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렸다. 나는 손에 쥔 메모를 등 뒤로 감추며 숨을 멈췄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이 어둠 속에서 상대방에게도 들릴 것만 같았다.
복도 불빛을 등에 업고 들어선 건 태오가 아니었다.
"어? 아직 근무 중이신가?"
야간 경비원이었다. 회색 유니폼을 입은 중년 남자가 손전등을 내 얼굴 쪽으로 비추었다. 나는 얼른 메모를 바지 뒷주머니에 밀어 넣고 책상 위 아무 서류나 집어 들었다.
"아, 네. 신입인데 업무 파악이 늦어서요."
"아이고, 열정이 대단하시네. 그런데 이 층은 10시 이후에 소등 들어가니까 30분 안에 정리하셔야 합니다."
"곧 갈게요."
경비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복도 저편으로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숨을 쉬지 않았다. 손바닥이 젖었다. 인사팀의 불문율을 떠올렸다. 개인사는 무기다, 절대 먼저 드러내지 않는다. 방금 내가 한 짓은 그 규칙의 정반대편에 있었다. 팀장실에 무단 침입해 개인 서랍을 뒤졌다. 들키면 끝이다. 입사 3일차 신입이 팀장 비밀을 훔쳐본 죄목으로 잘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서랍에서 나머지 서류들을 꺼내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했다. 입사 지원서 사본, '승인' 도장, 그리고 그 옆에 적힌 짧은 메모.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진기 플래시가 어둠을 찢을 때마다 내 그림자가 벽에 비쳤다가 사라졌다. 서류들을 원래 순서대로 정리해 서랍을 닫았다. 태오의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만지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했다.
마지막으로 방을 훑었다. 이상 무.
복도로 나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 계단으로 내려갔다. 한 층 한 층 발소리를 죽이며 걸었다. 12층, 11층, 10층. 계단참에 멈춰 서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촬영한 사진을 확대했다. 떨리는 화면 속에서 태오의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위험. 내가 위험이라고? 아니면 이 상황 자체가?
나는 계단 난간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태오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완벽한 가면 밑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승인했는지, 무슨 감정으로 저 메모를 썼는지.
집에 돌아와서도 잠들 수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그 문장을 곱씹었다. 태오가 인사팀장으로서 신입 채용에 최종 승인권을 가진 건 알고 있었다. 내 지원서를 보고도 그가 승인 도장을 찍었다는 뜻이다. 나와의 재회가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어쩔 수 없었다'는 무슨 의미일까.
태오 같은 인간이 진짜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빠질 리가 없다. 그가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은 결국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이다.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내가 그의 시야 안에 들어오길 원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할 수 없어서 '위험'이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어둠 속에서 화면 불빛만이 내 표정을 비추었다. 지금 내 입가에 번진 이 감정은 뭐지. 분노인가, 통쾌함인가. 아니면 8년 동안 묵혀둔 집착이 드디어 상대에게서도 확인되었다는 안도감인가.
태오. 네가 먼저였잖아. 나를 놓지 못한 건 너였어.
잠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노려 내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는 척하며 시선은 태오의 방 쪽에 고정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의 책상. 서랍은 닫혀 있었다. 어젯밤 내 흔적을 눈치챘을까. 그가 특별히 무언가를 확인하는 기색은 없었다. 8시 45분, 정확히 예정된 시간에 태오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모니터 너머로 그를 훑었다.
짙은 네이비 수트, 흰 셔츠, 검은 넥타이.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어제와 똑같은 완벽한 상사의 얼굴.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그의 왼손 집게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미세하게 떨린다는 걸. 회의 중 '낙원'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1초 정도 시선이 허공에 멈춘다는 걸. 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옥상으로 사라진다는 것도.
점심시간 직후였다. 태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10초 정도 간격을 두고 따라나섰다. 그가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 계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역시 옥상이다.
계단 입구에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따라 올라가면 들킬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태오의 무방비한 뒷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나는 구두를 벗어 들고 맨발로 철제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랐다. 발바닥에 차가운 철판 감촉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옥상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나는 벽에 붙어 숨을 죽였다. 틈새로 태오의 등이 보였다.
그는 난간에 기대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넥타이가 펄럭였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한 손으로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셔츠 첫 단추가 열렸다. 쇄골이 살짝 드러났다. 나는 그 작은 피부 조각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8년 전 그 여름밤, 그의 쇄골에 입을 맞추던 감촉이 갑자기 혀끝에 되살아났다.
태오는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15분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옆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건 피로와 무언가를 참는 듯한 경직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핸드폰에 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눌렀다. 증거를 남기는 건 위험했다. 하지만 내 망막에는 이미 각인되었다. 이건 내 머릿속에만 저장된 이미지다. 나만 볼 수 있는, 나만 아는 태오의 민낯.
그가 몸을 돌리기 직전에 나는 먼저 계단을 내려왔다. 심장이 뛰었다. 내가 지금 스토킹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 이건 관찰이다. 그가 나를 8년 동안 지켜봤다면, 나도 그를 관찰할 권리가 있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 논리가 성립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윤정아와 마주쳤다.
"정재원 씨, 점심 드셨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내 온몸을 훑고 있었다. 내 구두에 묻은 옥상 바닥의 먼지, 평소보다 약간 빨라진 호흡, 바람에 흐트러진 앞머리. 그녀가 그런 디테일을 놓칠 리 없었다.
"네, 이제 막 식사하고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요? 구내식당에서 못 본 것 같은데."
"오늘은 밖에서 사 먹었어요."
윤정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미소 뒤에 뭔가가 숨어 있었다. 그녀는 태오의 일정과 공식 커뮤니케이션을 관리하는 비서실장이다. 태오가 옥상에 가는 습관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올라갔다 내려온 경로를 그녀가 눈치챘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팀장님 동선이랑 겹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재원 씨. 신입이 너무 눈에 띄면 곤란하니까."
그녀가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지나갔다. 가벼운 접촉이었지만 경고였다. 너를 주시하고 있다. 네 움직임을 알고 있다.
나는 그녀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태오를 둘러싼 정보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세간의 소문으로만 알던 게 아니라 이제 직접 피부로 느꼈다. 윤정아는 그 네트워크의 게이트키퍼였고, 나는 그녀가 경계하는 유일한 변수였다.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하민정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조용히 물었다.
"재원 씨, 괜찮아요? 얼굴이 좀 상기됐네."
"괜찮아요. 밖에 바람이 좀 세서."
"아, 옥상 바람요?"
하민정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지만 모든 걸 알고 있는 타입이었다. 인사팀 내 모든 인간관계를 꿰뚫는 정보통. 그녀가 내게 호의를 보이는 건 순수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팀 내 권력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지켜보는 관찰자의 시선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아니요, 그냥 건물 밖이요."
나는 짧게 답하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하민정이 더 묻지 않고 자기 업무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신경 쓰였다.
오후 내내 태오의 동선을 관찰했다. 3시 정각, 그가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까 마시던 커피를 덜어낸 걸 보면 점심 후 한 번, 오후에 한 번, 매일 두 차례 옥상을 찾는 듯했다. 퇴근 무렵에는 지하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갔다. 나는 그의 뒤를 밟지 않았다. 윤정아의 경고가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대신 내일을 기약했다. 그가 지하 주차장에서 어떤 구역에 머무는지, 왜 하필 그곳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왔다.
이틀째 되던 날 오후, 태오가 외부 미팅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 그의 사무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나는 이미 청소용역 직원이 오후 4시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사실을 파악해두었다. 4시 10분, 청소 직원이 카트를 밀고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 직후였다.
나는 주변을 확인하고 태오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제 그 서랍을 열었다. 여전히 잠금 장치는 걸려 있지 않았다. 태오가 아직 내 침입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서류들 아래 깔린 얇은 가죽 수첩을 발견했다. 검은색, 손때가 묻어 낡은, 자주 펼쳐봤다는 증거. 이걸 왜 첫날에 못 봤을까. 서류 더미 밑에 완전히 숨겨져 있어서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았던 거다.
가죽 수첩을 들어 올렸다. 손끝이 저릿했다. 표지를 열었다. 첫 페이지에 적힌 날짜는 8년 전, 그가 사라지고 3개월 후였다.
*2016년 10월 12일* *재원이 대학 도서관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했다. 창가 자리, 여섯 번째 테이블. 검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 패딩은 내가 선물한 게 아니었다. 누가 사줬을까.*
*201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재원이 후배 여자애랑 카페에 있었다. 웃고 있었다. 내가 없는 곳에서. 견딜 수 없었다. 카페 유리창 밖에서 한 시간 동안 서 있었다. 그 애는 재원이 웃을 때 왼쪽 볼에 보조개가 생긴다는 걸 몰랐다. 나는 안다.*
*2017년 3월 2일* *재원이 군대에 갔다. 논산 훈련소. 5주 뒤에 수료식이 있다. 갈 수 없다. 내가 나타나면 모든 계획이 무너진다. 사진만 받기로 했다. 정보원에게 50만원을 송금했다.*
*2018년 6월 7일* *재원이 전역했다. 더 어깨가 넓어졌다.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는 모습을 봤다.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두 대나 피웠다. 손이 떨려서 라이터를 세 번이나 켰다.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돌아갈 자격이 없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록은 더 집요해졌다. 내 전 직장 동료 이름, 내가 즐겨 가는 식당,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의 인적사항, 심지어 내가 어느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지까지 적혀 있었다. 사진도 여러 장 붙어 있었다. 멀리서 찍은 내 모습들. 길을 걷는 뒷모습, 카페에서 책 읽는 옆모습, 편의점 앞에서 친구와 웃는 모습.
*2019년 11월 3일* *재원이 감기에 걸렸다. 약국에서 약을 사는 걸 봤다. 내가 직접 약을 지어주고 싶었다. 예전처럼, 감기 걸릴 때마다 내가 죽을 끓여줬던 것처럼.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 나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약을 건넬 수 있나.*
*2020년 5월 15일* *재원이 퇴사했다. 이유를 알아봤다. 상사와의 갈등. 그 상사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가 재원에게 어떤 피해를 줬는지 자세한 내역이 필요하다.*
*2021년 9월 20일* *재원의 이력서가 우리 회사 인사팀에 접수되었다. 내 앞으로 배정되었다. 그의 이름을 본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8년 만에 내 책상 위에 그의 이름이 올라왔다.*
*위험하다. 그를 가까이 두는 건 나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폭발을 끌어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승인 도장을 찍었다. 재원아, 나는 아직도 너를.*
마지막 문장은 끝맺지 못하고 잉크가 번져 있었다. 거기서 펜이 멈췄는지, 아니면 눈물이나 다른 액체가 떨어져 번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수첩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분노인가, 통쾌함인가, 서글픔인가. 구분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태오, 너는.
너는 8년 동안 나를 이렇게 지켜본 거야. 나를 위험하다고 규정하면서, 나를 통제권 안에 두려고 모든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게 네 방식이었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이 모든 기록이, 이 집요한 관찰이, 결국 네가 나를 포기하지 못했다는 증거잖아. 그런데 왜 한 번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지. 왜 그 여름밤, 내 몸이 아직도 기억하는 그 순간에 도망쳐서 8년 동안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던 거야.
나는 수첩을 닫고 일어섰다. 그대로 태오의 방을 나와 내 자리로 돌아왔다. 가죽 수첩을 내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태오가 이걸 찾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내가 이 수첩을 봤다는 사실 자체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개인 칸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변기 뚜껑에 걸터앉아 숨을 골랐다. 수첩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오늘도 웃고 있었다. 내가 없는 곳에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문장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손끝이 저릿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 성기가 바지 안에서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귀두가 속옷 천에 눌려 자국이 날 정도로 단단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8년 전 그 여름밤, 태오가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안해.*
그날 밤 우리는 태오의 집 창고에 있었다. 낙원 마을 변두리, 태오의 집 뒤편에 있는 작은 창고. 골판지 상자와 오래된 낚시 도구들이 쌓여 있고, 곰팡내와 바다 냄새가 뒤섞인 공간. 우리는 태오 아버지의 술병을 몰래 훔쳐 마셨다. 열아홉, 막 성인이 된 여름이었다.
소주 두 병을 비웠을 때쯤 태오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그에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여름 밤의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선풍기 하나가 고장 난 날개를 덜컥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재원아."
태오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반짝였다. 무언가를 삼키는 듯한 표정.
"왜."
내 대답이 짧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태오가 내게 다가왔다. 그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뜨거웠다. 소주 때문만은 아닌 온도였다.
"오래 참았어."
그가 속삭였다. 그의 엄지가 내 입술을 스쳤다. 나는 숨을 멈췄다. 몸 전체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뭘."
"이런 거."
태오가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부드러웠다가 곧 거칠어졌다. 그의 혀가 내 입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소주 맛과 태오 특유의 체취가 뒤섞였다. 나는 그의 셔츠를 붙잡았다. 손가락이 천을 움켜쥐었다. 무릎에서 힘이 풀렸다.
그의 손이 내 티셔츠 밑으로 파고들었다. 손바닥이 내 옆구리를 쓸었다. 나는 신음 소리를 삼켰다. 그의 손길이 내 가슴으로 올라왔다. 엄지가 내 유두를 스쳤다. 그 작은 마찰에 내 성기가 반응했다. 바지 앞부분이 불편하게 당겨졌다.
"태오야..."
내 목소리가 떨렸다.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인 떨림이었다.
"말하지 마."
그가 내 목에 입을 맞추었다. 쇄골을 따라 혀가 지나갔다. 젖은 감촉이 피부에 남았다. 그의 이빨이 내 어깨를 살짝 깨물었다. 통증과 쾌감이 동시에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내 성기가 완전히 발기했다. 바지 안에서 단단하게 솟아올라 천을 밀어 올렸다.
나는 그의 벨트 버클을 더듬어 찾았다. 손가락이 떨려서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금속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렸다. 태오가 내 손을 잡았다. 그가 직접 벨트를 풀었다. 지퍼 내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의 바지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의 속옷 위로 성기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성기를 만졌다. 천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함과 열기. 내 손바닥 안에서 그의 성기가 꿈틀거렸다. 귀두 부분이 젖어 있었다. 투명한 애액이 속옷을 적셨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젖은 부분을 문질렀다.
"하아..."
태오의 입에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그의 손도 내 바지로 내려왔다.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 내 성기가 밖으로 노출되었다. 완전히 발기한 내 성기를 그의 손이 감쌌다. 손바닥의 굳은살이 민감한 피부에 마찰되었다. 나는 허리를 들썩였다. 그의 손이 내 성기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귀두에서 나온 애액이 손바닥에 묻어 움직임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렸다.
"너도 이랬어?"
내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뭘."
"나를... 이런 식으로 만지고 싶었던 거."
태오는 대답 대신 내 성기를 더 세게 쥐었다. 엄지로 귀두 아래 민감한 부분을 압박했다. 나는 신음했다. 정액이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이 고환에서부터 올라왔다.
"매일."
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매일 밤 너를 생각하면서 자위했어. 네가 내 옆에서 자고 있을 때도, 네가 샤워하는 소리를 들을 때도. 너는 몰랐겠지만."
그의 고백에 내 성기가 더 단단해졌다. 나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더 빨리, 더 세게 움직여 달라는 신호였다. 그의 손이 속도를 높였다. 손바닥과 내 성기 사이에서 점액 소리가 났다.
"나도... 나도였어."
내가 말했다. 숨이 차서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너 몰래... 네 옷 냄새 맡으면서... 네 침대에서..."
태오의 눈이 커졌다. 그가 내 성기를 놓고 나를 바닥으로 밀었다. 골판지 상자들이 쓰러졌다. 그 위에 내 등이 닿았다. 그가 내 위로 올라왔다. 그의 성기가 내 허벅지에 닿았다. 뜨겁고 단단했다. 귀두가 내 피부에 애액을 묻혔다.
그가 내 바지를 완전히 벗겼다. 다리 사이로 그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내 항문 입구를 그의 손가락이 더듬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그의 손가락 끝이 조심스럽게 입구를 눌렀다. 타액을 묻혀 천천히 밀어 넣었다.
"아..."
이물감에 내 몸이 긴장했다. 항문이 그의 손가락을 조였다.
"힘 빼."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 그의 손가락이 더 깊이 들어왔다. 내 안에서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벽을 더듬으며 공간을 넓혔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왔다. 세 개. 내 항문이 그의 손가락을 물고 늘어졌다. 충만감과 함께 타는 듯한 열기가 내 안에서 퍼져나갔다.
"들어가겠다."
그가 말했다. 그의 성기가 내 항문 입구에 닿았다.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의 성기는 내 기억보다 훨씬 컸다. 길이는 스무 살 초반의 혈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미 완전히 성숙한 남성의 것이었다. 내 허벅지 안쪽에 닿았을 때 배꼽 근처까지 올라오는 길이였다. 굵기는 내 손목보다 굵어서 한 손으로 다 감싸쥐기 어려울 정도였다. 표면은 불끈 솟은 핏줄이 성기 뿌리부터 귀두 아래까지 구불구불하게 돋아나 있었고, 그 핏줄 하나하나가 맥박 치며 꿈틀거렸다. 귀두는 검붉은 색으로 벗겨져 있었고, 단단하게 팽창해 반들거렸다. 귀두 끝의 요도구에서는 이미 투명한 애액이 끈적하게 흘러내려 내 항문 입구에 떨어졌다. 성기 전체가 열기로 달아올라 내 피부에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그가 골반을 밀어붙였다. 귀두의 선단이 내 입구를 비집고 들어왔다. 근육이 찢어질 듯이 팽창하는 감각. 나는 비명을 삼켰다. 내 항문이 그의 귀두를 물었다. 1센티미터, 2센티미터. 귀두 전체가 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성기 굵기가 내 안을 가득 채웠다. 뜨거운 살덩어리가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내 항문이 최대한 벌어져 그의 귀두를 삼켰다. 근육이 그의 성기 표면에 난 핏줄 하나하나의 윤곽을 느낄 정도로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태오가 멈추었다.
그의 몸 전체가 굳었다. 그의 성기가 내 입구에서 빠져나왔다. 귀두가 빠질 때 내 항문이 경련했다. 나는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일그러져 있었다.
"미안해."
그가 말했다.
"뭐가..."
"미안해, 재원아."
그가 내 위에서 물러났다. 바지를 급하게 입었다. 벨트도 제대로 매지 않고 일어섰다. 그의 등이 창고 문 쪽으로 향했다.
"태오야!"
내가 불렀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여름 밤의 습한 공기만이 남았다. 나는 바닥에 누운 채로 천장을 보았다. 아직도 다리 사이가 뜨거웠다. 성기는 여전히 발기한 채로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의 손길이 남은 피부가 저렸다. 항문은 여전히 벌어진 채로 그의 귀두가 남긴 공허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흘 후, 태오는 사라졌다.
아무 말도 없이. 낙원 마을에서, 내 인생에서, 완전히.
나는 화장실 칸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날 밤의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지금도 성기가 반응했다. 바지 안에서 단단하게 솟아올랐다. 8년이 지났는데도 내 몸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손길, 그의 숨소리, 그의 성기가 내 입구에 닿았을 때의 그 아찔한 압박감까지.
나는 바지를 내렸다. 발기한 성기가 공기 중으로 튀어 올랐다. 귀두는 이미 젖어 반들거렸다. 나는 손으로 성기를 감쌌다. 차갑고 떨리는 손가락이 내 성기를 움직였다. 눈앞에 태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의 그. 완벽한 가면을 쓴 인사팀장. 어젯밤 옥상에서 넥타이를 풀던 그 손. 8년 전 내 몸을 더듬던 그 손.
*오늘도 웃고 있었다. 내가 없는 곳에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손의 속도를 높였다. 엄지로 귀두를 문질렀다. 애액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내 항문이 기억을 따라 경련했다. 8년 전 그날 밤, 그의 귀두가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오던 감각. 그 충만함과 통증의 경계. 나는 다른 손을 허벅지 사이로 내렸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항문 입구를 문질렀다. 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었다. 내 안은 뜨겁고 좁았다. 나는 신음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동시에 성기를 더 빠르게 훑었다. 태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매일 밤 너를 생각하면서 자위했어.*
나는 사정했다. 정액이 손에 묻고 변기 물에 떨어졌다. 숨을 몰아쉬며 벽에 이마를 기댔다. 쾌감은 순간적이었고, 남은 건 분노와 서글픔뿐이었다. 내 안에 아직 손가락이 박혀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항문이 아쉬운 듯 조였다.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 몸은 그를 원했지만, 내 머리는 더 많은 답을 원했다.
나는 휴지를 뽑아 손을 닦고 바지를 추슬렀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내 얼굴이 창백했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나는 물을 틀어 얼굴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때렸다.
주머니에서 가죽 수첩을 꺼내 들었다. 표지를 쓰다듬었다. 이건 증거다. 태오가 나를 8년 동안 놓지 못했다는 것. 그가 나를 지켜보는 게 그의 생존 방식이었다는 것.
이제 이걸 들고 그에게 가야 했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 수첩을 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비상 계단으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형광등 불빛이 깜빡이는 넓은 공간.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보안팀 김성호에게서 입수한 정보를 떠올렸다. 지하 3층, C구역, 47번 기둥 뒤. 감시 카메라 사각지대. 태오가 매일 퇴근 전 잠시 머무는 곳.
나는 47번 기둥 뒤에 서서 기다렸다.
15분쯤 지났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구두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울렸다. 규칙적인 발걸음. 그 리듬을 나는 알고 있었다.
태오가 기둥 쪽으로 걸어왔다. 핸드폰을 보며 무언가 확인하고 있었다. 넥타이는 여전히 단정하게 매어져 있었다. 그가 기둥 근처에 도달했을 때, 나는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
"팀장님."
태오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본 순간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곧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완벽한 가면.
"정재원 씨. 여기서 뭘 합니까."
나는 가방에서 가죽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의 시선이 수첩에 고정되었다. 표지의 손때를 알아본 거다.
"이게 뭔지 아시죠."
태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처음 보는 반응이었다. 그 완벽한 통제의 가면에 금이 가는 순간.
"어디서..."
"8년 동안 이게 네 방식이었어? 나를 지켜보는 게? 다가오지도 않고, 말도 걸지 않고, 그냥 멀리서 기록만 하는 게?"
내 목소리가 주차장에 울렸다. 분노와 통쾌함이 뒤섞여 떨리고 있었다.
태오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표정이 무너지고 있었다. 당황, 분노, 두려움. 그 모든 감정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8년 만에 처음 보는, 내가 알던 태오의 얼굴이었다.
"그걸 어디서..."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집게손가락이 내 맥박 위에서 경련했다.
"네가 먼저였어."
내가 말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를 놓지 못한 건 너였잖아, 태오야."
그 순간, 태오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가 나를 기둥 쪽으로 밀쳤다. 내 등이 차가운 콘크리트에 부딪혔다. 수첩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입 다물어."
그의 목소리가 낮고 위험하게 갈라졌다. 그의 얼굴이 내게 다가왔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이.
"그리고 그건... 다시는..."
그의 다른 손이 내 셔츠 안으로 파고들었다. 차가운 손가락이 내 옆구리를 더듬었다. 8년 전과 똑같은 손길. 나는 숨을 들이켰다. 내 성기가 즉각 반응했다. 그의 허벅지가 내 다리 사이를 벌렸다.
"여기서... 하자는 거냐."
내가 물었다. 내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분노와 욕망이 뒤섞여 통제할 수 없었다.
태오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입술이 내 목에 닿았다. 이빨이 피부를 스쳤다. 아까 화장실에서 혼자 상상했던 바로 그 감촉. 하지만 실제는 훨씬 강렬했다. 그의 체취가 코를 찔렀다. 향수와 담배와, 8년 전과 똑같은 그의 피부 냄새.
그의 손이 내 바지 앞섶을 열었다. 지퍼가 내려갔다. 그의 손바닥이 내 속옷 위로 성기를 감쌌다. 나는 신음했다. 그의 엄지가 귀두를 압박했다. 젖은 천 너머로 그의 손가락이 내 성기 모양을 따라 움직였다.
"아직도... 이렇게 반응하네."
그가 내 귀에 속삭였다. 목소리는 여전히 위험했지만, 그 끝에 묻은 떨림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두려움이었다. 나를 원하는 동시에, 이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 걸 두려워하는 떨림.
"8년 전... 왜 도망쳤어."
내가 물었다. 그의 손이 내 성기를 쥔 채로 멈추었다.
"대답해."
"할 수 없었어."
그가 말했다. 그의 이마가 내 어깨에 닿았다.
"너를... 망칠 수 없었어. 그 자식이... 너를 알게 되면..."
강필두. 그의 아버지.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태오의 등에 남은 흉터의 원인. 그가 낙원으로 도망쳐 온 이유. 그리고 그가 나를 떠난 진짜 이유.
"그럼 지금은?"
내가 물었다.
"지금은 왜 나를 옆에 둔 거야. 위험하다고 쓰면서, 왜 승인 도장을 찍었어."
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그 안에 담긴 건 더 이상 완벽한 가면이 아니었다. 8년간 쌓아올린 모든 억압과 집착과 욕망이 그 눈 안에서 끓고 있었다.
"참을 수 없었어."
그가 말했다. 그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내 성기를 더 세게 쥐었다.
"네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이번에는 진짜... 못 참겠더라."
그의 입술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의 숨결이 내 입술에 닿기 직전.
주차장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구두 소리. 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소 두 명.
태오의 몸이 즉시 굳었다. 그의 손이 내 바지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내 옷깃을 잡아 기둥 뒤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욕망은 사라지고, 냉정한 경계만이 남았다.
"일단 여기서 나가."
그가 낮고 빠르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비상 계단으로."
"누군데."
"묻지 마."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콘크리트 바닥에 울리는 그 소리는 느리고, 묵직했으며, 뭔가 위협적인 리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태오야, 오랜만이다."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 술에 절은 듯한 탁한 음색. 그 안에 서린 조소와 증오.
태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손이 내 팔을 잡았다. 그 집게손가락이 내 피부에 파고들 만큼 세게.
강필두였다.
기둥 그림자 너머로 두 개의 실루엣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명은 덩치가 크고 구부정한 체형, 다른 한 명은 마른 체형이었다. 큰 쪽이 강필두일 것이다. 형광등 불빛이 그들의 얼굴을 아직 비추지 않았다.
태오가 나를 기둥 뒤로 더 깊이 밀어 넣었다. 그의 몸이 내 앞을 가렸다. 방패처럼.
"나와라, 아들. 네 뒤에 숨긴 게 뭔지 아빠한테도 보여줘야지."
강필두의 목소리가 기둥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태오의 손이 내 팔에서 떨어졌다. 그의 주먹이 쥐어졌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보았다. 턱이 굳어 있었다. 눈빛은 차가웠지만, 그 깊은 곳에 오래된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가 한 걸음 기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이제 도망칠 수 없다. 나도, 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