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아무것도 없었다.
7년째다. 종이를 만져도, 유리잔을 쥐어도, 내 손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왼손 검지로 금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더듬었다. 눈으로 보기엔 낡은 양피지. 거친 결. 가장자리가 닳아 올라간 흔적. 그러나 내 손가락은 그 모든 정보를 거부했다.
찢었다.
찢는 순간의 저항감조차 없었다. 시각 정보만 남았다. 페이지가 둘로 갈라졌다. 금지된 마법서의 마지막 장이 내 손에서 분리되었다. 찢긴 페이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소리도 없이, 감촉도 없이 양피지 조각이 돌바닥에 나부꼈다.
소환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지하 서고의 공기가 진동했다. 나는 그 진동을 피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냥 귀가 울렸다. 내장이 떨렸다. 촉각 없는 몸이 마법의 진동을 고막과 내장으로밖에 감지하지 못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빛이 사라졌을 때, 그가 서 있었다.
"엘리제 아슈발트."
목소리였다. 먼저 온 것은. 낮고, 약간 갈라진 음색이 내 이름을 굴렸다. 고개를 들었다. 소환진 중앙에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왔고, 눈은 짙은 회색이었다. 맨살의 등이 보였다. 등 전체에 푸른빛 문신이 가득했다. 문신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수십 개의 선이 겹쳐진 복잡한 패턴. 채무 문신이었다.
"카이우스 벨몬트."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조절했다.
그가 미소 지었다. 입꼬리만 올라가는, 온기가 없는 웃음이었다. "그래요. 감각의 채무자 카이우스 벨몬트. 당신이 나를 불렀소."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돌바닥에 울렸다. 맨발이었다. 발목에도 문신이 감겨 있었다.
"거래를 제안하겠소."
그가 말했다. 내 앞에 멈춰 섰다. 키가 나보다 한 뼘은 더 컸다. 고개를 약간 숙여 나를 내려다보았다. 숨결이 느껴졌다. 아니, 느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그냥 공기의 흐름이었다. 온도 감각조차 없이 나는 그의 숨결을 '추측'했다.
"당신이 내 감각을 느끼는 동안, 나는 당신의 감정을 가져가겠소."
그의 손이 올라왔다. 길고 마른 손가락이 내 뺨 앞에서 멈췄다. 닿지 않았다. 닿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 손의 열기를 상상했다. 7년간 잊고 살았던 상상이었다.
"계약의 첫 단계는 촉각 공유요. 당신은 나를 통해 촉각을 느끼고, 나는 당신의 감정을 첫 번째 할부로 가져간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감정을 가져가면 어떻게 되는 거죠."
"처음엔 가벼운 무감각이 찾아오겠지. 분노, 슬픔, 두려움 같은 날것의 감정들이 좀 무뎌질 거요. 계약이 깊어지면... 더 많은 걸 가져가게 되겠지만."
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회색 홍채 안에서 푸른빛이 스쳤다. 채무 문신과 같은 색이었다.
"두려우시오?"
"아니요."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조차 7년 동안 무뎌져 있었다. 감각을 잃으면서 감정도 함께 마모되었다. 기쁨도, 슬픔도, 공포도, 모든 것이 희미했다. 마치 유리벽 너머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만질 수 없고, 닿을 수 없고, 그저 관찰만 하는 존재.
그게 내가 이 계약을 원한 이유였다.
"계약을 체결하겠소?"
그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로 향했다. 손금이 깊게 패인 손.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나는 그 손을 보았다. 7년 만에 처음으로 타인의 체온을 느낄 기회였다.
내 손을 올렸다.
닿기 전 1센티미터. 그 짧은 거리에서 나는 망설였다. 촉각 없는 손이 그의 손 위에 떠 있었다. 닿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말로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이 계약마저 실패하면.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을 채웠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불이 붙었다.
"아—!"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 목소리라고 믿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내지 않은 소리였다. 생것이었다. 짐승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마른 피부. 굳은살. 약간 거친 손톱 가장자리. 손가락 마디의 뼈. 손등의 핏줄이 뛰는 감각.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무릎이 꺾였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손을 놓칠까 봐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손가락에 힘을 줬다. 그의 뼈가 내 손아귀 안에서 눌리는 감각이 또 한 번 전기처럼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내 손바닥에 땀이 났다. 축축하고 끈적이는 감촉. 땀. 내가 흘리는 땀의 감촉을 7년 만에 느꼈다.
"처음이라 그렇소."
그가 무릎을 굽혀 내 눈높이에 맞췄다. 아직도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미세한 경련이 지나갔다.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내 감정을 첫 할부로 가져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금세 사라졌다.
"7년 동안 촉각이 없었다고 들었소. 감각 신경이 퇴화하지 않았다면, 반응이 좀... 과격할 수도 있겠지."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코로 들이쉰 공기가 차가웠다. 그의 손이 뜨거웠다.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손. 두 감각이 내 몸 안에서 충돌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 박동이 손끝까지 전해졌다. 그의 맥박도 느껴졌다. 내 맥박과 그의 맥박이 손가락 사이에서 뒤엉켰다.
그가 나를 바닥에서 끌어올렸다.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나는 비틀거리며 그에게 기댔다. 그의 가슴에 어깨가 닿았다. 옷 너머로 체온이 전해졌다. 단단한 근육. 숨 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흉곽. 그의 심장 소리가 내 쇄골을 통해 전해졌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숨결이 귓바퀴를 스쳤다. 그 감촉에 내 허벅지 안쪽이 경련했다. 질 근육이 수축했다. 7년 동안 잊고 있던 신체 반응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희게 질렸다. 동시에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 감정을 삼키는 중이었다.
"더 느끼고 싶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가 내 손을 놓았다. 상실감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신음이라고 생각했다. 입에서 나온 소리는 울음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내 손목을 잡았다. 손목 안쪽, 피부가 가장 얇은 곳. 그의 엄지가 내 맥박 위에 올라왔다. 맥박이 그의 지문을 통해 증폭되어 돌아왔다.
"여기."
그가 내 손목을 입가로 가져갔다. 입술이 손목 안쪽에 닿았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입술의 감촉. 부드럽고 약간 갈라진 입술. 뜨거운 입김. 그의 혀끝이 내 피부를 스쳤다. 타액의 미끈거림. 그 작은 접촉이 내 전신을 관통했다. 유두가 옷 안에서 딱딱하게 굳었다. 브래지어 안감에 쓸리는 감각마저 7년 만에 느꼈다. 나는 헐떡이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회색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충격과 굶주림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군."
그가 내 손목에 입술을 댄 채로 중얼거렸다. 입술의 진동이 내 혈관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졌다.
"무서우시오?"
"아니요."
이번에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무서움 같은 건 없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더 원초적인 것이었다. 7년 동안 굶주렸던 감각의 허기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명치 밑에서부터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왔다.
그가 내 손목을 놓고, 이번에는 내 허리에 손을 올렸다. 얇은 실크 드레스 너머로 그의 손바닥 열기가 스며들었다. 허리 둘레를 감싸 쥐는 손. 엄지가 갈비뼈 아래를 눌렀다.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어깨 근육이 손바닥 안에서 움직였다. 살아 있는 살덩이의 탄력.
"계약의 첫 단계는 보통 여기까지요."
그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더."
내 목소리는 명령이 아니라 애원이었다.
"더 느끼게 해주세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회색 홍채 안에서 푸른빛이 더 강하게 빛났다. "감정을 가져가는 대가가 더 커질 텐데."
"상관없어요."
나는 그의 손을 잡아 내 가슴 위로 올렸다. 그의 손바닥이 내 왼쪽 가슴을 덮었다. 심장 바로 위. 드레스와 브래지어 너머로 그의 체온이 유방에 스며들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너무 뜨거웠다. 너무 생생했다. 그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엄지가 유두 위를 스쳤다. 나는 그의 가슴에 이마를 박고 신음했다. 질벽이 경련했다. 애액이 스며 나왔다. 팬티가 젖어드는 감촉이 허벅지 안쪽에 번졌다.
"더."
나는 다시 말했다. 그의 손을 내 배 아래로 끌어내렸다. 드레스가 구겨졌다. 그의 손가락이 치골 위에 닿았다.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아 더 아래로 눌렀다. 다리 사이. 천 너머로 음부의 열기가 그의 손바닥에 닿았다.
"여기."
내가 말했다. "여기를 만져주세요."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천 위로 음순의 윤곽을 따라 쓸었다. 나는 허리를 들썩였다. 그의 손바닥에 음부가 더 강하게 밀착되었다. 손가락이 균열 사이를 눌렀다. 애액이 천을 적셔 그의 손가락에 스며들었다. 질 입구가 손가락의 압력에 반응해 열렸다.
"7년 만의 촉각이 이런 식으로 돌아오다니."
그가 낮게 웃었다. 손가락이 내 팬티 안으로 파고들었다. 천이 벗겨지고 맨살이 드러났다. 그의 검지가 음순 사이를 갈랐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질 점막에 직접 닿는 손가락의 감촉. 점막의 끈적임. 주름진 질벽이 손가락을 감쌌다. 너무 강렬해서 눈앞이 하얘졌다. 동시에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턱이 굳어졌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내 감정을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질이 손가락을 물었소."
그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손가락이 천천히 질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첫 번째 마디. 두 번째 마디. 질벽이 이물감에 경련하며 손가락을 조였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숨을 헐떡였다. 질 안에서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전류가 척추를 타고 올라갔다. 그의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내 감정이 그를 통과하며 그의 호흡을 흔들었다. 그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의 동공이 확장되고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마치 내 감정의 빛이 그의 눈 안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의 성기가 바지 안에서 단단하게 발기하며 내 배에 닿았다.
"느껴지시오?"
"네, 네, 네..."
내 목소리는 이미 울음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질벽을 긁었다. 손톱이 점막을 스치는 미세한 통증마저 나는 느꼈다. 통증조차 7년 만이었다. 질 안에서 손가락이 굽어졌다. G스팟을 눌렀다. 나는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오르가즘이 임박했다. 하복부가 뜨거워졌다. 자궁이 수축했다. 질벽이 그의 손가락을 더 세게 조였다.
"가져가겠소."
그가 말했다. 동시에 그의 손가락이 질 안에서 더 깊이 밀려 들어왔다. 나는 절정에 도달했다. 오르가즘이 전신을 강타했다. 질벽이 손가락을 격렬하게 조였다 풀었다. 애액이 손바닥을 적셨다. 나는 소리쳤다. 너무 오랫동안 내지 못했던 소리였다. 울부짖음이었다. 동시에 무언가 내 안에서 뜯겨 나갔다. 명치 밑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뿌리째 뽑혀 나가는 감각이었다. 분노, 슬픔, 두려움 같은 것들이 그의 손가락을 통해 빨려 들어갔다. 그 자리에 차가운 공허가 스며들었다.
카이우스가 숨을 멈췄다. 그의 등에 새겨진 문신 중 한 줄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리고 옅어졌다. 그의 목에서 굵은 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 감정을 삼키는 소리였다. 그의 성기가 바지 안에서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내 감정이 그를 먹여 살리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의 품에 쓰러졌다. 질 안에 아직 그의 손가락이 박혀 있었다. 오르가즘의 여운이 하복부에 잔물결처럼 번졌다.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옷감에 스며든 그의 땀 냄새가 났다. 7년 만에 맡는 타인의 냄새였다.
그가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질벽이 마지막까지 손가락을 놓지 않으려 조이는 바람에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그의 손가락은 내 애액으로 젖어 반들거렸다.
"첫 계약이 이렇게 격렬할 줄은 몰랐소."
그가 젖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투명한 점액이 다리를 놓았다.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아 그 손가락을 내 입으로 가져갔다. 입술을 벌려 손가락을 빨았다. 내 질액 맛이 혀에 퍼졌다. 짭짤하고 약간 비릿한 맛. 그의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내 체액의 온도. 나는 눈을 감고 그의 손가락을 더 깊이 빨았다.
"이런."
그가 낮게 신음했다. 그의 성기가 바지 위로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성기를 만졌다. 바지 너머로 단단하게 발기한 음경의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단추를 풀었다. 그의 성기가 튀어나왔다. 나는 처음으로 타인의 성기를 만졌다. 7년 만의 촉각으로.
표피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아래의 해면체는 단단했다. 귀두는 붉게 충혈되어 반들거렸다. 나는 손가락으로 귀두를 감쌌다. 요도구에서 스며 나온 투명한 점액이 손가락에 묻었다. 그의 성기가 내 손바닥 안에서 꿈틀거렸다.
"엘리제."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약간 잠겼다. 나는 그의 성기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훑었다. 포피가 뒤로 밀려 귀두가 완전히 드러났다. 나는 귀두를 엄지로 문질렀다. 점막의 미끈거림. 체온. 심장 박동이 성기까지 전해져 손바닥에 펄스를 전달했다.
"당신의 감각을 느끼는 동안, 내 감정을 가져간다고 했죠."
내가 말했다. 그의 성기를 계속 쥔 채로.
"그럼 이것도 가져가세요."
나는 그의 성기를 내 입으로 가져갔다. 입술을 벌려 귀두를 삼켰다. 혀끝으로 요도구를 핥았다. 그의 체액 맛이 혀에 퍼졌다. 나는 그의 성기를 목구멍까지 밀어 넣었다. 구역질 반사가 일어났다. 목구멍이 수축하며 성기를 조였다. 그 불쾌한 구역질마저 나는 느꼈다. 7년 만의 감각이었다. 불쾌감조차 감각의 회복이었다. 나는 그 역설에 눈물을 흘리며 더 깊이 받아들였다. 목구멍이 경련할 때마다 질벽도 함께 수축했다. 구역질 반사가 일어날 때마다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7년 전, 촉각을 잃던 그날. 마법 실험실의 폭발 속에서 나는 비명을 지르려 입을 벌렸지만 연기만이 목구멍을 가득 채웠다. 그때의 질식은 나를 짓눌렀지만, 지금 이 살덩이를 내 의지로 삼키는 순간은 달랐다. 그날의 무력감이 입 안에서 부서져 내렸다. 나는 더 깊이, 더 강하게 그의 성기를 빨았다. 7년 전의 기억을, 지금 이 순간의 선택으로 지워버리려는 듯이.
"제길."
그가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나는 고개를 앞뒤로 움직이며 그의 성기를 빨았다. 입 안 가득 찬 살덩이의 감촉. 혀끝으로 핏줄을 더듬었다. 그의 성기가 입 안에서 더 단단해졌다. 사정이 임박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더 빠르게 머리를 움직였다. 그의 성기가 목구멍 깊숙이 박혔다. 목젖이 성기에 눌렸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는 그 감각마저 음미하며 삼켰다. 그날의 질식은 빼앗긴 것이었지만, 지금의 질식은 내가 삼키는 것이었다. 그 차이가 나를 울렸다.
그가 내 머리를 붙잡고 허리를 움직였다. 성기가 내 입 안에서 격렬하게 피스톤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턱을 벌리고 받아들였다. 질벽이 아직도 경련하고 있었다. 입 안의 성기와 질 안의 허기가 동시에 나를 관통했다.
그가 사정했다. 정액이 목구멍 뒤쪽으로 쏟아졌다.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나는 삼켰다. 정액의 비릿한 맛이 입안에 남았다. 그의 성기가 입 안에서 마지막으로 꿈틀거리며 잔여 정액을 토해냈다.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그의 성기는 아직도 반쯤 발기한 채로 있었다. 나는 손으로 그것을 닦았다. 내 침과 그의 정액이 뒤섞여 손가락 사이에서 반들거렸다.
그가 무릎을 굽혀 내 눈높이에 맞췄다. "당신은 정말 굶주렸군. 7년 동안."
"그래요."
나는 인정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제부터 흐르기 시작했는지 몰랐다. 눈물의 온도가 따뜻했다. 7년 만에 느끼는 내 눈물의 온도였다.
그가 손을 내밀어 내 눈물을 닦았다. 젖은 손가락이 내 뺨을 쓸었다. 눈물의 감촉이 그의 손가락을 통해 다시 나에게 전해졌다.
"여긴 아직도 따뜻하군."
그가 내 손목 안쪽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엄지가 맥박 위를 쓸었다. 나는 그 부위가 유난히 따뜻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피부보다 더 뜨거웠다. 마치 그곳만이 내 몸에서 완전히 죽지 않은 마지막 감각의 불씨인 것처럼.
"무슨 뜻이죠?"
"나중에 알게 될 거요."
그가 내 손목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맥박을 계속 눌렀다. 나는 그의 손을 내 허벅지 위로 끌어올렸다. 다리 사이, 아직도 젖어 있는 음부 위에 그의 손을 올렸다.
"계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알고 있소."
그의 손가락이 다시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두 개였다. 검지와 중지가 질벽을 벌리고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나는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질 안에서 그의 손가락이 교차하며 벌어졌다. 질벽이 늘어나는 감각. 나는 신음했다. 허리를 그의 손에 맞춰 움직였다. 그의 손바닥이 음핵을 눌렀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이번엔 천천히."
그가 말했다. 손가락이 질 안에서 느리게 회전했다. 질벽의 모든 주름이 그의 지문에 스캔되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오르가즘이 천천히 쌓여갔다. 이전보다 더 깊고, 더 느리고, 더 파괴적인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밤새도록 나는 그의 손을 놓지 못했다. 손가락이 질 안에 박힌 채로 나는 잠들었다. 촉각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그의 체온이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 그가 내 안에 손가락을 넣은 채로 나는 7년 만에 처음으로 타인의 온기를 느끼며 잠들었다.
잠들기 직전, 그의 손가락이 질벽을 살짝 긁었다. 나는 신음하며 허리를 움찔거렸다. 의식이 가라앉는 경계에서, 처음으로 꿈이 찾아왔다. 7년 동안 나는 꿈조차 꾸지 못했었다. 감각 없는 자에게 꿈은 사치였다. 그러나 지금, 질 안에 박힌 그의 손가락이 꿈을 밀어 넣었다. 어둠 속에서 인두가 달궈지는 꿈이었다. 쇠가 빨갛게 타오르고, 누군가의 등에 닿기 직전에 나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등은 내 등이 아니었다. 문신이 새겨진 남자의 등이었다. 나는 꿈속에서 카이우스의 등을 보고 있었다.
—
새벽이었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손의 온기였다. 아직도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깍지 낀 채로 얽혀 있었다. 나는 안도했다.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나는 알아챘다.
내 손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이 그의 것이 아니었다.
차가운 철창. 손목을 묶는 쇠사슬. 살갗이 타는 냄새. 인두가 등에 닿는 충격.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
"으윽—!"
나는 그의 손을 놓았다. 그러나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누군가의 비명이 내 목구멍을 통해 터져 나왔다. 내 비명이 아니었다. 남자의 비명이었다. 젊은 남자. 카이우스의 목소리였다.
철장. 고문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감각을 포기해라, 카이우스 벨몬트."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그의 손을 놓았는데도 기억은 계속 밀려왔다. 7년 전 누군가가 그를 고문했다. 감각을 대가로 요구했다. 그의 등에 새겨진 채무 문신은 그때 시작된 것이었다.
"카이우스."
내가 불렀다. 그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회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내 기억이 스며들었군."
"이게... 당신이 겪은 일이에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기억이 더 강하게 밀려왔다. 인두가 피부를 지지는 감각. 살이 타는 냄새. 그리고— 그의 목소리. 고문받으면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젊은 카이우스의 목소리.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 순간, 인두의 열기가 내 등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마치 내 살이 타는 듯한 환각. 나는 비명을 삼켰다. 이것은 그의 기억일 뿐만 아니라, 내 기억과도 닮아 있었다. 7년 전, 나도 무언가에 감각을 빼앗겼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흐릿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기억이 내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인두가 피부를 지지는 감각과 동시에, 내 손끝에서 감각이 사라지던 그날의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두 개의 상실이 내 안에서 공명했다. 그의 고문과 나의 상실이 같은 불로 타올랐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울었다. 그의 고통이 내 것이 되었다. 7년 동안 나는 내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타인의 고통이 내 몸을 찢었다.
그때, 등에서 진짜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숨을 멈췄다. 처음에는 환각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피부가 달아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인두가 내 등을 지지는 것처럼, 피부 세포 하나하나가 열을 발산했다. 나는 손을 등 뒤로 돌려 만져보았다. 손가락 끝에 닿은 피부는 멀쩡했다. 그러나 열기는 점점 더 강해졌다. 겉으로는 아무 상처도 없는데, 안쪽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감각이었다. 카이우스의 기억이 내 몸에 실체를 갖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등에 화상 자국이 생기려는 걸까. 아니면 그의 문신이 내 피부에 전염되려는 걸까.
탑 밖에서 날카로운 마법 경보음이 울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푸른 마법진이 떠올랐다. 감각 심의회의 문양이었다. 정찰 마법진. 누군가가 우리 계약을 감지했다.
그리고 마법진 중앙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갑고, 오래된 분노가 서린 목소리.
"엘리제 아슈발트. 네가 마침내 금기를 깨뜨렸구나."
다리우스 크로우의 목소리였다.
"나는 너를 구하지 못한 그날을 아직 기억한다. 이번에는... 네 감각을 완전히 거둬주마."
마법진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며 탑 전체를 감쌌다. 방어 마법이 강제로 해제되었다. 탑의 벽이 진동했다. 유리 표면에 금이 갔다.
카이우스가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두 번째 계약을 서둘러야겠군."
그의 눈이 푸른빛으로 타올랐다. 동시에 내 등에서 열기가 더 강해졌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 손가락 끝이 닿은 피부 위로, 희미하게 솟아오른 무늬가 만져졌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옅었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채무 문신의 첫 획이 내 등에 새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