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제9화 — 여동생의 귀환

유리아의 손톱이 내 팔뚝을 파고들었다.

제법 아팠다. 전장에서 검성의 검기를 맨몸으로 받아낸 이 살갗이, 계집애 손톱에 찢기다니. 피가 열 개의 붉은 반달을 그리며 스며나왔다. 손톱 밑으로 내 살점이 끼어들어갔다. 그녀가 손톱을 더 깊이 박아넣자, 피가 손톱을 타고 흘러내려 그녀의 손가락 마디를 적셨다.

"오빠."

열세 살 때 내가 처음 용병대에 들어가던 날과 똑같은 목소리였다. 떨리고, 매달리고,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집념만 가득한. 그때도 내 허리를 붙잡고 울었지. 가지 말라고. 죽으러 가지 말라고. 그때 그녀는 내 허리춤에 매달려 다리를 끌려왔다. 맨발이 자갈에 찢겨 피를 흘리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죽은 줄 알았어. 정말 죽은 줄 알았다고."

그녀의 이마가 내 가슴에 박혔다. 전이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입은 옷은 찢어지고 피와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신의 눈물 유적에서 헤매다 살아나온 게 분명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쇠비린내와 오존 냄새가 섞여 났다. 마력의 잔향이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번개에 그을린 듯한 자국이 보였다. 두피까지 화상을 입었는지, 가르마를 따라 붉게 부어오른 살이 드러났다.

"내가 죽었을 때, 너는?"

물었다. 유리아의 어깨가 경련하듯 떨렸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떨림이 내 가슴까지 전해졌다. 그녀의 손이 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천이 찢어질 듯한 소리가 났다.

"따라갔어."

그 말에 숨이 멎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고는, 몇 초간 멈췄다. 폐가 공기를 거부했다. 횡격막이 마비된 것처럼 수축하지 않았다.

"오빠 없는 세상에 살 이유가 없었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 속에서 푸른 마력의 잔광이 반짝였다. 신의 눈물 유적에서 봤던 그 빛. 세계의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원초 마력의 색. 나는 무의식적으로 골든핑거를 발동시키려 했다. 욕망을 읽어야 했다. 이 계집애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왜 자살 같은 걸 선택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붉은 안개도, 푸른 파도도, 검은 가시도 없었다. 유리아의 눈동자는 그저 평범한 인간의 눈이었다. 내 골든핑거는 처음으로 침묵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이질감. 수천 번의 전장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손가락 끝이 저릿해지고, 시야 가장자리가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오빠?"

유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능력은 혈육에게 통하지 않는다. 아니, 통하지 않는 게 아니라——읽을 필요조차 없는 걸지도 몰랐다. 나는 이미 그녀의 욕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오빠를 잃지 않을 거야."

어릴 적부터 그녀가 수도 없이 반복한 말이었다. 그 말이 지금은 칼날처럼 내 가슴을 도려냈다. 왼쪽 가슴, 심장 바로 위가 실제로 아려왔다. 그녀의 손톱이 아직 내 살에 박혀 있었다.

---

알현실의 공기가 차가웠다.

엘라라가 옥좌가 아닌 평범한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왼쪽에는 그림자 속에서 라비나가 서 있었다. 알리시아는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었고, 세르피나는 창가에서 검은 화염을 손끝으로 희롱하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화염이 그녀의 손톱을 태우며 지글거렸다. 손톱이 타는 냄새가 알현실에 희미하게 퍼졌다.

"그러니까."

세르피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손끝의 화염이 3인치쯤 자랐다. 검은 불꽃이 그녀의 홍채에 비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화염을 따라 일렁였다.

"이 꼬마가 네 여동생이라고?"

"유리아다."

내가 말했다. 유리아는 내 팔에 매달린 채였다. 마치 내가 다른 여자들에게 빼앗길까 봐 미리 선점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팔뚝의 상처 위를 더듬으며 아까 찢었던 자리를 확인했다. 손톱이 딱지 앉은 피를 긁어냈다. 갓 앉은 딱지가 들려나가며 신선한 피가 다시 배어나왔다. 그녀는 그 피를 검지로 찍어 입술에 발랐다. 붉은 루주처럼 번진 내 피가 그녀의 아랫입술을 물들였다.

"반갑지 않아."

유리아의 목소리가 딱딱했다. 열네 살짜리 여자애에게서 나올 수 없는 적의가 그 안에 있었다. 목소리의 진동이 알현실의 촛불을 일제히 흔들었다. 촛농이 식탁에 떨어져 굳었다.

"오빠를 망가뜨린 여자들이잖아. 전부."

알현실이 얼어붙었다. 라비나의 그림자가 일렁였고, 알리시아의 손이 검자루로 갔다. 세르피나의 화염이 푸른색으로 변했다. 엘라라만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만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 눈빛은 내가 처음 그녀의 옥좌 앞에 섰을 때와 똑같았다. 나를 죽이려 들던 그때.

"유리아."

내가 제지하려 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이 여자들 때문에 오빠가 달라졌어. 예전의 오빠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어. 그게 오빠를 가장 강하게 만드는 거였는데."

그녀의 손톱이 내 팔뚝에서 떨어졌다. 대신 내 손을 붙잡았다. 그녀의 체온이 이상하게 뜨거웠다. 마치 신의 눈물 유적에서 본 그 푸른 마력이 그녀의 혈관 속을 흐르는 것 같았다. 내 손바닥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따끔거렸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열이 맥박처럼 뛰었다.

"이제 나만 있으면 돼. 오빠."

알리시아가 벽에서 등을 뗐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은 한 번쯤 봤던 적이 있는데, 내가 처음 그녀를 전장에서 제압했을 때와 비슷했다. 경계와 분노, 그리고 한 방울의 두려움. 하지만 이번엔 거기에 무언가 더 섞여 있었다. 질투일까. 그녀의 손이 검자루를 쥔 채로 손가락을 폈다 쥐었다 반복했다.

"카이드."

알리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성대가 긴장으로 굳은 소리.

"네 여동생, 조금 이상해."

"알고 있다."

나는 짧게 답했다. 왼팔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유리아가 붙잡은 손이 화끈거렸다. 시야가 한순간 흔들렸다. 전장에서 입은 머리 부상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그 순간이었다. 성 밖에서 첫 번째 폭발음이 울렸다.

---

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제국군의 세 번째 공성대가 동쪽 성벽을 넘어왔고, 마법사 부대가 화염구를 퍼부으며 보병의 진격로를 열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는 연합군 궁병들이 연막 화살로 시야를 차단하며 저항했지만, 제국 마법사들의 바람 마법에 연막이 흩어지고 있었다. 불타는 시체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올라왔다. 살이 타는 비릿한 단내와 털이 그을리는 악취가 뒤섞였다.

나는 성벽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봤다. 왼팔에는 아직 유리아의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피가 굳어 검은 딱지가 되었다. 열 개의 반달이 내 살갗에 새겨진 낙인 같았다. 그녀가 손톱으로 파고든 자리가 아직도 욱신거렸다.

"동문이 위험하다."

라비나가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 내 옆에 섰다. 그녀의 단검에는 이미 검은 피가 묻어 있었다. 성 안으로 잠입한 제국 척후병을 처리한 모양이었다. 피가 단검의 피홈을 타고 흘러 그녀의 손목을 적셨다. 손목에 묻은 피가 굳기 시작하며 검은색으로 변했다.

"알리시아는?"

"서문 쪽에서 백은 기사단을 지휘하고 있어."

라비나의 목소리가 잠시 망설였다. 그녀의 눈이 내 왼팔의 상처에 머물렀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상처 근처를 맴돌았다. 닿을 듯 말 듯.

"그런데 카이드, 너……."

"알고 있어."

나는 대답했다. 오늘 아침부터 왼쪽 눈이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알리시아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그녀가 칼에 찔리는 모습,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 내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 손을 뻗을 때마다 그녀의 몸이 더 멀어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내 손을 잡으려 허우적댔다.

악몽이었다. 1화에서 그녀를 처음 정복한 날 밤부터 꾸기 시작한 악몽이, 이제는 깨어 있는 낮에도 찾아왔다. 태양 아래서도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녀의 환영이 내 시야 가장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

"전투 이성 잠식."

내가 중얼거렸다. 골든핑거의 대가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갉아먹히는 감각.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침식되는 느낌. 마치 뇌수에 벌레가 파고드는 것 같았다.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나는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30피트 높이를 수직 낙하하며 검을 뽑았다. 착지 지점에 있던 제국 병사 세 명이 내 검에 목이 날아갔다. 피의 분수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세 개의 머리가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진흙탕에 처박혔다. 머리들이 진흙에 반쯤 파묻혀 눈을 뜬 채 굳어갔다.

전장의 소음이 밀려왔다. 비명,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 마법이 폭발하는 굉음. 이 모든 걸 나는 수천 번 겪었다. 용병왕으로서 수많은 전장에서 죽음을 뿌리며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 머릿속엔 알리시아의 환영이 가득했다.

*그녀의 배에 검이 박힌다. 강철이 은빛 흉갑을 뚫고 들어가 살을 찢는다. 흉갑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며 그녀의 복부를 압박한다. 내장이 터져나오는 소리——퍽 하고 터지는 축축한 파열음. 창자가 검날을 타고 미끄러져 나온다. 장간막이 끊어지며 창자가 복강 밖으로 쏟아진다. 분홍빛 장기가 대기에 노출되어 김이 난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충격으로 커지고, 입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피가 그녀의 턱을 타고 흘러 흉갑을 적신다. 잘린 손목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고——절단면에서 하얀 뼈가 드러나고, 동맥에서 피가 박동에 맞춰 뿜어져 나온다. 절단된 다리가 축 늘어진다. 대퇴골이 부러져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다.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환영 속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왜 구하지 않았어, 카이드. 왜.* 비난이었다. 그녀의 찢어진 목구멍에서 피가 아니라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찢어진 성대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환영이 바뀐다. 이번에는 엘라라다. 그녀의 자궁에 단검이 박히고, 칼날이 자궁벽을 뚫고 들어간다. 자궁 내막이 찢어지며 양수 대신 피가 흘러나온다. 태아가——*

"젠장!"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환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그녀의 몸이 두 동강이 나고, 척추뼈가 하얗게 드러난다. 척수액이 척추뼈 사이로 흘러나온다. 내 손이 닿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살점과 뼛조각이 흩어진다. 갈비뼈 조각이 회전하며 날아간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공중에서 멈추더니, 유리아의 얼굴을 만든다. 살점으로 빚은 얼굴이, 뼛조각으로 만든 이빨로, 웃고 있다.*

서문 쪽에서 은빛 검기가 번쩍였다. 알리시아의 삼중섬이었다. 나는 전속력으로 그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렸다. 갈비뼈에 금이 간 쪽이 쿡쿡 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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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시아는 세 명의 제국 정예 기사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제국의 '흑요석 기사단' 소속이었다. 놈들은 모두 7피트가 넘는 거구에, 마법으로 강화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었다. 검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고, 방패에는 반사 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독이 검날에서 녹색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안개가 닿는 허공에서 아지랑이가 일었다.

알리시아가 삼중섬을 펼쳤다. 세 개의 은빛 궤적이 동시에 그려지며 기사 한 명의 방패를 갈랐다. 마법 강화된 강철이 종이처럼 찢어졌다. 찢어진 방패 너머로 기사의 흉갑이 드러났다.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한 명이 옆구리로, 다른 한 명이 등 뒤로. 독 묻은 검이 그녀의 사각을 노렸다. 독이 바람에 흩날리며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스쳤다. 잘린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어졌다.

"알리시아!"

내가 외쳤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현실과 환영이 겹쳐졌다.

*그녀의 등에 검이 박힌다. 척추를 따라 찢겨 들어가는 강철. 피부가 갈라지고 근육이 찢어진다. 척추뼈가 검날에 긁히며 하얀 가루가 튄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딱, 하는 건조한 파열음. 척수가 절단되고 하반신이 축 늘어진다. 그녀의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피가, 피가, 피가——분수처럼 솟구치는 동맥혈이 내 얼굴에 튄다. 따뜻하다. 그녀의 피는 아직 따뜻하다.*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땅을 박차고 그녀와 기사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오른손으로 내 검을 들어 등 뒤에서 오는 검을 쳐냈고, 왼팔을 들어 옆구리로 들어오는 검을 맨몸으로 받아냈다.

강철이 살을 찢고 근육을 가르는 감각. 피부가 갈라지고, 근섬유가 한 올 한 올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검날이 근육을 통과하며 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미세한 찢어지는 소리. 뼈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검날이 내 척골을 긁는 소리가 났다. 쇠가 뼈를 긁는 소리——이를 갈 때 나는 그 소리보다 더 날카로웠다. 피가 내 팔을 타고 흘러내려 손목을 적셨다. 따뜻했다. 내 피인데도 따뜻하다고 느꼈다. 피가 흘러내리는 경로를 따라 피부가 간지러웠다.

"카이드!"

알리시아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왼팔에 박힌 검을 그대로 비틀어 기사의 손목을 부러뜨렸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놈의 손목 관절이 역방향으로 꺾이며 인대가 끊어졌다. 인대가 끊어지는 소리는 젖은 밧줄이 끊어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동시에 오른발로 다른 기사의 무릎을 걷어차 관절을 반대로 꺾었다. 슬개골이 튀어나오는 소리. 놈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나는 상체를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두 명의 목이 동시에 날아갔다. 피가 안개처럼 허공에 퍼졌다. 내 얼굴에 따뜻한 핏방울이 튀었다. 핏방울이 내 입술에 닿았다. 짭짤하고 쇠맛이 났다.

왼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상처 깊이 2인치, 길이 6인치 가량. 근육은 찢어졌지만 동맥은 살았다. 찢어진 근육 사이로 하얀 뼈가 언뜻 보였다. 뼈 표면에 검날이 긁고 간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왜, 왜 막은 거야!"

알리시아가 내게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검술의 달인인 그녀가 손을 떨고 있었다. 제국 최강의 검성의 손이, 검을 쥘 때조차 흔들리지 않던 그 손이 지금은 바람에 떠는 나뭇잎 같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피투성이 팔을 더듬었다. 손끝이 내 찢어진 근육에 닿자 그녀의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네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

내가 말했다.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용병왕 카이드. 수천 명의 부하를 잃으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남자. 필요하면 부하를 미끼로 쓰고 적을 유인해 전멸시키는 전략을 수립하던 남자.

그 남자가 지금, 한 여자의 부상을 막기 위해 자기 몸을 방패로 내던졌다.

"전략적 실수다."

내가 중얼거렸다. 알리시아가 나를 부축했다.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피비린내 속에서도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감지됐다. 백은 기사단 특유의, 은을 닦는 약품 냄새와 라벤더 향. 그녀의 가슴이 내 옆구리에 닿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전략이고 뭐고, 이 바보야!"

그녀가 처음으로 내게 욕을 했다. 제국 최강의 검성이 눈물을 글썽이며 내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자기 망토를 찢었다. 그 비싼 백은 기사단장의 망토를 붕대 대용으로 쓰다니.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손이 떨려서 망토가 고르게 찢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다시 찢었다. 그녀의 눈물이 망토 위에 떨어져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

동문 쪽에서 함성이 들렸다. 제국군이 그쪽으로 주공을 돌린 모양이었다. 방금 내가 알리시아를 구하느라 그쪽 방어선을 이탈한 탓에, 동문의 압력이 높아졌다.

"기사단장님! 동문이 뚫렸습니다!"

전령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욕설을 삼켰다. 한 번의 감정적 판단이 전투의 흐름을 바꿔버렸다. 왼팔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알리시아의 망토가 금세 붉게 젖었다. 피가 망토를 적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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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간 후, 나는 성 내부의 의무실에 누워 있었다.

전투는 가까스로 승리했다. 제국군을 격퇴시켰지만, 희생은 막대했다. 동문 방어선에서만 연합군 병사 200명이 전사했다. 내가 제 위치를 지켰다면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이었다. 그들의 시체가 성벽 아래 쌓여 있었다. 시체 더미 위로 까마귀가 날아들었다.

왼팔은 봉합했고, 갈비뼈 두 개에 금이 갔다. 오른쪽 어깨도 탈구됐다가 정복됐다. 몸은 만신창이였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내 머릿속이었다.

알리시아의 환영은 사라졌지만, 이번엔 다른 얼굴들이 떠올랐다. 세르피나가 불타는 건물에 갇혀 살이 녹아내리는 모습. 그녀의 검은 화염이 오히려 그녀를 집어삼키는 모습. 피부가 물집 잡히고 터지며 지방이 녹아 흘러내렸다. 엘라라가 단검에 찔려 자궁이 도려내지는 모습. 칼날이 자궁을 긁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라비나가 그림자 속에서 사라지며 사지가 하나씩 절단되는 모습. 그림자가 그녀의 팔을 삼키고, 뼈만 남은 어깨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모든 환영 끝에 유리아가 서 있었다. 웃으면서. 그녀의 손에는 피 묻은 단검이 들려 있었다.

골든핑거의 대가가 본격적으로 내 뇌를 잠식하고 있었다. 신경 시냅스가 하나씩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시야가 간헐적으로 흐려졌다가 돌아왔다. 손가락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렸다. 떨림이 멈추지 않고 점점 더 심해졌다.

"오빠."

유리아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물수건이 들려 있었다. 달빛을 등진 그녀의 얼굴은 반쯤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그림자에 가려진 쪽 눈에서만 푸른 마력이 빛나고 있었다.

"들어와."

내가 말했다. 그녀가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물수건으로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는 손길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관자놀이를 스칠 때마다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손톱 밑에 아직 내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검은색으로 굳은 피가 그녀의 손톱 밑에 박혀 있었다. 그녀가 내 이마를 닦으며 상체를 숙이자, 그녀의 옷깃 사이로 쇄골이 드러났다. 쇄골 위로 푸른 마력의 실핏줄 같은 흔적이 번져 있었다.

"오빠."

그녀가 다시 불렀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저 여자들 때문에 오빠가 망가졌어."

"아니야."

"망가졌다고!"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유리 조각 같은 날이 서 있었다. 의무실의 약병들이 진동했다. 유리병들이 서로 부딪히며 딸그락거렸다.

"예전의 오빠는 절대 다치지 않았어! 누구도 오빠를 이길 수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어때? 팔을 맨몸으로 검에 찔러넣었잖아! 그 여자 때문에!"

"유리아, 진정해."

"진정 못 해!"

그녀가 물수건을 내동댕이쳤다. 젖은 천이 바닥에 철퍽 떨어졌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 턱에서 떨어졌다. 눈물이 떨어진 바닥에서 푸른 김이 피어올랐다.

"나는 오빠를 따라 죽기까지 했어. 그런데 오빠는 여기서 다른 여자들이랑……."

그녀의 목소리가 부서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릴 적부터 그녀가 울 때마다 이렇게 해줬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달랐다. 그녀의 손이 내 손을 붙잡는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마치 강철 집게로 조이는 듯한 악력이었다. 내 손가락 뼈가 서로 맞부딪혔다. 손가락 마디가 어긋날 듯한 압력.

"오빠는 나만 있으면 돼."

그녀가 속삭였다. 침대 시트 위로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그녀의 그림자가 내 몸 위로 기어올랐다. 그녀가 내 손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내 손바닥을 자신의 볼에 비볐다. 그녀의 피부가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 마치 내부에서 무언가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내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갔다. 그리고 내 검지를 입에 넣었다. 그녀의 혀가 내 손가락을 감쌌다. 뜨겁고 축축한 감촉. 그녀의 입술이 내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손톱 밑의 굳은 피가 그녀의 침에 녹아내렸다.

"저 여자들 때문에 오빠가 망가져. 그러니까……."

그녀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신의 눈물 유적에서 본 그 마력의 색이었다. 공기가 이온화되는 소리가 났다. 내 피부의 털이 곤두섰다. 그녀가 내 손가락을 더 깊이 빨아들였다. 그녀의 이빨이 내 손가락 마디를 살짝 물었다. 아프지 않을 정도의 압력.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전혀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다 없애줄게."

그 말에 나는 그녀의 손을 놓쳤다. 손아귀의 힘이 빠졌다. 왼팔의 상처가 욱신거리며 다시 피가 배어나왔다. 붕대가 붉게 물들었다. 피가 붕대를 넘어 시트에 번졌다.

"유리아, 무슨 뜻이야?"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일어서서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푸른 마력의 잔광이 흩어졌다. 발걸음마다 바닥에 푸른 발자국이 남았다. 발자국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 그냥…… 푹 쉬어."

문이 닫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갈비뼈가 비명을 질렀다. 왼팔의 봉합이 다시 벌어졌다. 피가 붕대를 적셨다. 나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삼켰다. 턱에 힘이 들어가 어금니가 갈렸다.

유리아가 떠난 자리, 바닥의 푸른 발자국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나는 보았다. 발자국이 향한 방향을. 알리시아의 방이 있는 서쪽 복도였다.

---

한밤중이었다.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깼다. 왼팔의 상처가 욱신거렸고, 갈비뼈가 숨쉴 때마다 찔러댔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달빛이 창문으로 스며들어 의무실을 푸르게 물들였다. 천장의 갈라진 금이 달빛에 비쳐 은빛 실핏줄처럼 보였다.

문이 열렸다. 발소리는 없었다. 그녀는 맨발이었다. 차가운 돌바닥을 밟는 살결의 감촉이 상상되었다. 발바닥이 돌에 닿을 때마다 살짝 움츠러들겠지.

"엘라라."

"깨어 있었군요."

연합국의 여왕은 평상복 차림이었다. 검은 실크 가운 한 벌만 걸치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실크가 그녀의 몸선을 따라 은은하게 빛났다. 실크가 그녀의 엉덩이와 허리 곡선을 드러냈다. 그녀의 왼쪽 옆구리, 15년 전 단검에 찔렸던 상처 자리가 옷감 너머로 은은하게 비쳤다. 흉터가 실크를 살짝 밀어 올리고 있었다. 흉터 조직이 주변 피부보다 하얗게 빛났다.

"아파요?"

그녀가 침대 옆에 앉았다. 침대 시트가 그녀의 체중에 눌리며 살짝 꺼졌다. 그녀의 손이 내 이마를 짚었다. 차갑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전장을 지휘하는 철혈의 통치자의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손가락 마디마디가 섬세하게 휘어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이마에서 미끄러지며 땀을 닦아냈다.

"조금."

"거짓말."

엘라라가 살짝 웃었다. 입술 끝만 올라가는 미소였다. 그녀가 이렇게 웃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옥좌 위에서 내게 단검을 겨누던 그녀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는 얼음장 같던 눈동자가 지금은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달빛이 반사되어 은색으로 빛났다.

"당신은 우리를 구하려다 다쳤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이마에서 관자놀이로, 광대뼈로 천천히 미끄러졌다. 손톱이 내 피부를 살짝 긁는 감각. 손톱이 지나간 자리가 가렵고 따뜻했다.

"이제 우리가 당신을 지킬 차례입니다."

그녀의 손이 내 가슴으로 내려왔다. 붕대를 감은 상처 위를 조심스럽게 스치며, 그녀의 손가락이 내 피부를 더듬었다. 손끝의 감촉이 거미줄처럼 가늘고 섬세했다. 상처 주변의 부어오른 살을 한 뼘씩 짚어가며 더듬었다. 손가락이 내 갈비뼈의 윤곽을 따라 움직였다. 금이 간 갈비뼈 위를 지날 때 살짝 압력이 가해졌다. 나는 신음을 삼켰다.

"엘라라."

"말하지 말아요."

그녀가 상체를 숙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얼굴 옆으로 흘러내렸다. 실크처럼 가는 머리카락이 내 볼을 쓸었다. 머리카락 끝이 내 입술을 스쳤다. 그녀의 입술이 내 이마에 닿았다. 가볍고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 그 입술이 내 눈꺼풀로, 콧등으로, 볼로 내려왔다. 매번 닿을 때마다 그녀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졌다. 입술이 내 피부를 떠날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쩝, 하는 가벼운 소리.

"당신은 처음이에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녀의 입김이 내 피부에 닿아 따뜻하게 번졌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열네 살 소녀도, 여왕도 아닌, 그냥 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누군가를 위해 다친 사람을 본 게. 모두가 나를 위해 싸우다 죽었지만, 나를 위해 다친 사람은 없었어요. 모두 의무였으니까. 충성이었으니까."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깊고 느린 입맞춤이었다. 그녀의 혀가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타액의 온기가 섞였다. 그녀의 혀가 내 입천장을 쓸고, 내 혀를 감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졌다. 침이 섞이는 소리가 조용한 의무실에 울렸다. 그녀의 혀가 내 어금니를 하나씩 더듬었다. 혀끝이 내 잇몸을 따라 움직이며 치아 사이를 파고들었다.

"오늘 밤은 내가 주도할게요."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의 입술이 내 귓불을 스치며 떨렸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외이도를 타고 들어왔다. 숨결이 고막을 간질였다. 그녀의 이빨이 내 귓불을 살짝 물었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확실한 압력으로.

"그리고 당신은……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요."

그녀의 손이 내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능숙하지도, 서투르지도 않은 손길이었다. 그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붕대가 한 겹씩 풀릴 때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피부에 닿았다. 붕대가 벗겨지자 상처가 드러났다. 봉합된 자리가 붉게 부어 있었고, 약간의 체액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실밥이 살갗을 가로지르는 모양이 마치 붉은 지네 같았다. 상처 가장자리의 살이 약간 벌어져 있었다. 벌어진 틈으로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파 보여요."

엘라라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내 상처에 입을 맞췄다. 봉합선을 따라 천천히 혀를 움직이며, 그녀의 따뜻한 침이 상처 위를 적셨다. 그녀의 혀끝이 실밥을 하나씩 더듬었다. 실밥의 거친 질감이 그녀의 혀에 느껴질 터였다. 상처 부위가 따끔거렸지만, 그보다 그녀의 혀가 만드는 촉각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혀의 미뢰가 내 피부를 스치는 감촉. 그녀의 혀가 상처를 따라 움직일 때마다 내 복부 근육이 수축했다.

"여왕께서 이런 걸 하시면 안 되는데."

내가 말했다. 엘라라가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이 내 가슴에 진동으로 전해졌다. 그녀의 입술이 내 피부에 닿은 채로 울리는 진동. 그 진동이 내 갈비뼈를 타고 척추로 전해졌다.

"여왕이 아니라 그냥 엘라라예요. 지금은."

그녀의 혀가 내 가슴으로 올라왔다. 쇄골을 지나 흉골을 따라 내려오며, 유두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녀의 혀끝이 유륜을 따라 원을 그렸다. 유륜의 돌기 하나하나가 그녀의 혀에 밀려났다. 그녀의 이빨이 살짝 유두를 물었다. 앞니로 유두를 압박했다가 놓았다. 통증과 쾌감이 동시에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전기 신호가 꼬리뼈에서 후두부까지 한순간에 주파했다. 나는 신음을 삼켰다. 턱에 힘이 들어갔다. 어금니가 서로 갈렸다.

"참지 말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아랫입술을 쓸었다. 손톱이 입술의 갈라진 틈을 더듬었다. 갈라진 입술 틈으로 손톱이 살짝 들어왔다.

"오늘만큼은, 당신이 약해져도 돼요."

그녀의 손이 내 하복부로 내려왔다. 손가락이 배꼽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배꼽의 움푹 들어간 곳에 손톱이 살짝 들어왔다. 그리고 내 발기된 성기를 천천히 감싸 쥐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차가워서, 내 체온이 거기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귀두부터 뿌리까지 천천히 훑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가 내 성기의 굴곡을 따라 움직였다. 귀두의 테두리를 손가락이 넘어갈 때마다 내 성기가 반사적으로 떨렸다.

"처음이에요."

엘라라가 내 성기를 관찰하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달빛에 반짝였다.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내 성기가 비쳤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그녀의 손가락이 귀두를 스쳤다. 귀두의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조금 스며나왔다. 점액이 실처럼 늘어났다. 그녀가 그걸 검지로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혀로 핥아 맛보는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혀끝이 손가락을 감싸고 빨아들이는 모습이 노골적이었다. 그녀의 볼이 살짝 들어갔다. 손가락을 빨면서 그녀의 눈이 나를 올려다봤다.

"짭짤하네요."

그녀가 내 위로 올라탔다. 실크 가운을 벗어내자 그녀의 몸이 드러났다. 창백한 피부, 작고 단단한 가슴, 왼쪽 옆구리의 오래된 흉터. 달빛 아래 그녀의 몸은 대리석 조각처럼 빛났다. 갈비뼈의 윤곽이 피부 아래로 은은하게 드러났다. 그녀의 유두는 이미 단단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그녀가 내 성기를 자신의 질 입구에 갖다 댔다. 그녀의 음모가 촉촉하게 젖어 달빛에 반짝였다. 애액이 음모를 타고 흘러내려 허벅지 안쪽을 적셨다. 애액이 시트에 떨어져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

"들어가요."

그녀가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질은 이미 충분히 젖어 있었다. 내 귀두가 그녀의 음순을 밀어내고 질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압력이 나를 감쌌다. 그녀의 질 입구가 내 귀두를 꽉 물었다. 질 입구의 근육이 수축하며 나를 더 깊이 빨아들였다. 내 성기가 그녀의 질벽을 밀어내며 들어가는 감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아……."

엘라라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녀가 천천히 허리를 내리면서 내 성기가 그녀의 질 깊숙이 박혔다. 그녀의 질벽이 나를 단단히 조였다. 주름진 내벽의 감촉이 귀두에서부터 뿌리까지 전해졌다. 질벽의 주름 하나하나가 내 성기를 감싸고 마찰하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체온이 내 성기를 통해 온몸으로 퍼졌다. 열이 사타구니에서 시작해 복부로, 가슴으로, 목으로 번져갔다. 그녀의 질 내부 온도가 내 성기를 데웠다.

"당신이…… 내 안에 있어요."

그녀가 상체를 숙여 내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 그녀의 질 내부가 작게 경련하며 내 성기를 더 깊이 빨아들였다. 질벽이 파도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그녀의 숨소리가 내 가슴에 뜨겁게 닿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녀의 배가 내 배에 닿았다 떨어졌다.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에 닿아 납작하게 눌렸다. 그녀의 심장이 내 심장 위에서 뛰고 있었다.

"움직여도 돼요?"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성대가 긴장으로 좁아진 소리. 그녀의 질 내부가 기대감으로 살짝 수축했다.

"네가 주도한다고 했잖아."

내가 답했다. 그녀가 살짝 웃으며 허리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그녀의 질벽이 내 성기를 따라 미끄러졌다. 느리고 부드러운 리듬이었다. 찔러 넣는 게 아니라 어루만지는 움직임에 가까웠다. 그녀의 허리가 파도처럼 천천히 물결쳤다. 척추가 유연하게 휘어졌다 펴졌다. 그녀의 엉덩이가 내 허벅지에 닿았다 떨어졌다.

"이런 건…… 처음이에요."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녀의 허리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졌다. 질 내부의 애액이 넘쳐나서,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젖은 소리가 새어나왔다——찰칵, 찰칵 하는 소리. 점액이 내 성기 뿌리까지 흘러내려 고환을 적셨다. 그녀의 허벅지 안쪽이 내 허벅지에 닿을 때마다 축축한 소리가 났다. 피부와 피부가 젖은 채로 부딪히는 소리. 애액이 우리의 사타구니를 끈적하게 적셨다.

나는 부상당한 왼팔을 움직여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상처가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봉합이 다시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피가 붕대를 적셨다. 내 손가락이 그녀의 엉덩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피부가 내 손아귀에서 붉게 변했다. 손가락 자국이 그녀의 창백한 엉덩이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녀의 엉덩이 살이 내 손가락 사이로 볼록하게 밀려나왔다.

"카이드……!"

그녀가 놀라서 몸을 떨었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허리 움직임의 속도를 통제했다. 더 깊게, 더 느리게. 내 성기가 그녀의 질 깊은 곳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가 빠져나왔다. 그녀의 질벽이 내 성기를 따라 늘어났다가 수축했다. 질 내부의 주름이 내 성기를 빨아들이듯 감쌌다. 내 성기가 그녀의 질벽을 밀어내며 들어갈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당신이…… 내 안에서……."

엘라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더 세게 움켜쥐고 속도를 높였다. 그녀의 질이 리드미컬하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오르가즘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땀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유두가 완전히 경직되어 공기 중에 돌출되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계속 쥐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유두를 엄지로 비볐다. 유두가 내 손가락 아래서 더욱 단단해졌다. 그녀의 유륜이 오므라들었다.

"함께…… 가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녀의 허리가 더 빨라졌다. 내 성기가 그녀의 질 깊은 곳을 찔렀다. 자궁 입구에 귀두가 닿을 때마다 그녀의 전신이 떨렸다. 자궁 입구의 딱딱한 감촉이 귀두에 전해졌다. 그녀의 질벽이 나를 더 강하게 조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의 엉덩이를 아래로 누르며 더 깊이 박아넣었다. 내 성기의 뿌리까지 그녀의 질에 완전히 묻혔다. 그녀의 음모가 내 피부에 닿아 간지러웠다.

"카이드……!"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절정에 도달했다. 그녀의 질이 격렬하게 수축하며 내 성기를 압박했다. 질벽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내 성기를 짜냈다. 그 수축이 나를 따라 전염됐다. 내 고환이 위로 올라붙고, 정액이 요도를 타고 치솟아 올랐다. 요도의 괄약근이 열리며 정액이 분출됐다. 그녀의 질 깊은 곳에 내 정액이 쏟아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녀의 질벽이 내 성기를 짜내듯 조였고, 나는 그녀 안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정액이 그녀의 자궁 입구를 때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따뜻한 액체가 그녀의 질 깊은 곳을 가득 채웠다. 정액이 질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엘라라가 내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에 닿았고, 심장 박동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우리의 체액이 섞여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렸다. 정액과 애액이 섞인 액체가 시트에 얼룩을 만들었다. 젖은 시트가 내 허벅지에 차갑게 달라붙었다. 그녀의 질에서 흘러나온 정액이 내 고환을 적셨다.

"처음이에요."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잠겼다. 숨소리 사이사이로 작은 신음이 섞여 나왔다. 그녀의 몸이 아직 작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질 내부가 간헐적으로 수축하며 남은 정액을 짜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몸을 맡긴 건."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전투 이성이 조금 더 잠식된 게 느껴졌다. 그녀를 지키고 싶다는 본능이 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다. 마치 독이 퍼지듯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었다.

---

새벽이었다.

엘라라가 내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규칙적이고 평화로웠다. 여왕의 얼굴이 아니라, 그냥 한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속눈썹이 달빛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입술이 약간 벌어져 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숨결이 새어나왔다. 그녀의 질에서 아직 내 정액이 조금씩 흘러나와 시트를 적시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이번엔 발소리가 있었다. 군화 소리였다. 급박하게 달려오는 소리. 쇠징이 돌바닥을 박차는 소리.

"카이드 님!"

전령이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목의 핏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우리를 보자 잠시 굳었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빌헬름 폰 호르스트가…… 전령을 보냈습니다."

내가 상체를 일으켰다. 엘라라가 잠에서 깨며 내 품에서 떨어졌다. 그녀의 눈이 즉시 경계로 빛났다. 잠기고 부드러웠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여왕의 눈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실크 가운을 집어 가슴을 가렸다.

"무슨 내용이지?"

전령이 편지를 건넸다. 봉인에는 제국 귀족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검은 밀랍에 찍힌 호르스트 가문의 문장——두 마리 뱀이 교차하는 형상. 나는 한 손으로 편지를 찢어 열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의무실에 날카롭게 울렸다.

*용병왕 카이드에게.*

*당신의 여동생 유리아 발렌하르트와 거래를 했습니다. 그녀가 당신의 정복한 여성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대가로, 당신을 제국에 넘기기로.*

*첫 번째 표적은 백은 기사단장 알리시아 폰 로젠베르크. 그녀는 오늘 밤 안으로 죽을 것입니다.*

*구할 수 있다면 구해보시지.*

*— 빌헬름 폰 호르스트*

편지가 내 손에서 떨어졌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내 심장이 한 번 멎었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귀에서 피가 쏟아지는 듯한 이명이 울렸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성 어딘가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알리시아의 목소리였다.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비명. 이어서 마력이 폭발하는 굉음이 성 전체를 뒤흔들었다. 푸른 마력의 섬광이 창문 너머로 번쩍였다. 유리가 진동하며 깨질 듯한 소리를 냈다. 섬광이 너무 강해 방 안이 한순간 대낮처럼 밝아졌다.

문이 다시 열렸다.

"오빠."

유리아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피 묻은 단검이 들려 있었다. 검붉은 피가 칼날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피가 바닥에 떨어져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피 웅덩이에 그녀의 맨발이 잠겼다. 그녀의 발가락 사이로 피가 스며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갑고 아름다운 미소였다. 입술만 웃고 있었고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푸른 마력이 타오르고 있었다.

"미안해, 오빠. 하지만 이게 오빠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야."

그녀의 눈동자에서 푸른 마력의 불꽃이 일었다. 그 불꽃이 그녀의 얼굴 전체를 뒤덮으며, 신의 눈물 유적에서 본 그 이형의 형상이 잠시 스쳤다. 그녀의 그림자가 벽에 비치며 일그러졌다.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림자에는 뿔이 돋아 있었고, 등에서는 촉수 같은 것들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복도 저편에서 두 번째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세르피나의 비명이었다. 비명 속에 검은 화염이 터지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화염이 복도 벽을 태우는 소리——지글거리며 석재가 갈라지는 소리. 그리고 이내 화염이 꺼졌다. 비명도 함께 멎었다.

유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한 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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