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콘크리트 더미 아래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손을 멈췄다. 오른손에 쥔 쇠파이프엔 말라붙은 피딱지가 붙어 있었고, 왼손은 방금 전까지 시체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핵겨울이 지나간 지 20년, 재 구역에서 시체는 그저 자원일 뿐이다. 옷가지, 신발, 물통, 가끔은 약 한 알. 살아있는 자는 죽은 자의 주머니를 털며 내일을 산다.
그런데 이 시체는 아직 죽지 않았다.
먼지 쌓인 파편 사이로 손가락이 보였다. 여자 손이다. 손톱 밑은 시커멓게 썩어 있었고, 피부는 방사능 화상 특유의 붉은 반점과 물집으로 뒤덮여 있었다. 오염도가 임계점을 넘기고도 한참 지난 상태.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녹아내림' 직전이다. 보통은 이쯤 되면 의식도 없고,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손가락이 움직였다.
나는 쪼그려 앉아 파편을 들어올렸다. 콘크리트 조각이 무너지며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고, 그 아래서 여자가 나를 올려다봤다. 눈동자는 탁한 회색빛으로 흐려져 있었고, 입술은 갈라져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방사능에 그을려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고, 찢어진 방호복 사이로 드러난 왼쪽 옆구리엔 손바닥만 한 화상이 번지고 있었다. 상처 가장자리에서 진물이 흐르고, 살점이 푸르스름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아……."
여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 같았다. 성대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물러섰다. 재 구역에서 죽어가는 인간에게 다가가는 건 바보짓이다. 방사능 오염이 전염되는 건 아니지만, 죽기 직전의 인간은 예측 불가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당신의 식량을 빼앗을 수도 있고, 방사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손이 저절로 뻗어나갔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모른다. 동정? 웃기는 소리. 이 빌어먹을 폐허에서 동정은 가장 먼저 죽는 감정이다. 아마도 그 여자의 눈빛 때문이었을 거다. 탁한 회색 눈동자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살겠다는 의지. 혹은 그냥 반사적인 생존 본능.
내 손가락이 여자의 상처에 닿았다.
그 순간, 전류가 팔을 타고 흘러들었다.
아니, 전류가 아니다. 뭔가 더 뜨겁고, 더 끈적한 것이었다. 마치 혈관 속에 쇳물을 붓는 듯한 열기가 손끝에서 시작해 팔꿈치를 지나 어깨로, 어깨에서 심장으로, 심장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뭐……!"
나는 손을 떼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상처에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여자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던 진물이 내 손가락을 타고 흘러들었고, 동시에 푸르스름한 변색이 내 손등으로 번져왔다. 방사능 오염이 이동하고 있었다. 여자의 몸에서 내 몸으로.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썩어가는 성대로 낼 수 있는 최대치의, 갈라지고 찢어지는 비명. 그녀의 등이 활처럼 휘어졌고,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상처에서 거품이 일었다. 마치 끓는 물을 부은 것처럼 하얀 거품이 부글거리며 피어올랐다.
그리고 거품이 걷히자, 상처가 줄어들어 있었다.
손바닥만 하던 화상이 반으로 줄었고, 변색되었던 살점은 핑크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방사능 화상 특유의 시커먼 테두리가 옅어지고, 진물도 멎었다. 썩어가던 피부가 재생되고 있었다.
"이게……."
내 목소리가 떨렸다. 손등으로 번져온 푸르스름한 변색은 벌써 사라졌다. 대신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체온이 40도를 넘긴 것 같았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호흡은 가빠졌다.
그리고 하복부가 단단해졌다.
바지 앞섶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성기가 발기되어 속옷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성적 흥분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내 척추에 뜨거운 기름을 붓는 듯한, 통제 불가능한 충동. 뇌가 아연실색할 정도로 강렬한 욕망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여자가 나를 올려다봤다. 눈동자의 탁함이 조금 옅어져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바지 앞섶에 머물렀다가, 다시 내 얼굴로 올라왔다. 공포와 혼란, 그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 눈동자 속에서 뒤섞였다.
"뭘…… 한 거죠……."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져 있었다. 성대도 회복되고 있었다. 그녀는 팔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아직 힘이 없는지 팔꿈치가 후들거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옆구리에 다시 손을 댔다.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상처 부위를 손바닥 전체로 감쌌다.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열기가 상처에서 내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왔다. 여자의 몸에서 방사능이 흡수되어 내 혈관 속으로 녹아들었다. 상처가 더 줄어들었다. 여자의 호흡이 안정되었다.
그리고 내 성기는 더 단단해졌다.
나는 무릎을 꿇고 여자의 상처에 얼굴을 가져갔다. 가까이서 보니 아직 남은 화상이 선명했다. 피부는 여전히 붉게 부풀어 있었고, 가장자리는 딱지가 앉기 시작했다. 나는 혀를 내밀어 그 딱지에 댔다.
"그만……."
여자가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저항할 힘도, 도망칠 힘도 그녀에겐 없었다. 나는 그녀의 상처를 핥았다. 피와 진물, 그리고 방사능 입자가 섞인 체액이 혀끝에 닿았다.
그 맛은 형언할 수 없었다.
쇠 맛. 피 맛.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달콤함. 마치 굶주린 끝에 처음 먹는 음식처럼, 내 몸 전체가 그 체액을 갈구했다. 나는 상처에 입을 맞추고, 피와 진물을 빨아들였다. 내 혀가 그녀의 갈라진 피부를 핥을 때마다, 상처가 조금씩 아물었다.
동시에 내 몸의 반응은 폭발 직전이었다.
고환에서 정액이 차오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바지 안에서 성기가 욱신거렸고, 요도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조금 스며 나왔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상처에서 입을 떼었다. 여자의 옆구리는 이제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흉터만 남아 있었다.
"살려…… 주세요……."
여자가 속삭였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안도감, 그리고 정체 모를 남자에게 자신의 몸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나는 그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찢어진 방호복을 찢었다. 이미 너덜거리던 천은 쉽게 찢어졌고, 그녀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방사능 화상은 없었지만, 영양실조로 갈비뼈가 드러난 마른 몸이었다. 가슴은 작았고, 유두는 창백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모든 것이 성적 대상으로만 보였다.
발기된 성기가 바지를 밀어내며 완전히 드러났다. 귀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표면의 혈관이 꿈틀거렸다. 나는 그녀의 얼굴 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세웠다.
"입을 벌려."
내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짐승처럼 낮고, 갈라져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아래턱을 잡고 강제로 입을 벌렸다. 턱관절에서 뚝 소리가 났다. 그녀의 입 안은 말라 있었고, 혀는 하얗게 일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입에 성기를 밀어 넣었다.
여자의 목구멍에서 켁 하는 소리가 났다. 이빨이 귀두를 스치자 짜릿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고,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입 안은 건조했지만, 연구개 깊숙한 곳에서 침이 조금씩 고이고 있었다.
나는 골반을 앞으로 밀었다. 성기가 그녀의 입천장을 긁으며 목구멍 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여자의 구역 반사가 작동해 목이 수축했고, 그 근육의 압박이 귀두를 조였다. 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움직여. 혀로 핥아."
여자는 울먹이며 고개를 떨었지만, 내 손이 그녀의 머리를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혀가 마지못해 내 성기 밑면을 쓸었다. 거칠고 건조한 감촉.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요도가 꿈틀거렸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천천히 골반을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기가 그녀의 입술을 밀어내며 들어갔다 나왔다. 입술 가장자리에서 침이 거품처럼 흘러내렸다. 그녀의 눈은 충혈되었고,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숨을 쉬기 위해 필사적으로 코로 공기를 들이마셨지만, 내 성기가 목구멍을 막을 때마다 숨이 막혔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체액을 느꼈다.
침.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분비되는 점액. 그리고 그 안에 섞인 미량의 방사능 입자. 내 성기의 표면을 통해 그것들이 흡수되었다. 방사능이 혈관으로 스며들 때마다 쾌락이 폭발했다. 마치 성기 전체가 오르가즘을 느끼는 듯한, 전신을 관통하는 쾌감. 나는 허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읍…… 읍……."
여자의 신음이 내 성기를 진동시켰다. 그녀의 질에서 애액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와 굴욕 속에서도, 생존 본능은 성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뻗었다. 찢어진 방호복 아래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음모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손가락 두 개를 그녀의 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질벽이 내 손가락을 조였다. 뜨겁고, 질척했다. 그녀의 질은 경련하며 내 손가락을 더 깊이 빨아들였다. 나는 엄지로 음핵을 찾아 눌렀다. 작고 단단한 돌기가 손끝에 감지되었다. 그것을 문지르자 여자의 질이 강하게 수축했고, 동시에 그녀의 입이 내 성기를 더 세게 물었다.
"크……."
나는 신음과 함께 사정했다. 고환에서 정액이 급류처럼 치솟아 요도를 타고 분출되었다. 첫 번째 사정액이 그녀의 목구멍 깊숙한 곳에 부딪혔고, 두 번째, 세 번째 사정이 이어졌다. 그녀의 입 안 가득 정액이 차올랐고, 그녀는 숨을 쉬기 위해 필사적으로 삼켰다. 목울대가 움직이며 내 정액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성기를 천천히 빼냈다. 귀두 끝에서 정액이 실처럼 이어져 그녀의 입술에 걸렸다. 그녀는 기침을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입가에서 정액과 침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녀의 피부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방사능 화상의 붉은 반점이 얼굴에서 사라졌다. 갈라졌던 입술도 촉촉해졌고, 탁했던 눈동자는 흰자위가 깨끗해졌다. 오염도가 급감했다는 증거였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올려다봤다. 손톱 밑의 시커먼 썩음이 옅어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그녀가 나를 올려다봤다. 눈물은 마르고, 대신 생존자의 눈빛이 돌아와 있었다. 공포는 여전했지만, 그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그녀의 눈동자에서 빛났다. 기회를 잡으려는 계산기.
나는 바지를 추스르며 일어섰다. 정액의 끈적임이 허벅지 안쪽에 남아 있었고, 혈관 속에는 방금 흡수한 방사능이 잔류하는 듯한 발열감이 맴돌았다. 성기는 여전히 반쯤 발기되어 있었고, 유나의 체취가 내 콧속에 박혀 있었다. 땀, 질액, 그리고 그녀 특유의 살냄새가 후각을 과민하게 만들었다.
"이름이 뭐지."
"유나."
그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대답했다. 목소리는 아직 쉬어 있었지만, 생명력이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죽어가던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한 걸 설명할 생각은 없어. 나도 모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네 방사능 오염이 내 몸으로 옮겨갔고, 그 대가로 네가 살아났다."
유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찢어진 방호복으로 가슴을 가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뭔가가 빠르게 계산되는 게 보였다. 이 여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 능력…… 다른 사람에게도 통하나요."
"아직 몰라. 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지. 네 오염이 내 몸에 들어와도 나는 멀쩡해. 오히려……."
나는 말을 멈췄다. 체내에 흡수된 방사능이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다. 혈관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내 몸 구석구석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생물은 더 많은 체액을 요구했다.
"오히려 뭐요."
유나가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바지 앞섶에 잠시 머물렀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 시체를 뒤지던 폐건물 잔해. 콘크리트 파편과 부서진 가구들. 그리고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백골단의 순찰차였다.
"여기서 나가야 해. 백골단이 오기 전에."
"갈 곳이 있어요."
유나가 말했다. 그녀는 찢어진 방호복을 대충 여미며 일어섰다. 다리가 아직 후들거렸지만, 서 있을 수는 있었다.
"지하 방공호. 버려진 지 5년쯤 됐고, 입구가 무너진 건물에 가려져 있어서 백골단도 모르는 곳이에요. 나 혼자 쓰던 은신처인데……."
"조건이 뭐지."
유나가 씩 웃었다. 갈라진 입술이 벌어지며 핏방울이 맺혔다.
"당신의 능력. 그걸 나한테 계속 써주는 거예요. 방사능 정화. 나는 당신에게 정보를 줄게요. 이 도시의 모든 구역, 세력, 위험 요소. 나는 이 폐허의 지도를 머릿속에 다 가지고 있어요."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탁했던 회색 눈동자는 이제 맑은 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오염 정화가 시각 신경까지 회복시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갈색 눈동자 속에, 아까는 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반짝였다. 목걸이였다. 낡은 금속 펜던트에 새겨진 문양. 깨끗한 원형 안에 세 개의 선이 교차하는, 클린존의 상징.
"그 목걸이."
내 손이 그녀의 목으로 뻗어나갔다. 나는 한 걸음에 거리를 좁히고 그녀의 어깨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등이 콘크리트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유나는 움찔했지만 내 손이 이미 그녀의 목을 감싸쥐고 있었다. 엄지가 목젖을 눌렀다. 펜던트가 내 손바닥 안에서 차갑게 박혔다.
"클린존 출신이냐."
목을 조르는 힘에 유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두 손이 내 손목을 붙잡았지만, 나는 조금도 힘을 늦추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아뇨…… 주운……."
"거짓말."
나는 그녀의 목을 더 세게 졸랐다. 숨통이 막히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눈에 핏줄이 서고, 발끝이 바닥에서 들렸다.
"이 각인은 정화위원회 고급 간부만 가질 수 있어. 네 놈, 클린존에서 왔지. 지금 여기서 말하지 않으면, 내 능력이고 뭐고 없이 그냥 이대로 목을 부러뜨린다. 죽어가던 너를 살린 건 나지만, 쓸모없는 거짓말쟁이를 다시 죽이는 것도 내 몫이다."
유나의 눈동자에 진짜 공포가 떠올랐다. 아까 죽음의 문턱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른, 더 원초적인 공포. 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톱이 내 손등을 파고들었다.
"……맞아요…… 클린존……."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 새는 듯 갈라져 나왔다. 나는 손의 힘을 약간 풀었다. 유나가 기침을 토하며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목에는 내 손가락 자국이 붉게 새겨져 있었다.
"정화위원회…… 연구원이었어요. 나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어요."
"왜."
"그곳도…… 똑같으니까요. 겉만 깨끗할 뿐, 안은 이 폐허보다 더한 지옥이에요. 나는…… 그들이 하는 실험을 견딜 수 없었어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동정하지 않았다. 정보를 확인했을 뿐이다.
"좋아. 가자. 방공호로."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내 손이 그녀의 맨살에 닿자, 다시 미약한 열기가 흘러들었다. 아직 그녀의 몸에 잔류한 방사능이 내 체내로 이동하는 감각. 동시에 성기가 다시 꿈틀거렸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유나가 물었다. 그녀의 손이 내 팔을 붙잡았다. 단순한 지지 이상의 힘이 들어간 손아귀였다. 붙잡으려는 손길.
"진태한."
"기억할게요, 진태한. 당신은 나를 살렸고, 나는 당신에게 이 도시를 줄 거예요."
그녀의 눈동자에 다시 클린존 문양이 반사되었다. 석양빛을 받아 금속 펜던트가 붉게 빛났다. 나는 그 빛을 등지고, 유나를 이끌어 폐건물을 빠져나왔다.
---
방공호 입구는 정말로 감쪽같이 숨겨져 있었다. 무너진 쇼핑몰 지하 주차장 잔해 사이로, 쇳덩이와 콘크리트 파편을 헤치고 들어가자 녹슨 철제 해치가 나타났다. 유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해치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아직 떨리고 있었지만, 동작은 정확했다.
"여기예요. 지난 1년 동안 나 혼자 쓰던 곳이에요."
해치가 열리자 썩은 공기와 습기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유나를 먼저 들여보내고 따라 들어갔다. 해치를 닫자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잠시만."
유나가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자, 비상등이 파란빛으로 깜빡였다. 핵전쟁 이전 건물에 남아있던 축전지가 아직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공간이 드러났다. 생각보다 넓었다. 20평 남짓한 메인 룸에, 벽 쪽으로 녹슨 선반들이 늘어서 있었다. 구급상자, 물통 몇 개, 통조림 몇 개. 그리고 구석에는 낡은 매트리스 한 개.
"꽤 정리해뒀군."
"생존의 기본이잖아요."
유나는 선반에서 물통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물이 입가로 흘러내려 목을 타고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찢어진 방호복 사이로 그녀의 쇄골 라인이 드러났다. 방금 전까지 썩어가던 살덩어리였지만, 이제는 핑크빛 혈색이 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유나는 물통을 내려놓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상등의 파란빛이 반사되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나는 내 얼굴을 봤다. 굶주린 짐승의 얼굴이었다. 혈관 속 방사능이 아직도 꿈틀거리며 더 많은 체액을 요구하고 있었다.
"옷을 벗어."
유나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방호복을 벗었다. 찢어진 천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상반신이 완전히 드러났다. 영양실조로 마른 몸이었지만, 방사능 화상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옆구리에 남은 흉터만이 방금 전까지의 죽음의 흔적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흉터를 만졌다. 손가락 끝으로 새로 돋은 살갗의 감촉을 느꼈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방사능에 썩던 피부가 이렇게 회복된 것이다. 내 능력이 만들어낸 기적.
"진짜로…… 나았어요."
유나가 속삭였다. 그녀의 손이 내 손등을 덮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위로 올렸다. 왼쪽 가슴. 심장 바로 위.
"느껴져요?"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규칙적이고, 강했다. 죽기 직전의 인간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생명의 박동.
"네 심장은 내가 살린 거야."
나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유나가 짧은 신음을 흘렸다. 고통과 쾌락의 경계에서 나오는 소리. 그녀의 유두가 내 손바닥 아래서 단단해졌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유두를 비볐다. 그녀의 허리가 떨리고,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새어나왔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네 몸은 내 거야. 네 체액도, 네 정보도, 네 목숨도. 전부 내 수집품이야. 알겠어?"
유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좋아. 그럼 이제 정보를 내놔. 이 도시의 지도. 백골단의 거점. 클린존으로 가는 길.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나는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 물러섰다. 성기는 여전히 발기되어 바지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방사능의 금단 증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정보였다. 이 폐허에서 살아남고, 권력을 쥐기 위한 첫 번째 무기.
유나는 선반에서 낡은 노트 한 권을 꺼냈다. 표지는 때가 타고 찢어져 있었지만, 안쪽 페이지는 정교한 지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노트를 바닥에 펼쳤다.
"이게 재 구역이에요. 우리가 있는 곳. 그리고 여기……."
그녀의 손가락이 지도를 짚었다. 손가락은 아직 약간 떨리고 있었지만, 움직임은 정확했다.
"녹 구역. 백골단이 동부 전체를 장악하고 있어요. 거점은 옛 군수 공장. 수장은 '거미'라는 자인데, 오염 변이가 심해서 괴물에 가까운 상태래요. 그리고 거미 아래에 '미령'이라는 간부가 있어요. 군수 창고를 관리하는 여자. 냉혹하고, 전투 능력이 뛰어나대요."
"미령."
나는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유나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질투인가, 아니면 다른 감정인가.
"미령에 대해 더 말해봐."
"백골단 내에서도 오염도가 낮은 편이래요. 그래서 거미가 특히 아끼는…… 소유물이에요. 하지만 소문에 따르면 미령은 거미를 배신할 기회를 엿보고 있대요. 그 여자, 굴욕을 참으면서도 복수심이 엄청나대요."
"좋아."
나는 지도를 내려다봤다. 재 구역. 녹 구역. 그리고 그 위, 지도 가장자리에 깨끗하게 그려진 원형 지대. 클린존.
"클린존에 대해 말해봐. 네가 거기서 뭘 연구했는지."
유나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들은 방사능을 이용한 생체 실험을 하고 있어요. 나는 거기서 도망쳤고, 목걸이는 신분증 같은 거예요. 이게 없으면 클린존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어요."
"언젠가는 전부 말하게 될 거야.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유나는 고개를 들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까와 같은 공포의 눈물이 아니었다. 더 깊은, 오래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언젠가…… 말할게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제발."
나는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녀의 과거를 파헤치는 건 나중 일이다. 지금은 이 방공호를 거점으로 확보하고, 다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좋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다."
나는 매트리스를 그녀에게 밀어주고, 나는 반대쪽 벽에 기대 앉았다. 유나는 매트리스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그녀의 얇은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비상등을 껐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서 유나의 체취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땀, 질액, 그리고 그녀의 피부에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 방사능 정화 후에 남은 미량의 오염 입자가 그 냄새 속에 섞여 있었다. 내 후각은 그 입자들을 감지하고, 혈관 속 방사능이 다시 꿈틀거렸다.
성기가 아직도 발기되어 있었다. 나는 바지 위로 성기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으로 귀두를 문지르자 요도에서 투명한 액체가 스며 나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유나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잠든 것 같았다. 규칙적인 호흡.
하지만 그녀의 숨소리에는 미세한 불규칙성이 있었다. 잠든 척하는 인간의 호흡이었다. 그녀도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질에서 애액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의 몸도 나와 똑같은 금단 증상을 겪고 있을까. 방사능 정화의 대가로, 나에게 체액을 빼앗긴 대가로.
나는 성기를 움켜쥔 채로, 그녀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밤을 견뎠다.
그런데 견딜 수 없었다.
혈관 속 방사능이 점점 더 강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살아있는 기생충이 내 척추를 타고 뇌까지 파고드는 느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체온은 더 올라갔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등판을 적셨다. 성기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바지 앞섶을 밀어내고 있었고, 귀두 끝에서는 투명한 점액이 계속 흘러나왔다.
이건 단순한 발기가 아니었다. 금단 증상이었다. 방사능을 흡수한 대가로, 더 많은 체액을 갈구하는 신체의 반란.
"젠장……."
나는 이를 악물었다. 손으로 성기를 움켜쥐고 문질렀지만, 일시적인 위안일 뿐이었다. 오히려 더 강한 욕망이 치밀었다. 자위로는 해소되지 않는, 상대의 체액을 직접 흡수해야만 가라앉는 충동.
그때, 매트리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진태한 씨."
유나의 목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녀는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맨발이 콘크리트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금단 증상이죠. 나한테서 방사능을 흡수했으니까…… 그 반작용이에요. 클린존에서 봤어요. 오염 정화 능력자들은 전부 그런 부작용을 겪었어요. 성적 충동이 통제 불능이 되는……."
"알고 있었나."
"짐작했어요. 아까…… 내 입에 사정했을 때, 당신 눈빛이 평범하지 않았거든요."
유나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비상등의 파란빛이 그녀의 실루엣을 희미하게 비췄다. 그녀의 손이 내 바지 위로 올라왔다. 발기된 성기를 감싸쥐는 손길이었다.
"내가 도와줄게요. 어차피…… 당신이 내 목숨을 살렸으니까."
그녀는 내 바지를 벗겼다. 성기가 공기 중으로 튀어나왔다. 귀두는 검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표면의 혈관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유나는 잠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혀를 내밀어 귀두를 핥았다.
"크……."
전기가 통하는 듯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녀의 혀가 요도 입구를 파고들며 스며 나온 점액을 핥아냈다. 그녀의 침이 내 성기에 닿자, 거기 섞인 미량의 체액이 내 혈관으로 흡수되었다. 방사능이 조금 진정되는 느낌.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었다. 오히려 더 깊은 곳에서 더 강한 욕망이 끓어올랐다.
"더…… 안으로."
내 목소리는 짐승처럼 갈라져 있었다. 유나는 내 눈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녀의 입술이 귀두를 감싸고, 성기가 그녀의 입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따뜻하고, 축축했다. 그녀의 혀가 성기 밑면을 핥으며 귀두를 목구멍 쪽으로 안내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골반을 앞으로 밀었다. 성기가 그녀의 목구멍 깊숙이 박혔다. 유나의 구역 반사가 작동해 식도가 수축했고, 그 압박이 성기 전체를 조였다.
"좋아…… 그대로……."
나는 그녀의 머리를 붙잡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기가 그녀의 입술을 밀어내며 들어갔다 나왔다. 입술과 성기가 마찰할 때마다 침이 거품처럼 흘러내렸다. 그녀의 콧구멍이 벌름거리며 숨을 몰아쉬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정했다. 고환에서 정액이 치솟아 요도를 타고 분출되었다. 뜨거운 액체가 그녀의 목구멍 깊숙한 곳에 쏟아졌다. 유나는 필사적으로 삼켰다. 목울대가 움직이며 내 정액을 들이키는 소리가 방공호 안에 울렸다.
하지만 성기는 꺼지지 않았다.
사정 직후에도 발기는 유지되었다. 오히려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금단 증상은 정액 배출만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더 깊은, 더 직접적인 체액 교환이 필요했다. 나는 유나의 입에서 성기를 빼내며 그녀를 매트리스로 밀어붙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유나는 숨을 헐떡이며 매트리스에 쓰러졌다. 입가에는 정액과 침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충혈되었지만, 거기에는 공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상하게 뒤틀린 기대감. 그녀의 질에서 애액이 흘러내려 허벅지 안쪽을 적셨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무릎을 세웠다. 찢어진 방호복을 완전히 찢어내자 그녀의 하반신이 드러났다. 검은 음모 사이로 벌어진 질 입구가 붉게 젖어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그녀의 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까보다 더 뜨겁고, 더 질척했다. 질벽이 내 손가락을 조이며 더 깊이 빨아들였다.
"이미 이렇게 젖었어."
"당신…… 탓이에요……."
유나가 신음했다. 그녀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빼내고, 그녀의 질 입구에 귀두를 댔다. 뜨거운 열기와 질척한 애액이 귀두를 감쌌다. 나는 허리를 천천히 앞으로 밀었다. 귀두가 질 입구를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질벽이 성기 전체를 압박하며 조여왔다. 마치 빨아들이는 듯한 감각.
"아……!"
유나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그녀의 질이 경련하며 내 성기를 더 깊이 조였다. 나는 잠시 멈춰서 그 압박감을 즐겼다. 뜨겁고, 부드럽고, 질척한 살결이 성기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체액이 성기 표면을 통해 흡수되기 시작했다. 질벽에서 스며 나오는 애액, 점막의 분비물, 그리고 거기에 섞인 미량의 방사능 입자. 그것들이 내 혈관으로 빨려 들어오며 금단 증상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하지만 동시에, 더 강한 쾌락이 폭발했다.
"움직일게."
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붙잡고 천천히 허리를 빼냈다가 다시 밀어 넣었다. 성기가 질벽을 긁으며 들어갔다 나왔다. 마찰할 때마다 애액이 거품처럼 흘러내렸다. 유나의 질이 내 성기를 더 세게 조였고, 그녀의 음핵은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더…… 더 빨리……."
유나가 신음했다. 그녀의 손이 내 엉덩이를 붙잡고 더 깊이 끌어당겼다. 나는 허리의 속도를 높였다. 피스톤 운동이 빨라질수록, 두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방공호 안에 울려 퍼졌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 애액이 끈적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신음소리가 뒤섞였다.
"좋아…… 죽겠어……."
유나의 질이 강하게 수축했다. 오르가즘이었다. 그녀의 질벽이 내 성기를 쥐어짜듯 조였고, 그 압박에 나도 사정했다. 정액이 그녀의 질 깊숙한 곳에 쏟아졌다. 나는 허리를 더 깊이 밀어 넣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녀의 자궁 입구에 쏟아부었다.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위에 쓰러졌다. 성기는 아직 그녀의 질 안에 박혀 있었고, 질벽은 여전히 가볍게 경련하며 내 성기를 물고 있었다. 정액과 애액이 뒤섞여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렸다.
"이제…… 좀 진정됐어요?"
유나가 숨을 고르며 물었다. 그녀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쓸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녀의 질에서 성기를 빼냈다. 귀두가 질 입구를 빠져나오자, 흰 정액이 질 입구에서 흘러내렸다.
"일단은."
금단 증상은 가라앉았다. 혈관 속 방사능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날뛰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 옆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비상등의 파란빛이 콘크리트 천장에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고마워요."
유나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그녀를 돌아봤다.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오랜만에 느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체온이 전해졌다. 방사능 정화의 열기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의 체온.
---
새벽녘이었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다. 방공호에는 시계가 없었고, 지상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생체 리듬이 아침이 왔음을 알렸다.
그리고 그 직후, 방공호 해치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와 쇠파이프로 콘크리트를 두드리는 소리.
"백골단 순찰대다. 여기 누구 있는 거 다 안다."
유나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그녀의 눈이 어둠 속에서도 빛났다. 공포였다.
"어떻게…… 이 은신처는 아무도 몰랐는데……."
쾅. 쇠파이프가 해치를 때리는 소리. 녹슨 철판이 진동했다.
"열어라. 안 열면 폭약으로 날려버린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선반에서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유나는 내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싸우면 안 돼요. 백골단 순찰대는 최소 5명이에요. 당신 혼자선……."
"내 능력을 과소평가하는군."
나는 해치를 향해 걸어갔다.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치고, 왼손으로 해치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철제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계단 위에서, 방독면을 쓴 남자 다섯 명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두에 선 남자의 방독면 고글 너머로, 방사능 변이로 부풀어 오른 눈알이 보였다.
"오, 진짜 있었네.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남자가 유나를 보며 웃었다. 방독면 너머로 드러난 이빨이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여자는 깨끗해 보이는데. 수장님이 좋아하시겠어."
나는 쇠파이프를 단단히 쥐었다. 혈관 속 방사능이 꿈틀거리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마치 쇠파이프가 내 손에 녹아붙는 듯한 감각.
"마지막으로 묻지. 누구 허락 받고 이 구역에 들어왔냐."
나는 웃었다. 내 안의 방사능이 웃고 있었다.
"내 구역에 들어온 건 너희야."
쇠파이프가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