졌다. 글자들이 더 빠르게 새겨졌다.

"이것은 선왕께서 남기신 유품이옵니다. 그리고 이제... 과인과 이 아이의 진심이 기록된 증표이기도 하지요."

그가 벽서를 높이 치켜들었다.

"대비마마께서 이 벽서를 손에 넣으려 하셨던 이유...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 벽서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마음을 읽는 힘이 있기 때문이지요. 선왕의 마음을, 그리고... 과인의 마음을."

대왕대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대비마마. 이 벽서는 이미 저희의 것입니다. 저희의 감정을 먹고 자랐고, 저희의 진심이 새겨졌습니다. 대비마마께서 이 벽서를 가져가신다 해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벽서의 마지막 페이지가 완전히 채워지고 있었다. 마지막 한 줄이 새겨졌다.

'이로써 두 사람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얻었노라.'

그때, 연화가 대왕대비의 뒤에서 걸어나왔다. 그녀의 손에 작은 도자기 병이 들려 있었다. 뚜껑은 이미 열려 있었고, 병 안에서는 달콤하면서도 비릿한 향이 흘러나왔다.

"전하께서 아무리 벽서를 가졌다 한들, 죽은 자의 마음은 아무 소용이 없지요."

연화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녀의 눈이 소은을 향했다.

"그년의 목숨만 끊으면, 전하의 마음도 함께 죽을 테니까."

대왕대비의 염주가 바닥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굴렀다.

"전하, 선택하십시오. 왕실의 법도를 지키고 그 천한 궁녀를 내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녀의 손이 연화의 독병을 가리켰다.

"그년의 피를 보시겠습니까."

촛불이 일제히 흔들렸다. 횃불의 붉은 빛과 벽서의 푸른 빛이 침전 안에서 격돌했다. 연화가 독병을 높이 치켜들었다. 병 안의 액체가 달빛을 받아 섬뜩하게 반짝였다.

소은은 현종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다른 손이 벽서 위로 올라갔다. 페이지가 그녀의 손끝에 닿자, 붉은 글자들이 더욱 거세게 고동쳤다.

그리고 소은은 웃었다.

"대비마마."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벽서가 폭발하듯 빛을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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