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탈고본

유리아의 기자회견 예고는 새벽 3시에 터졌다. 더블유엔터 1층 로비에 기자들이 몰려들고, 온라인 뉴스 속보는 ‘서시현 전속 매니저, 아티스트 건강 악화 방치’라는 제목을 찍어내고 있었다. 한지우의 전화가 5분 간격으로 울렸고, 김대표는 새벽 4시에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도하는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목에는 여전히 시현의 손자국이 멍들어 있었고, 셔츠 깃으로 가려도 붉은 자국이 올라왔다. 손에는 병원 처방전이 쥐여 있었다. ‘절대 발성 금지. 신음 포함 일체의 음성 사용 불가. 위반 시 영구 손상.’

시현은 도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멱을 살폈다. 손끝이 멍 자국을 스치자 도하가 움찔했다.

“아파?”

시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도하는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었다. 침 삼킬 때마다 식도가 유리 조각으로 긁히는 느낌이었다. 도하는 핸드폰에 글자를 쳤다.

[유리아가 기자회견을 연대. 나 때문이야.]

“아니.”

시현이 핸드폰을 빼앗았다.

“내가 만든 거야. 내가 너한테 이렇게……”

말이 끝나기 전에 대기실 문이 열렸다. 김대표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계산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뒤에는 한지우와 법무팀장이 서 있었다.

“정도하 씨.”

김대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지금 상황을 아나? 유리아 씨가 증거 자료를 가지고 있어. 당신이 시현 씨 대기실에 매일 밤 드나드는 CCTV, 병원 진료 기록, 그리고……”

그가 서류 봉투를 테이블에 던졌다.

“목격자 증언. 스태프 세 명이 당신과 시현 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제보했어.”

도하의 손이 떨렸다. 시현이 일어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부적절한 관계라니.”

“시현 씨는 입 다물어.”

김대표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이건 회사 차원의 결정이야. 유리아 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미리 확보했는데, 모든 초점이 정도하 씨 개인의 일탈로 맞춰져 있어. 매니저가 아티스트에게 부적절한 접근을 했다는 거야. 우리가 이 프레임을 받아들이고 정도하 씨를 해고 처리하면, 시현 씨는 피해자로 남을 수 있어.”

도하의 시야가 흐려졌다. ‘매니저 개인의 일탈’. 그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김대표는 도하를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필요하면 희생양을 찾으면 돼. 그게 비즈니스야.”

3화에서 들었던 그 말이었다. 이제 그 희생양이 자신이라는 걸 도하는 깨달았다.

시현이 김대표의 멱살을 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당신 미쳤어? 도하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시현 씨!”

한지우가 달려들었다. 시현의 주먹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탁자 위의 커피잔이 떨어져 깨졌다.

“내가 직접 유리아를 만나.”

“안 돼요!”

한지우가 소리쳤다.

“그 순간부터 시현 씨가 가해자로 엮여요. 유리아 씨는 그걸 노리는 거라고요. 둘 다 무너뜨리려는 거예요.”

도하는 천천히 일어났다. 목 안에서 무언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성대 점막이 붓고 갈라진 틈으로 공기가 새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시간을 벌어줘요. 내가 해결할게요.]

“뭘 어떻게.”

시현이 도하의 손목을 잡았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너 목소리도 못 내면서 뭘 하겠다는 거야.”

도하는 시현의 눈을 똑바로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 눈빛에 시현이 숨을 멈췄다.

[유리아가 뭘 원하는지 알아. 나를 없애는 거야. 그럼 내가 직접 가서 사라지겠다고 말하면 돼.]

“안 돼.”

시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건 안 돼.”

도하는 미소를 지었다. 입술만 살짝 올라가는, 목소리 없는 미소였다. 그는 시현의 손을 떼어내고 대기실 문으로 걸어갔다.

시현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내가 유리아를 만날게.”

도하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더 잘 알아.”

시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지. 도하, 나한테 맡겨.”

도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시현이 도하의 어깨를 잡았다.

“너 없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내가 너 없으면 무대도 못 서고, 숨도 못 쉰다고. 그런데 네가 사라지면 내가 뭐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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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는 기자회견 6시간 전,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증거 자료 파일을 정리하고, 카메라를 향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연습했다. 분노, 배신감, 그리고 약간의 눈물. 그녀는 손끝으로 USB를 만지작거렸다. 3년 전 시현과 함께 작업했던 곡의 가이드 녹음 파일. 시현의 숨결, 시현의 떨림, 시현의 모든 게 담긴 그 녹음은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전리품이었다. 그녀는 그걸 수백 번 들었다. 시현이 “무대가 무서워”라고 처음 털어놨던 그날 밤의 음성 파일을. 그날 시현은 그녀 앞에서 울었다. 그녀는 그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울음을 녹음해두는 것뿐이었다.

문이 열렸다.

“약속 시간은 아직인데.”

유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시현이 문간에 서 있었다. 검은 코트에 아무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유리아의 가슴속에서 3년 전 그날 밤의 기억이 핏물처럼 올라왔다. 시현의 첫 솔로 콘서트 전날, 그녀의 품에서 울던 그 얼굴.

“오랜만이네, 시현아.”

유리아가 미소 지었다.

“예전처럼.”

3화에서 던졌던 그 말이었다. 시현은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갔다. 유리아의 손에는 USB가 쥐여 있었다.

“그거.”

시현이 USB를 가리켰다.

“뭐가 들었지.”

“네가 나한테 줬던 것들.”

유리아가 USB를 손가락으로 돌렸다. 그녀의 손톱이 USB 표면을 긁는 소리가 났다.

“3년 전, 우리가 함께 작업했던 곡의 가이드 녹음. 네 목소리가 잔뜩 들어 있지. 그리고……”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눈빛은 3년 동안 쌓인 집착이었다. 시현의 모든 앨범을 사재끼고, 시현의 모든 인터뷰를 외우고, 시현이 입은 옷과 똑같은 브랜드를 찾아 입으며 그녀는 시현을 소유하려 했다. 하지만 시현은 그녀에게 한 번도 그런 눈빛을 준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갈구했던 건 시현의 간절함이었다. 그런데 그 간절함을, 평범한 신입 매니저가 가져갔다.

“네가 나한테 ‘무대가 무서워’라고 처음 털어놨던 음성 파일. 이걸 공개하면 사람들이 궁금해할 거야. 왜 톱스타 서시현이 신입 매니저한테만 의존하는지. 그 매니저가 뭘 이용해서 널 조종하는지.”

“도하는 날 조종하지 않아.”

시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오히려 내가 그를 망가뜨렸어.”

“그래.”

유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거야. 네가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지. 그 평범한 목소리 하나에. 내가 줄 수 없었던 게 뭔데 그 사람은 줬지?”

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아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의 향수 냄새가 시현의 코를 찔렀다. 3년 전 그날 밤과 똑같은 향이었다. 그녀는 시현이 떠난 후에도 그 향수를 계속 썼다. 시현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집착으로.

“나랑 같이 끝내자, 시현아. 어차피 너도 이 업계에서 점점 망가져 가고 있어. 그 매니저 때문에 더 빨리 무너질 거야. 차라리 내가 깔끔하게 정리해줄게.”

“도하를 건드리면.”

시현이 유리아의 손목을 잡았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악력이었다. 시현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다.

“너도 끝이야.”

“협박이네.”

유리아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금세 일그러졌다.

“그런데 나 이미 끝이야. 2년째 음원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소속사는 나 대신 신인만 밀어줘. 내가 가진 건 너 하나였는데, 너마저 저런 애한테……”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 그녀는 시현의 첫 솔로 콘서트 DVD를 밤마다 틀어놓고 잠들었다. 시현이 무대 위에서 빛나던 모습, 그 시현이 자신의 것이었던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현은 이미 없었다.

“정도하라는 애, 네 옆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아? 네가 나한테 그런 적 없었잖아. 그렇게 간절하게 누굴 바라본 적 없었잖아.”

시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유리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시현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시현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무너진다는 걸.

“내가 가진 자료는 이 USB만이 아니야. 네가 지난 6개월 동안 정도하랑 주고받은 메시지, 대기실 CCTV의 일부 음성, 그리고……”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녀의 입술이 시현의 귀에 거의 닿을 듯이 다가왔다.

“어젯밤 대기실에서 너희가 한 일. 그 소리도 녹음했어.”

시현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턱이 경직되고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시야 가장자리가 어른거리며 좁아졌다. 유리아는 그 표정을 즐겼다. 그녀는 시현의 고통을 원했다. 자신이 느꼈던 만큼의 고통을.

“그건……”

“걱정 마, 아직 공개 안 했어.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는 네가 결정해. 나랑 같이 끝내든가, 아니면 그 매니저 혼자 모든 걸 뒤집어쓰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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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는 시현의 차에 타고 있었다.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옆자리에는 시현이 없었다. 도하는 시현이 유리아를 만나러 간 사이, 혼자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시현이 자신을 지키려다 모든 걸 잃는 걸 볼 수 없었다. 유리아가 원하는 건 자신의 파멸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그 자리로 걸어가는 게 가장 깔끔한 정리였다. 시현은 무대에 남아야 했다. 그게 도하가 시현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목 안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침을 삼킬 때마다 성대가 부딪히며 칼날 같은 통증이 올라왔다. 의사가 말했다. ‘지금 당장 발성을 멈추지 않으면 3주 안에 영구 손상됩니다. 회의 때조차 목소리를 내면 안 됩니다.’

하지만 도하는 알고 있었다. 오늘 자신의 목소리가 필요한 순간이 올 거라고.

차가 멈췄다. 기자회견장 건물 뒤편 주차장이었다. 도하는 차에서 내려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시야 가장자리가 어른거렸다. 어젯밤 잠을 못 잔 탓인지, 아니면 목의 염증이 퍼져 열이 오른 탓인지 귀까지 먹먹했다.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목 안의 점막이 부풀어 숨쉬기가 힘들었다. 도하는 벽을 짚고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공기가 기관지를 지날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젖은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 같았다. 그는 손을 목에 가져다 댔다. 손끝에 느껴지는 맥박이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성대가 부풀어 올라 기도를 좁히고 있었다. 한 시간만 더 지나면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질 거라는 걸 알았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시현이었다.

“어디야.”

시현의 목소리에 분노와 공포가 섞여 있었다.

“제발, 거기서 기다려. 내가 갈게.”

도하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대신 숨소리만 들려주었다. 거칠게 갈라지는 숨소리. 시현이 말했다.

“도하야.”

도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 대기실에서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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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장 로비는 기자들로 가득 찼다. 30여 명의 취재진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노트북을 펼쳐놓았다. 유리아가 입장할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때, 로비 뒤편 문이 열렸다.

도하였다.

검은 정장에 목까지 올라오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은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걸음은 천천히였지만, 그 발걸음에는 이상한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기자 몇 명이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속삭였다. “저 사람, 서시현 매니저 아니야?”

도하는 기자들 사이를 걸어갔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기자회견장 무대 앞까지 걸어가, 그곳에 서서 천천히 돌아섰다. 기자들 앞에 선 그의 모습은 희생양이 아니라, 스스로 제단에 오르는 사람 같았다.

유리아가 무대 뒤편에서 나오다가 그를 보았다.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도하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도, 분노도 없었다. 단지 차분한 결심만이 있었다.

도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미리 입력해둔 문장을 화면에 띄웠다. 그는 그 화면을 기자들을 향해 천천히 돌렸다.

[모든 건 제 개인적인 일탈입니다. 서시현 씨는 피해자입니다. 저는 오늘부로 매니저직을 사퇴하고, 업계를 떠납니다. 그리고……]

도하는 화면을 넘겼다. 다음 문장이 나타났다.

[저는 성대 영구 손상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치를 대가입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졌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유리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이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시현이 무너지길 원했지, 이 남자가 이렇게 스스로 모든 걸 내려놓는 걸 원한 게 아니었다.

도하는 다시 화면을 넘겼다.

[유리아 씨. 당신이 원한 건 저였어요. 이제 됐나요.]

유리아의 손에서 USB가 떨어졌다.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하는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가 문을 나서는 순간, 로비에 있던 모든 카메라가 그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 섬광 속에서 도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목 안에서 다시 피 맛이 올라왔다. 성대가 마지막으로 경련하며 찢어졌다. 그는 그 고통을 삼키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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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대기실은 어두웠다. 형광등 대신 비상구 표시등만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도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목에는 두꺼운 스카프가 감겨 있었고,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여 있었다. 화면에는 녹음 앱이 켜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남기고 싶었다. 시현에게 들려줄 마지막 목소리를.

문이 열렸다. 시현이었다. 코트는 온데간데없고 셔츠 단추가 두 개나 풀려 있었다. 유리아와의 만남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손등에 긁힌 자국까지 있었다.

“도하.”

시현이 무릎을 꿇고 도하 앞에 앉았다.

“내일이면 끝이야. 유리아의 증거를 무력화할 방법을 찾았어. 내가 직접 기자회견에 나설 거야.”

도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시현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울었는지 속눈썹이 젖어 있었다. 도하는 엄지손가락으로 시현의 눈가를 쓸었다. 시현의 속눈썹이 도하의 지문을 스쳤다.

도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 안에서 공기가 새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소리 없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시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무슨……”

도하는 시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처음으로 도하가 먼저 한 키스였다. 그의 입술은 갈라지고 부르터 있었다. 열이 올라 뜨거웠다. 시현의 입술이 떨렸다. 도하는 시현의 아랫입술을 빨아들였다. 부드러운 점막이 도하의 혀끝에 닿았다. 시현의 입술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유리아와의 대치 속에서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는지, 작은 상처가 있었다. 도하는 그 상처를 혀로 핥았다.

도하는 시현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손끝이 시현의 쇄골을 스치자 시현이 숨을 들이켰다. 도하는 셔츠를 벗기고 시현의 어깨에 입술을 댔다. 쇄골 위로 혀를 굴리며 천천히 올라가 목덜미에 닿았다. 시현의 피부는 차가웠다. 도하는 그 차가운 피부에 자신의 뜨거운 입술을 눌렀다. 온도 차이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시현의 목덜미에서 소금기 섞인 땀 냄새가 났다. 하루 종일 긴장 속에서 흘린 식은땀이었다.

도하는 시현의 귀에 입술을 붙였다. 그리고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치 유리가 긁히는 듯한, 갈라지고 부서진 음색이었다. 성대 점막이 서로 마찰하며 찢어지는 소리가 도하의 목 안에서 났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 순간을 위해 그는 목소리를 아껴왔다. 일주일 동안 참아온 모든 말을 이 한마디에 담았다.

“사……랑……해.”

시현의 온몸이 굳었다. 도하는 아직 한 번도 그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시현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서에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목소리가 사라지기 직전에 도하는 그 말을 꺼냈다. 그 말은 성대를 찢으며 나왔고, 피 맛을 머금고 있었으며, 거의 숨소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분명한 말이었다.

“도하야……”

시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하는 그 눈물을 입술로 닦았다. 짠맛과 열기. 시현이 도하의 목에 매달리듯 입술을 댔다. 시현의 입술이 도하의 성대 부위를 더듬었다. 부풀어 오른 연골, 그 위로 떨리는 피부.

“가지 마.”

시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제발, 가지 마.”

도하는 시현을 소파에 부드럽게 눕혔다. 시현의 바지를 벗기고, 속옷을 끌어내렸다. 시현의 성기는 이미 반쯤 발기되어 있었다. 귀두가 포피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끝부분이 투명한 액체로 젖어 있었다. 도하는 손가락으로 시현의 성기를 감싸쥐었다. 시현이 신음을 삼켰다. 도하의 손바닥 안에서 시현의 성기가 더 단단해졌다.

도하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엄지손가락으로 귀두를 문지르고, 검지와 중지로 기둥을 쓸어내렸다. 귀두의 탄력 있는 표면이 도하의 엄지 아래서 미끄러졌다. 시현의 성기에서 투명한 액체가 스며나왔다. 도하는 그 액체를 손가락에 묻혀 시현의 항문 쪽으로 가져갔다. 손가락 끝이 괄약근의 주름에 닿자 시현의 허벅지가 긴장했다.

시현이 숨을 멈췄다. 도하는 한 번도 주도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시현이 그를 눕히고, 시현이 삽입하고, 시현이 지배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도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자신이 시현을 지배하는 순간을 갖고 싶었다. 목소리를 잃는 대신 얻은 유일한 권력이었다.

도하가 시현의 귀에 다시 입술을 댔다. 성대가 찢어지는 소리가 도하의 목 안에서 울렸다. 공기가 찢긴 틈새로 새며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거의 형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음절들이 흘러나왔다. 시현은 숨을 죽이고 도하의 입술에 더 가까이 귀를 댔다. 도하의 입술이 떨리는 것까지 느끼려는 듯이.

“내……가……너를……”

한 음절 한 음절, 성대 점막이 갈라지며 핏물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도하는 그 피 맛을 삼키며 계속했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좌절감이 성적 지배의 쾌감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말을 할 수 없기에, 그는 손과 성기로 시현을 지배했다. 그 지배는 말보다 더 강력했다.

“……지킬……게.”

시현이 도하의 목을 끌어안았다. 입술을 도하의 성대 부위에 대고 떨었다. 도하의 목젖이 시현의 입술 아래서 바르르 떨렸다. 시현은 그 떨림을 입술로 느끼며 도하의 목에 키스했다. 성대가 있는 자리, 지금 망가지고 있는 그 자리를 입술로 어루만졌다.

도하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시현의 항문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첫 번째 관절이 들어가자 시현의 항문이 경련했다. 괄약근이 손가락을 조여왔다. 뜨겁고 부드러운 내벽이 도하의 손가락을 감쌌다.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회전시키며 내벽을 넓혔다. 시현의 허리가 들썩였다. 도하는 두 번째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내벽이 팽팽하게 늘어나며 손가락을 압박했다. 그 압박감이 도하의 성기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도하는 손가락을 빼내고 자신의 바지를 벗었다. 그의 성기는 완전히 발기해 있었다. 평소보다 더 단단하게, 더 뜨겁게. 귀두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기둥의 혈관이 도드라져 있었다. 그는 시현의 다리를 들어 올려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성기를 시현의 항문에 댔다. 귀두가 괄약근을 밀어내며 들어갔다. 시현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도하는 성기를 천천히 밀어 넣었다. 뜨겁고 좁은 내벽이 벌어지며 귀두를 감싸왔다. 내벽의 주름이 성기의 표면을 따라 늘어나는 감각이 도하의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도하는 거기서 멈췄다. 시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눈빛은 단단했다. 도하는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성기가 시현의 내벽을 뚫고 깊숙이 들어갔다. 성기 뿌리까지 집어삼키듯 내벽이 도하를 빨아들였다. 시현의 안은 뜨거웠다. 내벽이 도하의 성기를 감싸고 경련했다. 그 경련이 성기의 귀두부터 뿌리까지 파도처럼 전해졌다.

도하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성기가 빼내졌다가 다시 들어갔다. 피스톤 운동이 시작됐다. 내벽이 성기의 모양을 따라 벌어졌다가 조여왔다. 애액이 성기와 내벽 사이에서 흘러내렸다. 끈적한 액체가 시현의 허벅지를 타고 소파에 떨어졌다. 도하의 고환과 시현의 엉덩이가 부딪힐 때마다 젖은 소리가 대기실에 울렸다.

도하는 시현의 귀에 입술을 붙인 채 계속 속삭였다. 목소리는 거의 소멸 직전이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 갈라진 유리 조각이 부딪히는 소리, 그 너머로 겨우 말의 형태를 이룬 음절들이 흘러나왔다. 시현은 도하의 입술이 자기 귀에 닿은 채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숨결만으로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도하의 입술이 귀에 닿을 때마다 시현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는 말하고 싶었다. 말할 수 없는 이 순간에, 가장 많은 말을 쏟아내고 싶었다.

“처음……봤을 때……”

허리를 밀어 넣으며. 성기가 내벽 깊숙이 닿으며 시현의 전립선을 압박했다.

“네가……무대에서……서 있을 때……”

성기가 빼내졌다가 다시 들어갔다. 내벽의 주름이 성기의 귀두를 스쳤다.

“빛나고……있었는데……”

손가락이 시현의 유두를 찾아 쥐며. 유두가 도하의 손가락 사이에서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네 눈이……그렇게……무서워하고……있을 줄……몰랐어……”

도하의 엄지손가락이 시현의 유두를 압박했다. 손톱으로 유두의 끝을 살짝 긁었다. 시현이 허리를 들썩였다. 항문이 도하의 성기를 더 깊이 조여왔다. 내벽이 성기 뿌리까지 빨아들이며 경련했다. 도하는 리듬을 빨리 했다. 성기가 내벽을 마찰시키며 드나들었다. 점막이 붓고 마찰열이 올라왔다. 두 사람의 체온이 섞이며 대기실의 공기가 후텁지근해졌다.

“네가……내 목소리……찾아줬잖아……”

도하의 목소리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성대 점막이 갈라지며 핏물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철분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는 계속 말했다.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가 성대를 찢고 있었지만, 그 고통조차 지금은 쾌락의 일부였다. 시현의 몸속에서 느끼는 쾌감과, 목 안에서 번지는 고통이 뒤섞이며 도하의 의식을 하얗게 만들었다.

“나……네 거……되는 게……좋았어……”

시현이 도하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혀가 도하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시현의 입천장을 핥고, 잇몸을 훑었다. 핏물이 섞인 침이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다. 시현은 도하의 입속에서 피 맛을 느끼며 키스를 더 깊게 했다. 도하의 혀를 빨아들이고,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도하의 성대가 망가지는 소리가 입맞춤 사이로 새어나왔다.

도하가 시현의 몸속에서 절정 직전까지 갔다. 성기가 팽창하고 고환에서 뜨거운 액체가 올라왔다. 그는 시현의 귀에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그 순간 성대가 완전히 찢어졌다. 피가 목구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음절을, 마지막 숨을, 시현에게 바쳤다. 시현은 도하의 입술이 귀에 닿은 채로 떨리는 것을 느끼며, 그 떨림이 마지막 음절을 전달하는 유일한 언어임을 알았다.

“너만……들어……”

그리고 정액을 쏟아냈다. 뜨거운 액체가 시현의 내벽 안으로 터져 나갔다. 성기가 경련하며 정액을 뿜어낼 때마다 시현의 내벽이 더 강하게 조여왔다. 시현이 그 감각에 몸을 떨며 함께 절정했다. 시현의 성기에서 하얀 액체가 분출되어 도하의 배 위로 쏟아졌다. 정액이 도하의 배꼽에 고이고, 복근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현의 항문에서도 도하의 정액이 흘러나와 소파에 얼룩을 남겼다.

도하는 시현의 몸속에 자신의 성기를 넣은 채로 몇 분간 움직이지 않았다. 정액이 내벽 안에서 흘러내렸다. 성기가 조금씩 수그러들면서도 내벽은 여전히 도하를 놓지 않았다. 시현이 도하의 목에 얼굴을 묻고 떨었다. 도하의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단지 찢긴 성대 사이로 공기만 새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소리가 도하가 마지막으로 건넨 모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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