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강녕전 침소의 휘장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현종은 소은의 손목을 잡아 벽으로 밀어붙였다. 등 뒤로 차가운 회벽이, 가슴 앞으로 용포 아래 단단한 근육이 그녀를 압박했다. 아까 침소에서 속곳을 적셨던 그 손가락이 이제는 그녀의 허리를 틀어쥐고 있었다.

소은의 숨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현종의 엄지가 그녀의 옆구리 뼈를 더듬으며 천천히 눌렀다. 통증이라기보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압박. 그녀의 질이 반사적으로 수축하며 아까 침소에서 느꼈던 손가락의 감촉을 기억해냈다.

"선왕의 유품이라."

현종의 입이 그녀의 귓바퀴에 바짝 붙어 움직였다. 분노라기보다, 서늘한 각성이 실린 낮은 어조였다. 그의 숨결이 귓바퀴 안쪽으로 파고들자 소은의 어깨가 떨렸다.

"대왕대비께서 왜 지금 시점에 그것을 찾으시는지."

그가 말을 멈추고 그녀의 귓불을 아랫입술로 살짝 물었다. 소은의 손이 무의식중에 저고리 안쪽으로 향했다. 벽서. 아직 거기 있다. 심장 박동이 종이에 전해질 만큼 가까이 품은 그것. 현종의 이가 귓불 연골을 스치듯 지나갔다.

"내일 중으로 알아보거라."

뒤쪽의 내관을 향한 명령이었지만, 그의 눈은 소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내관이 물러나는 발소리가 복도로 사라졌다. 이제 둘만 남았다. 소은은 저고리 안쪽에 감춘 벽서 쪽으로 손을 눌렀다. 대왕대비가 알고 있다. 그것도 강녕전에 있다는 사실까지. 연화 상궁의 그 번들거리는 눈빛이 소은의 뺨을 다시 핥듯 스쳤다.

"소은아."

현종의 부름에 그녀가 고개를 들자, 그의 눈빛은 아직 걷히지 않은 남색 안개를 머금고 있었다. 집착. 소유욕. 벽서 없이도 그 빛깔이 핏줄까지 비칠 듯했다.

"네게서 나는 이 향."

현종의 허벅지가 그녀의 다리 사이를 벌렸다. 치마가 위로 밀려 올라가고, 아까 그 손가락이 머물렀던 속곳 자락의 축축한 감촉이 다시 허벅지 안쪽으로 번졌다. 무릎이 음부를 살짝 압박하자, 속곳 사이로 새로운 애액이 배어나와 용포를 적셨다.

"처음 맡은 게 아니다."

그의 얼굴이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코끝이 귀 뒤, 맥박 뛰는 오목한 곳을 비집었다. 콧구멍이 벌어지며 피부 냄새를 들이켰다.

"꿈에서 맡았지. 밤마다 나를 찾아오는 네가 풍기던 바로 그 향이다."

소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벽서를 통해 현종의 꿈에 스며들 때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체취를 남겼다. 그런데 지금 그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그 향을 맡고 있다. 벽서의 능력이 깨어 있는 현실까지 침투한 것일까, 아니면 현종의 감각이 이미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내일 밤, 자시에 서재로 오너라."

명령이었지만 끝에 묻어난 떨림은 간청이었다. 그의 무릎이 그녀의 음부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작은 원을 그리듯 천천히 문질렀다.

"전하, 지밀 궁녀가 심야에 서재에 드는 것은……."

"안다."

현종이 소은의 말을 잘랐다. 무릎의 압력이 강해졌다. 속곳이 완전히 젖어 그의 용포에 짙은 얼룩을 남겼다.

"그러니 오지 말라면 오지 않을 것이냐."

질문이 아니었다. 소은의 마음을 이미 꿰뚫어본 자의 확신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질은 아직도 그의 손가락이 휘저었던 감각을 기억하며 속곳을 적시고 있었고, 현종의 무릎이 거기 닿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질벽이 수축했다. 그녀의 침묵이 대답이었다.

현종은 물러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녀가 스친 자리마다 짙은 달콤함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손가락 끝은 아직도 그녀의 질벽이 조여오던 감촉을 생생히 기억했다. 뜨겁고, 부드럽고, 살아서 꿈틀거리던 그 속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미세하게 번들거리는 흔적을, 현종은 천천히 코끝으로 가져갔다. 달콤하고도 짭짤한, 어떤 꽃과도 비견할 수 없는 향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의 성기가 용포 아래서 불편할 정도로 솟아올라 옷감을 밀어냈다. 왕으로서 참아야 한다는 이성과, 지금 당장 그녀를 뒤쫓아가 침상에 밀어넣고 싶은 충동이 정수리에서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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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밀 처소로 돌아온 소은은 어둠 속에서 숨을 골랐다. 복도 건너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발소리도,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아닌, 공기 중으로 스며드는 비린 기운.

"소은 낭자."

연화 상궁이었다. 촛불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요즘 전하의 눈빛이 심상치 않구나.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네가 시중드는 날이면 전하의 침소에서 나는 그 달콤한 향. 처음에는 그저 향유인 줄 알았지."

연화 상궁이 한 걸음 다가왔다. 소은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약간 치켜들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상궁 마마께서 무슨 말씀을……."

"네 몸에서 나는 그 향 말이다."

연화 상궁의 손이 갑자기 소은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 손끝에서 묘한 비린내가 풍겼다. 독. 분명 독을 다루는 자의 체취였다. 소은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비릿한 철분 냄새와 함께, 은은하게 썩은 아몬드 향이 감돌았다. 비상(砒霜). 대왕대비전에서나 구할 수 있는 희귀한 독약이었다. 소은의 뇌리 깊숙한 곳에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입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대왕대비전 하수간에서 맡았던 그 비린내. 다음 날 아침, 대왕대비전 시중을 들던 궁녀 하나가 이유 없이 사라졌다. 그 궁녀의 마지막 얼굴을 소은은 기억하고 있었다. 입술이 검푸르게 변해 있었고, 손톱 밑에는 미세한 검은 선이 얼룩져 있었다. 독살의 징후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비린내가 바로 그 궁녀의 마지막 숨결에 섞여 있던 독의 흔적이라는 것을.

"상궁 마마.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소은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하게 가라앉았다. 목덜미에 박힌 손톱이 더 깊이 파고들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상궁 마마께서 지금 제 목에 대신 그 손,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연화 상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손톱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따끔한 통증과 함께 미세한 피가 맺혔다.

"네가 뭘 안다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상궁 마마의 소매 안에서 나는 이 비린내가, 대왕대비전 하수간에서 맡았던 그 냄새와 똑같다는 점만 알 뿐입니다. 그리고 그 냄새가 감돌던 날, 시중 궁녀 하나가 검푸른 입술로 실려 나갔다는 것도."

연화 상궁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녀는 소매를 여미며 한 걸음 물러섰다. 소매 안에서 작은 병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유리병이었다. 비상이 담긴 병.

"네 주제를 알거라. 대왕대비 마마께서도 곧 아시게 될 터이니."

연화 상궁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소은은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 목덜미에서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려 속적삼 깃을 적셨다. 그녀는 손끝으로 피를 찍어 바라보았다. 붉고 끈적한 피. 그러나 이 피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대왕대비의 수색이 시작되면, 벽서는 반드시 발각된다. 연화의 손에 죽느냐, 대왕대비의 명으로 처형되느냐. 선택지라 부를 수 없는 선택지들.

그러나 그녀의 발은 이미 서재를 향하고 있었다. 망설임은 짧았다. 대왕대비의 수색이 시작되기 전에, 벽서의 비밀을, 그리고 연화 상궁의 정체를 알려야 했다. 현종을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의 가슴을 쥐어짰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두려움은, 그가 아무것도 모른 채 대왕대비의 덫에 걸려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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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현종이 이미 와 있음을 알리는 표시였다. 소은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현종은 선왕의 초상화가 걸린 벽 앞에 서 있었다. 어둠과 촛불 사이에서 반쯤 가려진 그의 얼굴이 천천히 돌아갔다. 촛불이 그의 얼굴 절반을 비추고, 나머지 절반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그의 눈빛을 더욱 깊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가까이 오너라."

소은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에 품은 벽서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현종의 체취, 용뇌와 사향이 섞인 향기가 짙어졌다.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소은의 목덜미를 감쌌다. 연화 상궁이 손톱을 세웠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러나 현종의 손길은 전혀 달랐다. 손가락 끝의 부드러운 지문이 상처난 피부를 스치듯 더듬었다. 엄지가 굳은 핏자국을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꿈속에서도 나를 미치게 만들던 그 향이 바로 너였구나."

현종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자, 그의 콧구멍이 피부에 밀착했다 떨어졌다. 상처에서 스며나온 피의 비릿함과, 그녀의 살갗에서 배어나는 체취가 뒤섞였다.

"땀과, 네 살갗의 기름과,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잠겼다. 코끝이 목덜미에서 쇄골 쪽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네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 달콤한 액체의 향."

소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가 말하는 것은 그녀의 애액이었다. 침소에서 그의 손가락이 질 속을 휘저을 때 흘러나왔던, 그녀의 가장 은밀한 체액. 그 냄새를 그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속곳은 새로운 애액으로 젖어들고 있었고, 그 향이 공기 중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전하……."

"조용히."

현종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 상처에 포개졌다. 뜨거운 혀끝이 손톱자국을 핥았다. 피가 섞인 땀을 혀로 걷어내자, 통증과 쾌감이 뒤섞여 소은의 척추를 타고 내려갔다. 혀가 상처를 따라 천천히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질이 반사적으로 수축했다.

"네가 꿈에 올 때마다, 깨어나면 사라져 있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냄새만 남기고."

그의 손이 저고리 옷고름을 풀었다. 한 가닥, 또 한 가닥. 비단 끈이 풀리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바스락거렸다. 저고리가 벌어지며 속적삼이 드러났다. 얇은 명주 천 아래로 그녀의 유두가 긴장으로 단단해져 천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유륜의 어두운 그림자가 명주 너머로 비쳤다.

"오늘은 사라지지 않겠구나."

현종의 입술이 쇄골로 내려왔다. 혀끝이 빗장뼈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쇄골의 오목한 부분에 고인 땀을 혀끝으로 떠올리며 낮게 신음했다. 그의 혀가 피부를 핥을 때마다, 소은의 질에서는 새로운 애액이 흘러나와 속곳을 적셨다.

"짜고…… 달다."

속적삼의 옷고름마저 풀리자, 그녀의 상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촛불 아래서 젖가슴은 창백하게 빛났고, 유두는 검붉게 솟아올라 있었다. 유륜 주변으로 소름이 돋아 있었다. 현종은 잠시 숨을 멈추고 그녀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젖가슴의 곡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눈으로 이미 그녀를 삼키고 있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왼쪽 유두를 살짝 비볐다. 소은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숨이 새나왔다. 유두가 더 단단해지며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돌출되었다. 현종은 손가락으로 유두를 굴리듯 문지르다가, 갑자기 손가락을 놓고 입술로 유두를 물었다. 뜨거운 혀가 유두를 감싸고, 이가 살짝 유두 끝을 눌렀다. 소은의 허리가 반사적으로 휘어졌다.

"소리를 내어라. 여긴 너와 나뿐이다."

그의 다른 손이 소은의 허리를 감싸 끌어당겼다. 그녀의 맨살이 용포에 닿자, 비단과 비단 사이의 마찰음이 정적 속에서 바스락거렸다. 용포 아래로 그의 성기가 단단히 솟아 그녀의 배를 압박했다. 아까보다 더 단단하고, 더 뜨거웠다. 옷감 너머로도 성기의 맥박이 느껴질 듯했다.

그 순간, 소은은 자신의 의지로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손바닥이 현종의 가슴에 얹혔다. 두꺼운 용포 너머로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심장 박동이 손바닥을 때릴 만큼 강했다.

"네가…… 먼저 손을 대다니."

현종의 목소리에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였다. 그의 눈이 약간 커졌다가, 이내 깊은 열기로 가득 찼다.

"전하의 심장. 이렇게나 빨리 뛰고 계셨습니다."

소은의 손바닥이 그의 심장 위에서 천천히 원을 그렸다. 용포의 비단이 손바닥 아래서 미끄러졌다. 그녀의 손길에 현종의 성기가 더욱 단단해지며 그녀의 배를 압박했다.

현종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그는 갑자기 소은의 허리를 끌어당겨 선왕의 초상화 바로 아래 벽으로 밀어붙였다. 차가운 벽과 뜨거운 그의 몸 사이에 갇힌 소은은 숨을 들이켰다. 등 뒤로 선왕의 초상화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왕의 눈빛과 현종의 눈빛이, 닮은 듯 다른 강렬함으로 그녀를 관통했다.

"내 심장이 빠르다고? 네 몸은 더 빠르구나."

그의 무릎이 소은의 다리 사이를 벌렸다. 치마폭이 위로 밀려 올라가고, 현종의 손이 속곳 위로 얹혔다. 이미 축축하게 젖은 천이 그의 손바닥에 눌려 음부를 감쌌다. 손바닥 전체로 음부를 감싸쥐자, 애액이 천 사이로 베어나와 그의 손바닥을 적셨다.

"이 향. 이 촉감."

그의 손가락이 속곳 너머로 음순을 더듬었다. 검지가 대음순의 윤곽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천을 사이에 두고도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소은의 질이 반사적으로 조여들었다. 속곳이 더 젖어들며 그의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네가 내 꿈에 올 때마다, 깨어나면 이 향과 이 촉감만 남아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현종의 중지가 속곳을 밀어내고 음순 사이를 갈랐다. 애액이 그의 손가락을 적셨다. 대음순 사이로 소음순이 드러나고, 그 아래 질 입구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질 입구까지 밀어넣었다.

"오늘은 도망가지 못한다."

손가락이 질 안으로 들어왔다. 한 마디만. 그러나 그 한 마디만으로도 소은의 질벽은 격렬하게 수축했다. 질벽이 손가락을 단단히 감싸고,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압력이 손가락을 더 깊이 빨아들였다. 현종은 낮게 신음하며 손가락을 천천히 회전시켰다. 질벽의 주름 하나하나가 손가락을 감싸는 감촉을 음미하듯.

"뜨겁고…… 좁고……."

두 마디째. 소은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헐떡였다. 현종의 손가락이 질벽을 문지르며 들어올 때마다, 끈적한 수음이 서재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의 엄지는 부풀어 오른 음핵을 찾아 원을 그리듯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질 안에서 굽어져 가장 민감한 안쪽 벽을 압박하는 동시에, 엄지는 음핵 위를 집요하게 애무했다. 질벽의 앞쪽, 거친 질감의 그 지점을 손가락 끝으로 문지를 때마다 소은의 허리가 떨렸다.

"전하…… 전하……."

소은이 그의 어깨에 매달리며 손톱으로 용포를 움켜잡았다. 비단이 손톱 아래서 우두둑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질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압력이 솟구쳐 올랐다. 허벅지 안쪽이 떨리고, 아랫배가 경련하듯 수축했다. 질벽이 손가락을 더욱 강하게 조여들었다.

"가느냐. 내 손가락으로 가는 것이냐."

현종의 목소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손가락이 더 빠르게 질벽을 문지르고, 엄지가 음핵을 압박했다. 소은의 전신이 경련하듯 떨렸고, 질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오르가즘. 질벽이 리드미컬하게 수축하며 손가락을 조였다 풀었다. 그녀의 애액이 현종의 손바닥을 완전히 적실 만큼 흘러나왔다. 현종은 절정에 이른 그녀의 질 속에서 손가락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더 느리게, 수축하는 질벽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질벽이 수축할 때는 손가락을 살짝 빼고, 이완될 때는 더 깊이 밀어넣었다.

소은이 현종의 품에 쓰러졌다. 그녀의 다리는 힘을 잃고 후들거렸다. 현종은 그녀를 안아 벽에 기대 세우고,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천천히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소은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체액이 묻은 손가락을 혀로 핥았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끈적하게 이어진 애액의 실이 혀끝에 감겼다.

"꿈보다 진하구나."

그의 눈동자에는 이제 남색의 집착만이 가득했다. 동공이 확장되어 홍채의 경계가 흐려질 만큼.

현종은 그녀를 벽에서 떼어내 선왕의 초상화 아래 평상으로 이끌었다. 치마를 허리춤까지 걷어 올리고, 이미 젖은 속곳을 벗겨냈다. 그녀의 음부가 완전히 드러났다. 촛불 아래서 음모는 축축하게 젖어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고, 벌어진 음순 사이로 진한 애액이 허벅지 안쪽을 타고 흘러내렸다. 대음순은 충혈되어 붉게 부풀어 있었고, 소음순 사이로 질 입구가 애액에 반짝이며 드러났다. 음핵은 여전히 단단하게 돌출되어 있었다.

"이제 손가락으론 부족하다."

현종은 용포를 풀어헤쳤다. 하의를 벗어내자, 이미 단단히 발기한 성기가 튀어나왔다. 귀두는 검붉게 빛나며 투명한 선점액을 흘리고 있었다. 성기의 굵은 혈관이 표면을 따라 꿈틀거렸다. 소은은 처음 보는 남성의 성기에 숨을 멈췄다. 두껍고 길게 솟아오른 그것이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올 것을 생각하자 질이 저절로 조여들었다. 질 입구가 애액을 한 방울 밀어내며 수축했다.

"무서우냐."

"두렵지만……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종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평상에 눕혔다. 그가 그녀의 위로 올라타며 다리를 더 넓게 벌렸다. 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잡고, 귀두를 질 입구에 갖다댔다. 뜨겁고 단단한 감촉이 음순 사이에 닿자 소은의 전신이 긴장했다. 귀두에서 흘러나온 선점액이 그녀의 애액과 섞이며 질 입구를 적셨다.

"숨을 쉬어라."

현종이 명령하듯 속삭이며 천천히 허리를 밀어넣었다. 귀두가 질 입구를 밀어붙이며 조금씩 파고들었다. 소은은 날카로운 통증에 손톱으로 그의 등을 할퀴었다. 질벽이 이물감에 격렬히 수축하며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현종은 멈추지 않았다. 질 입구가 귀두를 삼키며 벌어졌다. 애액이 성기를 타고 흘러내려 평상을 적셨다.

"좁아…… 너무 좁아……."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질벽이 성기를 조여오는 압력에 거의 사정할 뻔한 것을 간신히 참으며, 천천히 한 치씩 파고들었다. 질벽의 주름이 성기를 감싸고, 안쪽에서부터 빨아들이는 듯한 압력이 그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중간쯤 들어갔을 때, 소은은 자신의 질벽이 그의 성기 형태에 맞춰 벌어지는 낯선 감각에 신음했다. 질벽이 성기의 굵기에 맞춰 확장되고, 안쪽 깊숙한 곳까지 이물감이 퍼져나갔다.

"다 들어갔다."

성기가 뿌리까지 완전히 그녀의 질 속에 묻혔다. 소은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배가 그의 성기로 인해 팽만해진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질벽이 성기를 단단히 감싸고, 맥박이 뛸 때마다 내벽이 그를 더욱 조였다. 현종도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의 질벽이 성기를 감싸는 감촉을 음미했다. 그의 성기가 그녀의 질 속에서 맥박 치며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소은의 가슴에 품었던 벽서가 뜨거워졌다. 마치 불에 달군 듯한 열기가 종이에서 뿜어져 나와 피부를 데웠다. 그리고 동시에, 현종의 쾌감이 그녀에게도 전이되기 시작했다. 벽서의 공명이었다. 현종이 그녀의 질 속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쾌락이, 벽서를 매개로 소은의 신경에도 흘러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질벽이 현종을 조이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현종의 성기가 질 속에 감싸여 받는 쾌감을 함께 느꼈다. 질벽이 성기를 감싸는 압력과, 성기가 질벽에 감싸이는 압력이 동시에 느껴졌다. 두 개의 몸이 하나의 감각을 공유하는 듯한 착란.

"너도…… 느끼는 거냐."

현종이 그녀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렸다. 소은은 대답할 수 없었다. 눈동자가 풀리고, 입술 사이로 침이 흘러내렸다. 벽서의 공명으로 인해 그녀의 감각은 두 배로 증폭되어 있었다. 현종은 허리를 빼기 시작했다. 천천히, 질벽이 성기를 놓지 않고 매달리는 감촉을 음미하며. 질벽이 성기를 따라 빨려나오는 듯한 감각이 소은에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다시 밀어넣었다. 이번에는 더 깊이, 더 강하게. 귀두가 질벽 안쪽의 민감한 지점을 쓸고 지나갔다.

"아…… 아악……."

소은의 입에서 비명 같은 신음이 터져나왔다. 성기가 자궁 입구를 쿡쿡 찌를 때마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날카로운 쾌감이 꼬리뼈에서 정수리까지 번개처럼 내달렸다. 벽서의 공명은 더욱 강해져, 이제 누구의 쾌감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감각의 포말이 그녀를 휘감았다. 질벽이 성기를 조일 때마다 그 조임이 그대로 그녀 자신의 신경에 증폭되어 돌아왔다. 성기의 혈관이 질벽을 스치는 감촉, 귀두가 자궁 입구를 압박하는 감각, 성기 전체가 질벽의 온기와 습기에 감싸이는 쾌감. 모든 것이 동시에 느껴졌다.

"더…… 깊이……."

소은이 자신도 모르게 애원했다. 다리가 현종의 허리를 감싸고, 발뒤꿈치가 그의 엉덩이를 압박하며 더 깊은 삽입을 재촉했다. 그녀의 질이 성기를 더 깊이 빨아들이며 수축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현종이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허리의 속도를 높였다. 성기가 질을 빠르게 왕복하기 시작했다. 젖은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 애액이 거품이 되어 흘러내리는 소리가 서재에 울려 퍼졌다. 평상이 리듬에 맞춰 삐걱거렸다. 현종의 성기가 질벽을 빠르게 마찰하며 들어갔다 나왔다. 귀두가 질 입구까지 빠져나왔다가 다시 뿌리까지 박히는 동작이 반복될 때마다, 애액이 흩뿌려졌다.

소은의 질벽이 경련하듯 수축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오르가즘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벽서의 공명으로 인해, 그녀의 절정이 현종에게도 그대로 전이되고 있었다. 질벽이 성기를 조이는 압력이 갑자기 몇 배로 증폭되었다. 질벽의 수축이 성기 전체를 강하게 죄며,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액체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현종은 성기가 질벽에 조여지는 압력이 갑자기 몇 배로 증폭되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이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깨물었다.

"함께…… 가자……."

허리가 마지막으로 깊숙이 밀려 들어갔다. 귀두가 자궁 입구를 강하게 압박하는 순간, 소은의 질벽이 폭발하듯 수축했다. 전신이 활처럼 휘어졌다. 질 안에서 뜨거운 액체가 분출되며 그의 성기를 적셨다. 질벽의 수축이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며 성기 전체를 강하게 조였다 풀었다.

그리고 동시에, 현종도 사정했다. 성기가 질 깊숙한 곳에서 격렬하게 맥동하며 정액을 토해냈다. 첫 번째 사정이 자궁 입구를 직접 때리자 소은의 질벽이 다시 한 번 수축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사정이 이어지며 뜨거운 정액이 질 안을 가득 채웠다. 뜨거운 액체가 자궁 입구를 직접 때리는 감각에 소은은 다시 한 번 절정에 휩싸였다. 벽서의 공명은 두 사람의 오르가즘을 증폭시키고 교차시켜, 누가 누구의 쾌감인지 모를 감각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질벽의 수축과 성기의 맥동이 하나의 리듬으로 겹쳐졌다.

현종이 소은의 위로 쓰러졌다. 성기는 아직도 질 속에 박힌 채, 사정의 여운으로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등에 팔을 두르고 숨을 골랐다. 질은 아직도 성기를 놓지 않고 가볍게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정액과 애액이 섞여 허벅지 아래로 흘러내려 평상을 적셨다. 질벽이 마지막으로 가볍게 수축하며 성기를 조였다.

한참 뒤, 현종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성기가 질에서 빠져나오자, 흰 정액이 섞인 애액이 질 입구에서 흘러나왔다. 질 입구가 아직도 벌어진 채, 정액이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내렸다. 그는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그것을 떠올려, 다시 질 입구에 발랐다. 손가락 끝으로 정액과 애액을 섞어 질 입구 주변에 원을 그리듯 바르자, 소은의 질이 다시 한 번 수축했다.

"이제…… 네 몸은 내 것이다. 네 질 속에 내 정액이 스며든 이 순간부터, 너는 나를 떠날 수 없다."

소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아직도 오르가즘의 잔상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 품은 벽서는 여전히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질 속에 고인 정액의 온기가 아랫배 깊숙이 스며들고, 벽서의 열기가 가슴을 데웠다.

현종이 그녀의 옆에 누웠다. 평상은 좁아 두 사람의 몸이 밀착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소은은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질 안에는 아직도 그의 정액이 따뜻하게 고여 있었고, 그 온기가 아랫배 깊숙이 스며드는 듯했다. 질벽이 간헐적으로 수축하며 정액을 더 깊이 빨아들였다.

"전하.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현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찾아 깍지를 꼈다. 손가락 사이로 땀이 섞였다.

"돌이키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왕으로서의 결단도, 남자로서의 집착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울림이었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대왕대비의 눈, 연화의 손, 궁중의 법도. 그러나…… 나는 이미 너를 놓을 수 없다. 손가락으로도, 눈빛으로도, 이 밤의 기억으로도. 네가 내 곁을 떠나면 나는……."

그가 말을 마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이 소은의 뺨을 감쌌다. 엄지가 광대뼈를 천천히 쓸었다.

"궁녀가 아니라, 여인으로서 내 곁에 있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소은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녀는 현종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신분의 벽은 여전히 그들 사이에 높게 서 있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 벽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질 속에 그의 정액이 스며들었듯, 그녀의 존재가 그의 삶에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전하께서 명하신다면…… 저는, 궁녀가 아니라 전하의 여인으로서 이 자리에 남겠습니다."

현종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소은의 이마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길고, 깊은, 서약 같은 입맞춤이었다. 입술이 이마에 오래 머물렀다.

바로 그때였다.

서재 밖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발소리가 질서정연하게, 그러나 빠르게 서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군화 소리였다. 현종과 소은은 동시에 숨을 죽였다. 발소리는 서재 문 앞에서 멈추더니, 이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전하. 대왕대비 마마께서 보내신 병사들이 서재를 수색하러 왔습니다."

은호의 목소리였다. 평소와 달리 굳어 있었고, 그 밑에 긴박한 경고가 깔려 있었다.

현종은 재빨리 소은을 평상에서 일으켜 휘장 뒤로 밀어넣었다. 소은은 떨리는 손으로 흩어진 저고리와 속적삼을 여몄다. 속곳은 이미 완전히 젖어 입을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맨살에 치마만 걸친 채 휘장 뒤에 웅크렸다. 질 안에서 아직도 그의 정액이 흘러내리는 감각이 이어졌다. 허벅지 안쪽으로 정액이 흘러내려 치마를 적셨다.

"들어오라."

현종의 목소리는 이미 완벽한 군주의 톤으로 돌아와 있었다.

문이 열리고 은호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전하, 대왕대비 마마께서 강녕전의 모든 유품을 조사하라는 전교를 내리셨습니다. 선왕의 벽서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지밀 궁녀들의 처소까지 수색 대상에 올랐습니다. 상궁 연화가 지밀 궁녀 소은을 특별히 지목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소지품에서 수상한 두루마리를 보았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그때, 은호의 시선이 탁자 아래 떨어진 무언가를 향했다. 소은의 댕기였다. 그가 몇 번이고 몰래 바라보던 바로 그 댕기. 그의 시선이 탁자 위로 옮겨갔다. 현종의 손가락. 아까 소은의 질에서 흘러나온 정액과 애액을 떠올려 바른 그 손가락이, 촛불 아래서 미세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체액의 비릿하고 달콤한 냄새가 떠돌고 있었다. 땀과, 사향과, 여인의 질에서 흘러나온 애액과 남자의 정액이 뒤섞인, 은밀하고도 노골적인 체취.

은호의 눈이 휘장 쪽을 향했다. 휘장 사이로 소은의 치맛자락이 살짝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충성하던 군주와, 가슴에 품었던 여인. 그 두 사람이 이 서재에서 함께 있었다. 휘장 뒤에 숨은 그녀의 흐트러진 옷매무새, 공기 중에 감도는 교접의 체취, 현종의 손가락에 묻은 그녀의 애액과 그의 정액이 섞인 광택.

은호의 손이 무의식중에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더 깊은 곳, 가슴 한복판에서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현종에 대한 충성. 소은에 대한 연심. 두 개의 칼날이 그의 내장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찢어당겼다. 감히 왕을 질투하다니. 그것도 가장 충성스러워야 할 호위무사가. 그러나 그의 손톱은 더 깊이 살을 파고들었다. 피가 날 만큼. 충성과 사랑, 그 양쪽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깨달음이 칼끝처럼 명치를 찔렀다.

"전하."

은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병사들이 곧 서재 문 앞에 도착할 것입니다. 신이…… 잠시 막아보겠습니다만, 대왕대비 마마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휘장을 향했다.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눈빛이었다.

"소은 낭자. 도망가십시오. 지금이라도. 내가 궁 밖으로 빼내드리겠습니다. 전하를…… 전하를 다시는 뵙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 순간, 소은의 시야 모퉁이를 무언가 스쳤다. 휘장 틈새로 보이는 서재 바깥 복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움직이는 치맛자락이 보였다. 연화 상궁의 치마였다. 그리고 바람결에 실려 온 희미한 금속성 소리. 작은 병이 손에 쥐어져 흔들리는 소리였다.

연화 상궁이 듣고 있었다. 은호의 모든 말을. 소은이 도망가는 순간, 그것은 왕을 유혹한 죄의 자백이 될 터였다.

그때, 서재 밖에서 굵직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왕대비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의 군화 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서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적어도 열 명은 넘는 인원이었다. 그 발소리 사이로, 연화 상궁의 낮고 비릿한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소은의 가슴에 품은 벽서가 갑자기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녀의 손이 무의식중에 벽서를 꺼내자, 종이 표면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공백 페이지에 새로운 글씨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마음이 아니었다. 먹물도, 붓의 흔적도 아닌, 마치 누군가의 숨결이 종이에 서리를 남기듯 희미하게 떠오른 글씨.

「전하의 손길이 내 몸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두렵다. 그러나 떨쳐낼 수 없다. 이 마음이, 벌써 이렇게 깊이 스며들었다.」

소은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 글씨는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가 지금 이 순간 품은 마음 그대로였다. 선왕의 벽서는 읽는 이의 마음을 먹고 자란다는 그 경고. 그것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녀의 속마음이 벽서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글씨 아래로, 또 다른 문장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마음이 아니었다. 더 오래되고, 더 깊고, 더 어두운 필체. 선왕의 글씨였다.

「내 아들아. 네가 품은 이 여인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향기, 그녀의 숨결, 그녀의 눈물까지도. 그녀가 품은 이 벽서는 내가 남긴 마지막 덫이다. 네가 이 여인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이 벽서는 그녀의 마음을 삼키고, 마침내 그녀의 목숨까지 앗아갈 것이다. 그녀를 살리려거든 벽서를 불태워라. 그러나 벽서를 불태우는 순간, 그녀와 네가 나눈 모든 기억 또한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선택하라. 왕으로서의 네 책무를, 아니면 한낱 여인을.」

소은의 손이 떨렸다. 선왕의 환영이 벽서 위에서 일렁이는 듯했다. 그의 음성이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벽서를 불태우면, 현종과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그녀를 만진 그의 손길도, 그녀 안에 남은 그의 정액의 온기도, 그녀를 향한 그의 집착도. 모든 것이 재가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벽서를 불태우지 않으면, 그녀는 죽는다. 대왕대비의 손에, 연화 상궁의 독에, 아니면 벽서 자체가 그녀의 마음을 끝까지 삼켜버릴 때.

그때, 서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전하! 대왕대비 마마의 명으로 서재를 수색하겠습니다!"

병사들의 목소리였다. 문 너머로 연화 상궁의 비릿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현종이 휘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소은아. 선택하라."

소은은 벽서를 움켜쥐었다. 한쪽에는 현종과의 기억을 모두 지우는 불. 다른 한쪽에는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벽서와, 문 밖의 병사들. 그리고 그녀의 질 속에는 아직도 현종의 정액이 따뜻하게 고여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촛불을 향해 벽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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