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차민규의 아지트는 강남 한복판, 오피스텔 32층이었다. 한겸은 건물 옥상에 서서 손바닥을 펼쳤다. 검은 마나 선이 손금을 따라 빛나더니, 손바닥 한가운데서 작은 균열이 벌어졌다. 균열 속에서 심연의 회랑 특유의 어둠이 꿈틀거렸다. 공기도 아닌 것이, 액체도 아닌 것이 스며나왔다.
차민규는 지금쯤 소파에 늘어져 술을 들이키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여자 둘을 불렀을까. 한겸은 혀를 찼다. S급 헌터의 취미치곤 한결같이 천박했다.
손바닥의 균열이 오피스텔 현관문 앞 공간으로 스며들었다. 현실과 던전의 경계가 겹쳐지며 공기가 일렁였다.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 철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뭐야 이게?"
차민규의 목소리였다. 한겸은 입꼬리를 올렸다.
균열이 순간적으로 확장되며 차민규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그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공간이 뒤틀리며 그를 던전 내부로 강제 전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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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회랑. 첫 번째 층.
차민규가 바닥에 처박혔다. 무릎과 손바닥이 먼저 닿았다. 그런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중력이 세 배였다.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척추 마디마디가 압력을 견디느라 파르르 떨렸다.
"이, 이게 무슨..."
숨조차 무거웠다. 폐를 짓누르는 공기 자체가 납덩이 같았다. 차민규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던전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검붉은 살덩이 같은 벽이 사방에서 맥박 치듯 꿈틀거렸다.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돌이 아니라, 체온을 가진 무언가가 발바닥 아래서 미세하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던전...? 여기가 던전이라고?"
"그래. 내 던전이다."
목소리가 천장에서 울렸다. 아니, 천장이 아니라 사방의 벽 전체에서 동시에 울렸다. 차민규는 몸을 비틀어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맨발로 살덩이를 밟는 소리. 축축하고 부드러운 바닥이 발바닥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한겸이 걸어나왔다. 그의 피부에는 검은 마나 선이 혈관처럼 퍼져 있었고, 눈동자는 홍채와 흰자위의 구분 없이 완전한 암흑이었다.
"이한겸...? 네가 어떻게... 죽은 줄 알았는데."
차민규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두려움보다는 혼란이 먼저였다. 한 달 전, 던전最深部에서 분명 죽었어야 할 F급 벌레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되어서.
"죽었지.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한겸이 차민규 앞에 멈춰 섰다. 맨발이 차민규의 손가락 바로 앞에 닿았다. 발톱이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네가 가르쳐줬잖아. 강한 놈이 모든 걸 가진다고."
한겸이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차민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강제로 고개를 들게 했다. 중력 때문에 목 근육이 파르르 경련했다.
"이제 내가 강한 쪽이다. 그러니까..."
한겸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입술만 올라가 있었다. 눈동자는 여전히 공허했다.
"네가 내가 됐을 때 뭘 해야 하는지,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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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규의 동공이 수축했다. 그 눈빛을 한겸은 기억했다. 한 달 전, 똑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그 얼굴.
그때 차민규는 바지 지퍼를 내리며 말했었다. 'F급 주제에 입이라도 써먹어야지, 안 그래?' 그의 발이 한겸의 머리를 짓밟았다. 흙먼지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콘크리트 바닥에 볼이 갈렸다. '빨아. 빨라고.' 차민규의 성기가 입술을 후벼팠다. 억지로 벌어진 턱이 빠질 듯 아팠다.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차민규는 더 깊이 밀어넣었다. 'F급 새끼가 감히 토할 생각이냐?' 목구멍까지 뚫릴 것 같았다. 질식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몸은 반응했다. 굴욕 속에서도 성기가 발기했다. 그 사실이 더 끔찍했다. 차민규는 그걸 보고 웃었다. '벌레 새끼도 자지는 서는구나.'
그 기억이 지금, 한겸의 손끝에서 전류처럼 되살아났다.
"못 하겠다는 거냐."
한겸의 발이 차민규의 뒷머리를 짓눌렀다. 살덩이 바닥에 얼굴이 파묻혔다. 축축하고 따뜻한 바닥이 뺨에 달라붙었다. 마치 살아있는 혀가 얼굴 전체를 핥는 감촉이었다. 차민규가 숨을 들이켤 때마다 바닥의 미세한 돌기가 입술과 콧구멍을 간질였다.
"잠깐... 기다려..."
차민규의 손이 떨리며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한 번도 타인 앞에서 옷을 벗어본 적 없는 자의 손놀림이었다. 그는 항상 벗기는 쪽이었으니까. 단추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S급 강화계 헌터의 단단한 가슴 근육이 드러났다. 하지만 지금 그 근육은 공포로 경직되어 있었다.
바지가 벗겨지고 속옷이 벗겨졌다. 차민규의 성기는 이미 오줌으로 살짝 젖어 있었다. 한겸은 그것을 보고 웃었다.
"무서우면 발기가 안 되는 타입이냐. 한 달 전에는 그렇게 당당하더니."
그 말을 하는 순간, 한겸의 뇌리에 또 다른 기억이 스쳤다. 차민규가 그의 바지를 찢어내리던 날. 'F급 주제에 꽤 크네? 근데 쓸모는 있냐?' 차민규의 군화가 그의 성기를 짓밟았다. 아플 틈도 없이 굴욕이 먼저였다. 주변에 있던 다른 헌터들의 웃음소리. '쟤 좆 밟히고도 아무 말 못하네.' 'F급이 S급한테 뭘 어쩌겠냐.' 그 웃음소리가 귀에 박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고막을 파고들었다.
"제발... 한겸아... 아니, 이한겸 씨... 그때는 내가 미쳤었어..."
"아직도 말이 많네."
한겸이 손가락을 튕겼다. 바닥의 살덩이가 꿈틀대더니, 그 속에서 무언가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검은 실뿌리 같았다. 이내 굵어지고 길어지며 촉수의 형태를 갖췄다. 각각의 촉수는 굵기가 성인 남성의 팔뚝만 했고, 길이는 쉴 새 없이 꿈틀거리며 자라나 2미터를 훌쩍 넘겼다. 표면은 반들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건조한 나무껍질처럼 갈라진 틈새로, 안쪽에서 붉은 열기가 새어나왔다. 체온보다 뜨거운 섭씨 40도쯤의 열기였다. 살에 닿으면 데일 듯 아슬아슬한 온도. 미세한 빨판이 아니라, 촉수 표면에 돋아난 것은 작은 이빨 같은 돌기였다. 그것들이 공기 중에서 바스락거리며 움직였다.
촉수 하나가 차민규의 발목을 감았다. 돌기가 피부를 긁으며 올라갔다. 상처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긁힐 때마다 미세한 전류 같은 통증이 신경을 타고 올라갔다. 차민규가 비명을 질렀다.
"살려줘... 제발...!"
"네가 F급을 어떻게 다뤘는지 보여달라고 했잖아."
한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순간, 기억이 또 한 번 밀려왔다. 차민규가 그의 머리카락을 쥐고 던전 바닥에 무릎 꿇렸을 때. '빌어. 개자식아. 네가 살고 싶으면 네 주제를 증명해.' 한겸은 빌었다. 무릎 꿇고 빌었다. 살고 싶었다. 그게 가장 굴욕적이었다. 살고 싶다는 본능이 자존심보다 강했다는 사실이.
두 번째 촉수가 차민규의 허벅지를 감았다. 이번에는 더 천천히, 더 세게. 촉수 안쪽의 열기가 피부에 스며들었다. 마치 내장 속에 파묻힌 듯한, 원초적인 온기였다. 차민규의 다리 근육이 경련했다. 촉수가 조일 때마다 피부 아래 모세혈관이 터지며 작은 붉은 점들이 생겨났다.
세 번째 촉수가 그의 가슴을 가로질렀다. 돌기 하나가 유두를 스쳤다. 차민규의 몸이 움찔하며 허리가 들썩였다. 한겸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아프기만 한 건 아닌가 보네."
"그만... 제발 그만둬..."
차민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S급 헌터. 국가적 자산. 강철 같은 육체를 가진 남자가 살덩이 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었다. 콧물과 눈물이 바닥의 미세한 주름 사이로 스며들었다. 바닥은 그것마저 흡수하며 더욱 따뜻해졌다.
촉수 하나가 차민규의 엉덩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돌기들이 항문 주변 피부를 긁었다. 차민규가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하얗게 질렸다. 촉수는 천천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진입했다. 촉수의 선단이 괄약근에 닿자 차민규의 항문이 경련하듯 수축했다. 저항이었다. 하지만 촉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저항을 비집듯, 촉수 끝이 괄약근 중앙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살덩이가 찢어지는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괄약근이 버티지 못하고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며 찢어졌다. 찢어진 틈새로 선홍색 피가 번졌다. 항문 가장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회음부를 타고 고환까지 번졌다. 촉수 특유의 열기가 찢어진 상처에 직접 닿자 차민규의 전신이 쥐어짜듯 경련했다. 직장 내벽이 이물질을 밀어내려 격렬하게 수축했지만, 촉수는 오히려 그 경련을 즐기듯 내부에서 미세하게 진동했다. 진동은 직장 벽을 타고 전립선까지 전해졌다. 찢어진 괄약근에서 피가 섞인 장액이 촉수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붉은 액체가 촉수의 갈라진 틈새로 스며들자, 촉수는 더욱 뜨거워지며 팽창했다.
"으아아아악!"
차민규의 비명이 던전에 울려 퍼졌다. 벽이 그 비명을 흡수하며 더욱 붉게 맥박 쳤다. 한겸은 그 광경을 팔짱을 끼고 내려다봤다.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벽에 비치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드리운 어둠이 뿔이 돋은 형태로 일렁였다.
촉수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들어가고 나오고, 들어가고 나오고. 내부에서 촉수가 빙글빙글 비틀리며 직장 벽을 확장시켰다. 찢어진 괄약근이 촉수가 빠질 때마다 뒤집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때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윤활제 역할을 하며 촉수의 움직임을 점점 더 빠르게 만들었다. 돌기들이 민감한 내벽을 긁을 때마다 차민규의 성기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요도구에서 오줌이 조금 더 흘러나왔다. 투명한 점액이 섞여 실처럼 늘어졌다. 이내 성기가 발기하기 시작했다. 귀두가 붉게 충혈되고, 표면의 핏줄이 꿈틀거렸다. 쿠퍼액이 요도구 밖으로 배어나와 투명한 방울을 만들었다.
"봐라. 네 몸은 솔직하잖아."
한겸이 차민규의 발기한 성기를 발가락으로 툭 쳤다. 차민규의 몸이 모욕감에 떨렸다. 그런데 동시에 성기가 더 단단해졌다. 귀두가 한층 더 붉게 부풀어 올랐다. 촉수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제는 단순한 진입이 아니라, 내부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촉수 끝이 전립선을 정확히 눌렀다. 동시에 촉수 전체가 직장 안에서 부풀어 오르며 내벽을 꽉 채웠다.
"으윽...!"
차민규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찢어진 항문이 촉수를 더 깊이 조여들었다. 직장 벽이 스스로 수축하며 촉수의 돌기를 음미했다. 촉수는 이제 규칙적인 진동을 시작했다. 마치 모터가 내장 속에서 회전하는 듯한 강렬한 진동이 전립선을 집중적으로 마사지했다. 차민규의 성기에서 쿠퍼액이 줄줄 흘러내려 살덩이 바닥에 끈적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의 고환은 이미 사정 준비를 마치고 팽팽하게 수축되어 있었다. 차민규는 자신의 몸이 더 많은 쾌락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포했다.
그때 촉수가 방향을 바꿨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집요한 파고듦이었다. 촉수 끝이 전립선을 비집고 들어가듯 압박하면서 동시에 촉수 전체가 직장 안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돌기들이 내벽을 360도로 긁어냈다. 찢어진 괄약근이 회전하는 촉수에 쓸리며 더욱 벌어졌다. 찢긴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흘러내렸다. 찢어질 듯한 통증과 전립선이 터질 듯한 쾌락이 동시에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차민규는 비명을 지르려다 신음이 되어 터져나왔다. 항문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었지만, 그 아픔이 전립선 쾌락과 뒤섞이자 구분이 되지 않았다. 고통인지 쾌락인지 모를 전율이 꼬리뼈부터 두개골까지 관통했다.
"이제 알겠냐. 네가 나에게 했던 게 이런 거였어."
한겸이 차민규의 머리카락을 다시 움켜쥐었다. 강제로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을 바라보게 했다.
"힘으로 찍어누르고, 공포를 먹이고, 그래도 몸은 반응하게 만드는 것. 그게 네 방식이었잖아. 나는 그걸 한 달 동안, 죽었다 깨어나면서도 계속 기억했어."
한 달 전, 차민규가 그의 엉덩이를 발로 벌리며 말했다. 'F급은 구멍도 헐렁하네?' 웃음소리. 다른 헌터들의 시선. 누군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찍어. 찍어둬. 나중에 협회에 뿌리자.' 플래시가 터졌다. 한겸은 그 빛 속에서 눈을 감았다. 감아도 빛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왔다. 그날 이후, 플래시 빛만 봐도 몸이 굳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차민규가 흐느꼈다. 더 이상 S급 헌터의 자존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살덩이 바닥에 흡수된 걸까. 아니면 애초에 그 자존심이라는 게 강함이라는 껍데기 위에 얹힌 허상이었을까. 던전 바닥이 그의 눈물과 콧물과 땀을 전부 빨아들이고 있었다.
촉수의 움직임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진동 주파수가 빨라지고, 촉수 끝이 전립선을 파고들 듯 집요하게 압박했다. 동시에 촉수 표면의 돌기들이 일제히 직장 벽을 긁었다. 차민규의 성기가 맥박치듯 경련했다. 귀두 끝이 벌어지며 사정 직전의 경고 신호가 요도 전체를 타고 올라왔다. 고환에서 정액이 밀려 올라오는 감각이 아랫배를 뜨겁게 달구었다. 차민규의 찢어진 항문이 촉수를 더욱 세게 조여들며 사정을 앞당기려 했다. 그의 몸은 이제 완전히 쾌락에 굴복해 있었다.
그 순간, 촉수가 전립선을 마지막으로 강하게 짓눌렀다. 동시에 촉수 내부에서 뜨거운 액체가 분출되어 직장 안을 가득 채웠다. 촉수의 체액이 내벽에 흡수되며 작열하는 듯한 열기가 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 열기가 방아쇠가 되었다.
"으아아아아...!"
차민규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성기가 격렬하게 경련하더니, 요도구에서 정액이 힘차게 분출되었다. 첫 번째 사정은 살덩이 바닥을 향해 흰 궤적을 그렸다. 두 번째, 세 번째 사정이 이어졌다. 정액이 바닥에 튀며 끈적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차민규의 고환이 사정할 때마다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항문은 여전히 촉수를 물고 경련했고, 찢어진 괄약근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사정은 멈추지 않았다. 촉수가 전립선을 놓아주지 않고 계속 압박하자, 차민규는 거의 실신 직전까지 몰리며 네 번째, 다섯 번째 사정을 쏟아냈다. 마지막 사정은 정액이라기보다 투명한 전립선액에 가까웠다. 그의 성기는 여전히 발기한 채였지만, 더 이상 분출할 정액이 남아 있지 않았다. 요도구 끝에서 묽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차민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물과 콧물과 침이 뒤섞여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굴욕감이 온몸을 짓눌렀지만, 동시에 사정 직후의 무력감이 모든 근육을 이완시켰다. 저항할 힘도, 저항할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찢어진 항문이 욱신거렸다. 피가 계속 흘러 허벅지 안쪽을 붉게 물들였다. 정액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여 역한 악취를 풍겼다. 자신의 체액에 둘러싸여, 자신의 굴욕에 완전히 잠겨버린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뭐든 할게요... 뭐든..."
"뭐든?"
한겸이 촉수를 멈추게 했다. 절정 직후, 차민규의 몸이 아직 경련을 멈추지 못했을 때였다. 차민규의 몸에서 촉수가 빠져나왔다. 직장이 비워지며 젖은 소리가 났다. 촉수 표면에는 차민규의 피와 장액, 그리고 촉수 자체의 체액이 뒤섞여 끈적하게 묻어 있었다. 촉수가 빠져나올 때 찢어진 괄약근이 뒤집혀 나왔다. 항문이 완전히 닫히지 못하고 벌어진 채 경련했다. 벌어진 구멍 안으로 찢긴 직장 내벽의 붉은 속살이 들여다보였다. 차민규의 성기는 여전히 발기한 채 맥박 쳤다. 사정을 멈췄지만, 요도 안에는 아직 잔여 정액이 남아 있어 아랫배가 묵직하게 욱신거렸다. 귀두 끝에서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져 바닥의 정액 웅덩이에 합류했다.
"그럼 증명해."
한겸이 오른손을 펼쳤다. 손바닥에서 검은 마나가 불꽃처럼 일어났다. 던전 전체가 그 마나에 반응하며 낮은 진동을 시작했다. 벽과 바닥과 천장의 살덩이가 하나의 심장처럼 쿵쿵 뛰기 시작했다.
"나에게 영원히 종속되는 거다. 네 몸과 정신과 모든 힘을 내 던전에 바치는 거야."
"그게 무슨..."
"거절하면 죽어.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시체도 안 남게."
한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차민규는 그 공허한 음성에서 진심을 읽었다. 이 자는 진짜로, 아무 망설임 없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자였다.
차민규는 사정 직후의 무력감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찢어진 항문이 욱신거렸다. 정액과 피가 엉덩이 아래 바닥에 고여 끈적한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자신의 체취가 코를 찔렀다. 굴욕이 전신을 짓눌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굴욕 속에서 어떤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더 이상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자신을 짓밟는 존재에게 모든 것을 맡겨도 된다는, 비틀린 해방감이었다.
"내가... 그러면... 살 수 있는 거야...?"
"살 수 있지. 내 던전의 일부로서."
차민규의 눈에서 마지막 남은 저항이 사라졌다. 허망할 정도로 빨리 사라졌다. S급의 자존심은 애초에 강함이라는 토대 위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토대가 무너지자, 남는 것은 벌거벗은 공포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공포마저 사정과 함께 쏟아내버린 듯했다. 남은 것은 텅 빈 복종뿐.
"해... 해줘... 종속시켜줘... 제발..."
차민규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포의 눈물이 아니었다. 굴욕과 안도가 뒤섞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그의 성기가 마지막으로 경련하며 요도에 남은 잔여 정액 한 방울을 밀어냈다. 사정의 끝이자, 자존심의 끝이었다.
한겸이 미소 지었다. 이번에도 입술만 올라갔다. 손바닥의 검은 마나가 더욱 짙어졌다.
"좋아. 선물을 주마."
그의 손이 차민규의 가슴에 닿았다. 왼쪽 가슴, 심장 바로 위. 피부가 닿자마자 검은 마나가 타투처럼 번져들어갔다. 차민규가 비명을 질렀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비명이었다. 마나가 피부를 뚫고 근육을 지나 갈비뼈 사이로 스며들며, 마치 살아있는 불꽃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감각이었다.
"심핵의 굴레."
한겸이 중얼거렸다. 마나가 차민규의 심장에 닿았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더니, 검은 실핏줄 같은 것이 심장 표면에 퍼졌다. 이제 차민규의 심장은 한겸의 던전에 연결되었다. 그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심장이 뛰는 한 던전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검은 마나가 최종적으로 차민규의 가슴에 낙인을 새겼다. 작은 문양이었다. 삼켜지는 태양. 아니면 삼키는 공허.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불길한 아름다움이 깃든 문양이었다.
차민규가 축 늘어졌다.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촉수들이 그를 바닥에 내려놓고 살덩이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던전의 진동도 잦아들었다. 차민규의 엉덩이 아래, 피와 정액이 섞인 웅덩이가 바닥의 살덩이에 천천히 흡수되었다. 던전은 그의 굴욕마저 양분으로 삼았다.
한겸은 차민규의 몸을 발로 뒤집었다. 가슴에 새겨진 낙인을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이게 복수였다. F급 벌레가 S급 헌터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한 달 전 그날 밤, 던전最深部에서 꿈꾸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그런데 그 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발밑 던전의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손끝이 저릿했다. 복수의 쾌감이 도착해야 할 신경 말단이 이미 던전에 먹혀 없어진 듯했다. 한겸은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아까 차민규의 머리카락을 쥐었을 때의 감촉을 떠올리려 했다. 땀에 젖은 모발의 끈적임. 두피에서 올라오는 체온. 공포로 경직된 목 근육의 떨림.
기억은 났다. 하지만 감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살아있는 살덩이를 만졌을 때의 그 끈적한 온기가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읽은 책 속 장면처럼, 정보는 있는데 체험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한겸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통증은 있었다. 있었다. 그런데 예전 같지 않았다. 통증이 뇌에 도달하기 전에 어딘가에서 희석되는 듯한 느낌. 던전의 살덩이 바닥이 그의 발바닥을 통해 무언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감각? 감정?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게 대가인가.'
한겸은 중얼거렸다. 던전이 강해질수록 인간 감정이 마모된다. 알고 있었다. 에고와 융합할 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달랐다. 복수의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복수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식사와 같았다.
한 달 전 그날 밤을 떠올리려 애썼다. 던전最深部. 차민규의 발에 얼굴이 짓밟히던 순간. 입 안 가득 흙먼지와 굴욕이 들어차 숨조차 쉴 수 없었던 그때. 분노가 끓어올랐던 그 감각을 다시 불러내려 했다. '죽여버리겠다'고 이를 갈던 그 순수한 증오를.
아무것도 없었다.
분노는 있었어야 할 자리에 텅 빈 공동만 남았다. 마치 누군가 그의 감정을 떠서 삼켜버린 것처럼. 그 누군가가 지금 자신의 발밑에서 꿈틀대는 던전이라는 걸, 한겸은 알고 있었다. 에고가 웃고 있었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심핵과 연결된 신경 말단에서 에고의 만족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건 한겸의 감정이 아니었다. 던전의 포만감이었다. 복수는 완성되었는데, 복수자는 공허했다.
한겸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통증은 희미했다. 피가 났다. 손바닥에 붉은 액체가 고였다. 한겸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눈을 깜빡였다. 붉은색. 이게 원래 어떤 느낌이었지? 피를 보면 본능적으로 움찔했던 그 감각. 생명의 색깔이라는 직관적 인식. 그게 지금은 그저 시각 정보일 뿐이었다. 마치 색맹이 되기 전에 보던 색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처럼, 한겸은 붉은색이 주던 원초적 긴장을 더듬었다. 없었다. 세상의 모든 감각이 물에 희석된 수채화처럼 번지고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아니, 애초에 '괜찮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잠식하고 있었다. 한겸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상관없다. 복수의 감정적 보상 따위는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때 던전의 벽이 미세하게 떨렸다. 차민규의 가슴에 새겨진 낙인이 반응하고 있었다. 그 낙인을 통해 차민규의 기억과 정보가 한겸에게 흘러들어왔다. 단편적인 이미지들. 아르고 길드의 회의실. 백청화의 옆모습. 그리고——
구체적인 정보가 스며들었다. 백청화의 던전 진입 예정일. 3월 27일, 오후 9시. 단독 잠입. 동행자 없음. 차민규는 부길드장으로서 그녀의 출정 신청서를 직접 결재했다. 그리고 또 하나. 차민규의 사무실에서 우연히 엿들은 백청화의 통화 내용. '이번 던전에서 찾으면 끝이야. 이한겸의 흔적. 반드시 있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정함과 달랐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혹은 무언가를 간절히 찾는 듯한.
'찾았다.'
한겸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백청화의 현재 위치. 그녀가 다음 주에 단독으로 잠입할 던전의 좌표. 차민규는 부길드장으로서 그 정보를 알고 있었다. 이제 한겸도 알았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한겸이 속삭였다. 그 순간, 던전 심장부에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낮고 깊은, 창자 속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웃음. 한겸은 자신이 웃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웃음소리는 분명히 그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동시에, 전혀 다른 목소리이기도 했다. 에고의 목소리. 던전의 의지.
한겸이 입을 열었다. 입술이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심핵에서도 똑같은 각도로 무언가의 입술이 올라가는 진동이 느껴졌다. 던전 전체가 하나의 입처럼 벌어졌다 닫혔다. 그 순간, 한겸의 입술 사이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에고의 언어. 인간의 성대가 낼 수 없는 주파수의 진동이 허공을 갈랐다. 던전의 벽이 그 소리에 답하듯 일제히 꿈틀거렸다.
바닥에 쓰러진 차민규의 그림자가 꿈틀대더니, 뿔이 돋은 형상으로 변해 그를 집어삼켰다. 그림자가 차민규의 몸을 완전히 덮어버리자, 살덩이 바닥이 입처럼 벌어져 그를 던전 심층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심핵 앞.
공간이 일렁이며 백청화의 환영이 떠올랐다. 선명했다. 마치 실제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그녀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던전의 기류에 흔들렸다. 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겸을 향해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동정도, 조롱도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기다림의 미소였다.
한겸의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이건 던전이 만든 환영이 아니었다. 에고가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백청화의 마나가, 그녀의 의지가 심핵에 새겨진 낙인을 통해 투영된 것이었다.
환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쉿. 그리고 한 겹 더 깊은 미소를 남긴 채, 안개처럼 흩어졌다.
한겸은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던전의 심장과 그의 심장이 따로 뛰고 있었다. 처음으로, 에고와 분리된 자신의 의지가 반응했다.
백청화.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한겸이 살아있다는 것을. 아니, 그 이상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던전의 심핵이 다시 한 번 크게 고동쳤다. 한겸의 그림자가 벽에 드리우더니, 뿔의 형상이 전보다 더 뚜렷하게 자라났다. 던전은 이미 다음 사냥감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