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옥상 철문을 열자 빗줄기가 사선으로 밀려들었다. 태오의 뒷모습이 난간에 기댄 채 보였다. 검은 우산도 없이 서 있는 그의 어깨가 비에 젖어 더 좁아 보였다.

"와."

짧은 한마디에 태오가 돌아섰다. 빗물이 그의 이마를 타고 눈썹 끝에서 맺혔다. 평소 같으면 지체 없이 손수건을 꺼냈을 그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걸 보며 직감했다. 이건 예고된 퇴장이다.

"정재원 씨, 앞으로 나와의 모든 업무는 공식 채널로만. 사적인 접촉은 절대 금지야."

빗소리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음 낮았다. 나는 그의 오른손 검지를 봤다. 바지 주름을 따라 살짝 구부러진 손가락. 회의 중 '낙원'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보인 그 떨림이 지금은 없다. 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거다.

"또 밀어내려고?"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빗줄기 사이로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네 방식이야? 모르는 척, 거리 두기, 완벽한 상사로 돌아가기? 그게 네가 8년 동안 갈고닦은 생존법인 거 알아. 근데 이번엔 안 통해."

한 걸음 다가갔다. 태오의 눈동자가 내 어깨 너머 철문 쪽으로 순간 움직였다. 누군가 올까 봐 확인하는 버릇. 인사팀 불문율, 공개된 장소에서는 제3자가 있어야 한다는 그 규칙을 그가 먼저 의식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 위험해."

태오가 내 팔뚝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비에 젖은 손가락이 내 피부에 닿자 날카로운 떨림이 올라왔다.

"그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쪽이라면."

"내 아버지."

처음이었다. 태오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온 건. 강필두. 8년 전 여름, 낙원 마을 태오의 집 창고.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술에 취한 채 내게 다가오던 그 남자의 숨 냄새, 태오가 달려들며 외치던 비명,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태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그 빈방의 적막을.

"내가 알게 된 것만으로도 넌 이미 표적이야."

태오의 손이 내 팔에서 떨어졌다. 빗물이 그의 손등에 고여 손가락 마디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니까 거리를 둬. 이건 부탁이 아니라 통보다."

그가 돌아서서 철문 쪽으로 걸어갔다. 빗소리가 순간 귀를 먹먹하게 울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분노가 가슴을 짓눌러 호흡이 가빠졌다. 손끝이 저릿하게 떨려 주먹을 쥐었다. 통보? 웃기지 마. 네가 나한테 통보할 자격이 어디 있어. 8년간 내 사진 모으고, 내 군번 조회하고, 내가 퇴사한 회사 상사까지 알아보면서. 그게 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그럼 왜 그 수첩 구석에는 '그를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 내가 파괴되는 한이 있어도'라고 적어놓은 거야.

나는 젖은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었다. 아침에 하민정이 슬쩍 건네준 메모지가 아직 거기 있었다. '윤정아 실장이 당신 과거 조사하고 있어요. 낙원이란 지명도 나왔대요. 조심하세요.'

빗속에서 혼자 웃었다. 조심하라고? 나는 이미 한참 전에 조심할 단계를 지나왔어.

---

오후 3시, 인사팀 사무실.

"정재원 씨, 잠시 회의실로."

윤정아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듯 정확히 업무 톤이었다. 그러나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를 때 오른쪽 눈썹이 0.5초 정도 늦게 올라간다는 걸. 미세한 경멸의 신호였다.

회의실 문을 닫자 윤정아가 태블릿을 탁자 위에 밀었다. 화면에는 내 입사 지원서와 함께 몇 장의 사진이 떠 있었다. 낙원 마을 방파제, 폐업한 수영장, 그리고 태오의 집 골목.

"인사팀 신입 검증 과정에서 좀 특이한 이력이 발견됐네요."

그녀가 태블릿을 한 번 더 터치했다. 이번에는 내가 2년 전 다녔던 회사의 퇴사 사유서가 떴다. '상사와의 부적절한 관계 및 갈등'.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 상사가 일방적으로 집착하며 내게 불이익을 줬고, 나는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나온 거였다. 그런데 서류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서린그룹 인사팀은 구성원의 도덕성과 대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요.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수습 기간 연장 혹은 계약 해지 사유가 될 수도 있고요."

윤정아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그녀의 입술에만 머물렀다. 눈가에는 전혀 닿지 않은.

"물론 팀장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지는 모르지만, 강태오 팀장은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분이 아니니까. 공정하게 처리하시겠죠."

순간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태오와의 관계를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줄 알고 있다. 아니, 그보다 더 깊다. 그녀는 태오가 내게 보이는 그 미세한 균열들, 회의 중 시선 처리, 엘리베이터에서의 손끝 떨림 같은 것들을 이미 눈치챈 거다. 그리고 그걸 용납할 수 없는 거다.

"윤 실장님."

나는 태블릿을 그녀 쪽으로 다시 밀었다.

"이 서류가 조작됐다는 증거는 이미 확보했어요. 전 직장 상사가 저에게 일방적으로 집착하며 인사 불이익을 줬고, 그 과정에서 작성된 허위 보고서예요. 필요하시면 당시 동료들의 진술서와 노동청 진정 기록을 제출할 수도 있고요."

윤정아의 눈썹이 이번에는 양쪽 동시에 올라갔다. 놀람. 그리고 곧바로 분노로 바뀌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인사팀 비서실장이 특정 직원의 사생활을 무단 조회하고, 허위 자료를 인사 평가에 반영하려 한 시도 자체가 서린그룹 윤리 규정 위반이에요. 이 태블릿의 접속 기록만 추적해도 누가, 언제, 어떤 파일을 열람했는지 다 나오겠죠."

나는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전 팀장님하고의 관계 같은 걸로 이득 보려는 사람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한테 당하고 있을 사람도 아니고."

윤정아의 입가에 걸렸던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가 태블릿을 집어 들며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 서류는 이미 팀장님 결재가 끝난 건이에요."

내 걸음이 멈췄다.

"당신 퇴사 사유서 말이에요. 어제 강태오 팀장이 직접 결재했어요. '확인 완료, 이상 없음'이라고. 그러니까 당신이 뭘 제출하든, 이미 공식 문서로 채택된 후예요."

그녀가 천천히 일어섰다.

"팀장님이 당신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죠. 아니면, 당신을 더 깊이 묻어버리려는 의도거나."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손끝이 떨렸다. 윤정아의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돌았다. 태오가 결재했다고? 거짓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태오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남자니까. 나를 회사에서 내보내는 것조차,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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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김성호를 다시 찾아갔다.

보안실은 형광등 불빛 아래 푸르스름한 모니터 빛으로 가득했다. 성호는 내가 들어서자 담배를 비벼 끄며 일어섰다.

"또 왔군."

"강필두에 대해 알아야 해요. 전부 다."

성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서랍에서 낡은 파일 하나를 꺼냈다.

"네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걸 들으면 넌 아마 괴로워질 거다."

"이미 괴로워요. 모르는 게 더 괴로워요."

성호가 파일을 펼쳤다. 경찰 기록, 병원 진단서, 그리고 낡은 사진 몇 장. 사진 속에는 피투성이가 된 10대 태오의 얼굴이 있었다.

"그날 밤, 낙원 창고에서 있었던 일은 네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심각했다."

성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강필두는 원래 너를 목표로 한 게 아니었어. 그는 태오를 무릎 꿇리는 방법을 찾고 있었고, 태오가 가장 아끼는 존재가 너라는 걸 알고 있었지. 그래서 너를 통해 아들을 다시 통제하려고 했던 거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8년 전 그날 밤, 창고 안 어둠 속에서 내게 다가오던 강필두의 그림자. 그리고 나를 등 뒤로 밀치며 아버지에게 달려든 태오의 몸짓.

"태오는 그날 밤 아버지와 격투를 벌였고, 강필두는 쇠파이프로 태오의 옆구리를 내리쳤다. 갈비뼈 세 개가 부러졌고, 비장이 파열됐어. 병원에 실려가면서도 태오가 계속 말한 건 네 이름이었대. '재원이는 건드리지 마, 재원이한테는 절대'라고."

성호가 담배를 다시 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아직 입원 중이던 태오는 강필두의 협박 편지를 받았어. '그 녀석 다시 찾아가겠다. 이번에는 확실하게'라는 내용이었지. 태오는 그 편지를 받고 붕대를 푼 채로 병원을 뛰쳐나갔어. 그리고 너한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거야."

"왜... 왜 말 안 한 거예요. 나한테."

"네가 그날 밤 창고에서 겪을 뻔한 일을 알면, 널 떠날 거라고 생각했대."

성호의 눈이 모니터 불빛에 반사됐다.

"태오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게 하나 있었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 때문에 다친다는 거.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네가 위험해지자마자 그는 자기 확신을 굳혔지. 그리고 널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떠나는 거라고 믿었어."

파일 속 마지막 페이지에는 태오의 친필 메모가 끼워져 있었다. 혈흔이 묻은 종이에 삐뚤게 써내려간 글씨.

'재원이를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내 모든 걸 걸겠다. 그 전에 나는 강해져야 한다. 아버지에게 맞서 싸울 수 있을 만큼, 재원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나는 그 메모를 손에 쥔 채 눈을 감았다. 태오의 8년이 보였다. 완벽한 통제와 냉철함으로 무장한 인사팀장의 가면 아래, 아직도 10대 소년의 피 묻은 손을 쥐고 있는 남자. 나를 지킨다는 이유로 나를 밀어내고, 나를 사랑한다는 감정조차 죄책감으로 뒤틀어버린 남자.

"김 과장님."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태오 지금 어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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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더 거세졌다.

태오의 집은 서린그룹에서 차로 15분 거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였다. 내가 초인종을 누르자 인터폰 너머로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어떻게 여길."

태오는 셔츠 차림이었다. 넥타이는 풀려 있었고, 소매는 팔꿈치까지 접혀 올라가 있었다. 그의 왼쪽 옆구리, 셔츠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오래된 흉터가 보였다. 갈비뼈 수술 자리였다.

"들어가도 돼요?"

내가 물었지만 이미 신발을 벗고 있었다. 태오가 내 팔을 잡았다.

"안 돼. 돌아가."

"왜요. 여기가 가장 안전하다면서요."

태오의 눈이 커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성호에게 받은 메모를 꺼내 들었다. 혈흔이 묻은 종이, 8년 전 태오의 글씨.

"나 다 알아요.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네가 사라졌는지, 그리고 지금 네 아버지가 뭘 하고 있는지도."

태오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나는 그 틈에 현관으로 들어섰다. 빗물이 내 머리카락을 타고 목덜미로 흘러내렸다.

"너한테 말할 기회를 줬어요. 1화에서도, 2화에서도, 3화에서도. 네가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재원아."

"듣기 싫어요. 이제 내가 말할 차례야."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태오의 셔츠 깃이 빗물에 젖어 목선을 따라 달라붙어 있었다.

"네가 날 지키겠다고 떠난 거 알아. 네 아버지가 날 해치려고 한 것도, 네가 그걸 막다가 다친 것도 다 알아. 근데 그게 왜 네 결정이어야 했어? 왜 나는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던 거야?"

"네가... 네가 알게 되면."

태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네가 알게 되면, 그날 밤 내 아버지가 너에게 하려던 짓을 알면, 나까지 증오할 거라고 생각했어."

"바보."

내 손이 태오의 뺨을 감쌌다. 차가운 피부, 그러나 그 아래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내가 널 증오할 수 있을 것 같아? 8년 동안 네가 나를 얼마나 집요하게 지켜봤는지 다 아는 나한테?"

태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오른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놓으려는 건지, 더 세게 잡으려는 건지 알 수 없는 힘으로.

"왜 도망치지 않았어."

태오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분노와 욕망이 뒤섞인, 억눌러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새어 나오는 소리.

"왜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거야."

그가 나를 벽으로 밀쳤다. 등이 현관 벽에 부딪히면서 숨이 탁 막혔다. 태오의 얼굴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의 눈동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전히 통제를 잃은 짐승의 것이었다.

"네가 먼저였어."

내가 말했다. 숨이 차올랐다.

"날 놓지 못한 건 너야. 8년 동안 내 사진 모으고, 내 군번까지 알아내고, 내 퇴사한 회사 상사한테까지 손 쓴 건 너였잖아."

태오의 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나는 그의 오른손 검지를 봤다. 떨리고 있었다. 이제는 숨길 수도 없을 만큼.

"네 수첩 봤어. '그를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 내가 파괴되는 한이 있어도'라고 써놨더라."

태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완벽한 가면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밀어내려고 해? 네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니까? 또 나 혼자 도망가라고?"

내 손이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이미 풀려 있던 넥타이가 내 손에 감겼다.

"이번에는 안 통해. 나도 네가 선택한 거고, 나도 널 선택했어. 그러니까 책임져."

태오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

8년 만의 입맞춤이었다.

낙원 마을 창고에서의 첫 키스는 서툴고 더뎠다. 서로의 숨 냄새와 입술의 온도에 놀라며, 이게 맞는 건지 확인하듯 살짝 닿았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태오의 혀가 내 입술을 밀고 들어왔다. 거칠고 직선적이었다. 그의 손이 내 젖은 머리카락을 움켜쥐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숨 쉴 틈도 없이 깊숙이 파고드는 혀. 나는 그의 넥타이를 붙잡은 채로 그대로 당겨 안았다. 태오의 몸이 내 몸에 밀착됐다. 젖은 셔츠 사이로 그의 체온이 전해졌다. 뜨거웠다.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던 그 남자의 몸이 이렇게까지 뜨거울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재원아."

태오가 내 입술을 떼고 내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절반쯤 신음에 가까웠다.

"나 이제 못 멈춰."

"멈추지 마."

내가 그의 셔츠 단추를 잡아당겼다. 단추 하나가 떨어져 나가 바닥에 굴러갔다. 태오의 가슴이 드러났다. 왼쪽 옆구리, 갈비뼈를 따라 길게 이어진 흉터가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그 울퉁불퉁한 자국을 더듬었다. 살이 아물며 봉합된 자리가 손끝에 걸렸다. 딱딱하게 굳은 켈로이드 조직이 규칙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여기 아직도 아파?"

"아니. 이제 안 아파."

태오가 내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위로 올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갈비뼈 바로 아래에서 쿵쿵 울리는 박동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런데 여기는 아파. 너 보면 항상."

나는 몸을 일으켜 그의 흉터에 입을 맞췄다. 입술에 닿는 울퉁불퉁한 피부, 소독약 냄새와 태오의 체취가 뒤섞인 감각. 혀를 내밀어 흉터 라인을 따라 천천히 핥았다. 땀의 짠맛과 비누의 잔향이 혀끝에 맴돌았다. 태오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재원아, 진짜 마지막 기회야."

그가 내 어깨를 다시 벽 쪽으로 밀었다. 그의 눈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금 돌아가면, 나는 다시 널 모르는 척할 수 있어. 그게 너를 지키는 일이니까."

"그리고 내가 안 가면?"

태오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땐 절대 못 놔줘. 내 아버지가 널 해치려고 해도, 내가 파괴돼도, 널 내 옆에 묶어둘 거야."

나는 웃었다. 내가 원하던 게 바로 그거였다.

"그럼 묶어둬."

내가 그의 벨트 버클을 풀었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태오의 손이 내 셔츠를 잡아당겼다. 단추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갔다. 그의 손바닥이 내 맨살을 타고 올라왔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내 젖꼭지를 스쳤다. 거친 피부결이 예민한 돌기 위를 긁고 지나가자 척추를 타고 오르는 날카로운 쾌감에 내 허리가 반사적으로 들렸다.

"여전히 예민하네."

태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엄지가 내 젖꼭지 주변을 원을 그리며 문질렀다. 지문의 마디마디가 유두 가장자리를 스칠 때마다 피부가 오그라들었다. 유두가 단단하게 솟아올랐다. 나는 숨을 참으려고 했지만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닥쳐."

내가 이를 악물고 말했지만 목소리가 이미 풀려 있었다. 태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낯선 표정. 내가 알던 강태오는 절대 이런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무너지고 있었다. 그를 지탱하던 모든 통제의 기둥이.

그의 입술이 내 목을 따라 내려왔다. 쇄골을 핥고, 가슴 중앙을 따라 혀가 움직였다. 젖은 피부 위로 그의 숨결이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 태오의 혀가 내 왼쪽 유두를 감쌌다. 뜨겁고 부드러운 혀의 표면이 젖꼭지 끝을 빨아들였다. 침이 유두 주변을 적시고, 그가 입술로 살짝 압력을 가할 때마다 젖은 피부가 공기에 닿아 차갑게 식었다.

"아..."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태오의 혀가 더 강하게 내 유두를 압박했다. 빨고, 핥고, 살짝 깨물었다. 치아가 단단해진 살을 스칠 때마다 내 성기가 바지 안에서 더 팽창했다. 나는 벽에 기댄 채로 다리가 풀리는 걸 느꼈다.

"여기 서 있기 힘들어."

"참아."

태오의 손이 내 바지 지퍼를 내렸다. 바지와 속옷이 한꺼번에 발목까지 밀려 내려갔다. 차가운 공기가 내 발기된 성기에 닿았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돌렸지만 태오의 손이 내 턱을 잡아 다시 자신을 향하게 했다.

"보여줘. 나한테 숨기지 마."

그의 눈이 내 성기를 응시했다. 나는 이미 완전히 발기해 있었다. 귀두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스며 나와 허벅지로 흘러내렸다. 점성이 있는 액체가 피부를 타고 천천히 번지는 감각이 선명했다. 태오의 손가락이 내 성기를 감쌌다. 그의 손은 내 것보다 컸다. 손가락 마디가 내 성기 뿌리부터 귀두까지 천천히 움직였다. 마른 손바닥이 팽팽하게 당겨진 피부를 쓸어내리자 마찰열이 올라왔다.

"8년 동안 이 순간만 생각했어."

태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의 엄지가 내 귀두를 문질렀다. 애액이 손가락에 묻어 반짝였다. 귀두구를 막고 있던 투명한 점액이 엄지손가락 전체로 퍼졌다.

"네가 다른 사람한테 이러는 상상만 해도 미칠 것 같았어."

"그래서 그렇게 내 주변을 감시한 거야?"

내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태오의 손이 내 성기를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손바닥이 내 성기 전체를 감싸고 위아래로 미끄러졌다. 피부와 피부가 마찰되는 소리, 애액이 섞여 끈적이는 소리가 조용한 현관에 울렸다.

"감시가 아니라... 지키는 거였어."

태오가 내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그의 숨결이 내 귓바퀴를 타고 파고들었다. 뜨거운 입김이 귓속으로 밀려 들어오자 고막이 간지럽게 울렸다.

"네가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을 조사했어. 네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진료 기록을 확인했어. 네가 퇴근하고 편의점에서 뭘 사는지까지 다 알고 있었어."

"그게 지키는 거야, 집착이야?"

"둘 다야."

태오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입이 내 성기에 가까워졌다. 뜨거운 입김이 귀두를 감쌌다. 나는 숨을 멈췄다. 태오의 혀가 내 귀두를 핥았다. 혀 표면의 미세한 돌기가 귀두의 예민한 점막을 긁었다. 짧고 거친 혀의 감촉이 내 성기 전체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신음했다.

"태오야..."

그의 입이 내 성기를 삼켰다. 따뜻하고 축축한 구강이 내 성기 전체를 감쌌다. 섭씨 37도의 체온과 점막의 촉촉함이 성기를 압박했다. 태오의 혀가 내 성기 밑부분을 따라 움직이고, 입술이 귀두를 조였다. 그의 입천장이 내 귀두를 눌렀다가 혀가 요도구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태오의 입이 내 성기를 더 깊이 빨아들였다. 구강의 압력이 강해지면서 내 성기 뿌리까지 쾌감이 퍼졌다.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성기가 밀려 들어가자 연구개가 귀두를 감싸 조였다.

"너무... 깊어..."

내가 간신히 말했다. 태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그의 입술이 내 성기를 문 채로 눈이 마주쳤다. 충혈된 눈동자, 입가로 흘러내린 침과 애액이 섞인 액체,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이성이 사라진 채 욕망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눈빛에 완전히 압도됐다. 지금껏 내가 알던 강태오는 없었다. 여기 있는 건 8년간 나를 갈망해온 한 남자뿐이었다.

태오가 입을 떼고 일어섰다. 그의 바지도 이미 젖어 있었다. 짙은 회색 면바지 위로 그의 발기된 성기 형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내가 손을 뻗어 그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그의 성기가 튀어나왔다. 내 것보다 굵고 길었다. 귀두는 이미 보라색으로 변할 만큼 충혈되어 있었고, 성기 전체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너도... 나만큼 참은 거야?"

내가 그의 성기를 손으로 감싸며 물었다. 태오의 성기가 내 손 안에서 뜨겁게 뛰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맥박이 내 심장 박동과 겹쳐졌다.

"아니."

태오가 내 손목을 잡아 자신의 성기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내 몸을 들어 올려 현관 벽에 밀착시켰다. 내 다리가 그의 허리에 감겼다.

"나는 더 참았어."

그의 성기 끝이 내 항문에 닿았다. 뜨겁고 단단한 귀두가 수축된 괄약근을 눌렀다. 나는 긴장으로 몸이 굳어졌다. 태오가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아파도 참지 마. 말해. 그러면 늦출게."

"...들어와."

내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태오의 성기가 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괄약근이 그의 성기 굵기에 맞춰 벌어졌다. 근육이 찢어질 듯이 늘어나는 통증과 함께 내 안이 가득 차는 감각. 직장 벽이 이물질을 밀어내려 수축했지만, 성기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으... 아..."

내 신음이 현관에 울렸다. 태오가 잠시 멈췄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땀방울이 그의 눈썹을 타고 내 볼로 떨어졌다.

"더 갈까?"

"...기다리지 마."

내가 다리로 그의 허리를 조이며 말했다. 태오의 성기가 내 안에서 더 깊이 밀려 들어왔다. 내 직장 벽이 그의 성기 모양을 따라 늘어났다. 이물감과 충만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태오의 성기가 내 전립선을 스치자 전립선이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듯 수축하며 쾌감이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여기야?"

태오가 내 반응을 읽고 그 지점을 다시 밀었다. 나는 비명을 삼키며 그의 등을 할퀴었다. 손톱이 그의 견갑골 사이를 긁으며 붉은 자국을 남겼다.

"거기... 거기 계속..."

태오의 성기가 규칙적으로 내 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리게, 그리고 점점 더 빠르게. 그의 골반이 내 엉덩이에 부딪힐 때마다 젖은 피부가 마찰되는 소리가 났다. 땀과 성적 분비물 냄새가 현관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의 성기가 직장 벽을 쓸어내릴 때마다 점막이 타는 듯한 마찰열이 올라왔다.

"8년 동안... 얼마나..."

태오가 내 목에 입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그의 성기가 내 안에서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질퍽거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렸다. 애액과 직장 분비물이 섞여 그의 성기를 윤활하고, 삽입할 때마다 공기가 밀려 들어가며 소리가 났다.

"얼마나... 널 원했는지 몰라."

그의 손이 내 성기를 다시 감쌌다. 내 성기는 이미 절정 직전이었다. 태오의 손이 내 성기를 쥐고 내 안을 찌르는 리듬에 맞춰 움직였다. 손바닥이 귀두를 비비고, 손가락이 성기 기둥을 압박했다. 이중의 쾌감에 내 시야가 하얘졌다.

"나... 나 곧..."

"괜찮아. 가도 돼."

태오의 목소리가 내 귀에 닿자마자 절정이 터졌다. 내 성기에서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하얀 액체가 내 배와 태오의 셔츠를 적셨다. 오르가즘의 파도가 온몸을 휩쓸었다. 내 항문이 경련하며 태오의 성기를 조였다. 직장 벽이 리드미컬하게 수축하며 그의 성기를 압박했다.

"재원아..."

태오가 내 이름을 부르며 마지막으로 깊이 찔렀다. 그의 성기가 내 안에서 부풀어 오르더니 뜨거운 정액이 내 직장 안으로 쏟아졌다. 그의 사정이 내 안을 가득 채우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정액의 온기가 직장 벽을 타고 퍼져나갔다. 태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태오의 성기가 내 안에서 천천히 식어갔다. 그의 숨소리가 내 목덜미에 닿았다. 빗소리는 여전히 창밖을 두드리고 있었다.

"재원아."

태오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대답했다.

"응."

"무서웠어."

태오의 손이 내 등을 감쌌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네가 나를 미워할까 봐. 그날 밤 내 아버지가 너에게 하려던 짓을 알면... 나까지 증오할까 봐."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어깨에 닿는 그의 얼굴이 뜨거웠다. 눈물이었다. 완벽한 통제의 남자가, 냉철한 인사팀장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내가 그의 등을 쓸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 왔어. 그게 내 대답이야."

태오의 팔이 내 몸을 더 세게 조였다. 우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젖은 옷과 흘러내린 체액이 뒤섞인 채로, 서로의 체온만이 유일한 온기였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빗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태오의 심장 소리가 내 가슴에 전해졌다. 평온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완전한 평온.

그때였다.

진동음이 울렸다. 태오의 바지 주머니에서 떨어진 핸드폰이 바닥에 떨며 화면이 켜졌다.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발신자: 알 수 없는 번호.

태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방금 전까지의 무방비한 감정이 사라지고, 내가 익숙한 그 차가운 가면이 다시 그의 얼굴을 덮었다. 그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메시지를 읽었다.

'내일 회사로 찾아가마. 네가 가장 아끼는 걸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군.'

태오가 일어섰다.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밀어냈다.

"재원아, 옷 입어."

"...뭐?"

"당장 널 여기서 내보낼 거야."

태오의 목소리는 이미 예전의 그 팀장이었다. 차갑고, 통제된, 감정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핸드폰 화면에는 아직도 그 메시지가 떠 있었다. 강필두의 마지막 문장이, 마치 승리를 선언하듯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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