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욕조 가장자리에 웅크린 지호의 등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미지근한 물이 그의 셔츠를 투명하게 만들었고, 젖은 천 아래로 척추 마디마디가 예리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누나…….”

내 발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평소 그토록 맑던 눈동자가 열기로 흐릿하게 풀려 있었다. 뺨은 비정상적으로 붉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갈라진 틈새로 핏기가 번져 있었다. 나는 달려가 그의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에 닿는 피부가 40도를 넘나드는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했잖아요. 아프다고.”

지호가 힘없이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 순수해서 오히려 섬뜩했다.

“누나가 오늘 느낀 모든 쾌락이…… 지금 제 몸에서 불타고 있어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복사실에서의 일. 그의 손가락이 내 질 안으로 들어와 질벽을 긁던 감각. 내가 얼마나 크게 신음하며 절정에 몸부림쳤는지. 그 모든 것이 방금 전의 일이었다. 위액이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욕실 바닥에 손을 짚었다. 속이 뒤틀렸다. 내장이 꼬이는 듯한 오심이 밀려왔다. 차가운 타일이 손바닥에 닿았지만 그 감각조차 멀게만 느껴졌다.

“무슨 뜻이야.”

“차예요. 제가 누나에게 건넨 그 차.”

지호가 숨을 헐떡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젖은 셔츠가 욕조 물을 줄줄 흘리며 그의 몸에 달라붙었다. 목덜미에서 쇄골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욕조 안으로 떨어졌다. 셔츠 아래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갈비뼈가 들썩일 때마다 젖은 천이 들러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저는…… 타인의 무의식을 감지할 수 있어요. 특히 억압된 욕망 같은 것들. 그걸 향으로 느껴요. 누나의 욕망은…….”

그가 숨을 들이켰다.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떴다. 속눈썹에 맺힌 물방울이 볼 위로 흘러내렸다.

“밤꽃 향이 났어요. 어둠 속에서만 피는 꽃. 아무도 모르게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그래서 그 향을 담아 차를 블렌딩했어요. 누나의 무의식이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도록.”

“내…… 무의식?”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욕실 전체가 기울어지는 듯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토할 것 같았다. 입 안에 침이 고이고 위액의 쓴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나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차를 마실 때마다 누나의 감각은 예민해지고, 이성은 느슨해지고, 숨겨둔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와요. 그게 제 능력이에요.”

지난 몇 주간의 모든 순간들이 영사기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첫 번째 차의 은은한 꽃향기. 사무실에서 내가 처음 보온병 뚜껑을 열었을 때 풍겨오던 그 달콤쌉싸름한 향. 마실 때마다 찾아오는 이상한 감각의 예민함. 회의실에서 그의 손길에 느꼈던 비정상적인 전율. 복사실에서 그가 내 스커트를 걷어 올리고 팬티를 벗기던 순간, 그의 손가락이 내 질 안으로 들어와 벽을 긁을 때마다 터져 나오던 내 신음.

“그 모든 게…… 가짜였어?”

내 목소리가 떨렸다.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차는 단지 억압을 푸는 열쇠일 뿐이에요. 누나가 느낀 모든 감정과 쾌락은…… 전부 누나의 진짜 모습이에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이미 누나 안에 있던 거예요.”

“거짓말.”

“그리고 대가가 있어요.”

지호가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셔츠 아래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젖은 천이 들썩였다.

“누나가 차를 통해 느낀 모든 감정적 해방, 육체적 쾌락…… 그 파고가 밤이 되면 제게로 전이돼요. 누나가 오늘 복사실에서 느낀 절정의 순간…… 지금 제 몸속에서 불타고 있어요. 누나의 쾌락이…… 제 내부를 태우고 있어요.”

그가 셔츠 단추를 풀었다. 드러난 가슴이 내부에서부터 달궈지는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젖은 피부 위로 핏줄이 푸르게 비쳤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손끝이 떨렸다.

“그럼 지난밤에도…….”

“네. 누나가 제 집에서 느낀 모든 절정이…… 밤새 저를 태웠어요. 누나가 얼마나 많은 오르가즘을 느꼈는지, 그 강도가 어땠는지…… 전부 생생하게 경험해요. 누나의 질이 수축하며 제 손가락을 조이던 그 리듬, 누나의 애액이 제 손바닥을 적시던 온도, 누나가 절정에 이를 때마다 목을 젖히며 지르던 신음소리까지…… 전부 제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에요.”

철썩.

나도 모르게 그의 뺨을 때렸다. 손바닥이 얼얼했다. 지호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붉은 뺨 위로 내 손자국이 선명하게 올라왔다. 입술이 터졌는지 핏방울이 맺혔다.

“네가…… 네가 나를 조종한 거야. 내 무의식을, 내 감정을, 내 몸을…….”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가 뒤엉켜 가슴을 찔렀다. 그 무언가는 아직도 그의 고통을 보며 느껴지는 안타까움이었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내 몸은 여전히 그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었고, 질은 그가 채워주던 충만감을 기억하며 쑤셨다.

“조종한 게 아니에요.”

지호가 다시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눈동자에 맺힌 열기가 눈물인지 열병의 증상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저는 그저…… 누나가 숨기고 있는 진짜 얼굴을 보고 싶었어요. 모두에게 완벽한 편집장 서연우가 아니라, 상처받고 욕망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서연우를.”

“내가…… 뭘 원하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알아요. 저는 누나가 원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누나는…… 무너지고 싶어 해요.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누군가에게 강제로 허락받고 싶어 해요. 다정한 손길에 지배당하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느끼기만 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해요.”

지호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뜨거운 손바닥이 맥박이 뛰는 지점을 감쌌다. 그의 엄지가 내 손목 안쪽을 쓸었다.

“제가 그걸 줄 수 있어요. 누나가 가면을 벗어도…… 아니, 오히려 가면을 벗었을 때 더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있어요.”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박혔다. 너무나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찔렀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질 안이 쑤셨다. 그의 손가락이 떠난 자리가 허전하게 열려 있는 듯했다.

“이제…… 더 이상 네 차는 마시지 않을 거야. 너도……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마.”

“누나.”

“내가 느낀 모든 게…… 네가 만든 가짜 감정이라면…….”

목이 메었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더 이상 네게 놀아나지 않아.”

욕실을 나서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지난 몇 주간 내 얼굴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굳게 다물었던 입매가 부드러워졌고, 경직됐던 눈가에 생기가 돌았다. 그 변화조차 그가 만든 거라면,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라면.

현관을 박차고 나왔다. 밤공기가 폐를 찔렀다. 뒤에서 지호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결국 참지 못하고 화단에 토했다. 위액과 함께 신음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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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나는 지호를 철저히 피했다.

아침 출근 시간을 바꿨다. 그가 주로 이용하는 1층 카페 대신 지하 1층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회의가 있으면 사전에 자료만 메일로 보내고, 굳이 대면할 일이 생기면 한수빈을 대리로 세웠다.

차도 완전히 끊었다. 점심시간마다 그가 책상 위에 몰래 올려두는 보온병을 전부 싱크대에 버렸다. 은은한 꽃향기가 배수구로 빨려 들어갈 때마다 손끝이 저릿했다.

“그 신입 뭐 잘못했어요? 요즘 편집장님 표정이…….”

셋째 날, 한수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서류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별일 아니야. 원래 멘토링 끝나면 이렇게 독립하는 거지.”

“하지만 강지호 씨 요즘 상태가…….”

“됐어.”

내 목소리가 예상보다 날카로웠다. 한수빈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서류를 내려놓고 관자놀이를 짚었다. 머리가 욱신거렸다.

사실 상태가 안 좋은 건 나였다.

---

**첫날 밤.**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몸이 달아올랐다. 가슴이 조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혼자 누워 있는 침대가 낯설었다. 내 침대인데도, 내 침실인데도, 모든 게 어색했다. 옆으로 돌아누우면 그가 없었고, 천장을 보면 복사실의 형광등이 떠올랐다.

자정이 넘어서자 몸이 더 뜨거워졌다. 단순한 불면이 아니었다. 피부가 예민해져서 이불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유두가 천에 쓸려 저절로 경직됐다. 나는 이불을 걷어찼다. 냉기가 닿자 잠시 가라앉는 듯했지만, 이내 더 깊은 곳에서부터 열이 치밀었다. 질 입구가 쑤셨다. 그의 손가락이 아직도 내 안에 있는 것처럼 질벽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둘째 날 밤.**

더 심했다. 퇴근길에 무심코 그의 집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깜짝 놀라 길을 돌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조에 찬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찔렀지만, 몸속의 열기는 전혀 식지 않았다. 오히려 찬물이 음핵을 자극해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손을 뻗어 내 몸을 만져보려 했다. 복사실에서 그가 했던 대로, 허벅지 안쪽을 쓸어 올리고 배꼽 아래를 손끝으로 훑었다. 하지만 내 손은 그저 차가운 살덩어리를 만질 뿐이었다. 아무런 전율도, 감각의 증폭도 없었다. 오히려 더 허전해졌다. 질 안이 텅 빈 듯한 공허감이 아랫배를 짓눌렀다.

**셋째 날 밤.**

나는 더 과감해졌다. 침대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손가락 두 개를 질 안으로 밀어넣었다. 애액이 흘러 손바닥을 적셨다. 나는 손가락을 구부려 질벽을 긁어보았다. 지호가 하던 그 각도. 그가 내 안에서 손가락을 구부려 G스팟을 누르던 그 압력.

“아…….”

신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달랐다. 그의 손가락은 더 길었고, 마디가 더 굵었고, 질벽을 긁는 리듬이 더 집요했다. 나는 손가락을 더 깊이 밀어넣으며 다른 손으로 음핵을 문질렀다. 지호가 하던 대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안 돼.

절정이 오지 않았다. 질 내부가 경련을 일으키며 손가락을 조였지만, 그가 주던 폭발적인 오르가즘은 오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내 질벽을 긁을 때마다 느껴지던 충만감. 그가 “누나, 느껴요” 하고 속삭이며 손가락 속도를 높이던 순간의 전율. 그 모든 것이 부재했다.

나는 손가락을 질에서 빼내고 침대에 엎드렸다. 애액과 땀으로 끈적해진 손가락이 이불을 움켜쥐었다. 다리 안쪽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떨렸다. 몸은 절정 직전까지 갔지만, 마지막 순간을 넘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춰 있었다. 그가 내 몸에 걸어둔 자물쇠를 내 손으로는 열 수 없는 것처럼.

**넷째 날.**

나는 윤미래와 점심을 먹다가 포크를 떨어뜨렸다. 손에 힘이 없었다. 손가락이 저리고 떨렸다.

“너 요즘 진짜 이상해.”

윤미래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평소의 장난기 대신 진지한 관찰자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무슨 말이야.”

“얼굴색이 잿빛이야. 그것도 모르고 있던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샐러드를 포크로 찔렀다. 식욕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음식을 씹어도 모래알 같았다.

“그 신입이랑 무슨 일 있었지.”

“아무 일도 없어.”

“거짓말. 너 그동안 내가 널 몇 년을 봤는데.”

윤미래가 내 포크 위로 자신의 포크를 포개며 내려놓았다. 강제로 내 식사를 멈추게 한 것이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내 떨리는 손가락을 빤히 내려다봤다. 포크를 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손에서 얼굴로, 다시 깊게 패인 눈 밑 다크서클로 옮겨갔다.

“서연우. 너 지금 무너지고 있어. 근데 그게 꼭 나쁜 것 같지만은 않아 보여.”

“무슨 뜻이야.”

“예전의 너는 단단했지만, 동시에 굳어 있었어. 깨질까 봐 스스로를 꽁꽁 묶어둔 느낌? 근데 요즘 너는…… 뭔가를 느끼고 있어. 괴로워하면서도.”

그녀의 말이 아팠다. 정곡을 찔렸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려서 더 이상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가 널 무너뜨린 게 아니라, 네가 무너지고 싶었던 거야. 오래전부터. 그걸 인정하는 게 두려웠던 거지.”

“그만해.”

“네 안에 있던 뜨거운 것들을 꺼내준 거지. 그걸 조종이라고 부를 순 없어. 너는 이미 그 차를 마시기 전부터 그를 보고 있었잖아. 첫 출근날, 네 눈빛 기억나? 오래 잊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 같았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식당에 울렸다.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숨쉬기가 어려웠다. 윤미래의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네가 무너지고 싶었던 거야.’

“나 옥상에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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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몸은 여전히 뜨거웠다. 아니, 더 뜨거워졌다. 내부에서 무언가가 불타고 있는 듯했다. 복사실에서 그가 내 안에 손가락을 넣고 움직이던 리듬이, 그의 엄지가 내 음핵을 누르던 압력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손을 천천히 올려 잠옷 단추를 풀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드러난 가슴 위로 내 손가락이 떨리며 닿았다. 검지로 쇄골을 따라 천천히 선을 그었다. 지호가 자주 그렇게 했었다. 그의 손길은 항상 정확히 내가 원하는 지점을 알았다. 내 몸이 그에게 보내는 신호를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손가락이 유두에 닿았다. 살짝 비벼봤다. 감각은 있었다. 하지만 지루했다.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아 잡음만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세게 유두를 꼬집었다. 통증이 번졌지만, 그가 했을 때처럼 쾌락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그가 내 유두를 입에 물고 혀로 굴리던 그 감각, 그가 살짝 깨물며 손가락으로 다른 쪽을 비비던 그 이중의 자극. 내 손으로는 재현할 수 없었다.

“제발…….”

내 입에서 신음 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는 손을 아래로 내렸다. 배꼽을 지나, 아랫배를 훑고, 음모가 시작되는 지점에 손가락이 닿았다. 다리를 벌렸다. 손가락이 음부를 찾아 들어갔다.

대음순이 붓듯이 부풀어 있었다. 며칠간의 금단 증상이 몸을 이렇게 만들었다. 손끝이 닿자 질 입구가 경련하듯 수축했다. 애액이 이미 흘러나와 허벅지 안쪽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중지와 검지를 모아 천천히 삽입했다.

질 내벽이 내 손가락을 감쌌다. 안은 뜨거웠다. 하지만 이 감각은 내 몸이 아닌 남의 몸을 만지는 것 같았다. 그가 주었던 충만감, 압도당하는 느낌, 이성을 빼앗기는 쾌락이 없었다. 그저 습하고 따뜻한 살덩어리일 뿐이었다.

나는 손가락을 더 깊이 밀어넣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손으로 음핵을 찾아 문질렀다. 작은 돌기가 손끝 아래서 단단해졌다.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복사실에서 내 목에 입을 맞추던 그의 표정, 내 가슴을 쥐며 거칠게 숨 쉬던 그의 목소리.

“아…….”

신음이 새어나왔다. 잠시 그의 환상에 빠져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질벽을 긁는 감각이 선명했다. 그가 내 귀에 대고 “누나, 느껴요” 하고 속삭이던 그 낮은 음성. 나는 손가락 속도를 높였다. 질 내부를 긁으며, 음핵을 더 빠르게 원을 그리며 문질렀다. 애액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 이불을 적셨다. 그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여기, 누나 제일 예민한 곳.”

“하…….”

질벽이 반응했다. 잠깐 동안 전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래, 이 느낌이야. 나는 그 지점을 집중적으로 자극하며 다른 손으로 음핵을 더 빠르게 문질렀다. 그의 숨결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그의 체취가 내 코를 채웠다.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랫배가 뜨거워지고 질 내벽이 손가락을 더 강하게 조여왔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손가락 속도를 최대로 높였다. 음핵이 손끝 아래서 박동쳤다. 질 입구가 경련하듯 수축했다.

조금만 더.

그런데.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없었다. 그의 숨결도, 체취도, 목소리도.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지어낸 환상이었다는 사실이 비수처럼 박혔다. 순간, 수치심이 밀려왔다. 나는 지금 혼자서, 그의 환상에 취해, 그가 있는 것처럼 몸을 만지고 있었다. 그가 내 몸에 남긴 감각의 기억에 스스로를 중독시키고 있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를 향한 분노인지, 이런 상황에서도 그를 갈망하는 나 자신을 향한 분노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손가락이 멈췄다. 절정은 이미 멀어져 있었다. 질 내부가 허기지게 수축하며 무언가를 갈망했다. 그의 손가락, 그의 성기, 그가 내 안을 채우던 충만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지호야…….”

내 입에서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했다. 몸이 갈망하고 있었다. 단지 성적 쾌락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그의 손길, 그의 목소리, 그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가 내 가면을 벗겨내던 집요함.

이건 차의 효과가 아니야.

차가 끊긴 지 닷새가 지났다. 몸에서 모든 성분이 빠져나갔을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 그가 내 몸에 남긴 감각의 기억이 아니라, 그가 내 마음에 남긴 감정의 온도가 나를 태우고 있었다.

욕망은 진짜였다.

그를 향한 감정도 진짜였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이 뜨거운 것들은, 차가 만들어낸 가짜가 아니라 그가 꺼내준 진짜 나의 모습이었다. 윤미래의 말이 떠올랐다. ‘네가 무너지고 싶었던 거야.’ ‘네 안에 있던 뜨거운 것들을 꺼내준 거지.’

맞아. 나는 무너지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완벽한 편집장이라는 가면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진짜 내가 흘러나오는 순간을 갈망하고 있었다. 지호는 그걸 알아챘을 뿐이다. 내 무의식의 밤꽃 향기를 맡고, 그걸 차로 우려내 나 자신에게 마시게 했을 뿐이다. 그가 한 건 내게 거울을 들이민 것뿐이다. 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두려웠던 건 나였다.

나는 일어나 샤워를 했다. 끈적한 몸을 씻어내며 거울을 봤다. 붉게 충혈된 눈, 부르튼 입술, 앙상하게 마른 쇄골. 그런데도 내 눈빛은 살아 있었다. 고통 속에서도, 상실감 속에서도,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욕망하는, 무너지고 싶어 하는 진짜 서연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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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겨울 문턱의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난간에 기대어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봤다. 지호와 처음 이곳에서 차를 마셨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의 손가락이 내 손에 스쳤을 때의 전율, 그의 눈빛에 담겨 있던 순수한 집착, 조금씩 내 가면이 금이 가던 소리.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윤미래의 구두 소리였다.

“여기 있었구나.”

그녀가 내 옆에 서서 같은 풍경을 바라봤다. 차가운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나 어제…….”

입을 열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윤미래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말 안 해도 돼. 네 얼굴에 다 쓰여 있어.”

“그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내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차 때문이 아니야. 그게 무서웠어. 혹시 내 감정이 가짜일까 봐. 그가 만든 환상일까 봐. 그래서 도망쳤는데…….”

나는 숨을 들이켰다. 찬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도망친 곳에서도 그 생각뿐이야. 이건…… 진짜야. 그를 향한 내 감정은 진짜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 순간, 첫 차의 향이 떠올랐다. 그가 처음 내 책상에 보온병을 올려놓던 날. 뚜껑을 열자 풍겨오던 은은한 밤꽃 향기. 그 향이 내 안으로 스며들 때 느꼈던 낯선 편안함.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만난 듯한 기시감. 그 차는 내 안에 이미 있던 것을 깨웠을 뿐이다. 잠들어 있던 욕망, 억압해온 갈망, 무너지고 싶다는 진실. 그는 그걸 향으로 감지하고, 차로 우려내, 내가 마실 수 있게 건넸을 뿐이다.

“그가 내 안에서 꺼낸 이 뜨거운 것들…… 전부 내 거였어. 그냥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야. 그 차가…… 내 안에 이미 있던 것을 깨웠을 뿐이야.”

윤미래가 조용히 웃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야? 나는 네가 그 신입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 네 눈빛이 달라졌었어.”

“뭐가…….”

“네가 그동안 사람들을 볼 땐 항상 평가하는 눈빛이었어. 원고를 읽듯이. 근데 그 남자 앞에서만은 그게 풀렸어.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보고 있었어. 편집장 서연우가 아니라, 그냥 여자 서연우로.”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바람이 다시 불어 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무심코 화면을 확인했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최대현] 오랜만이야, 연우 씨.

심장이 멎는 듯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핸드폰을 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힘이 풀려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윤미래가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왜 그래? 누군데? 너 지금 얼굴이 새하얘.”

숨이 막혔다. 호흡이 가빠졌다. 가슴이 답답해지며 산소가 부족한 듯 폐가 조여들었다.

문자가 이어서 도착했다.

[최대현] 당신의 신입사원에 대해 할 말이 있어. 내일 사무실로 찾아가겠습니다.

다리가 풀렸다. 난간을 붙잡지 않았다면 바닥에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 손가락이 난간을 움켜쥐며 하얗게 질렸다. 5년 전 그 겨울의 기억이, 그의 차가운 눈빛과 ‘감정적인 여자’라고 잘라 말하던 목소리가, 내 안에 철저히 가둬두었던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토할 것 같은 오심이 다시 올라왔다.

윤미래가 내 스마트폰을 빼앗아 화면을 읽었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새끼가…….”

옥상 문이 거칠게 열렸다. 바람이 회오리치며 들어왔다. 한수빈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올라왔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편집장님! 지금 1층 로비에…… 최대현 작가님이 오셨어요! 강지호 씨를 찾으면서…….”

그녀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미 오고 있었다. 5년 동안 내 악몽에 머물던 그 남자가, 마침내 내 현실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내 손이 난간을 움켜쥔 채 떨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연우, 진정해. 숨 쉬어.”

윤미래가 내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최대현. 나를 ‘감정적인 여자’라고 재단하고, 내 의견을 ‘편집자가 아니라 여자의 감상’이라고 잘라내던 그 남자. 내 커리어에 처음으로 금을 그었던 그 남자가, 지금 지호를 찾으러 이 건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또 한 번의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지호의 번호였다.

[지호] 누나, 저 지금 옥상으로 올라가요. 그 사람이 절 찾으러 왔다고 들었어요.

[지호] 누나가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이번에는 제가 누나를 지킬게요.

[지호] 5년 전 겨울, 누나가 혼자서 감당했던 그 모든 것. 이제는 제가 옆에 있을게요.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씩,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올라오는 소리. 나는 난간을 붙잡은 채 뒤돌아섰다. 옥상 문이 열리고, 겨울 바람과 함께 지호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열병의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눈빛만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누나.”

그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숨이 가빴다. 계단을 뛰어 올라왔는지 가슴이 들썩였다.

“이제 도망치지 마요. 나도, 누나의 감정도, 더 이상 도망치지 마요.”

그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뜨거웠다. 열병의 열기인지, 아니면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온도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나는 그의 손에 내 얼굴을 기댔다. 눈물이 그의 손바닥을 적셨다.

“무서워…….”

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 남자도 무섭고…… 네가 떠날까 봐도 무서워.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인정하는 것도…….”

“알아요.”

지호가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댔다. 그의 숨결이 내 입술에 닿았다.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누나의 무서움을 전부 가져갈게요. 누나가 무너져도, 그 잔해를 제가 전부 안을게요.”

옥상 문 너머에서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렸다. 굳은 구두 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최대현이었다. 나는 지호의 손을 꽉 잡았다. 손가락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약속해.”

내가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네가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지호가 웃었다. 열병으로 갈라진 입술 사이로 피가 배어나왔지만, 그 미소만은 처음 봤을 때처럼 순수했다.

“약속해요. 낮에도, 밤에도. 누나가 원하는 모든 방식으로.”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뜨거웠다. 차가 아닌, 그 어떤 향도 아닌, 오직 그와 나의 체온만이 섞여들었다. 그의 혀가 내 입술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 키스를 받아들였다. 질 안이 다시 쑤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허함이 아니었다. 곧 채워질 거라는 예감에 몸이 미리 반응하고 있었다.

옥상 문이 열렸다.

최대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겨울 바람을 뚫고 날아들었다.

“서연우. 그리고…… 강지호. 둘 다 여기 있었군.”

나는 지호의 손을 놓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더 세게 쥐며 뒤돌아섰다. 5년 전의 나는 혼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 옆에는 지호가 있었고, 내 안에는 마침내 깨어난 진짜 내가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최대현 작가님.”

내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무슨 일로 이 더러운 출판사까지 찾아오셨나요.”

겨울 바람이 옥상을 휩쓸었다. 최대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지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쌌다. 그의 손바닥은 여전히 뜨거웠고, 그 온기는 내 허리에서 시작해 전신으로 번져갔다. 내 안의 밤꽃이, 마침내 어둠을 뚫고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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